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47)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48화
에키드나(4)
“역시! 악마가 맞았군!”
자신이 악마라는 사실을 긍정하는 강우의 모습에 레이날드는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검 손잡이를 굳게 움켜쥐었다.
“고통 받는 아르난 제국민을 위해! 울부짖고 있는 아이를 위해! 나! 레이날드 폰 아르난이 네놈을 직접 처단하겠다!”
그의 몸에서 황금빛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허리춤까지 기른 그의 금발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휘날렸다.
그런 그의 뒤를 따라 방패를 들고 있는 중년 사내와 망치를 들고 있는 드워프가 앞으로 나섰다.
“하하! 좋아 레이날드! 마룡까지 잡았는데 악마라고 못 잡을까!”
“끌끌끌, 나중에 비싼 흑맥주를 실컷 얻어먹겠다, 애송이.”
드워프와 중년 사내는 정의감에 불타오르고 있는 레이날드를 향해 한 마디씩 건넸다.
로브를 입은 갈색 머리칼 여인은 그런 레이날드의 모습을 바라보며 빨갛게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그의 옆에 있던 엘프 궁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하아. 정말 못 살겠어. 상대는 악마야. 할 수 있겠어, 레이날드?”
“할 수 있냐, 없냐가 중요한 게 아니야! 해야만 하는 일이다!”
레이날드는 단호한 목소리로 소리치며 검을 하늘 높이 뽑아들었다.
‘와, 시바. 명언 터진다, 터져.’
강우는 뜨거워서 데일 것만 같은 레이날드의 눈빛을 바라보며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손발이 찌그러져서 사라질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얘들 왜 이러는 거야? 약이라도 먹었나?’
강우로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텐션이었다.
“하압!”
레이날드는 강력하게 진각을 밟으며 강우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황금빛 검기가 강우를 향해서 쏘아졌다.
강우는 빠른 속도로 쏘아지는 검기를 향해 검은색 칼을 움직였다.
-콰앙!!
반으로 갈라진 황금색 검기가 허공에서 폭발했다.
그의 주변에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땅이 뒤집어졌다.
‘그냥 막는다고 해서 막아지는 공격이 아니군.’
강렬한 폭발 속에서 강우는 살짝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검기가 반으로 쪼개지며 바로 폭발을 할 것이라고는 그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확실히 장비가 좋긴 좋아.”
원래라면 예상치 못한 이 공격에 조금이라도 상처가 났을 것이다.
하지만 문영호에게서 구한 가고일 갑주와 에픽 아이템들 덕분에 허공에서 일어난 폭발에 아무런 대미지도 입지 않을 수 있었다.
강우는 장비를 구하기 잘했다고 생각하며 레이날드 일행에게 시선을 옮겼다.
“자, 그럼 시원하게 선빵도 얻어맞았으니.”
이제는 그가 답해줄 때였다.
-우우우우웅!
‘폭발의 권능.’
강우의 손에 검은색 연기가 둥그렇게 뭉치기 시작했다.
강력한 폭발을 일으키는 마기의 구체.
강우는 손바닥 위에 구체를 만든 후 가볍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폭염의 비.’
단순하게 폭발의 구체를 만드는 권능을 변형하여 그가 만들어낸 기술.
농구공만 한 크기였던 구체가 당구공만 한 크기를 가진 수십 개의 구체로 쪼개졌다.
강우는 가볍게 손을 휘저어 레이날드 파티를 향해 구체를 쏘아냈다.
“내가 막도록 하지!”
중년 사내가 앞으로 달려 나가며 방패를 들어올렸다.
“아이언 월!”
그의 외침과 함께 푸른색 장벽이 그의 방패 앞에 만들어졌다.
강우는 중년 사내가 만들어낸 푸른 장벽을 보고 피식 웃음을 흘렸다.
“떨어져라.”
-콰과과과과광!!
“커헉!!”
그를 향해 쏘아지던 수십 개의 구체가 허공에서 방향을 틀어 직각으로 땅에 내리꽂혔다.
방패로 정면을 막고 있던 중년 사내는 갑작스럽게 바닥이 폭발하자 그 폭발의 힘에 휩쓸려 뒤로 튕겨져 나갔다.
