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393)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394화
빛이 당신을 태울 것입니다 (1)
“에르노어를 위하여어어!”
앤두인을 선두로 한 교단의 병력이 파죽지세로 마물들을 쓸어버렸다.
찬란한 빛의 물결이 파도처럼 흘러넘쳤다.
앤두인은 손에 쥔 메이스를 높게 들어 올렸다.
“죽어라, 사악한 악의 무리들이여!”
포효를 내지르며 높게 든 메이스를 내려찍었다.
광휘에 휩싸인 메이스가 대지를 갈랐다.
일자로 뻗어 나간 빛이 수백에 달하는 마물을 불태웠다.
“와아아아아!!”
단 일격에 수백의 마물을 쓸어버리는 앤두인의 위용에 신도들이 열광했다.
그는 압도적이라는 표현이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거침없이 적진으로 돌격했다.
“흐아아아아!!”
앤두인의 메이스가 움직일 때마다 검은 잿더미로 변한 마물의 시체가 흩뿌려졌다.
그는 무아지경에 빠져 메이스를 휘두르며,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이 힘이라면.’
루메리아가 허락한, 이 강대한 힘이라면.
‘지킬 수 있다.’
악의 태동에 고통 받고 있는 대륙인들을, 공포에 질려 있는 대륙인들을 지킬 수 있다.
앤두인은 마물을 쓸어버리며, 상상했다.
이 일이 끝난다면 자신은 영웅으로 칭송받을 것이다.
어쩌면 김시훈보다도 더욱.
‘아니,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지.’
앤두인은 고개를 저었다.
이런 무의미한 것을 생각할 때가 아니다.
이미 자신은 한 번 그릇된 선택을 하지 않았던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욕망의 유혹에 넘어간 자신의 실책을 지울 기회였다.
앤두인은 찬란히 빛나는 눈으로 악의 무리를 향해 메이스를 휘둘렀다.
“루, 루메리아 님의 현신이다….”
“평화의 신이 현신한 거야.”
루메리아 교단의 신도들은 찬란한 빛에 휩싸인 채 마물을 쓸어버리는 앤두인의 모습에 탄성을 흘렸다.
“…….”
다른 교단의 화신들도 그의 모습에 자극을 받았는지 굳게 입을 다문 채 주먹을 쥐었다.
그들은 서로 잠깐 시선을 교환하더니, 이내 앤두인의 뒤를 따라 마물들을 향해 돌격했다.
협곡을 가득 채우던 마물들이 하나로 뭉친 교단의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하아, 하아!”
앤두인의 입에서 거친 숨이 흘러나왔다.
턱까지 차오른 숨에,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시야가 흔들리며 발걸음이 엉켰다.
최악이라면 최악이라고 할 수 있는 몸 상태.
하지만 그의 눈은, 더없이 밝은 희망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쩌적.
검은 균열 속에서,
한 사내가 걸어 나왔다.
얼굴에 깊은 검상이 있는 중년 사내는 아무런 감정이 담기지 않은 눈빛으로 교단을 바라보았다.
“칫, 얘들은 또 뭐야?”
사내의 뒤를 이어 검은 촉수를 가진 여인이,
“…신의 화신들이야.”
그 뒤를 따라 멍한 눈빛의 소년이 걸어 나왔다.
“너희는….”
앤두인은 균열 속에서 나타난 존재를 바라보며 말끝을 흐렸다.
덜덜덜.
그들에게서 풍기는 숨 막히는 기운에, 팔다리가 후들거렸다.
“화신들? 신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거야?”
그런 앤두인은 안중에도 없는지 검은 촉수의 여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멍한 눈빛의 소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씨. 왜 하필 지금 나서서 지랄이야. 이제 막 달링에게 어떻게 어필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검은 촉수의 여인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뚱한 표정으로 앤두인을 노려보았다.
오싹.
너무도 끔찍한 그 외형에 등골을 타고 소름이 퍼졌다.
“조용.”
얼굴에 흉측한 검상이 난 사내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런 그의 말에 여인은 흥, 코웃음을 치며 물었다.
“그보다 너 전에 갔던 일은 어떻게 된 거야? 그… 천태황이었나? 네 제자의 영혼이 들어간 인간과 만난다고 했잖아.”
“조용히 하라고 했다, 프로세르핀.”
“…….”
태무극이 눈살을 찌푸리며 프로세르핀을 노려보았다.
프로세르핀은 어깨를 으쓱이며 태무극의 시선을 피했다.
같은 성좌라고 해서 그에 대해서 전부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지금 그의 심기를 거스르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었다.
