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397)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398화
역시 거짓말이었네요 (1)
“너어……!”
프로세르핀이 도끼눈을 떴다.
날카로운 눈으로 한설아를 노려보며, 입술을 짓씹었다.
설마 여기까지 따라오다니.
“가이아의 화신은 그냥 죽도록 내버려 뒀나 봐?”
마신의 신격을 해방한 덕분에 가이아의 화신에게 큰 상처를 입히고 도망칠 수 있었다.
그녀를 그냥 내버려 둔 채 자신을 따라왔다면, 가이아의 화신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아뇨.”
한설아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레이라 씨가 죽지 않도록 응급처치는 이미 끝냈어요.”
“…….”
그렇게 짧은 시간에?
그런 의문을 입에 담으려고 했던 프로세르핀은 이내 잘근잘근 입술을 깨물었다.
‘세라핌이라면 가능해.’
천신 세라핌의 힘을 온전히 사용하지는 못하는 것으로 보이나, 어쨌든 그녀의 힘의 일부라도 사용할 수 있다면.
응급처치 정도 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일 것이다.
프로세르핀은 상처를 부여잡으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자신이 가이아의 화신에게 입힌 상처는 결코 적은 상처가 아니었다.
그것을 단순히 응급처치만 했다면.
“지금쯤 가이아의 화신은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겠군.”
“걱정 마세요. 리리스 씨가 잘 보살펴 드리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한설아의 눈빛이 섬뜩한 빛으로 빛났다.
“레이라 씨도 이해해 주실 거예요. 다른 악마도 아닌 악의 성좌를 잡는 일이잖아요?”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다가온다.
프로세르핀은 상처를 부여잡은 팔을 가늘게 떨며, 헛웃음을 흘렸다.
“하. 네가 날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천신 세라핌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그녀는 농사를 짓고 있던 농부라 할지라도 역전의 용사로 만들어버리는 강력한 버프와 죽은 존재도 살려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회복 마법을 지니고 있었다.
아니, 실제로 천신의 모든 힘을 다한 ‘기적’이라는 마법을 사용하면 죽은 존재도 살아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워낙 능력이 그쪽으로 특화된 만큼, 일대일 전투에서는 그 능력이 처참할 정도로 떨어진다.
즉.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없다는 거지.’
프로세르핀은 가늘게 뜬 눈으로 한설아를 바라보았다.
비록 자신의 몸 상태가 최악이라고는 하나, 설마 전투 능력도 없는 허수아비에게 지지는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건방지게 혼자 온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 주마!”
프로세르핀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치며 손을 뻗었다.
검은 촉수가 빠른 속도로 한설아의 목을 노렸다.
하지만.
-턱.
“…어?”
한설아는 자신의 목을 노리는 촉수들을 가볍게 붙잡았다.
손에 쥔 촉수를 비틀더니, 있는 힘껏 잡아 뽑아버렸다.
-뚜둑!
“꺄아아아악!”
섬뜩한 소리와 함께 촉수가 뜯겨나갔다.
촉수가 뜯기며 녹색 고름이 분수처럼 뿜어졌다.
프로세르핀의 입에서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뭐, 뭐야?”
프로세르핀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한설아를 바라보았다.
세라핌의 영혼이 깃들었다면, 필시 전투 능력은 하찮아야 할 터인데.
“이 더러운 촉수로.”
한설아는 손에 움켜쥔 촉수를 내려다보며 음산한 빛으로 눈을 빛냈다.
전등이 깨진 듯, 그녀의 날개가 순간적으로 검게 점멸했다.
-쿠르릉.
천둥이 내려치는 듯한 폭음과 함께, 열두 장의 날개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빛이 주변을 휩쓸었다.
“강우 씨를 넘보려고 했군요.”
수백, 수천에 달하는 검은 깃털이 프로세르핀을 노리고 쏘아졌다.
“꺄아아아악!”
투두두두두두!
기관총을 난사하듯 수천 개의 깃털이 쏟아졌다.
프로세르핀은 몸을 웅크린 채 새된 비명을 질렀다.
날아드는 수천 발의 깃털에 피부가 베였다.
촉수가 잘려 바닥에 나뒹굴었다.
“하아, 하아.”
한 차례 검은 깃털의 폭풍이 지나간 후, 프로세르핀은 거친 숨을 내쉬며 눈을 떴다.
다행히 상처 자체는 크지 않았다.
‘아, 아냐.’
다행히, 가 아니었다.
이 정도로 무력하게 공격을 허용했는데, 이 정도 상처밖에 없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였다.
‘일부러… 급소를 피해서 공격한 거야.’
오싹한 감각이 등골을 타고 퍼졌다.
음산한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한설아의 모습에 공포가 몸을 잠식했다.
“다시는 강우 씨를 넘볼 수 없도록… 손도 댈 생각조차 만들지 못하도록 만들어 드릴게요.”
한설아는 프로세르핀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며 중얼거렸다.
