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471)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472화
기생(寄生)의 왕 (4)
[…무, 슨.]패러사이트 왕의 눈이 떨렸다.
쿵, 쿵.
산을 짓밟은 정도로 거대한 몸집을 지닌 괴물이 뒷걸음쳤다.
그의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저것’은,
위험하다고.
[네, 놈… 인간이, 맞는, 거냐?]겉으로 변한 것은 없었다.
어딜 어떻게 보더라도, 눈앞에 있는 적은 인간이었다.
하지만.
[…….]무언가 달랐다.
환 대륙을 정복하며 무수한 인간의 육체를 집어삼켰지만, 이런 느낌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저것은 인간이라기보다, 인간의 껍데기를 쓴….
[흐, 흐흐흐.]패러사이트 왕은 낮은 웃음을 흘렸다.
가늘게 떨리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본능이 절규하듯 외치고 있었다.
당장 저 ‘괴물’을 피해서 도망치라고.
[…재미있군.]불가해(不可解)의 적을 마주한 패러사이트 왕의 몸에 짜릿한 전율이 퍼졌다.
자신이, 셀 수 없는 우주를 정복한 기생의 왕이 다른 누군가를 ‘괴물’로서 인식하다니.
이제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감각에 그는 더 없는 환희를 느꼈다.
-쿠웅!
[실로 재미있구나!!]패러사이트 왕은 몸을 잠식하는 공포를 억지로 지우며 큰소리로 외쳤다.
[더, 더, 더!]거대한 팔을 들어 올렸다.
[나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어 보거라!!]수십 미터에 달하는 거인의 팔이 내려쳐졌다.
거대한 패러사이트 왕의 앞에 선 강우의 몸은 작은 파리 정도에 불과했다.
-콰아아앙!!
무시무시한 충격이 대지를 뒤흔들었다.
패러사이트 왕의 팔에 짓눌린 강우의 몸이 처참하게 박살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거대한 팔에 짓눌려 터져 나간 살점들이 순식간에 원상태로 되돌아왔다.
[크흐흐, 그렇지! 이래야지!]눈 깜짝할 사이에 원래의 모습으로 재생한 강우를 내려다보며 패러사이트 왕은 폭소를 내뱉었다.
처음으로 자신에게 ‘공포’라는 감정을 느끼게 만들어준 존재를 만났는데 고작 한 방에 끝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
[드디어 내 모든 것을 쏟아부을 수 있는 적수를 만나게 되었구나!]더 이상 바알을 찾아 헤맬 필요조차 없어졌다.
눈앞의 괴물이야말로,
그가 차원을 넘어서까지 찾아 헤매던 ‘대적자’였다.
[크라라라라락!]형언하기 힘든 괴성과 함께 패러사이트 왕의 녹색 견갑이 벌어졌다.
치이이이익!
강력한 산성을 띠는 녹색 체액이 비처럼 쏟아졌다.
“…….”
살이 타들어 가는 냄새가 풍긴다.
강우의 피부가 녹아 흘러내렸고,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전신이 녹아내리는 와중, 강우는 거칠게 발을 박차고 패러사이트 왕을 향해 달려들었다.
비처럼 쏟아지는 산성 체액을 가르며 패러사이트 왕의 몸에 달라붙었다.
-콰득!
크게 입을 벌려 한 점.
패러사이트 왕의 살점을 뜯는다.
[…….]사람 주먹 하나 크기 정도로 떨어져 나간 자신의 살점을 내려다보며.
[푸흡.]패러사이트 왕은 참지 못하고 실소를 터뜨렸다.
[푸하하하하하하하!!!]그의 육체는 수백여 미터에 달할 정도로 거대했다.
그런데 고작 주먹 하나 크기 정도의 살점이라니?
인간으로 치면 각질이 떨어져 나간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지금 그것을 공격이라고 한 것이냐?]패러사이트 왕은 웃음을 참기 힘들다는 듯 부르르 몸을 떨며 물었다.
그의 눈빛에는 더 이상 공포의 감정은 남아 있지 않았다.
기생의 왕의 눈빛에 남아 있는 것은 짙은 조롱의 감정뿐.
[흐음. 이거… 착각을 한 건지도 모르겠군.]패러사이트 왕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대적자를 발견했다며 흥분에 달아올랐던 몸이 싸늘히 식는 것이 느껴졌다.
하긴.
