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469)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470화
기생(寄生)의 왕 (2)
“왜 인간이 여기….”
있어, 라고 말하려던 강우는 자신을 향해 가까워지는 중년 사내를 자세히 살펴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쯧, 그럼 그렇지.”
왜 패러사이트 무리 사이에서 사람이 튀어나오나 했는데, 역시나 자세히 살펴보니 사람이 아니었다.
검은자위로 가득한 눈과 그 주변에 흉측하게 돋아난 굵은 힘줄.
인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성력과 마력, 마기를 모두 지니고 있는 강우조차 처음 느껴보는 이질적인 기운까지.
겉모습은 인간에 가까웠지만 그 속에 자리 잡은 존재는 외계(外界)의 괴물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육체를 빼앗은 건가.’
중년 사내의 복장과 외모는 둥지에 사로잡힌 환 대륙의 사람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억지로 몸을 변형시킨 것이 아니고서야 다른 사람의 육체를 빼앗았다고 보는 게 옳다.
‘여전히 기분 나쁜 벌레들이군.’
육체를 빼앗긴 이름 모를 중년 사내를 보니 왠지 질척한 불쾌함이 느껴졌다.
다른 사람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그의 몸에도 육체를 노리고 기생하는 몇몇 존재가 있기 때문이리라.
“쓰읍.”
깊게 숨을 들이쉰다.
황혼을 사용하며 순식간에 빠져나갔던 마기가 마해를 통해 서서히 다시 차올랐다.
잉그리움을 손에 쥐며 몸을 낮췄다.
쩌적.
이쪽을 향해 날아오는 충년 사내의 등에서 반투명한 날개가 펼쳐졌다.
그와 동시에,
-콰아앙!
소닉붐이 일어나며 압축된 공기의 파동이 폭풍처럼 주변을 휩쓸었다.
천둥이 치는 듯한 굉음과 함께 중년 사내가 달려 들였다.
중년 사내가 옆으로 손을 뻗자 김시훈이 만들어낸 것과 같은 무형(無形)의 검이 만들어졌다.
카아아아앙!
잉그리움과 무형의 검이 격돌했다.
강우와 중년 사내의 몸이 강렬한 반탄력에 반대 방향으로 튕겨 나갔다.
“…호오.”
중년 사내는 저릿저릿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눈을 빛냈다.
흥미롭다는 듯 강우를 응시했다.
“벌레 새끼가 검도 다룰 줄 아네.”
강우는 픽 웃으며 잉그리움을 쥔 손을 가볍게 털었다.
중년 사내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 짙은 허기가 서렸다.
‘나쁘지 않네.’
입가를 비틀어 올리며, 혀로 입술을 핥았다.
단 한 번의 격돌이었지만 힘의 충돌로 인해 그가 뒤로 ‘밀려’났다는 점에서 저 패러사이트가 지닌 보통이 아니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뭐, 딱 나쁘지 않은 정도지만.’
얼마나 더 큰 힘을 숨겨뒀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 당장은 딱 여흥을 즐기기 좋은 정도에 불과했다.
‘더 할 수 있지? 그치?’
강우는 사납게 입가를 올리며 기대감에 찬 눈빛으로 패러사이트의 왕을 바라보았다.
문뜩 태무극을 상대했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득한 경지에 도달한 강자를 마주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극한 쾌감.
몸을 태우는 허기와 갈증을 넘어, 사냥감을 씹어 삼켰을 때 맛볼 수 있는 전율.
“이걸로 끝나진 않겠지? 응?”
강우는 오랜만에 몸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검을 움켜쥐었다.
[…삼원의 세계에 이런 강자가 있을 줄이야.]패러사이트의 왕은 짧은 탄성을 내질렀다.
[좋군.]환 대륙의 최강자라는 무인과 싸우며 느꼈던 실망감을 단번에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강자.
그와 마주한 왕의 몸이 흥분으로 떨리기 시작했다.
[이런 기분은 정말… 오랜만이구나.]쿵쿵.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득한 세월.
이제는 기억조자 희미한 기나긴 세월을 떠돌았다.
무수한 세계를 정복하고, 파괴했다.
그를 진화(進化)시켜 줄 존재를 찾기 위해.
왕의 자리에 올라선 이후, 그를 짓누르던 끝없는 무료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니… 아직 확신하기는 이른가.]패러사이트 왕은 커져가는 기대감을 지우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 자신은 본신의 힘의 반의 반도 드러내지 않았다.
고작 일격을 막아내고 그를 튕겨냈다고 해서 벌써부터 무료함을 달래 줄 적수를 찾았다고 환호하는 것은 섣부른 짓이다.
환 대륙의 최강자 스스로를 칭하던 인간을 만났을 때도 기대만 잔뜩 하다가 실망하지 않았던가.
