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489)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490화
첫 번째 하늘의 주인 (2)
“…너는.”
에일레스는 가늘게 눈을 떴다.
강우를 응시하는 그의 표정은 무섭게 굳어 있었다.
무례하고, 경박하기 짝이 없는 언행에 표정을 굳힌 것이 아니었다.
그가 무서운 표정으로 응시하고 있는 것은,
-화르르륵!
서리의 검으로 쏘아 보낸 폭풍을 집어삼킨 불꽃이었다.
‘어찌 인간이 서리 여왕의 힘이 담긴 언령(言靈)을…?’
언령.
힘이 담긴 언어를 입으로 내뱉음으로써, 물리 법칙을 초월한 기적을 행사하는 것.
서리검에는 서리 여왕의 힘이 깃들어 있었고, 언령을 사용함으로써 그 힘을 발동시키는 것이 가능했다.
언령의 힘으로써 발동된 서리 폭풍은 설사 최상(最上)급 신격을 지닌 존재라도 무시할 수 없는 끔찍한 위력을 지녔다.
‘분명 그러할진대.’
에일레스는 서리검에서 쏟아져 나온 폭풍을 집어삼킨 불꽃을 바라보았다.
검은색과 황금색이 뒤섞인, 검은 태양과도 같은 불꽃.
섬뜩한 전율이 등골을 타고 퍼졌다.
에일레스는 서리검을 쥔 채 품에 안은 아리안느를 향해 나지막이 말했다.
“안전한 곳으로 피해 있거라.”
“아바마마…?”
“빨리.”
에일레스는 반론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리안느는 잠시 눈물을 글썽거리더니, 이내 찌릿 강우를 노려보고는 몸을 돌렸다.
“흥! 아바마마! 저 천한 것들을 모두 죽여주세요!”
“…그래.”
에일레스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자신을 바라보는 아리안느의 모습에 자상한 미소를 머금었다.
“얼씨구.”
강우는 그런 그들의 모습에 헛웃음을 흘렸다.
“아주 드라마를 찍네, 드라마를 찍어. 누가 보면 이쪽이 나쁜 놈인 줄 알겠어?”
어라?
잠깐만.
“지금은 우리가 침입한 입장이니 우리가 나쁜 놈이 맞나…?”
강우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들의 바알의 수하인 이상 인류의 적이자 세계의 위협이 될 존재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지금 상황만 잘라 놓고 보면 악역은 그들이 아닌 강우가 맞았다.
에일레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강우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말이 많은 인간이로군,”
“원래 주둥이 하나 믿고 살아가는 새끼라서요.”
“과연 머리가 잘리고도 그렇게 떠들 수 있는지 궁금하군.”
“응? 나 머리 잘려도 떠들 수 있는데?”
설마 너는 머리 잘렸다고 말도 못 하니?
“…….”
에일레스는 불쾌하다는 눈빛으로 강우를 노려보았다.
강우는 낄낄 웃으며 어깨를 들썩였다.
“뭐, 쓸데없는 잡담은 여기까지 하고.”
경박스러웠던 그의 분위기가 일순 뒤바뀌었다.
서리 일족에 뒤지지 않는 차가운 시선을 향했다.
나지막이 입을 연다.
“너, 바알이랑 무슨 관계냐?”
“…….”
가느다란 얼음으로 이루어진 에일레스는 눈썹이 꿈틀거렸다.
“함부로 그분의 존함을 입에 담지 마라.”
“흐음. 존함이라고 하는 걸 보니 바알 밑에 있는 놈은 확실하고….”
강우는 가늘게 눈을 떴다.
바알의 수하 중, 이 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닌 존재라면.
‘사천왕인가?’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나는 바알 님의 충실한 종이자 첫 번째 하늘의 주인, 에일레스다.”
“응. 그래, 그럴 것 같더라.”
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전에 세계수에 들러붙었던 놈이 네 번째 하늘의 주인이라고 했지?’
분명 모압이라는 이름을 지닌 외계의 신이었다.
‘그놈이 자기는 사천왕 중 최약체니 뭐니 했으니까.’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첫 번째 하늘의 주인’이라면 사천왕 중에 수장쯤 되는 존재이리라.
‘이거 땡잡았는데?’
강우는 씨익 입가를 올렸다.
대충 게이트 이상 현상이나 조사하러 온 거였는데, 생각지도 않게 대물을 잡아버렸다.
‘안 그래도 이쪽만 일방적으로 정보가 털리는 게 상당히 마음에 안 들었는데.’
지금은 일시적으로 차단된 상태이지만, 바알은 그전까지만 해도 시스템의 개입을 통해 자신에 대한 정보를 낱낱이 파악했다.
