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433)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434화
하나가 된 세계 (2)
“그러니까….”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름이… 그… 덕구, 였나?”
“태수요! 태수! 아무리 오랜만에 본다고 해도 이름을 잊어버리는 건 너무한 거 아니요, 형님?!”
“하하하. 당연히 농담이지, 인마.”
미안해.
진짜 까먹었어.
‘아니, 등장을 너무 안 하니까.’
장편소설에서 소리소문없이 공기화된 캐릭터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으니 어찌 그걸 기억한단 말인가.
‘뭐, 어쨌든.’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천무진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일세. 그… 가이아 님에게 임무를 받고 다른 차원으로 간 게 아니었나?”
“여기가 바로 그 다른 차원입니다.”
“뭐, 뭐라?”
천무진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주변은 바알과의 전투에 이은 균열의 등장에 원래 모습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박살나 있었다.
여기에 비하면 차라리 구천지옥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에르노어 대륙이란 곳이… 이런 끔찍한 곳이었단 말인가?”
“아뇨. 이곳에서 일어난 전투 때문에 이렇게 된 것뿐입니다.”
“대체 무슨 전투가 있었기에….”
천무진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는 듯 표정을 굳혔다.
마치 신화의 거인들이 싸운 것과 같은 참혹한 광경이었다.
“그보다 아까 전 질문에 답해주실 수 있습니까?”
“아, 미안하네. 우리는 예전에… 그 북한이라고 있지 않았나?”
“예. 그랬죠.”
여느 국가처럼 격변의 날 때 멸망했지만.
“그곳에 갑작스럽게 거대한 게이트가 나타났네. 자네도 보다시피… 수 킬로미터는 훌쩍 넘는 게이트가.”
“그래서 가디언즈에서 직접 조사하러 오신 겁니까?”
천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 큰 규모의 게이트는 격변의 날 때도 없었으니 말일세. 설마… 이곳이 다른 차원의 대륙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네만,”
“…….”
강우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그가 처음 생각했던 대로, 에르노어 대륙과 지구과 이어진 것은 확실해 보였다.
‘왜?’
이제까지 지구와 에르노어 대륙 사이를 오가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루시퍼도 우리엘도, 심지어 강우 자신도 게이트를 통해 에르노어 대륙과 지구를 오갔다.
하지만.
‘이건 달라.’
강우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직경이 10킬로미터는 가볍게 넘을 법한, 본 적도 없는 크기의 균열.
탐식의 불에 의해 간신히 팽창이 멈춘 균열은 사라지지 않은 채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배를 타야 갈 수 있는 섬에 다리가 만들어진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
천무진이 그랬든, 원한다면 언제든 저 균열을 통해 지구를 왕래할 수 있을 것이다.
‘…….’
떠오르는 가능성은 한 가지였다.
’가이아 시스템의 붕괴.’
지구를 지키는 수호벽이 완전히 사라졌다.
‘외계의 침식이 벌써 시작된 거야.’
그리고 가장 먼저 지구로 침식한 세계는 지구와 밀접한 거리에 있는 세계, 바로 에르노어 대륙이었다.
“…빌어먹을.”
절로 거친 욕설이 흘러나왔다.
에르노어 대륙과 이어진 것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다.
두 세계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는 것은 오히려 강우로서도 반길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일 리가 없지.’
에르노어 대륙은 시작에 불과하다.
삼원의 세계를 시작으로 온갖 외계(外界)가 지구로 침식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는.
‘구천지옥도 있겠지.’
사납게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처음 가이아 시스템의 존재에 대해 눈치챈 이후, 상상해오던 최악의 상황이 펼쳐졌다.
‘이젠 가이아 시스템을 복구하는 건 늦었어.’
자신과 가이아 시스템이 충돌했을 때 생긴 구멍을 메꾸는 것도 온갖 고생을 하며 겨우 성공했다.
아니, 정확히는 그것조차 일시적으로 구멍을 틀어막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이렇게 완전히 붕괴해버린 지금.
가이아 시스템을 복구할 수 있는 방법은 현실적으로 없었다.
설사 지금 바로 바알을 찾아 죽인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런 씨발.’
최악도 이런 최악의 상황이 없었다.
아득한 감각이 등골을 타고 퍼졌다.
그때였다.
[나, 나의 아이들아! 괜찮은 것이냐!]균열을 통해 갈색 머리칼을 지닌 온화한 인상의 여인이 날아왔다.
온몸에 은은한 빛을 흘리고 있는 여인은 다급히 강우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강우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뭐야.’
왜 가이아가 여기에 있는 거야?
안 그래도 혼란스러웠던 머리가 한층 더 혼란에 휩싸였다.
신계의 신들은 화신을 통해서만 물질계에 현신하는 것이 가능했다.
이렇게 직접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시스템의 제약 때문에 신격의 소멸을 각오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가, 가이아 님?”
레이라 또한 당황했는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가이아를 바라보았다.
“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이렇게 직접 현신하시면 제약이….”
레이라는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다급히 물었다.
[걱정할 것 없다. 아니, 걱정할 게 없는 건 아니지만….]가이아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율법의 제약이 사라졌다.]“…예?”
[신격을 지닌 이들이 물질계에서 힘을 사용해도… 더 이상 제약을 입지 않게 되었다는 말이다.]“…….”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강우는 입술을 짓씹었다.
신들의 행동을 제약하고 있던 티탄의 율법을 없앤 존재.
그게 누구인지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바알, 이 미친새끼가 진짜.’
지구를 수호하는 보호막을 터트려 버린 것도 모자라, 신들을 묶고 있던 족쇄를 풀어버리다니.
안 그래도 멸망을 향해 달려가는 지구에 부스트를 단 것이나 마찬가지인 짓이었다.
“…….”