전신이 녹아내리는 것을 감수하고 산성 체액의 비를 뚫고 한 짓이 고작 주먹 하나 크기의 살점을 베어낸 것이었으니 실망감이 드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흐흐흐.]패러사이트 왕의 입에서 나지막한 조소가 흘러나왔다.
태어난 이래 처음으로 마주한 대적자에 달아올랐던 몸이 싸늘히 식었지만, 어째서인지 그다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실망스럽다는 감정보다, 오히려 별것 아닌 적이었다는 ‘안도’감이 크게 밀려왔다.
-콰득.
그때,
그의 몸에 달라붙은 강우가 다시금 입을 벌려 살점을 씹어먹는 것이 보였다.
[크하하하하! 아직 포기하지 않은 것이냐!]패러사이트 왕은 다시금 폭소를 터트렸다.
그의 육체의 크기를 생각했을 때, 이 정도 살점이 떨어져 나간 것은 공포스럽기보다 가소로운 일이었다.
[아주 귀여운 발악이구나, 나의 대적자… 아니, 하찮은 존재여.]어느새 강우를 칭하는 호칭도 변해 있었다.
[아까 질릴 정도로 공포를 느끼게 해준다 하지 않았더냐? 이게 그 공포인가? 응? 크흐흐. 이거 어떻게 한다. 조금도 두렵게 느껴지지 않는구나.]패러사이트 왕은 한껏 그를 비웃었다.
-콰득.
다시 한 번.
강우는 그의 살점을 베어 물었다.
[어디 마음껏 발버둥 쳐보거라.]패러사이트 왕은 느긋한 표정으로 강우를 내려다보았다.
-콰득, 콰득.
강우는 멈추지 않고 그의 몸에 달라붙어 살점을 씹었다.
[흐음.]패러사이트 왕의 표정이 아주 살짝 일그러졌다.
차곡차곡 떨어져 나간 살점에서 무언가 이질감이 느껴졌다.
[…재생이 되지 않는군.]패러사이트 종족의 재생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중에서도 왕의 재생력은 말 그대로 괴이에 가까운 수준.
전신이 갈기갈기 찢어지더라도 순식간에 육체가 재생되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의 몸에 달라붙은 인간에게 씹어 삼켜진 살점만큼은 재생이 되지 않았다.
[거슬리는군.]아무리 그라고 해도 통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재생되지 않는 상처에서 희미하지만 계속해서 통증이 느껴지자 슬슬 짜증이 밀려왔다.
[죽어라, 하찮은 존재여.]패러사이트 왕은 거대한 팔을 들어 자신의 몸에 달라붙은 강우를 내려쳤다.
-퍼석!
거대한 팔에 짓눌린 강우의 몸이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터졌다.
귀찮게 몸에 달라붙어 피를 빠는 모기를 치워낸 듯, 패러사이트 왕은 한결 홀가분한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자신의 수하들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강우의 동료들이었다.
그중에서도 발록을 유심히 살피며 패러사이트 왕은 입가를 올렸다.
[하찮은 존재의 수하여.]“…음?”
이제 막 발광하는 절제의 머리통을 후려쳐 터트린 발록은 패러사이트 왕의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뭐냐. 벌레의 왕.”
[네 주인은 죽었다.]패러사이트 왕은 납작하게 터져 몸에 눌어붙은 강우를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이 하찮은 자를 대신하여 나를 섬길 생각은 없느냐?]“…….”
갑작스러운 스카웃 제안에 발록은 굳게 입을 다물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강우의 시체를 바라보더니,
“크흐흐.”
어깨를 들썩이며 웃음을 터트렸다.
조롱의 빛이 담긴 눈빛으로 패러사이트 왕을 응시했다.
“덩치만 커졌지 뇌는 커지지 않은 모양이군.”
[…뭐라?]패러사이트 왕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발록은 느긋한 표정으로 산산이 박살 난 강우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네놈은….”
꿈틀.
생물이라면, 살아 움직이는 존재라면 필시 죽음에 도달했을 상처를 입었음에도.
그는,
마해(魔海)를 몸 안에 품은 괴물은.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죽지 않는다.
-콰, 득.
[…뭐?]패러사이트 왕의 입에서 당황에 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희미하게,
거의 느껴지지도 않을 정도로.
그의 살점이 씹어 삼켜졌다.
[왜….]덜덜 떨리는 눈으로 고개를 내렸다.
그곳에는,
-콰득.
입이.
곤죽이 된 육체에서 떨어져 나온 입 하나가.
