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499)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500화
재래(再來) (1)
“하하하하!”
맑은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쩌적.
둠가드의 뒤편에 쓰러져 있던 악마 하나의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
“그래도 잘 숨겼다고 생각했었는데… 역시 마왕님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군요.”
그 안에서 날카로운 톱날로 이루어진 손을 지닌 악마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악마 중에서는 보기 드물게 깔끔한 정장을 입은 채, 단정하게 머리를 쓸어넘긴 악마였다.
아라카일.
‘나락의 군단’을 지휘하는 군단장이 절도 있는 동작으로 허리를 숙였다.
“그래도 한 식구였는데 못 알아보면 안 되지.”
강우는 깊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식구.
당연했던 그 단어가 어째서인지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다.
“식구라…. 그래, 그랬었죠. 악마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입니다만, 마왕님은 달랐으니까요.”
아라카일이 피식 웃었다.
적들에게는 한없이 잔인한 마왕이었지만, 일단 한 번 권속으로 받아들인 악마에게는 말 그대로 ‘가족’처럼 대해주던 것이 오강우라는 악마였다.
“그 누구보다도 악마 같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악마 같지 않았던 것이 바로 마왕님이었죠.”
아라카일은 추억을 곱씹듯, 아련한 목소리로 말했다.
강우와 만난 것은 삼백여 년 전.
그가 막 첫 번째 대공을 쓰러트렸을 시점이었다.
“많은 일이… 예, 정말 많은 일이 있었죠.”
그와 함께 싸우고, 그와 함께 승리했다.
일곱 대공의 세력과 싸워 이기고, 구천지옥을 손에 넣었다.
“다시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나의 왕이시여.”
아라카일은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
강우는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고개를 내렸다.
숨이 끊어진 둠가드의 몸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눕혔다.
눈을 뜬 채 죽은 둠가드의 눈을 감겨주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래, 나도 반갑다. 설마 감동의 재회가 이렇게 뒤통수를 후려 처맞으면서 이뤄질 줄은 생각 못 했지만 말이야.”
“하하하. 저도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아라카일은 톱날로 이루어진 손으로 바닥을 툭툭 두드렸다.
“아라카일 네놈….”
발록이 뜨겁게 타오르는 눈으로 아라카일을 노려보았다.
당장에라도 달려들 것처럼 거대한 주먹을 움켜쥐었다.
“기다려.”
강우는 발록을 제지하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아라카일을 바라보며 물었다.
“하나만 물어보자.”
“얼마든지 물어보셔도 괜찮습니다.”
아라카일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왜 그랬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하하하!!”
아라카일은 맑은 웃음을 터트리며 바닥에 쓰러진 둠가드를 바라보았다.
“둠가드를 죽인 이유에 대해 물으시는 거라면….”
쯧, 가볍게 혀를 찼다.
“제 제안을 끝까지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제안?”
“예.”
아라카일은 두 팔을 활짝 벌렸다.
“마왕님을 배신하고, 바알의 군세로 합류하자는 제안 말이죠.”
“…….”
“아니, 아니. 표현을 좀 잘 못 했군요. 배신이라니…. 이건 배신이라고 할 수 없죠.”
고개를 저으며 낄낄 웃음을 터트린다.
“악마가 욕망을 추구하는 건 당연한 섭리 아닙니까?”
악마에게 있어 욕망은 본능이다.
욕망만이 악마를 악마답게 만들고, 악마를 악마로서 지속시킨다.
욕망은,
모든 것이다.
“아라카이이이이일!!!”
쿠웅!
참지 못하고 폭발한 발록의 포효가 주변 대지를 뒤흔들었다.
발록은 거칠게 주먹을 움켜쥔 채, 발을 박찼다.
철컥, 철컥.
검은 갑주가 그의 몸을 뒤덮기 시작했다.
-치이이이이익!!
갑주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새하얀 증기.
안개처럼 내리깔린 증기 속에서, 발록이 검은 날개를 펄럭였다.
-카아아아앙!!!
아라카일은 톱날로 이루어진 손을 들어 올렸다.
발록의 주먹과 톱날이 격돌했다.
무시무시한 쇳소리가 넓게 울려 퍼졌다.
“흐읍!”
발록은 짧게 숨을 들이쉬며, 주먹에 힘을 불어넣었다.