뚝.
무언가, 끊어지는 듯한 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낄낄 웃음을 터트리고 있는 바알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머리가,
어지럽다.
“자, 잠시만요. 제약이 사라졌단 말은….”
레이라가 기겁한 표정으로 가이아를 바라보았다.
가이아는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런.”
레이라는 다리에 힘이 풀린 듯, 풀썩 주저앉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신격을 지닌 모든 존재가 가이아처럼 세계를 수호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중에는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세계 따위는 어떻게 되든 좋다는 존재도, 태생부터 마(魔)에 근접한 성향을 지닌 존재도 있다.
그런 신들에게서 티탄의 율법이라는 족쇄가 사라진다면.
이제까지 시스템의 제약 때문에 날뛰지 못했던 신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지, 지구는… 지구는 어떻게 되었나요?”
레이라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신격을 지닌 존재들이 쏟아져 나온다면 격변의 날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혼란이 일어났을 것이다.
표현 그대로, 지구가 멸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대혼란이.
[다행히 우라노스가 발 빠르게 움직여서 신들이 함부로 현신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언제까지 막을 수 있을지… 나도 알 수가 없구나.]가이아는 초조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서라도 어서 그 바알이라는 예언의 악마를 쫓아야 한다. 나의 아이들아. 그자가 어디로 갔는지 보았느냐?]레이라는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가이아의 눈빛에 절망의 빛이 섞였다.
[어찌… 어찌 이런 일이….]그녀는 가늘게 어깨를 떨며 고개를 떨궜다.
[결국… 예언의 때가 도래하는 건 막을 수 없다는 말이냐.]종말을 막기 위해 그토록 발버둥 쳤거늘.
세계는 그런 수호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종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우선 지구로 돌아가 방책을 생각하죠.”
침울한 분위기를 깨며 강우가 입을 열었다.
메마른 듯한, 어딘가 공허하게 울리는 목소리였다.
[그래. 네 말이 맞다. 가만히 있어봤자 아무것도 바뀌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나저나 나의 아이야. 이번에 예언의 악마와 교전을 했다고 들었는데 몸은 좀 괜찮은 것….]가이아가 강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강우를 향해 손을 뻗으려고 했던 그녀는.
[……!]오싹한 감각이 가이아의 몸을 타고 퍼졌다.
[아, 으.]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강우의 눈을 본 순간부터, 끝없는 무저갱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아득한 감각이 전신을 짓눌렀다.
두렵다고,
느꼈다.
끔찍한 공포에 온몸이 덜덜 떨렸다.
‘무, 슨….’
갑작스러운 감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찰나에 가까웠던 그 감각은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사라졌다.
가이아는 떨리는 눈으로 다시금 강우를 바라보았다.
다소 표정이 굳어 있긴 했지만, 그녀가 사랑하고 아끼는 빛의 수호자가 틀림없었다.
‘뭐지?’
착각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선명한 공포였다.
과거 마신과 싸웠을 때조차 느끼지 못했던 아득한 공포.
무저갱의 저편에 희미하게 보였던 거대한 입이,
끔찍할 정도로 거대한 괴물의 이빨이,
낙인처럼 그녀의 뇌리에 새겨졌다.
“가이아 님?”
강우는 다소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아. 미, 미안하구나.]“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가이아는 고개를 저었다,
너무 현실적인 꿈을 꾸기라도 한 것처럼,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렇군요.”
강우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이아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어딘가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러면 저는 돌아가기 전 아이리스에게 연락을 잠시하고 오겠습니다.”
[아이리스?]“엘룬님의 화신입니다. 에르노어 대륙에서 활동하는 데 큰 도움을 줬죠.”
[아아, 그렇구나.]가이아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어서 연락하고 오거라. 나는 아이들을 이끌고 지구로 돌아갈 준비를 해두겠다.]“예, 부탁합니다.”
강우는 가이아에게서 몸을 돌렸다.
더 이상 숲이었다는 사실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해진 악몽의 숲을 천천히 걸었다.
걷고,
걷고,
걸었다.
그리고.
“…마왕님.”
리리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무시한 채 발걸음을 옮겼다.
“마왕님!”
리리스가 다가와 다급한 목소리로 강우의 팔을 잡았다.
고개를 돌린 강우의 눈은,
“…헙.”
가로로 찢어진 동공.
검은자위에 선명히 떠오른 샛노란 눈동자가 그녀를 응시했다.
리리스는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몸을 떨었다.
강우는 그녀가 잡은 팔을 천천히 풀어내고는, 다시금 몸을 돌렸다.
“먼저 돌아가 있어.”
“마, 마왕님….”
“돌아가 있으라고, 말했어.”
“…….”
리리스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강우는 그녀가 보이지 않는 곳까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콰아앙!!
움켜쥔 주먹을 거칠게 내려찍었다.
“하,”
무심코, 웃음이 흘러나왔다.
“하, 하하하. 씨발, 진짜.”
고개를 들어 올렸다.
오랜만에,
실로 오랜만에 겪는,
‘패배’였다.
“바알, 바알, 바알. 바알, 바알, 바알. 바알, 바알, 바알. 바알, 바알, 바알. 바알, 바알, 바알. 바알, 바알, 바알. 바알, 바알, 바알. 바알, 바알, 바알.”
노래하듯,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어깨가 들썩였다.
언제였을까.
이 정도로 ‘화가’ 난 적이.
“그래, 나랑 한 번 해보자 이거지.”
입가를 비틀어 올렸다.
지구를 지키는 수호벽은 이제 없다.
구천지옥이 지구를 침식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다면.
“모조리.”
그곳의 왕이 누구였는지를,
그곳의 군주가 누구였는지를,
다시 한 번 그들에게 알려주면 된다.
“씹어먹어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