“한스!”
레이날드는 튕겨져 나간 사내의 이름을 외치며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강우를 노려보았다.
“네놈이 감히…!”
‘아니, 네가 먼저 공격했잖아, 새끼야.’
누가 본다면 마치 기습이라도 당한 것 같은 표정.
강우는 분노에 떨고 있는 레이날드의 모습을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용서하지 않겠다!”
“나도 용서 못 하겠다, 인마.”
자신이 공격한 사실은 까맣게 잊어버린 것 같은 그의 태도가 몹시 거슬렸다.
강우는 거칠게 땅을 박차며 레이날드를 향해 달려들었다.
“아르난 제국 검술 1초식! 블레이드 스톰!”
‘대체 왜 다들 기술명을 외치면서 싸우는 거야.’
기술명을 듣자하니 일격에 모든 힘을 담은 검술이 아니라 넓은 범위에 펼쳐지는 공격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최소한의 방어로 뚫는다.’
강우는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철벽의 권능을 사용했다.
-콰드드드득!
레이날드의 기술은 그가 외친 것처럼 칼날의 폭풍을 연상케 하는 범위 공격이었다.
강우는 몸을 웅크려 그의 공격을 뚫어낸 후 그 기세를 몰아 그의 배를 걷어찼다.
-빠악!!
“커헉!!”
“레이날드!”
“네노오오옴!!”
레이날드가 뒤로 튕겨져 나가자 망치를 든 드워프와 엘프의 공격이 이어졌다.
강우는 자신의 머리를 노리고 쏘아지는 세 발의 화살을 몸을 뒤로 젖혀 피한 후 망치를 든 드워프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파공의 권능.’
-퍼어어엉!
“크허어어억!”
강력한 압축 마기탄에 얻어맞은 드워프는 검붉은 피를 쏟아내며 형편없이 뒤로 튕겨져 나갔다.
강우는 바닥에 쓰러진 드워프를 마무리 짓기 위해 몸을 옮겼다.
“파이어 블래스트!”
그때, 강우를 노리고 화염이 쏘아졌다.
뒤에서 지팡이를 들고 있던 갈색머리칼의 여인이었다.
장비만 믿고 무시하기엔 꽤나 강력한 힘이 담긴 그녀의 공격에 강우는 공격을 포기하고 뒤로 물러섰다.
“으아아아!!”
배를 맞고 뒤로 튕겨져 나갔던 레이날드가 강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황금빛 기운의 그의 몸에서 폭발하듯 뿜어져 나오며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주변 땅이 흔들렸다.
‘확실히 강하긴 해.’
강우는 자세를 고쳐 잡으며 그에게 달려드는 레이날드를 바라보았다.
레이날드가 가진 힘은 전에 겨뤘던 문영호 이상.
굶주린 부에르를 단신으로 처치할 수도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
“하압!”
-까앙! 깡!
강우와 레이날드가 격돌했다.
황금색과 검은색 기운이 허공에 어지럽게 얽히며 주변에 무지막지한 파괴를 일으켰다.
“하아아압!”
-콰아앙!
황금빛 검기가 다시 한번 폭발했다.
바로 눈앞에서 터진 폭발에 강우의 몸이 뒤로 튕겨져 나갔다.
“후우! 보았느냐, 이 사악한 악마야!”
“…….”
뒤로 밀려난 강우는 마음에 들지 않다는 듯이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5차 각성을 미리 해두지 않았으면 좀 위험했겠어.’
레이날드의 실력은 상상 이상.
단순 위력만 놓고 본다면 강우보다 오히려 강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괜히 해츨링 드래곤을 잡은 게 아니라, 이건가.’
레이날드 파티에 의해 죽기 직전까지 몰린 에키드나를 떠올리며 강우는 가볍게 혀를 찼다.
‘하지만.’
강우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확실히 레이날드는 강했다.
‘강한 것뿐이지.’
강우는 레이날드를 향해 달려들며 큰 목소리로 외쳤다.
“블레이드 슬래시!”
“크읏!”
