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470)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471화
기생(寄生)의 왕 (3)
[…품위를 아는 자라 생각했건만.]패러사이트 왕은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강우를 올려다보았다.
“품위는 개뿔.”
강우는 거친 욕설로 화답했다.
끈적한 점성이 가득한 녹색 촉수를 증오스럽다는 듯이 노려보았다.
“촉수한테 품위가 어딨어, 새끼야.”
혐오스럽다는 듯 헛구역질을 하며 말했다.
“그, 그런 심한 말씀을….”
‘아니, 넌 또 왜.’
패러사이트 왕을 향해 했던 말에 리리스가 상처받은 표정으로 눈물을 훔쳤다.
강우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강우님은 정말 촉수의 매력을 이해하지 못하시는 건가요?”
ㅖ.
“대체 왜 그렇게 촉수를 싫어하시는 거죠?!”
너 때문에요.
“너무하세요!”
어쩌라고요.
“흥! 앞으로 잠자리에서 제 촉수를 즐길 기대는 하지도 마세요!”
끼얏호.
‘아니 대체 악마의 미적 감각은 뭐가 어떻게 되어있는 거야.’
자신도 인간이었던 시절보다 악마로 지낸 시절이 압도적이 길지만, 도대체 저 뒤틀린 미적 감각만큼은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대화는 필요치 않다 이건가.]패러사이트 왕은 노기가 서린 표정으로 강우를 올려다보았다.
[품위가 없는 자에게 예의를 챙길 이유는 없지.]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녹색 촉수 다발을 넓게 펼쳤다.
[오라, 필멸(必滅)의 영웅이여.]쿠웅!
거대한 충격이 대지를 뒤흔들었다.
마력도, 마기도, 성력도 아닌 외계(外界)의 힘이 패러사이트 왕의 몸을 통해 뿜어져 나왔다.
[나, 기생(寄生)의 왕의 손에서,]오만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이 세계를 지켜내 보거라.]외계의 침략자.
셀 수 없는 별을 정복한 정복자이며, 아득한 세월을 최강(最强)의 자리에 군림한 외계의 왕이 손을 들어 올렸다.
-파라라라락!
그의 손짓을 따라 등 뒤에 반투명한 날개가 달린 인간형 패러사이트들이 날아올랐다.
일반적인 패러사이트와는 다른, 왕의 힘을 짙게 이어받은 상위개체들.
그중에는 발광하는 절제라 불린 패러사이트도 섞여 있었다.
“왕의 식사 시간이다.”
강우를 향해 달려드는 상위개체들의 앞을 발록이 막아섰다.
붉은 근육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방해하지 마라, 벌레들아.”
발록은 사나운 목소리로 말하며 주먹을 들어올렸다.
철컥, 철컥.
묵직한 쇳소리와 함께 검은 갑주가 그의 몸을 덮었다.
“왕의 여인이여, 지원을 부탁하지.”
발록은 고개를 돌려 한설아를 향해 말했다.
“아, 예! 바로 버프를 준비해 드릴게요!”
한설아는 새하얀 빛으로 빛나는 열 두장의 날개를 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와중에도 ‘왕의 여인’이라는 호칭이 퍽 기쁜지 입가에 숨길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흐응! 강우를 방해하는 놈들은 다 가만두지 않을 거야!]“여, 열심히 주, 죽여서 치, 칭찬… 드, 들을 거예요.”
에키드나와 할키온도 강우를 지키듯 달려드는 패러사이트를 향해 사나운 기세를 내뿜었다.
‘데려오는 게 정답이었군.’
강우는 그의 권속들을 돌아보며 피식 웃었다.
이로써 패러사이트 왕과의 싸움에 쓸데없는 방해를 받을 걱정도 없어졌다.
“자.”
사납게 입가를 비틀어 올린다.
화르르륵.
탐식의 불이 배가 고프다는 듯 거칠게 타올랐다.
“시작해보자고.”
외계(外界)의 왕을 향해 나지막이 말했다.
[그 오만함만은 마음에 드는구나!]패러사이트 왕은 반투명한 날개를 넓게 펼쳤다.
수십, 수백에 달하는 녹색 촉수가 강우를 노리고 쏘아졌다.
마치 비가 쏟아져 내리는 듯한 광경.
탐식의 불이 강우의 앞을 막았다.
-콰과과과광!!
고막이 터질 듯한 굉음이 주변을 뒤흔든다.
탐식의 불이 흩어지며 촉수가 강우의 몸을 두들겼다.
촉수에 튕겨 나간 몸이 형편없이 바닥을 굴렀다.
[흐아압!]패러사이트 왕이 발을 굴렀다.
음속을 아득히 돌파한 속도로 쏘아졌다.
순식간에 강우가 튕겨나간 곳까지 도착한 그는 오른팔을 들어올렸다.