프로세르핀의 몸이 움찔 떨렸다.
그녀는 꿀꺽 침을 삼키며 몸을 떨었다.
‘어, 어떻게 하지?’
온전한 상태였으면 모를까.
마신의 신격을 해방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지금 저 미친 인간을 상대할 방법은 없었다.
더욱 최악인 것은, 더 이상 도망칠 여력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
“읏….”
프로세르핀은 입술을 깨물었다.
방법을, 지금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생각해 내야 했다.
‘보니까 그 괴물에 대해 광적인 집착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마치 자신의 매혹에 걸린 남자들처럼, 정상적이지 않은 집착을 보이고 있다.
그 원인에 대해서는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세라핌의 영혼이 깃들었다면….’
천사의 본능이 무엇인지 그녀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집착.
아마도 저 인간의 집착은 바로 그 괴물 자체일 것이다.
그렇다면 저런 광적인 집착도 이해할 수 있었다.
천사, 그것도 세라핌의 본능을 인간이 제어할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니까.
‘제길, 벌집을 건드려버렸잖아.’
프로세르핀은 거칠게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어쩔 수 없었다.
저 인간에게 세라핌의 영혼이 깃들어 있으리라 어떻게 예상한단 말인가.
‘그래도 방법은 있어.’
프로세르핀이 눈을 빛냈다.
저 인간이 천사의 본능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를 역을 이용하면 될 문제였다.
“흐응, 손대지 못하게 할 거라고?”
프로세르핀은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녀를 향해 다가오던 한설아가 태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손끝 하나도 대지 못하도록 만들어 드릴게요.”
“호, 호호호호호!!”
프로세르핀은 한 손으로 입을 가린 채 폭소를 터트렸다.
참을 수 없이 즐겁다는 듯, 한설아를 바라보았다.
“…뭐죠?”
한설아는 갑작스럽게 웃음을 터트린 프로세르핀을 노려보았다.
프로세르핀은 요염하게 몸을 비틀며 답했다.
“아~니? 이미 그건 좀 늦지 않았을까 해서 말이야.”
“…….”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한설아는 섬뜩하게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게… 무슨 의미죠?”
“호호호호!”
프로세르핀은 참을 수 없이 즐겁다는 듯 폭소를 터트렸다.
뱀처럼 긴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너, 최근에 달링이랑 잔 적 없어?”
“…….”
한설아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최근 며칠간 강우가 자리를 비웠기에, 밤에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없었다.
“에이, 아쉽네. 그러면 달링의 실망하는 얼굴을 볼 수 있었을 텐데.”
“…뭐?”
한설아가 날카롭게 눈을 떴다.
강우가 실망하다니?
의미심장하기 짝이 없는 그녀의 말에 쿵, 하고 가슴이 뛰었다.
“그게… 무슨 말이죠?”
“글쎄, 무슨 말일까?”
프로세르핀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웃었다.
쿵!
한설아는 열두 장의 날개를 활짝 편 채, 프로세르핀을 향해 쏘아졌다.
그녀의 머리칼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꺄악!”
“무슨 소리냐고 물었어요.”
“자, 잠깐! 아, 아파! 일단 좀 놓고 말해!”
“빨리 말해요.”
한설아는 섬뜩하게 빛나는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프로세르핀은 입으로 비명을 지르면서도, 히죽 입가를 올렸다.
“달링이 얘기 안 한 것 같네. 하긴, 얘기할 수 없었겠지.”
“…….”
“며칠 전에… 달링이 따로 나를 찾아오더라고.”
“강우 씨가… 찾아, 왔다고요?”
“응. 그때 내 분신에 흔적을 남겼거든.”
여유롭게 답했다.
사실 분신에 마기를 추적할 수 있는 흔적을 남긴 적은 없지만, 지금은 그런 세세한 것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한설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강우가 프로세르핀의 분신에서 이어진 흔적을 따라 산탄젤로 향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산탄젤로로 향하기 전에, 다른 곳에 들렸다면?
그리고 그곳이 바로 프로세르핀이 있던 곳이었다면?
“거짓, 말. 하지 마.”
한설아는 사나운 목소리로 말했다.
프로세르핀의 머리칼을 움켜쥔 손에 힘을 더했다.
“호호호! 왜 거짓말이라고 생각해?”
“강우 씨가 그럴 리 없어요.”
“왜? 원래 남자라는 게 그런 거 아닌가?”
“…강우 씨는 달라요.”
“아니, 똑같아.”
프로세르핀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은근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안 그래도 여자관계가 꽤나 복잡해 보이던데? 그 리리스라는 년이랑도 했을 거잖아? 그때 그 붉은 머리랑도 뭔가 관계가 수상해 보이고.”
“리리스 씨는 달라요.”
그녀는 무려 천 년 전부터 강우와 함께했다.
