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388)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389화
미인계 (3)
“흐응. 의외로 평소에는 멀쩡한 모습이구나, 그때 그 괴물이라고는 믿기지가 않는걸?”
강우의 몸을 위아래로 훑어본 프로세르핀이 뱀의 혓바닥과 같은 기다란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마치 악몽이 현세에 구현한 것처럼 끔찍했던 괴물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찬란하기까지 한 황금빛이 은은하게 몸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딜 어떻게 봐도 ‘빛의 수호자’라는 칭호에 걸맞은 모습.
‘하지만.’
프로세르핀은 짙게 웃었다.
빛의 수호자라는 것은 저 괴물이 가이아의 눈을 속이기 위한 거짓 신분임을 잘 알고 있다.
저 볼품없는 인간의 껍데기 안에, 얼마나 끔찍하고 두려운 괴물이 잠들어 있는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정말.’
프로세르핀의 몸이 떨렸다.
아무리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 없었다.
질척한 점액질로 이루어진 괴물.
무수한 입과, 입과, 입으로 이루어진 아득한 어둠.
신화의 시절, 마신이 그토록 찾았던 마해(魔海)에서 태어난 것과 같은 괴물의 모습은 그녀의 뇌리에 낙인처럼 새겨졌다.
“하아.”
뜨거운 숨을 토해냈다.
몸이 달아올랐다.
마신에게 신격을 부여받았다고 하나, 그녀의 본질은 서큐버스였다.
그것도 음마(陰魔)의 신이라고 불릴 정도로 높은 위치에 군림하는.
오랜 시간 세라핌에 의해 봉인 당한 탓에 서큐버스들 사이에서 잊혀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본능이 어딜 간 것은 아니다.
‘저 괴물과 몸을 섞으면… 정말 끝내주겠지.’
서큐버스는 눈부신 외모와 뛰어난 현혹 마법으로 먹잇감을 홀린다.
그리고 그 먹잇감이 사랑에 빠지도록 만든다.
광기에 가까운 사랑에 빠진 존재에게서 서서히 정기를 흡수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서큐버스의 사냥 방법이었다.
사냥감이 강하면 강할수록, 흡수할 수 있는 정기가 많은 것은 당연지사.
그런 의미에서 눈앞에 서 있는 불사(不死)의 괴물 이상의 먹잇감은 없었다.
‘끊임없이 양질의 정기를 먹을 수 있겠지.’
괴물의 경이로운 재생력을 생각하면 무한한 정기를 공급받을 수 있다.
마르지 않는 샘을 발견한 듯한 기분.
프로세르핀은 뜨거운 눈으로 인간의 탈을 쓴 괴물을 바라보았다.
무한한 정기를 공급받기 위해서라도 저 괴물을 유혹하여 사랑에 빠트려야 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에게 가장 자신 있는 일이었다.
“흐응. 어때? 이게 진짜 내 모습이야.”
프로세르핀은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검은 촉수를 쓸어넘겼다.
강우의 표정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후훗. 너무 예뻐서 말을 못 하는 것 같네.”
“…말이 안 나오긴 한다.”
강우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어처구니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왜 또 촉수야.’
트라우마가 떠오르며 등골에 오싹한 공포가 흘렀다.
“이익!”
리리스가 초조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프로세르핀의 눈부신 외모는 그녀로서도 큰 위기감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리리스는 강우의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강우 님. 이렇게 있을 수는 없어요.”
“뭐? 뭐가.”
리리스가 앞으로 당당히 걸어 나가며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녹색 촉수가 꿈틀거리며, 열여덟 개에 달하는 눈이 나타났다.
“…뭐야?”
프로세르핀이 당황한 표정으로 리리스를 바라보았다.
설마 괴물의 옆에 다른 서큐버스가 있을 줄이야.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리, 리리스 씨?”
“저, 저게 리리스라고?”
리리스의 본 모습을 처음 보는 차연주와 한설아의 표정도 경악에 물들었다.
리리스는 녹색 촉수로 입가를 가리며 날카롭게 프로세르핀을 노려보았다.
“어디서 감히 우리 낭군님을 넘보는 거야?”
“흥, 어디서 굴러먹다 온 년인지는 모르겠는데, 네가 끼어들 일 아니니까 좀 찌그러져 있지?”
두 여인의 살기가 충돌했다.
“…….”