인간의 모습에 가까웠던 그의 오른팔은 바퀴벌레의 등껍질 같은 단단한 검은 견갑에 둘러싸여 있었다.
-퍼어어어어억!!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강우의 몸이 주먹에 맞고 공중으로 솟구쳤다.
패러사이트 왕은 쉴 틈을 주지 않고 공중으로 날아올라 연달아 주먹을 쏟아냈다.
[우리 패러사이트 종족은 우주에 군림하기 위해 태어난 최강의 종족이다!]일방적으로 강우를 몰아붙이며,
자신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압도적인 번식력! 몸이 반으로 갈라져도 재생하는 치유력! 무한한 진화까지!]패러사이트라는 종족은 타고난 전사이자, 포식자다.
인간과는 비교하는 것조차 무의미하다.
천사? 악마?
단일 개체로는 그들이 더 강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종족과 종족과의 대결에서 그들은 결코 패러사이트를 따라올 수 없다.
[그중에서도 나는 왕으로서 태어난 존재이니라!]그는 태어난 그 순간부터 최강이었다.
다른 패러사이트와는 격이 다른 신체 능력과, 힘, 진화 속도.
그 모든 것이 자신이야말로 ‘왕’에 걸맞은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타고난 왕.
지배자로서 군림할 운명을 지닌 존재.
온 세계를 발아래 둘 절대자.
그것이 ‘기생(寄生)의 왕’이라 불리는 존재의 본질이었다.
[자, 필멸의 영웅이여! 조금 더 발버둥치거라!]퍼억! 쿠웅! 퍼어어억!
패러사이트 왕이 본격적으로 힘을 드러낸 후, 강우는 일방적으로 밀리기만 할뿐이었다.
아무런 반항조차 해볼 틈 없이 검은 견갑으로 뒤덮인 주먹이 탐식의 불을 뚫고 몸을 두들겼다.
살이 찢어지고, 뼈가 으스러졌다.
[고작, 고작 이것뿐이냐!!]패러사이트 왕은 답답하다는 듯 외쳤다.
[나를 실망시키지 마라, 인간의 영웅이여!]언제부터였을까.
그는 최강의 자리에 군림하는 것에 대해 무료함을 느꼈다.
별을 정복하는 것에도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마치 죽은 것처럼, 그의 세계는 정지해 있었다.
[내가 무엇을 위해 삼원의 세계까지 왔다고 생각하느냐!]자극이 필요했다.
그가 살아 있다는 것을 실감시켜 줄 수 있는 존재가 필요했다.
목숨을 건 전투를,
아찔한 전율을 맛보고 싶었다.
하지만.
[일어서라, 인간!]뻐어어억!
내려찍는 주먹을 피하지 못한 강우의 몸이 바닥에 처박혔다.
패러사이트 왕은 실망스럽다는 듯 혀를 찼다.
[…여기까지인가.]본격적으로 힘을 끌어올린 이후, 인간의 영웅은 더 이상 그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그래도 1형태로 변한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군.]패러사이트 왕은 씁쓸한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그때,
“벌레새끼 참 말 한 번 많네.”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닥에 쓰러졌던 강우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아가리로 싸우냐?”
몸을 일으킨 강우에게는 조금의 상처도 찾아볼 수 없었다.
“뭐, 이제 대충 파악도 끝났고.”
강우는 통찰의 권능을 사용해 패러사이트 왕의 움직임을 분석하는 것을 멈췄다.
태무극처럼 경이로운 움직임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패러사이트라는 종적인 특성을 잘 살린 몸놀림이었다.
“슬슬 제대로 가보자고.”
-화르륵.
가볍게 몸을 숙인다.
천천히 오른 주먹을 들어 올린다.
오른 주먹에 탐식의 불이 맺힌다.
아니, 주먹 자체가 불로 뒤바뀐다.
“하늘.”
숙였던 몸을 튕기듯 피며,
“부수기.”
콰아아아아앙!!
거칠게 발을 박찼다.
마치 공간 자체를 뛰어넘어 이동한 것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패러사이트 왕의 앞에 도달했다.
탐식의 불이 맺힌 주먹을 내질렀다.
-퍼어어어어어억!!
패러사이트 왕의 몸을 보호하고 있는 수백 다발의 촉수를 불태우며, 강우의 주먹이 패러사이트 왕의 배를 정확히 후려쳤다.
[커헉!!]패러사이트 왕의 몸이 반으로 찢어졌다.
허리 아래로 남은 몸이 바닥에 쓰러지며 상반신이 거칠게 튕겨 나갔다.
[쿨럭! 쿨럭!]상반신만 남은 패러사이트 왕이 거칠게 녹색 피를 토했다.
[크으으으.]그것도 잠시.