강우의 외침에 레이날드는 검을 들어 방어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강우는 그의 외침과는 전혀 달리 몸을 낮게 숙여 레이날드의 허벅지를 향해 로우킥을 날렸다.
-뻐억!
“으아아아악!!”
레이날드는 로우킥을 맞은 오른 다리를 붙잡으며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이, 이 더러운 악마자식! 부, 분명히 블레이드 슬래시라고….”
레이날드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그냥 네가 멍청한 거야.’
자신이 무슨 공격을 할지 상대방에게 일일이 말해주는 멍청이가 어디 있단 말인가.
직접 입으로 외쳐 영창이 필요한 기술이라면 어쩔 수 없었지만 그렇지 않다면 최대한 자신의 공격을 숨기는 것이 이득이었다.
“레, 레이날드!”
“크윽…. 모, 모두 도망쳐! 저놈은 너무 강해!”
“그럴 수 없어! 널 버리고 어떻게 도망치라는 거야!”
“빨리 가!”
레이날드는 로우킥을 맞은 한쪽 다리를 부여잡으며 파티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의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지랄 똥을 싼다, 아주.”
강우는 영화 한 편을 찍고 있는 그들을 향해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다가갔다.
“네놈….”
레이날드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강우는 그런 레이날드의 분노를 태연히 받아내며 망설임 없이 그를 향해 접근했다.
‘뭐, 이미 싸움은 끝난 거나 다름없으니까.’
전사에게 있어서 다리는 생명이었다.
팔이 잘려도, 갈비뼈가 아작 나도 어떻게 싸울 수는 있었지만 다리가 다친 것은 그 의미가 달랐다.
움직일 수 없는 전사는 그저 무기를 든 머저리에 불과했다.
“크윽. 빠, 빨리 모두 도망쳐!!”
레이날드 또한 그 사실을 모를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은지 파티원들을 향해 계속 도망치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다리가 다친 전사가 얼마나 무력한지는 지금 그 자신이 가장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슬슬 끝내볼까.’
강우는 칼날의 권능으로 만들어낸 검을 들어 올리며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레이날드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어떤 동정도, 분노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 전투란 항상 이러했다.
오로지 살기 위해서만 싸웠고, 죽여 왔다. 그 행위에 감정을 담기란 너무나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자, 잠시만요!”
“레이나…?”
그때, 갈색 머리칼의 여인이 달려와 레이날드의 몸을 감쌌다.
그녀는 눈물을 쏟으며 강우에게 소리쳤다.
“부, 부탁이에요! 레이날드를 살려주세요! 그가 죽으면 수많은 아르난 제국민의 희망이 사라져요!”
“…….”
“그리고… 그는, 레이날드는 제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레이나….”
레이나라고 불린 여인은 눈물을 흘리며 그의 뺨을 쓰다듬었다.
“이런 식으로 고백해서 미안해, 레이날드. 하, 하지만…. 지금이 아니라면 말할 수 없을 것 같았어.”
그녀는 굳은 결의가 담긴 눈빛으로 강우에게 고개를 돌렸다.
“제 목숨을 드릴게요. 시, 시키는 건 뭐든지 할게요! 부탁드립니다! 부디, 부디 레이날드의 목숨을 살려주세요!”
“…….”
그녀의 외침에 강우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그러곤 이내 헛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아주 그냥 생지랄을 해라.”
강우는 레이나와 레이날드를 향해 걸어갔다.
“뭐? 걔가 죽으면 아르난 제국민의 희망이 사라져? 그래서 나한테 어쩌라는 거냐.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애초에 먼저 공격을 한 건 너희잖아. 그렇지? 만약 반대 상황에서 내가 울며불며 살려달라고 하면 살려줄 거야? 응?”
그는 태연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아니지? 그럴 리가 없잖아. 너희도 무기를 들었잖아. 죽일 생각이 있었으면 죽을 각오도 있어야지.”
강우는 레이날드와 그를 감싸고 있는 레이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폭발의 권능이 발현되며 강력한 마기가 그의 손앞에 뭉쳐들었다.
강우는 공포에 질린 채 바들바들 떨고 있는 그들을 향해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감성은 드라마에서나 팔아, 이 새끼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