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458)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459화
벽을 넘다 (1)
“…….”
눈앞이 새하얗게 점멸한다.
호흡이 거칠어진다. 머리가 뜨겁다.
‘…형?’
입으로 소리를 내어 그를 부르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시야가 흔들린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왜….’
왜, 왜, 왜.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내 동생으로 있어 줘서… 고맙다.
강우의 말이, 자신을 구원했던 그 짧은 말리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그 말은 자신과 강우 사이를 이어주던 말이었다.
둘의 관계가 단순히 친한 형, 동생이 아닌 친형제 이상으로 끈끈하게 이어져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왜.’
김태현에게,
저런 말을 한단 말인가?
마치… 더 이상 자신은 필요 없다는 것처럼.
‘아냐.’
그럴 리가 없다.
‘나랑 형이 얼마나 많은 전장을 넘어왔는데.’
악마교의 태동부터 종말까지. 사탄과 사천왕, 악의 성좌까지.
무수한 전투를, 무수한 전장을 강우와 함께 넘어왔다.
악(惡)의 손에서 세계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워왔다.
그런데.
왜.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뜬금없이, 단순히 운이 좋아 강해진 인간이.
자신과 같은 ‘동생’의 자리를 차지한단 말인가.
“…….”
으드득.
사납게 이가 갈렸다.
뜨거운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뭐가… 달랐던 걸까.’
자신과 김태현의 차이를 생각했다.
강우가 자신보다, 김태현을 더 신경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경 써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
해답을 찾아내는 데 오랜 시간은 필요하지 않았다.
‘신격.’
신격이다.
자신에게는 없고, 김태현에게는 있는 것.
지금 이 세계에 다른 무엇보다도 절실한 것.
‘신격 때문이야.’
강우는 세계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다.
지금 이 혼란 속에서 신격을 지닌 존재가 얼마나 큰 전력이 되는지 그는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격 때문에 김태현을 동생으로 받아줬던 거야.’
그게 아니라면, 굳이 김태현에게 이 정도로 신경을 기울일 여유조차 없을 것이다.
“하하.”
마른 웃음이 흘러나왔다.
기껏 깨닫게 된 진실은 생각 이상으로 허망했다.
‘형님도 어쩔 수 없었던 거야.’
원치 않아도 김태현의 어리광과 호들갑을 받아줄 수밖에 없었다.
세계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그를 아군으로 끌어들여야 했으니까.
‘그래, 그런 게 틀림없어.’
그것이 아니면 설명되지 않는다.
-까드득.
이를 악물었다.
강우가 앉아 있는 회의실에서 몸을 돌려, 복도를 걸었다.
“…신격.”
신격이 필요했다.
형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는,
그의 ‘동생’으로서 남아 있기 위해서는.
-너를 낳아서… 미안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하지 않았던 목소리가 들린다.
그의 삶 전체를 옭아매고 있었던 저주와도 같은 말.
“신격이… 필요해.”
터벅, 터벅.
김시훈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복도를 걸었다.
* * *
“…….”
김시훈이 떠난 회의실.
침묵이 내려앉은 회의실 안에서 강우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 정도면 충분하려나.’
김시훈이 마주한 벽.
그 벽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특별한 자극이 필요했다.
과거의,
그의 트라우마를 불러 일으킬 만한 자극이.
‘이제까지 시훈이가 위기의 순간에 계속해서 각성했던 건 재능 때문만이 아니야.’
김시훈의 인생을 옭아매고 있는 트라우마.
바로 그 트라우마가 김시훈이 각성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기엔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김시훈의 트라우마.
다른 이들에게, 자신에게 누구보다 소중한 이들에게 ‘인정’받고 있다는 갈망.
분명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갈망은 아니었다.
‘하지만.’
김시훈이라면.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형에게 짓밟혔던.
자신에게 있어 그 누구보다 소중했던 존재에게 삶 자체를 부정당했던 김시훈이라면.
‘바라겠지.’
다시 한번, 구원을 갈망할 것이다.
자신의 인정을 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 칠 것이다.
“…….”
강우는 굳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었다.