그리고 강우와 관계를 발전시키지 못하는 자신에게 여러 조언을 해주며, 같이 강우의 곁에 있자고 약속했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리리스에게까지 질투를 할 수는 없었다.
애초에 굴러들어온 돌은 리리스가 아닌, 자신이었으니까.
천 년이라는 아득한 시간을 강우 하나만을 바라봤던 리리스에게서 강우를 반쯤 빼앗은 것은 자신이었으니까.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째는 어렵지 않잖아?”
프로세르핀이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한설아는 주먹이 거칠게 쥐어졌다.
틀린 말은 아니다.
분명 틀린 말은 아니지만.
“강우 씨가… 그럴 리 없다고요.”
한설아의 손에서 힘이 풀렸다.
“후훗.”
프로세르핀은 짙은 미소를 입가에 띠며 거리를 벌렸다.
그녀는 자신의 배를 양손으로 감싸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그날 밤 내 안에 들어온 건 누구였을까?”
“…….”
프로세르핀이 깔깔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때 달링이 그러더라고. 이렇게 기분 좋게 해본 적은 처음이라고. 하긴 내가 또 누구겠니? 다른 년들이랑 똑같았으면 색욕의 성좌라고 불리지도 않았겠지.”
폭발적인 색기를 뿜어내며, 요염하게 입술을 핥았다.
“그러면서 네 얘기도 했어. 너무 서툴러서 재미없다던데?”
“뭐, 뭐라고요?”
한설아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서투르다니.
정곡을 찔린 듯 몸이 움찔 떨렸다.
강우 외에는 경험이 없는 사실이긴 했다.
“호호호! 하긴, 딱 봐도 쑥맥처럼 보이긴 하더라.”
프로세르핀이 깔깔 웃었다.
동시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서투른 게 맞았네.’
그녀가 괜히 색욕의 성좌겠는가.
한설아에게서 풍기는 냄새만 맡아도 경험이 적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충격을 받고 몸을 덜덜 떨고 있는 한설아의 모습이 보였다.
‘호호, 잘 먹힌 것 같네.’
작전이 성공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여기서 쐐기만 한 번 박아주면.’
저 인간의 집착은, 강렬한 분노로 바뀌게 될 것이다.
그 무엇보다도 격렬하게 불타는 분노로.
‘당장 그 괴물의 사타구니를 잡아 뜯으러 가겠지.’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의심부터 먼저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저 인간의 상태는 전혀 일반적이지 않다.
‘아마 지성도 거의 남아 있지 않을 거야.’
욕망이 극에 달하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일에도 망설임이 뛰어드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도박에 빠진 자들만 봐도 이성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보이지 않은가.
집착 또한 마찬가지였다.
집착에 극에 달해 광기로 변질됐다면, 자신의 말을 이성적으로 판단할 정신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허, 헛소리 하지 말아요!”
그녀의 예상대로, 한설아는 머리칼을 움켜쥔 채 광기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프로세르핀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지어졌다.
“후훗. 나도 오랜만에 아주 기분 좋았어.”
그녀는 자신의 배에 천천히 손을 올렸다.
“아, 그리고.”
배를 쓰다듬으며 깔깔 웃었다.
“아무래도… 생긴 것 같더라고.”
“…뭐, 라고, 요?”
“후훗. 생겼다고.”
사랑스럽다는 듯, 자신을 배를 내려다보았다.
“달링과의… 소중한 아기가.”
“……!!”
한설아의 눈이 부릅떠졌다.
전신의 혈관이 피부 위로 도드라질 정도로, 그녀는 큰 충격을 받았다.
프로세르핀은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절망에 빠진 한설아를 내려다보았다.
‘좋아 이제….’
“거짓말.”
섬뜩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분위기가 일변했다.
“으, 응?”
프로세르핀은 당황스럽다는 듯 한설아를 바라보았다.
무언가가,
잘 못 되어가고 있다는 불길한 직감이 머릿속을 스쳤다.
“거짓, 말.”
한설아의 눈에서 빛이 완전히 사라졌다.
무저갱과 같은 눈으로, 프로세르핀을 응시했다.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뭐, 뭐야.”
프로세르핀의 몸에 오싹한 공포가 달렸다.
집착은 괴물에 대한 분노로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짙은 광기로 변했을 뿐.
“자, 잠깐만! 지, 진정해! 사실 다 거짓….”
본능적으로 몸을 피했다.
하지만.
-콰득.
“캬학!!”
빗살처럼 날아온 한설아가 프로세르핀의 몸 위에 올라탔다.
검은빛으로 점멸하는 날개를 펄럭이며, 거침없이 양손을 움직였다.
-콰득, 콰득! 콰드드득!!
“꺄아아아악!!”
끔찍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설아의 손이 산채로 그녀의 몸을 찢어발겼다.
그리고.
“헤. 역시 거짓말이었네요.”
한설아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녀는 피에 물든 손으로,
갈라진 틈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안에… 아무도 없잖아요.”
꺄르르르.
한설아는 밝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