강우는 아연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쩍 벌렸다.
절망 어린 신음이 흘러나왔다.
“촉수가 둘….”
몸이 떨렸다.
끈적거리는 촉수를 보는 것만으로도, 거칠게 심장이 두근거리며 창백하게 얼굴이 질렸다.
“하나도 아니라… 둘.”
강우는 서로 대치하고 있는 리리스와 프로세르핀의 모습을 바라보며 흐느꼈다.
구천지옥에 다시 돌아온 듯한 기분이었다.
“…강우 씨.”
한설아가 강우를 바라보며 눈을 글썽거렸다.
“정말로… 그랬던 거예요?”
뭐가.
대체 뭐가 그런 건데.
“저는… 강우 씨의 취향이 아니었던 거예요?”
예?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강우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한설아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니.
마치 자신의 취향이 저 촉수였다고 말하는 듯한 물음이었다.
“그럴 리….”
“이제까지 숨겨서 미안해요, 설아 씨.”
리리스가 안쓰럽다는 듯 한설아의 팔을 잡았다.
녹색 촉수를 꿈틀거리며 말을 이었다.
“강우 님이 사랑하는 것은… 바로 이 촉수들이에요.”
아닌데요.
“설아 씨가 가질 수 없는 거라 이제까지 말하지 못했어요.”
“그, 그런….”
아니라고.
“아니, 뭔 개소리야 그게.”
강우는 답답하다는 듯 리리스를 노려보았다.
“내가 촉수를 언제 좋아했다고 그런 거야.”
이번 기회에 확실히 못을 박아둬야 했다.
“나는 촉수를 싫어한다고. 눈이 여러 개인 것도, 온몸에서 고름이 흘러나오는 것도 끔찍해 보인다고.”
리리스의 어깨를 잡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제발… 제발 좀 그만해. 그냥 쿠로사키 유리에의 모습이 훨씬 예쁘다고.”
“…….”
리리스의 표정이 굳었다.
그녀는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저, 정말요?”
“그래.”
원하면 찍을 수도 있어.
아, 물론 고아긴 한데.
어쨌든.
“흥, 거짓말하지 마.”
프로세르핀이 코웃음 쳤다.
“넌 또 뭔데.”
시바, 뭔데 거짓말이고 아니고를 네가 정해.
“어차피 지금 넌 가면을 쓰고 있는 것에 불과하잖아? 볼품없는 인간의 모습을 좋아할 리가 없지.”
“…….”
강우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차연주의 표정을 살폈다.
리리스나 한설아라면 몰라도, 그녀는 진실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다.
“…가면? 그게 무슨 소리야?”
차연주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예전 내 과거를 알고 있는 모양이야.”
“아.”
막힘없는 강우의 대답에 차연주가 짧은 탄성을 흘렸다.
까맣게 잊고 있었지만, 강우는 영웅신의 사도로 발탁되기 전에는 악마였었다.
“…맞다, 너 만 년을 지옥에서 보냈다고 했지.”
차연주는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만 년이라니.
너무 아득해서 짐작조차 안 갈 정도로 기나긴 시간이다.
“근데 그 정도로 오래 살았다면 진짜 보는 눈이 바뀌는 거 아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강우의 입에서 절로 욕지기가 흘러나왔다.
만 년을 있건 십만 년을 있건 자신이 촉수를 좋아할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
한설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녀는 가늘게 떨리는 눈으로 차연주의 말을 머릿속에 되새겼다.
‘정말 만 년이라면….’
가치관이 바뀌어도 이상하지 않을 시간이다.
자신이 보기에 흉측하기 짝이 없는 리리스와 프로세르핀의 모습도, 강우에게는 더없이 아름답게 느껴질 수도 있었다.
‘리리스 씨랑도 계속 같이 있었잖아.’
조금씩 의심이 커져갔다.
강우는 리리스와 천 년 가까이를 같이 있었다고 했다.
정말로 그녀를 싫어했다면,
그 아득한 시간을 같이 있을 리가 없다.
당시 강우의 사정을 모르는 한설아는 초조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다른 사람에게 강우를 빼앗길 수도 있다는 공포가 등골을 타고 전신에 퍼졌다.
‘안 돼.’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강우가 다른 여자의 손에 들어간다니, 상상하는 것만으로 속이 뒤틀렸다.