[부디 나를 즐겁게 해다오.]패러사이트 왕은 간절함까지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 벌레가 검도 다루더니 말할 줄도 아네.”
강우는 왕을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
[…….]두 포식자의 눈이 허공에 얽혔다.
짧은 침묵이 흐른 후,
-콰아앙!
강우와 패러사이트 왕이 동시에 발을 박찼다.
거대한 힘과 힘이 충돌했다.
충격파에 대지가 뒤흔들리며 찢어 발겨졌다.
-쾅! 콰앙! 쾅!
눈으로 쫓는 것이 불가능한 속도로 두 왕이 움직였다.
[흐아아아아!]패러사이트 왕이 거친 포효를 내질렀다.
눈 주변에 돋아났던 흉측한 힘줄이 전신에 퍼졌다.
그와 동시에 그가 약탈한 육체에 담겨 있던 기억의 일부가 패러사이트 왕에게 흘러들어 왔다.
무공이라 불리는, 무기를 다루는 방법.
육체에 담긴 기억을 더듬어 검을 움직였다.
쿠웅! 쿠우웅!
검과 검이 격돌할 때마다 거대한 폭탄 수십 개가 터지는 것과 같은 굉음이 주변을 뒤흔들었다.
[하, 하하하하!]패러사이트 왕의 입에서 환희에 찬 웃음이 터져나왔다.
손을 타고 전해지는 저릿한 감각!
그의 공격을 단 한 차례의 물러섬도 없이 받아치고 있는 인간을 바라보았다.
[기대 이상이군!]처음 격돌했을 때 직감했지만, 눈앞의 인간은 환 대륙의 최강자라 스스로를 칭하던 인간과는 전혀 달랐다.
거대한 산도 반으로 갈라버릴 정도의 힘이 담긴 그의 공격을 가볍다는 듯이 받아내며, 역으로 날카로운 공격까지 퍼붓는다.
혹시 실망하지 않을까 싶었던 불안감이 눈이 녹듯 사그라들었다.
“…….”
강우는 굳게 입을 다문 채 검을 교환했다.
환호성을 토해내는 패러사이트의 왕과 달리, 강우의 표정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살짝 일그러져 있었다.
-퍼어어억!
내려 찍히는 검을 튕겨낸 후, 오른발을 뻗어 패러사이트 왕의 배를 걷어찼다.
뒤로 거칠게 튕겨 나간 패러사이트 왕의 몸이 수백 미터에 달하는 대지를 가르며 간신히 멈춰 섰다.
“야.”
강우는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패러사이트 왕을 향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고작 이 지랄하자고 부디 즐겁게 해달라느니 뭐니 간지 터지는 대사 날린 거 아니지?”
실망감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
처음 일격을 교환했을 때는 그를 뒤로 밀어버릴 정도의 힘을 지닌 패러사이트 왕의 모습에 살짝 기대감을 품었으나, 전투가 이어질수록 절로 표정이 찌푸려질 수밖에 없었다.
“어디서 그런 병신 같은 무공을 배워서 나한테 써먹는 거야.”
김시훈의 수련을 어울려 준 것도 수백 번.
심지어 무공이라는 부분에서 따를 자가 없는 경지를 이룩한 태무극과도 싸웠다.
그런 그에게 있어 육체의 기억을 통해 수박 겉핥기식으로 익힌 무공이 통할 리가 없었다.
급소를 노리는 공격도 어설프기 짝이 없고, 검로(劍路) 자체도 지나치게 단순했다.
애초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듯한 감각.
“벌레면 벌레답게 싸워 이 자식아.”
강우는 날카로운 눈으로 패러사이트 왕을 노려보았다.
[…….]패러사이트 왕이 몸을 일으켰다.
[이거, 실례했군.]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며 다시금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강우의 앞에 선 그는 손에 쥔 무형의 검을 놓았다.
녹색 빛으로 빛나던 검이 허공에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예(例)를 갖추도록 하지.]패러사이트 왕은 검을 내려놓은 후 점잖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랜만에, 실로 아득한 시간 만에 만난 제대로 된 적수.
그를 앞에 두고 익숙하지도 않은 무공을 사용하는 것은 확실히 예의에 어긋나는 짓이었다.
그에게 가장 어울리는 싸움 방법은,
무공 따위가 아니었다.
-콰득, 콰드득.
뼈가 뭉그러지고, 비틀리는 소리가 들렸다.
인간에 가까웠던 패러사이트 왕의 모습이 점차 흉측한 괴물에 가까워졌다.
피부를 덮는 딱딱한 껍질이 생겨났고, 두 개에 불과했던 눈이 네 개로 늘어났다.
아니.
네 개로 늘어난 눈이 다시 여덟 개로 증식했다.