“…다른 방법을 쓸 걸 그랬나.”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아무리 신격을 각성하기 위해서라고는 하나, 조금 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이건 단순히 신격의 문제가 아니야.’
사실 김시훈에게 신격을 주는 것은 간단하다.
그를 자신의 화신으로 만들면 된다.
가이아의 신격의 일부를 레이라가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자신의 신격의 일부도 김시훈이 사용할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는 의미가 없어.’
만약 김시훈이 자력으로 신격을 얻을 가능성이 아예 없었다면 화신으로 만든다는 선택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김시훈에게는 충분히 자력으로 신격을 각성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아니, 이제는 솔직히 왜 아직도 각성을 못 했는지 의아할 정도.
‘결정적인 계기가 필요한 거야.’
눈앞의 벽을 뛰어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그를 가로막고 있는 한계를 박살 낼 수 있는 계기가.
‘시훈이라면 할 수 있어.’
자신이 알고 있는 김시훈이라면,
분명 넘을 수 있다.
자력으로 신격을 손에 넣을 수 있다.
‘그렇게만 된다면.’
김시훈은 찬란히 날개를 펼치고 폭발적인 성장을 할 수 있을 것이 분명하다.
“자력으로 얻은 신격과 일반적인 신격은 다르니까.”
신격은 분명 사기적인 힘이다.
하지만 태어나면서부터 아무런 대가도 없이 그 힘을 손에 넣은 존재와 자력으로 신격을 획득한 존재와의 차이는 극명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여기서 내가 시훈이를 화신으로 만들고 그냥 신격을 줘버리게 되면.’
김시훈의 성장은 딱 거기서 멈추게 될 것이다.
자력으로 신이 될 수 있음에도, 대가 없이 받은 힘으로 인해 성장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둘 수는 없지.”
강우는 날카롭게 눈을 떴다.
김시훈의 트라우마를 불러일으키는 것에 죄책감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이 경우 다른 방법이 없었다.
게이트의 이상 현상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고, 심지어 그 안에서 김태현이 발견한 것과 같은 정체불명의 물건까지 튀어나왔다.
김시훈에게는 한시라도 빨리 신격이 필요했다.
‘시훈이 말고 다른 애들은….’
잠시 다른 파티원들에게 생각이 미쳤다.
고민을 이어가던 강우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우선 시훈이부터.’
지금은 김시훈에게 집중하는 것이 옳다.
‘자극을 적당히 주는 게 중요해.’
과거 지나치게 자극을 주다가 타락해 버리려고 했던 경험이 있는 만큼, 이번에는 그 자극을 적절하게 조절할 필요가 있었다.
‘일단 여기서 당분간은 절대 자극하면 안 돼.’
발록과 레이라에게도 단단히 입단속을 해둘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이 그나마 자신을 제외하고는 김시훈과 자주 만나니까.
‘시훈이를 최대한 수련에 매진하게 만든 다음에….’
그다음 자신이 짜잔 나서면서 눈물 한 번 쏙 빼는 연출을 만들어내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사는… ‘그깟 신격이 뭐가 중요해?! 넌… 넌 그딴 게 없어도 내 동생이란 말이야!’. 그래, 이걸로 가자.”
벌써부터 손발이 찌그러지는 듯한 기분이었지만 어쩌겠는가.
‘시훈이가 이런 걸 좋아하는데.’
지은 죄가 있으니 이런 토악질 나오는 대사를 쳐주는 것까지는 감수해야 했다.
결과적으로는 김시훈을 위해서라지만 간신히 잊었던 트라우마를 다시 불러일으킨 건 자신이 맞으니.
“그나저나.”
강우는 테이블 위에 올려둔 스마트폰을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알림을 꺼둔 김태현의 메시지가 꽤나 쌓여 있었다.
‘얘는 왜 그렇게 나한테 따르는 거지.’
충성심을 보내주는 것은 좋았지만 정도가 좀 과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유하자면 뭐랄까.’
아이돌의 극성팬과 같다고 해야 할까.
자신이 동경했던 사람과 같이 있게 된 것이 너무 기뻐서 어쩔 줄 몰라하는 느낌이었다.
“끄응.”
이러나저러나 살짝 귀찮은 것이 사실이었다.