하지만 그에 비해 자신은 바알이 지금 어디에 있는 지는커녕 어느 정도 규모의 군세를 지니고 있는지, 그 군세를 이용해 언제쯤 움직이려는지 하나도 알지 못한다.
‘저놈이 사천왕 중의 수장이라면.’
그 일방적인 정보의 격차를 좁힐만한 귀중한 정보를 지니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좋구만.”
강우는 활짝 웃으며 입술을 핥았다.
“…뭐가 좋다는 거지?”
“너한테서 바알에 대한 정보를 좀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하.”
에일레스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는 사납게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강우를 노려보았다.
“내가 그걸 알려주리라고 생각하나?”
어처구니없다는 듯 물었다.
그리고.
“응.”
망설임 없이,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환하게 웃으며 허리를 살짝 숙였다.
“알려줄 거라고 생각해.”
“…….”
에일레스는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차가운 눈빛으로 고개를 저었다.
서리의 검을 움켜쥐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럴 의무는 없다.”
“괜찮아, 의무 같은 건 만들면 그만이니까.”
강우는 낄낄 웃음을 흘리며 에일레스의 앞에 섰다.
어차피 순순히 에일레스가 정보를 불 거라고는 생각한 적도 없다.
‘사천왕의 수장이라.’
강우는 흥분에 찬 눈으로 에일레스를 바라보았다.
입맛을 다시며, 허리춤에 찬 잉그리움을 꺼내 들었다.
화르륵.
탐식의 불이 잉그리움의 칼날에 맺혔다.
가볍게 몸을 숙이고, 튕기듯 발을 박찼다.
-쿠웅!
신전 전체가 뒤흔들렸다.
‘우선은 가볍게.’
검을 내려쳤다.
-콰아아앙!
서리의 폭풍과 탐식의 불이 격돌했다.
얼음과 불이 뒤엉키며, 어마어마한 양의 증기가 신전 안을 가득 채웠다.
“얼어붙어라.”
에일레스가 언령을 내뱉었다.
서리의 검에서 끔찍한 한기가 피어오르며 강우를 덮쳤다.
강우의 입가가 올라갔다.
“그거, 언령이지?”
잉그리움의 검을 쥔 손에 힘을 더하며,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살짝 비튼 몸에 회전을 실어,
“타올라라.”
언령을 내뱉었다.
-화르르르르륵!!
탐식의 불이 서리의 폭풍의 집어삼키며 순식간에 몸집을 키웠다.
“무슨…!”
에일레스의 눈이 경악에 물들었다.
언령의 공격을 막아냈을 때 설마 싶었지만, 진짜 언령까지 사용할 줄이야!
“크읏!”
에일레스는 서리 폭풍을 집어삼키며 뻗어 나오는 탐식의 불을 보며 다급히 거리를 벌렸다.
그가 서 있던 자리에 커다란 구덩이가 생기며 얼어붙은 신전의 바닥이 증발해 사라졌다.
‘저 인간은 대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강우를 바라보았다.
마치 끔찍한 악몽을 꾸는 듯한 감각이었다.
에일레스는 입술을 짓씹으며 서리검을 낮게 휘둘렀다.
-콰자자자작!
서리검이 지나간 자리를 따라 거대한 얼음벽이 솟구쳤다.
탐식의 불과 얽힌 얼음벽이 새하얀 증기를 내뿜으며 사라졌다.
“후우.”
잠깐의 틈이 생긴 사이, 에일레스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하고 눈앞의 적에 집중했다.
대체 저런 인간이 어디에서 갑자기 튀어나왔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바알 님의 대계(大計)에 방해가 될 존재다.’
그 사실 하나만은 확실했다.
“서리의 정령이여.”
에일레스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침입자가 지닌 힘이 그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었다고는 하나,
“왕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곳은 얼어붙은 신전.
서리 일족의 땅이며, 서리의 힘이 가장 강력하게 발휘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불을 잠재워라.”
에일레스의 몸 주변에 마치 솜뭉치 같은 서리의 정령들이 나타났다.
수십, 수백, 수천.
눈 깜짝할 사이에 주변 공간 전체를 잠식한 서리의 정령들의 몸이 동시에 부풀어 올랐다.
쩌저저저적!!
공간 자체가, 얼어붙는다.
숨을 쉬는 것만으로 폐가 얼어버릴 정도의 한기가 강우를 덮쳤다.
강우는 몸을 뒤로 빼내며 왼팔을 앞으로 뻗었다.
왼팔에 타오르고 있던 탐식의 불이 끔찍한 한기에 뒤덮여 사그라들었다.