열여섯에서, 서른둘까지.
안면을 가득 채우는 눈으로 패러사이트 왕은 강우를 바라보았다.
[그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파라락. 반투명한 날개를 펄럭이며 말을 이었다.
[잠시 대화의 여흥을 즐기지 않겠느냐??]“대화?”
강우는 피식 웃었다.
“대화는 또 무슨 대화.”
사납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제 와서 대화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존 윅은 이렇게 얘기를 하는 동안 다섯 명은 더 죽일….”
“잠시만요, 마왕님.”
“응?”
강우의 말을 끊으며 리리스가 다가왔다.
그녀는 강우의 귓가에 입을 가져다 댄 채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래도 캐낼 수 있는 정보는 캐내고 싸우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
침착한 그녀의 목소리에 강우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흥분에 차 있던 그의 표정이 살짝 가라앉았다.
‘캐낼 수 있는 정보라.’
몸을 달구던 열기가 조금 가라앉자 그녀가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했는지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었다.
‘맞는 말이지.’
지구로서는 처음 겪는 ‘본격적인 외계의 습격’이다.
그리고,
‘앞으로 얼마든지 더 벌어질 수 있는 일이지.’
강우는 가늘게 눈을 떴다.
외계의 습격은 이제 막 시작된 것에 불과했다.
별의 수호가 사라진 이상, 얼마나 더 패러사이트 같은 외계의 존재들이 지구를 습격할지 강우 자신도 예상할 수 없었다.
리리스의 말 대로, 조금이라도 외계에 대한 정보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너무 흥분했었네.’
강우는 자신의 실책을 인정하고는 패러사이트 왕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래, 얘기를 좀 하자고.”
[간단하게 소개부터 하지. 오랜만에 만난 적수의 이름조차 모른 채 싸우는 건 품위가 떨어지니까.]패러사이트 왕은 점잖은 말투로 말했다.
‘품위라.’
뜬금없이 전투 전의 여흥으로 대화를 나누자고 한 이유가 짐작이 갔다.
‘벌레치고는 꽤나 지성이 박힌 놈이네.’
바퀴벌레처럼 생긴 하급개체와는 달리 상급개체 이상부터는 인간과 비슷한, 아니 그 이상의 지성이 있는 것 같았다.
‘외계의 존재라고 해서 지성이 없는 괴물들만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외형만 놓고 보면 모 우주전쟁 게임에 등장하는 괴물 종족처럼 생긴 괴물들이 멀쩡히 대화를 나누고 ‘품위’를 챙기는 것을 보니 위화감이 느껴졌다.
[나는 팔천(八天)의 계(界)에 기거하는 자.]‘팔천?’
익숙한 그 단어에서 자연스럽게 구천지옥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내 강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팔천지옥에 저런 놈은 없었다.
아니, 있었을 리가 없다.
‘만약 그때 기준으로 지옥에 저놈이 있었다면….’
지옥의 왕이 되는 것은 자신이 아닌 저 벌레였으리라.
‘그때는 뭐, 신격도 없고 마해도 이만큼 크지 않았으니까.’
아마 개문을 사용한다 해도 일방적으로 짓밟혔을 것이다.
물론,
‘지금은 다르다만.’
강우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패러사이트 왕을 응시했다.
[필멸(必滅)의 존재가 일컫기를, ‘기생(寄生)의 왕’이라 하노라.]패러사이트 왕의 짧은 소개와 함께,
-찔, 꺼억.
그의 목덜미 피부가 갈라지며 끈적한 점성을 띈 녹색 촉수의 다발이 뿜어져 나왔다.
“…….”
[자, 이제 그대의 이름을 알려다….]-퍼어어어어어억!!
패러사이트 왕의 말이 이어지기 전에, 기습적으로 달려나간 강우가 그의 머리를 후려쳤다.
[크윽! 뭐, 뭐 하는 짓인가!]당황에 찬 패러사이트 왕의 목소리.
“가, 강우 님?”
리리스 또한 갑작스러운 강우의 행동에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는 안절부절 못하는 표정으로 패러사이트 왕을 살피며 속삭였다.
“정보를 캐내야 한다고 말씀드렸….”
“죽여.”
리리스의 말을 끊어내며, 강우가 말했다.
패러사이트 왕을 내려다보는 그의 눈은 마치 썩은 생선의 눈처럼 생기가 없었다.
“…예?”
“죽여야, 해.”
까드득.
강우는 거칠게 입술을 짓씹었다.
대화?
정보?
그딴 게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찔꺽.
패러사이트 왕의 몸에서는 녹색 촉수 다발이 흉측하게 꾸물거리고 있었다.
“아, 아아.”
강우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검을 쥐었다.
“씨발 저 새끼 빨리 죽여야 한다고!!!”
처절한 절규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