“…뭐, 어쩔 수 없지.”
김태현이 손에 넣은 ‘노트스트리안의 눈’의 정체가 확실하게 밝혀지기 전까지는 그와 같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
강우는 김시훈과 김태현, 둘을 떠올리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언젠가 차연주가 했던 표현이 다시금 떠올랐다.
-양손의 꽃(ㅜ)이네.
‘시바.’
주먹을 움켜쥐며 고개를 떨궜다.
“임자… 임자아….”
처량한 목소리가 회의실 안에 울려 퍼졌다.
* * *
“허억, 허억.”
거친 숨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난장판이 된 수련실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발을 내디뎠다.
“천룡….”
이미 바닥을 보인 내공을 쥐어 짜낸다.
푸른 기운으로 이루어진 검을 들어올렸다.
하지만.
-스르르륵.
“하아, 하아.”
내공으로 이루어진 무형의 검이 허공에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김시훈은 손끝에서 사라져가는 검을 바라보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크읏.”
억지로 내공을 쥐어 짜낸 탓일까.
김시훈의 무릎이 꺾였다.
“안… 돼.”
여기서 쓰러질 수는 없었다.
김시훈은 꺾인 무릎에 힘을 주어 몸을 일으켰다.
‘아직 부족해.’
김시훈은 입술을 짓씹으며 손을 들어올렸다.
희미한 푸른빛이 검의 형태로 뭉쳤다.
‘신격을 얻기 위해서는….’
강우의 동생으로 남아 있기 위해서는.
신격이 필요했다.
“후우….”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호흡을 통해 대기 중의 기(氣)가 극소량 몸 안으로 들어왔다.
‘신격을 얻기 위해서는 우선 심검(心劍)을 완벽하게 이뤄야 해.’
심검이야말로 신격을 얻기 전 마지막 관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의 검이라니.’
무협지에서는 질리도록 나온 경지였다.
이론적으로는 수십, 수백 권에 달하는 책을 천무진에게 받아 읽었다.
하지만.
“…모르겠어.”
마음의 검이라니.
대체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란 말인가.
이제까지 타고난 재능으로 막힘없이 성장해오던 김시훈에게 있어 추상적이기 짝이 없는 개념을 직접 무공으로서 펼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아.”
김시훈은 머리칼을 움켜쥐며 발걸음을 옮겼다.
비틀.
앞으로 내디딘 발이 휘청거렸다.
“…….”
김시훈의 표정이 거칠게 일그러졌다.
덜덜 떨리는 손을 억지로 움직이려고 할 때.
-달칵.
“어? 시훈 씨?”
“…….”
김태현이 수련실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김시훈은 굳게 입을 다문 채 김태현을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음, 오늘은 늦게까지 수련하시나 보네요.”
“…예.”
“하하. 역시 검룡이군요. 저도 보고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김태현은 김시훈을 바라보며 밝게 웃었다.
그의 웃음에는 명백한 조소(嘲笑)가 섞여 있었다.
“…….”
김시훈은 대답하지 않은 채 고개를 돌렸다.
“그나저나 강우 형 어디 계신지 아시나요?”
“……?”
김시훈은 눈살을 찌푸린 채 고개를 기울였다.
“오늘 태현 씨랑 만난 것 아니었나요?”
“아뇨. 만나려고 했는데… 많이 바쁘신 것 같더라고요.”
“…….”
김시훈은 굳게 입을 다물었다.
‘그 뒤에 따로 일이 생기신 건가?’
김태현과 강우가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에 자기도 모르게 입가가 올라갔다.
그것을 눈치챈 것일까, 김태현은 발끈한 표정으로 날카롭게 김시훈을 쏘아보았다.
“그러고 보니… 강우 형한테 들었는데 얼마 전에 시훈 씨가 절 이기지 못했던 이유가 ‘신격’이라는 것 때문이라고 하더라고요.”
“…….”
“하하. 가디언즈에서 신격을 가진 플레이어는 저랑 강우 형 정도밖에 없다고 들었는데.”
김태현은 느긋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역시… 형이랑 저랑 좀 잘 맞는 것 같지 않나요?”
“…….”
김시훈의 표정이 거칠게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