“루메리아의 화신인가.”
태무극은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앤두인을 바라보았다.
앤두인의 몸이 흠칫 떨렸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지, 가슴을 부여잡고 꺼억, 꺼억 헛구역질을 토했다.
항거할 수 없는,
가늠할 수조차 없는 거대한 악(惡)의 등장에 앤두인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벌벌 몸을 떨었다.
그런 앤두인의 모습에 태무극은 아무런 감정이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찮군.”
실로, 하찮기 그지없다.
태무극은 허리춤에 찬 검을 뽑았다.
검푸른 불꽃이 검신을 타고 타올랐다.
“아, 아아.”
앤두인의 입에서 공포에 질린 신음이 흘러나왔다.
털썩,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눈빛에 서려 있던 희망의 빛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 * *
“커헉! 쿨럭, 쿨럭!”
검붉은 피가 바닥을 적셨다.
재해라도 일어난 듯, 처참하게 박살 난 협곡에서 금발의 청년이 비틀거리며 바닥을 기었다.
앤두인.
평화의 신, 루메리아의 화신이자 신합회의 지도자였다.
“크흑….”
바닥에 주저앉은 그의 눈에서 투명한 눈물이 떨어졌다.
압도적.
그 말 외에 다른 어떤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일방적으로,
교단은 패배했다.
“어, 어떻게 그토록 강한 악이….”
앤두인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처참하고, 참혹한 패배였다.
-저벅, 저벅.
그때, 발소리가 들렸다.
“…어?”
앤두인은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를 향해 걸어오는 청년을 발견하고는, 다급히 외쳤다.
“오, 오강우 님! 조심해야 합니다! 악의 무리 중에는 압도적인 힘의….”
“알고 있어.”
강우는 빙긋 웃으며, 답했다.
“…예?”
“위에서 다 봤거든. 햐, 그 자식. 정말 마음에 들어. 진짜… 최고야.”
흉포한 광기에 번들거리는 눈으로, 강우는 중얼거렸다.
열락에 찬 숨이 토해졌다.
교단을 쓸어버리는 절망의 성좌의 모습을 떠올리자, 온몸에 전율이 돋았다.
‘놈은.’
미친 듯이 강했다.
도저히 닿을 수 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하, 하하.”
강우는 웃음을 터트렸다.
참기 힘든 욕망이 몸을 뜨겁게 달궜다.
“보고… 있었다고, 요?”
“아, 응. 그래. 덕분에 도움이 많이 됐어.”
강우는 가볍게 웃음을 터트리며 말을 이었다.
“성좌들의 병력 규모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고, 처음 보는 성좌도 하나 확인했고. 그리고 마물의 숫자 자체도 많이 줄었고. 햐, 진짜 기대 이상이었어.”
음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번에 교단을 스카우터용 미끼로 던진 것은 정답이었다.
그들은 적들의 정확한 전력을 파악해 주는 데 그친 것이 아닌, 날파리처럼 귀찮은 존재가 될 수 있었던 마물들을 상당수 줄여주는 역할까지 했다.
“그, 그게 무슨… 소리, 입니까?”
앤두인은 강우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강우는 짙은 미소를 지은 채 그를 내려다보았다.
“무슨 소리라고 생각해?”
“…….”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앤두인의 표정이 파랗게 질렸다.
설마, 하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스쳤다.
“설마… 저희를, 미끼로… 사용하신 겁니까?”
“응?”
강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푸흡, 푸헤헿헿헿!”
천박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니, 미끼고 뭐고 그쪽이 알아서 기어가신 것 아닙니까? 예? 내가 섣부르게 가지 말라고 했잖아요. 응? 했어, 안 했어?”
“이, 이익!!”
앤두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처, 처음부터 당신이 꾸민 일이었어!”
그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가 담긴 목소리로 외쳤다.
강우는 빙그레 웃었다.
손을 뻗어, 앤두인의 머리를 잡았다.
“그건 아니지 이 친구야.”
“…뭐?”
“모든 일을 꾸민 건 너 자신이잖아. 난 네게 선택에 필요한 정보를 줬을 뿐이야.”
“헛소리! 이토록 많은 마물이 있다고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 몰랐으니까.”
“…….”
“내가 말한 것은 어디까지나 악의 무리가 어디에 숨었는지야. 너도 알고 있잖아?”
강우는 고개를 돌려 협곡 사이에 가득히 쌓인 신도와 화신들의 시체를 둘러보았다.
“여기 있는 사람들을 사지로 몰고 간 건, 네 의지야.”