한설아가 설치한 성역의 영향력 안에 있었지만, 에일레스의 마법은 성역의 보호를 뚫어버리며 강우의 왼팔 전체를 얼음 덩어리로 만들었다.
“끝났군.”
에일레스는 더 이상 볼 것도 없다는 듯, 왼팔이 얼음 덩어리로 변한 강우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서리 정령의 침식이 시작된 이상, 이미 승패는 결정지어진 것과 다를 바 없다.
“헤에.”
강우는 흥미롭다는 듯 팔꿈치 아래로 얼음 덩어리가 된 자신의 왼팔을 내려다보았다.
쩌적, 쩌저적!
서리의 힘이 그를 침식했다.
마치 독이 퍼지듯, 얼음 덩어리의 범위가 점차 넓어졌다.
왼팔의 팔꿈치에서 어깨, 쇄골을 지나 가슴까지.
점차 그의 몸이 얼음 덩어리로 뒤덮여가고 있었다.
“시원하긴 하네.”
강우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의 몸을 침식하던 한기가 전신에 퍼졌다.
얼음 덩어리가 온몸을 뒤덮었다.
마치 얼음으로 만들어낸 동상이 된 듯, 강우의 움직임이 멈췄다.
“더 이상 그 잘난 입도 나불거릴 수 없게 되었구나.”
에일레스는 콧방귀를 끼며 몸을 돌렸다.
아직 침입자 모두를 처리한 것이 아니었다.
얼음 동상으로 만들어야 할 대상은 여섯이나 더 있었다.
“음…. 완전히 얼었네.”
“가, 강우 씨의 동상… 꿀꺽.”
차연주는 심드렁한 눈빛으로 얼음덩어리로 변한 강우를 바라보고 있었고, 한설아는 하악, 하악 거친 숨을 내쉬며 침을 흘리고 있었다.
“…음?”
에일레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침입자들의 반응이 이상했다.
눈앞에서 동료가 죽었을 때 인간들은 보통 이성을 잃고 분노하거나, 공포에 질려 벌벌 떠는 것이 상식적인 반응이다.
하지만.
‘왜….’
아무도 두려움에 떨지 않는다.
아무도 분노에 차오르지 않는다.
그때,
-쩌적.
강우를 뒤덮고 있던 얼음에 새하얀 금이 가기 시작했다.
갈라진 얼음의 틈새로,
검은 태양과도 같은 불길이 치솟았다.
“내가 말했잖아.”
부서진 얼음의 틈에서 강우가 걸어 나왔다.
씨익. 입가를 비틀어 올렸다.
“대가리를 잘라도 나불거릴 수 있다고.”
고작 전신이 얼음 덩어리가 되는 것 따위로,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너는….”
에일레스의 두 눈이 부릅뜨였다.
그의 몸을 잠식하는 공포를 느꼈다.
침입자를 처음 마주한 순간 느꼈던 이질감.
그 이질감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는 이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인간이, 아니었구나.”
공포에 질린 그를 바라보며, 강우는 방긋 미소를 지었다.
탐식의 불이 그의 몸을 뒤덮는다.
아니, 그의 몸이 탐식의 불 자체로 변하기 시작했다.
혼돈을 머금은 불길이 찬연히 타올랐다.
그리고.
-촤악.
검은 태양이 날개를 펼쳤다.
화르르륵!
얼어붙은 신전을 이루고 있던 투명한 얼음들이 녹아내려 흐르기 시작했다.
“자.”
강우는 얼어붙은 신전 전체를 녹여버리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이제 그 알려줄 의무라는 게 좀 생겼어?”
“…….”
에일레스는 서리의 검을 굳게 쥐었다.
타오르는 검은 태양을 바라보며 그는 자신의 미래를, 이 싸움의 승패를 직감했다.
‘아리안느….’
지그시 두 눈을 감았다.
몸을 돌려 도망친 자신의 딸을 떠올렸다.
날개를 활짝 펼친 채 타오르고 있는 검은 태양을 향해 몸을 돌렸다.
천천히 눈을 뜬다.
굳은 결의가 담긴 푸른 눈으로,
강우를 응시했다.
“설사 이곳에서 내가 녹아 사라지는 한이 있더라도.”
바알에 대한 그의 충성심은,
주군을 향한 그의 신념은,
“결코 꺾이지 않을 것이다.”
“아니.”
결의 찬 그의 말을 잘라내며 강우는 혀를 길게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선언하듯,
단정 짓듯,
말한다.
“네 신념은 꺾이게 될 거야.”
낄낄낄.
악마는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