시야가 흔들리며 강렬한 갈증이 목을 태웠다.
프로세르핀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든 한설아의 눈에서 빛이 사라졌다.
‘죽여야, 해.’
자신에게서 강우를 뺏으려고 하는 존재였다.
살려둬서는 안 된다.
죽여야 한다.
처참하게. 다시는 강우를 넘보지 못하도록.
끔찍한 후회와 절망 속에서 몸부림치도록 만들어야 한다.
“뭐, 어쨌든 난 너한테 관심 없으니까 다른 놈이나 불러와.”
강우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프로세르핀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은 진심이었다.
성좌라고는 하나, 그녀는 리리스처럼 전투가 아닌 쪽에 능력이 특화되어 있다.
‘그래도 신격을 흡수할 수 있으니 의미는 있지만.’
역시 절망의 성좌에 비하면 그녀는 전혀 먹음직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일단.’
강우는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이유야 어쨌든, 성좌가 제 발로 여기까지 찾아온 것은 반길 만한 일이다.
‘정보를 좀 얻을 수 있겠지.’
강우는 가볍게 발을 굴렀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온 거대한 황금빛 물결이 주변을 둘러쌌다.
아무리 그녀의 힘이 전투에 특화되어 있다고 하지만, 신격을 지닌 존재와의 싸움에서 결계도 치지 않고 싸웠다가는 제국 수도 자체가 증발해 버리고 만다.
“에이, 왜 그래? 자꾸 그러면 무서워지잖아.”
프로세르핀이 윙크를 보내며 야릇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리리스를 바라보았다.
“저 서큐버스 때문이야? 후훗. 그렇다면 신경 쓸 일 없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리리스 또한 눈부시게 아름다운 외모를 지니고 있었지만, 감히 자신에 견줄 수는 없었다.
아니, 단순히 외모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와 한 번 하면… 평생 잊을 수 없는 쾌락을 선물해 줄게.”
프로세르핀은 옷을 살짝 끌어 내려 보랏빛 피부의 어깨와 가슴골을 강조했다.
“…웁.”
그녀의 유혹에 강우는 입을 막으며 헛구역질을 했다.
아침에 먹었던 김치찌개가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시발.’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빨리 잡아서 정보나 불게 해야겠다.’
강우는 질린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손을 뻗었다.
마해의 열쇠가 ‘분노’의 형태로 변했다.
2미터에 달하는 양손 검을 가볍게 한 손에 쥐었다.
“…음?”
프로세르핀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신을 향한 선명한 적의가 느껴졌다.
“흐응. 부끄러움이 좀 많은 것 같네.”
프로세르핀은 짙은 미소를 머금으며 귀엽다는 듯 강우를 바라보았다.
“부끄러움이 많긴 개뿔.”
강우는 발을 박차며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마해의 열쇠를 휘둘러 그녀의 머리를 내려찍었다.
-쩌적!
프로세르핀의 머리가 반으로 쪼개졌다.
“…….”
강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쯧, 혀를 찼다.
“분신이었군.”
고작 일격으로 신격을 지닌 신을 죽였을 리는 없었다.
그렇다고 프로세르핀이 개문을 사용한 자신처럼 ‘죽지 않는’ 몸을 지녔을 리도 없다.
“…설마 진짜 공격하다니.”
머리가 반으로 갈라진 프로세르핀의 몸이 검은 촉수 정어리로 변했다.
그 사이에서 나타난 그녀의 얼굴은 지금 이 상황을 믿을 수 없다는 경악에 차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후훗. 재밌네.”
프로세르핀은 더없이 즐겁다는 듯 입술을 핥았다.
“나를 거부한 남자는 네가 처음이야.”
열락(悅樂)에 찬 목소리.
그녀는 기대감에 부푼 눈빛으로 강우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공략을 해야 할지, 즐거운 고민에 찬 표정으로.
“너는 꼭 내가 손에 넣고 말 거야.”
프로세르핀은 활짝 미소를 지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검은 촉수가 녹아내리듯 바닥에 흩어지며, 그녀의 분신이 사라졌다.
“…….”
한설아는 사라지는 그녀를 바라보며 두 주먹을 꽉 쥐었다.
“강우 씨를… 손에 넣을 거라고?”
음산한 살기가 그녀의 눈빛에 감돌았다.
아득, 아득.
사납게 이를 갈며 입술을 깨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