붉은 근육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감히, 감히 네놈이…!”
분노에 일그러진 눈빛.
“왕을 배신했단 말이냐!!”
발록에게 있어서 왕을 배신한다는 것은, 그 어떤 이유로도 용납할 수 없는 중죄였다.
-쿠웅! 콰앙!
발록의 주먹이 난폭하게 휘둘러졌다.
포탄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다.
“왕이! 네놈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베풀어줬는지!”
쿵! 쿵! 쿵! 쿵!
포효를 내뱉으며, 쇳덩이와 같은 주먹을 내리찍었다.
아라카일은 톱날을 교차하여 그의 공격을 막았다.
주먹이 내려 찍힐 때마다 교차한 톱날의 사이가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했다.
“잊었단 말이냐!!!”
-콰아아앙!
발록은 두 주먹을 깍지 낀 채 온몸의 무게를 담아 내리찍었다.
파캉!
맑은 쇳소리와 함께 아라카일의 톱날이 양쪽으로 벌어졌다.
발록은 오른발을 뒤로 빼내며 자세를 낮췄다.
몸을 비틀며, 오른 주먹을 높게 들어 올렸다.
“하늘.”
탄력을 이용해 회전이 담긴 주먹을 내질렀다.
“부수기!!”
강우에게 배웠던 몇 안 되는 맨손 격투술이 발록의 손을 통해 발현됐다.
거대한 산조차 일격에 무너트릴 수 있는 힘이 담긴 주먹이 아라카일의 몸을 후려쳤다.
하지만.
“하하. 발록님도 못 보던 사이에 많이 달라지셨군요. 원래 채찍을 주로 사용하지 않으셨나요?”
“……!”
아라카일은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발록의 주먹을 가슴을 편 채 ‘받아냈’다.
발록의 주먹은 아라카일의 몸을 둘러싸고 있는 보이지 않는 힘에 형편없이 튕겨 나갔다.
“이건….”
발록의 표정이 거칠게 일그러졌다.
아라카일의 몸을 둘러싸고 있는 정체불명의 힘.
그 힘이 무엇인지, 발록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뭐, 그래봤자.”
아라카일의 입가가 비틀어 올라갔다.
“신격조차 없는 하찮은 존재일 뿐이지만.”
낄낄 웃음을 터트리며, 톱날로 이루어진 손을 빠르게 내리그었다.
톱날에 서린 마기에서 강대한 신성(神聖)의 힘이 흘러나왔다.
발록은 대경한 표정으로 몸을 뒤로 젖혔다.
하지만.
-촤아악!!
“크하악!”
검은 갑주를 가볍게 가르며, 발록의 가슴에 난잡하게 찢은 듯한 흉측한 상처가 생겼다.
검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발록은 가슴을 움켜쥔 채 바닥을 굴렀다.
“크으…!”
발록은 거칠게 입술을 짓씹었다.
‘또, 신격이냐.’
꾸드득. 검은 갑주에 뒤덮인 주먹을 움켜쥐었다.
신격(神格).
단순히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 너무나 불합리할 정도의 격차를 만들어내는 힘.
으득.
맞물린 입에서 이가 갈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고 보니 너 아직 신격을 각성하지 못했잖아?
불현듯, 김시훈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스쳤다.
얼어붙은 신전으로 향하기 전에 지나가듯 했던 말이었다.
“…….”
발록의 얼굴이 야차처럼 일그러졌다.
김시훈이 조롱의 의미로 그 말을 한 것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제길, 제길, 제길!!”
쿵!
발록은 주먹을 움켜쥔 채, 거칠게 바닥을 내려찍었다.
“후욱, 후욱.”
가슴에 벌어진 상처에서 검은 피가 흘러내렸다.
발록은 그 피를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방법은, 있다.’
그가 터득한 새로운 힘, 패왕갑(霸王鉀)은 피를 매개체로써 힘이 강해진다.
즉, 피를 많이 흘리면 흘릴수록 그 힘이 강해진다는 의미.
‘그렇다면.’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지만, 신격을 지닌 존재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힘을 손에 넣는 방법이 존재한다.
‘하지만….’
발록의 눈빛에 갈등이 서렸다.
초조한 표정으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왜?”
아라카일의 조소가 그를 향했다.
“네가 그렇게 울부짖는 충의(忠毅)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지?”
“…….”