“…….”
앤두인의 표정이 창백하게 질렸다.
“아, 아니야.”
떨리는 목소리로 고개를 저었다.
강우는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네가 한 짓이야.”
진실에서 고개를 돌리려는 신의 사도를 향해, 단호하게 말했다.
“네가 죽인 거야.”
“…….”
딱딱딱.
앤두인의 이빨이 시끄럽게 부딪혔다.
“나, 나는….”
“중간에 마음을 다잡았다고? 잘못된 선택을 바로잡으려 했다고?”
강우는 바닥에 주저앉은 앤두인의 머리채를 잡았다.
“죄를 짓고 마음만 다잡으면 용서받냐? 응? 부하를 사지로 밀어 넣고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노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끝이야?”
“그, 그런 게 아….”
“아니긴 새끼야. 너도 거기서 미카엘이 하는 말을 들었잖아? 심지어 나도 이곳에 가지 말라고 경고했지.”
“…….”
“그런데 넌 여기 왔지. 그것도 교단 전체를 데리고.”
“그건….”
“난 강요하지 않았어. 네가 선택한 거야. 네가 위험을 무릅쓰고, 김시훈에게 빼앗긴 교단의 명예와 신뢰를 되찾기 위해 이곳에 온 거라고. 그렇지?”
“…….”
앤두인은 굳게 입을 다문 채,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마치 자신의 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듯한 그의 눈빛에, 깊은 불쾌감이 퍼졌다.
“왜, 대륙인들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한목숨 바치면 좀 멋져 보일 것 같니? 남을 위해 희생하면 다들 널 우러러볼 것 같아?”
“나, 나는 진심으로…!”
“진심이고 아니고가 중요한 게 아니지.”
중요한 것은.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거야.”
괜한 영웅심으로 가리려 하지 마.
“네가 죽인 거야.”
이곳에서 죽은 모두.
“네가 죽인 거라고.”
“…….”
죽음과 같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앤두인은 머리를 붙잡으며, 덜덜 몸을 떨었다.
“아, 아으.”
한껏 일그러진 표정으로 신음을 흘렸다.
뚝뚝.
투명한 눈물이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흐, 흐으으으.”
서럽게 울부짖기 시작했다.
강우는 짧은 탄성을 흘렸다.
‘아, 이러면 또 마음이 약해지는데.’
그래도 과정이야 어쨌든 결과적으로 이런저런 도움이 많이 된 앤두인이 서럽게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약해졌다.
‘요즘 진짜 성격 많이 좋아졌다, 오강우.’
자기 자신에게 감탄사가 흐를 정도였다.
강우는 울고 있는 앤두인을 위로하기 위해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야, 야야. 그렇게 울지 마, 인마.”
“…….”
“사실 네 잘못만은 아니지. 따지고 보면 나도 결계 때문에 기습이 안 된다는 정보를 숨겨서 널 이쪽으로 오도록 유도했으니까.”
“…뭐?”
“아, 그리고 너희가 도착하는 타이밍 맞춰서 결계 부숴서 마물 튀어나오게 한 것도 나야.”
“너, 너….”
“그러니까, 인마. 기운 차리고! 다 네 탓이라고 너무 자책하지 말고!”
“이, 이 개자식이!!!”
앤두인은 입을 쩍 벌리며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파르르 떨리는 팔을 들어 강우를 향해 휘둘렀다.
툭.
허망하게 팔이 떨궈졌다.
“응? 뭐야. 새끼 네 책임 아니라고 위로해줘도 지랄이네.”
강우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다 자기 책임이라고 자책하길래 그건 아니라고 위로해 줬더니 되레 역정을 내는 것은 무슨 경우란 말인가.
“아, 아아.”
앤두인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쿨럭.
입에서 다시금 검붉은 피가 토해졌다.
그의 눈빛에 남은 생명의 기운이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었다.
“비, 빛….”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내며, 생명조차 불태우며.
힘을 끌어올렸다.
앤두인은 입술을 짓씹으며 오른손을 앞으로 펼쳤다.
찬란한 빛이 그의 손에 맺혔다.
인간의 탈을 쓴, 눈앞의 악마를 향해 입을 열었다.
“빛이, 당신을, 태울 것, 입니다.”
증오 섞인 목소리로, 씹어뱉듯 말했다.
강우는 피식 웃었다.
“뭐래.”
빛이 흘러나오는 앤두인의 오른손을 붙잡았다.
앤두인의 빛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눈부신 황금빛이 폭발하듯 뿜어졌다.
“내가 바로 그 빛이다, 이 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