그의 살점을 씹어 삼키고 있었다.
[죽지, 않는… 거냐.]불가해(不可解)를 마주한 공포.
끝없는 무저갱에 빨려 들어가는 듯 몸이 무겁다.
[이익!]패러사이트 왕은 거칠게 손을 들어올렸다.
몸에 달라붙은 ‘입’이 있는 부위 자체를 큼지막하게 움켜쥐어 뜯어냈다.
-뚜두두둑!
살점이 큼지막하게 뜯겨나가며 녹색 체액이 분수처럼 솟구쳤다.
[후우, 후우.]강우가 달라붙어 씹어 먹었을 때보다 오히려 더 큰 상처를 입었지만, 패러사이트 왕의 표정은 훨씬 밝아져 있었다.
그는 강우의 입이 달라붙었던 살점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대체 네놈은 뭐….]-콰득.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살점이 뜯겨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패러사이트 왕은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가 움켜쥐어 뜯어버린 살점의 아래, 녹색 체액이 흘러넘치고 있는 곳에.
입이,
있었다.
[뭐, 야.]분명 저 입이 있는 부위를 통째로 잡아 뜯어냈다.
그런데.
[왜… 아직, 남아 있는… 거, 냐.]덜덜덜.
패러사이트 왕의 거대한 몸이 가늘게 떨렸다.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었다.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왜, 아직 남아 있냐는 말이다!!!]패러사이트 왕은 발작을 일으키듯 소리치며 ‘입’이 달라붙어 있는 살점을 다시금 움켜쥐었다.
뚜둑, 뚜두둑!
상처 따위는 생각지도 않고, 거칠게 살점을 뜯어낸다.
[허억, 허억, 허억.]거칠어진 숨이 흘러나왔다.
더러운 오물을 버리듯 뜯어낸 살점을 멀리 집어던졌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콰, 득.
어느새 나타난 또 다른 입이 그의 살점을 물어뜯었다.
[아, 아아.]패러사이트 왕의 입에서 나지막한 신음 흘러나왔다.
한 번 입이 움직일 때마다 떨어져 나가는 살점은 고작 인간의 주먹 하나 크기.
패러사이트 왕의 입장에서는 상처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한 피해였다.
하지만.
[그, 그만.]그렇기에,
알 수 있다.
이 작디작은 상처가 멈추지 않고 쌓일 것이라는 사실을.
죽음에 이르지도 못한 채, 떼어낼 수 없는 저주에 사로잡힌 것처럼 서서히 뜯어먹힐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언젠가.
아득한 시간이 흐른 후에.
의식이 생생히 남아 있는 채로 죽음에 이르리라는 사실을.
[그만하라고 했다아아아!!]패러사이트 왕은 절규가 울려 퍼졌다.
공포에 휩싸인 채, 그는 미친 듯이 몸을 긁었다.
-쩌적, 쩍!
피부가 갈라진다. 살점이 뜯겨나간다. 찢어진 혈관에서 녹색 체액이 흐른다.
손톱으로 피부를 벅벅 긁어내는 것과 같다.
강우의 입이 씹어 삼키는 살점의 양보다, 스스로 자해를 하며 긁어내는 살점의 양이 훨씬 더 많다.
그럼에도.
-콰득.
[떠, 떨어져!! 내게서 떨어지란 말이다아아아!!]멈추지 않았다.
패러사이트 왕은 처절한 절규를 내뱉으며 몸을 비틀었다.
지금 그의 상태를 비유하자면 손톱깎이를 통해 사람의 살점을 뜯어내는 것과 같다.
무슨 짓을 해도 떨어지지 않는 손톱깍이로.
[아, 아아아.]거대한 칼로 목을 내리쳐 단번에 목숨을 앗아가는 것과,
[제, 제발.]손톱깎이를 통해 손끝에서부터 천천히, 전신의 살점을 조금씩 뜯어내며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것.
[그, 그만, 둬.]과연,
[이, 이런 걸… 바랐던 게, 아니야.]무엇이 더,
[이건… 내가, 바란, 전투가… 아니라고.]두려울까?
-콰득.
패러사이트 왕의 살점이 뜯겨나갔다.
입만이 달라붙어 있던 그의 몸에서, 검은 점액질이 한곳에 뭉치기 시작했다.
한곳에 뭉친 검은 점액질은 곧 인간의 형상으로 변했다.
강우는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기생(寄生)의 왕을 바라보며,
“자.”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이제 내가 두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