발록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라카일은 힘에 취한 듯, 몽롱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충의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신념으로도, 의지로도 얻을 수 있는 건 없지.”
톱날로 이루어진 손을 높게 들어 올렸다.
“오로지 욕망만이.”
악마의 본능이자.
악마를 악마로서 존재하게 만드는 이 감정이.
“욕망만이 우릴 완성시킨다.”
아라카일은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아몬과의 거래를 통해 받은 신격(神格).
그 강대한 힘이 그의 몸을 흥분시켰다.
뜨겁게 불태웠다.
“마왕님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아라카일은 강우를 돌아보며 물었다.
“…….”
강우는 굳게 입을 다문 채, 아라카일을 응시했다.
아라카일에게서 느껴지는 신격은 태무극, 가이아와 비견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
“하아.”
강우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라카일이 자력으로 신격을 각성할 수 있을 리가 없을 테니.’
답은 정해져 있었다.
‘화신이 된 건가.’
아라카일이 바알의 화신이 된 건지, 아니면 바알에게 협력하는 외계(外界)의 신 중 하나의 화신이 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지금 그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힘을 손에 거머쥐었다는 사실.
‘이게… 네가 준비한 대책이냐, 바알.’
구천지옥을 규합하는 것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율법의 제약이 풀리고, 신격을 지닌 존재들이 물질계에서 활동하게 된 이상 그들과 대등하게 싸우기 위해서는 악마들에게도 반드시 신격이 필요했다.
‘신격의 대처법을 준비할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그 신격의 대처법 중 하나가 자신의 옛 부하를 화신으로 만드는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하.”
강우의 입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한 손으로 얼굴을 덮은 채, 어깨를 들썩였다.
“씨발, 뭐 말 하나는 존나게 거창하게 하네.”
욕망만이 악마를 완성시킨다니.
이 얼마나 겉멋 가득한 표현인가.
“그러니까, 간단하게 말하면 바알 새끼 똥꼬 핥아서 나오는 꿀물이 달달해서 배신했다, 뭐 이런 말이잖아?”
뭔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 배신을 한 것처럼 말했지만, 결국 배신의 이유는 지극히 단순하기 짝이 없었다.
“흐음. 여전히 입이 상스러우시군요.”
아라카일은 눈살을 찌푸리며 강우를 노려보았다.
“하루이틀 본 것도 아니잖아.”
“그렇죠. 마왕님은 언제나 그랬죠.”
아라카일은 아련한 목소리로 말했다.
과거, 강우와 함께 했던 기억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처절하고, 참혹했던 전쟁.
일곱 대공을 무릎 꿇리고, 구천지옥에 군림하기까지의 길고 길었던 싸움들.
“아아,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좋은 기억이었습니다.”
아라카일은 환하게 미소 지으며 몸을 떨었다.
“하지만.”
거기가 끝이었다.
구천지옥을 지배한 후, 그가 섬겼던 주인은 달라졌다.
“당신은 더 이상 욕망하지 않게 됐지요.”
아라카일은 한심하다는 듯, 경멸 어린 표정으로 강우를 바라보았다.
그렇다.
일곱 대공을 모두 잡아먹은 이후, 마왕이 선택한 것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지구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거기서 당신은 더 이상 악마로서의 존재 이유를 잃어버린 겁니다.”
악마는 욕망하는 존재다.
욕망만이 악마를 존재하게 하고, 욕망만이 악마를 완성시킨다.
하지만.
마왕은, 한 때 구천지옥을 지배했던 악마의 왕은,
더 이상 ‘욕망하는 것’을 포기했다.
바알과의 싸움이 끝난 이후, 세상 모든 것을 잡아먹을 듯 광기에 찬 마왕의 모습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게 됐다.
‘악마에게는, 새로운 왕이 필요하다.’
욕망을 잃어버린 왕은 필요 없다.
악마에게는, 무한한 욕망으로 가득 찬 새로운 왕이 필요했다.
‘그래, 바알 님이야 말로….’
투명할 정도로 순수한 욕망으로 타오르는 그 악마야말로.
‘새로운 왕에 걸맞은 존재다.’
아라카일은 짙은 미소를 지으며 톱날로 이루어진 손을 들어 올렸다.
“마왕이시여.”
강우를 향해, 선고하듯 말했다.
“당신의 시대는 끝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