반으로 찢어진 그의 상반신에서 끈적한 체액이 흘러나왔다.
부글부글 끓는 것처럼 갈라진 살점이 꿈틀거리더니, 이내 그의 몸이 원상태로 돌아왔다.
[하.]패러사이트 왕은 경악스럽다는 듯 강우를 바라보았다.
단 일격에 그의 몸을 반으로 찢어버리다니.
상식을 초월한 힘이었다.
[하, 하하.]그는 입가를 비틀어 올리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크흐, 크하하하하하!!]호쾌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실망감에 차올랐던 표정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이토록 즐거웠던 것은 정복을 시작한 이래 처음이로구나!]패러사이트 왕은 거칠게 주먹을 쥔 채 다시금 힘을 끌어올렸다.
까득, 까드득.
전신을 뒤덮은 검은 견갑이 벌어졌다.
벌어진 견갑 사이로 날카로운 톱날이 달린 여덟 개의 갈고리가 빠져나왔다.
검은색이었던 몸이 점차 녹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크르르르.]가래를 끓는 것과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여덟 개의 갈고리를 통해 몸을 일으킨 패러사이트 왕의 모습에는 더 이상 인간의 모습이 남아 있지 않았다.
[내게 2형태를 사용하게 만든 적은 네가 두 번째이니라.]그리고 그 첫 번째 적은, 2형태를 사용하자마자 전신이 찢어발겨져 죽었다.
[영광스러워해도 좋다! 네놈은 분명 인간 중에 최강….]“아니, 씨바 진짜 더럽게 말 많네.”
패러사이트 왕의 말을 자르며, 강우는 여덟 개의 갈고리 중 두 개의 갈고리를 붙잡았다.
“너도 영광스러워해도 좋다 이 새끼야.”
콰드드득!
두 개의 갈고리를 비틀어 뽑았다.
“이제까지 나랑 싸운 새끼들 중에 너만큼 대사 많이 친 새끼도 없을 거다.”
뻐억!
갈고리를 비틀어 뽑으며 그 탄력을 이용해 발을 걷어차 올렸다.
패러사이트 왕의 턱이 박살나며 몸이 뒤집혔다.
가볍게 땅을 박차고 날아올라, 위로 쳐 올린 발을 도끼처럼 내려찍었다.
발뒤꿈치에 찍힌 패러사이트 왕이 대지에 거대한 크레이터를 만들며 깊게 처박혔다.
[크아아아아!!]고통에 찬 괴성이 흘러나왔다.
패러사이트 왕은 억지로 잡아 뽑힌 갈고리를 부여잡으며 몸을 비틀었다.
[크흐, 크흐흐.]고통에 몸부림치던 것도 잠시.
[크하하하하하하!!]패러사이트 왕은 바닥에 처박힌 채 폭소를 터트렸다.
[아, 아아!! 그래, 이거였구나! 이거였어!]감격한 목소리로 외쳤다.
고개를 들어 올려 강우를 응시했다.
[이것이 바로 살아있다는 감각이로구나!!]환희에 떨리는 목소리.
아득한 세월 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공포’가 그의 몸을 전율시켰다.
공포야말로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케 만드는 감정.
그가 그토록 갈망하던 감정이었다.
[인정하겠다, 필멸의 영웅이여!]패러사이트 왕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너야말로 진정한 나의 대적자(對敵者)이니라!!]-쿠구구구구궁!!
지진이 난 듯 대지가 요동쳤다.
[보여주마!]패러사이트 왕이 두 팔을 높게 들어올렸다.
수천, 수만 가닥의 녹색 촉수가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기포가 끓듯 살점이 끓어오르더니.
[이것이 진정한 왕의 모습이니라!]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던 녹색 촉수가 한 곳에 뭉치기 시작했다.
몇 미터에 불과했던 패러사이트 왕의 크기가 수백 미터 가까이 커졌다.
산을 짓밟으며 포효하는 패러사이트 왕의 모습은 마치 신화에 등장하는 거인을 보는 것 같았다.
[오라! 내게 진정한 ‘공포’를 느끼게 만들어라!]패러사이트 왕은 환희에 찬 목소리로 거대한 팔을 들어올렸다.
“…….”
강우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거대해진 패러사이트 왕을 바라보았다.
‘아니, 뭐 하는 새끼야 저거?’
3단 변신에 거대화까지.
“열혈물 주인공이니?”
아주 그냥 드릴이 우주를 뚫겠어.
“공포를 느끼고 싶다고?”
강우는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확실히, 거대화한 패러사이트 왕에게서는 그런 오만한 말을 내뱉을 정도의 힘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래.”
강우는 입가를 비틀어 올렸다.
“질릴 정도로 느끼게 해줄게.”
오른손을 왼쪽 심장에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개문(開門).”
절망의 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