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501)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502화
재래(再來) (3)
카득, 카득, 카득!
액체가 녹아 눌어붙은 것 같은 기괴한 날개가 펄럭인다.
활짝 펼쳐진 날개에 돋아난 수백 개의 이빨이 시끄럽게 부딪힌다.
가로로 찢어진 염소의 눈동자가 아라카일을 향한다.
“아, 으.”
등골을 타고 찌릿한 전율이 흐른다.
식은땀이 흐른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다.
아득한, 그 끝을 알 수 없는 검은 바다에 집어 삼켜지는 듯한 감각.
아라카일은 입술을 짓씹었다.
“전군 준비!”
그의 명령에 따라 나락의 군단은 목에 걸고 있는 자루를 움켜쥐었다.
아라카일은 톱날로 이루어진 검날을 마왕에게 향했다.
‘패배할 리가 없다.’
그는 과거 발록, 리리스와 더불어 마왕의 최측근에 있던 존재였다.
마왕이 어느 정도의 힘을 갖췄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마왕을 무릎 꿇게 만들 수 있는 방법 또한.
‘개문의 사용을 유도하고, 도망치면 돼.’
마왕의 가장 큰 강점이자 가장 큰 약점은 바로 그가 품고 있는 마해(魔海)라는 힘이었다.
마왕 자신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아득한 마기의 바다.
그 마기의 바다를 봉인하고 있는 ‘만마전(萬魔殿)’의 문을 열었을 때 그는 의식을 잃고 폭주하게 된다.
그 뒤는 간단했다.
개문의 사용을 확인한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면 된다.
‘개문이 끝난 후에는.’
마왕은 어린아이조차 가볍게 죽일 수 있을 정도로 약해진다.
확실한 승리가 보장된 전략이었다.
일만에 달하는 나락의 군대와 신격을 지닌 자신의 힘이라면 충분히 마왕에게 개문의 사용을 강제할 수 있었고, 개문을 사용했을 때 도주할 수단도 마련해뒀다.
이건 마왕의 약점을 알고 있는 자신이기에 가능한 전략이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왜,
어째서,
이 끈적하게 얽혀드는 불길함은 사라지지 않는단 말인가.
아라카일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불길함을 지워내듯 거칠게 고개를 저었다.
그때,
“하나 더 물어볼 게 있는데 말이야.”
마왕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아라카일은 흠칫 몸을 떨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를 향하는 금색의 눈동자가 소름끼치게 느껴졌다.
“이거, 네가 독단적으로 계획한 일이지?”
마왕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어쨌다는 거지?”
아라카일은 신경질적으로 되물었다.
초조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응.”
마왕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환하게 웃었다.
“바알이나 아몬이 계획한 일이었다면.”
나락의 군단을 돌아보며 말했다.
“고작 이 정도 숫자로 오지는 않았을 테니까.”
“…….”
아라카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나락의 군단과 자신을 싸잡아 무시하는 듯한 말투.
“…저는 예전 당신이 알고 있던 나락의 군단장이 아닙니다.”
그는 바알의 은총을 받고, 새롭게 태어났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 모인 나락의 군단도 당신이 알고 있던 그 군단이 아니지요.”
마왕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도, 구천지옥에 싸움이 끊어지는 일은 없었다.
악마는 본능적으로 힘을 욕망하고 대립한다.
악마에게 싸움이란 숙명과도 같은 존재였다.
마왕이 자리를 비우는 동안, 나락의 군단은 수많은 전투를 치르며 강해졌다.
거기에 더해 이쪽에는 ‘신살(神殺)’의 힘을 부여하는 베히모스의 뿔가루가 있었다.
“당신은… 개문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래?”
마왕은 씨익 입가를 올렸다.
“예전과 달라졌다, 라. 하긴 많이 바뀌긴 했지.”
어깨를 들썩이며 웃는다.
“그런데.”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면 나는 그동안 바뀐 게 아무것도 없을까?”
“…….”
조롱하는 듯한 말투에 아라카일은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확실히, 자신이 강해졌듯 마왕 또한 과거 구천지옥의 시절에 비해 강해졌을 가능성은 있었다.
하지만.
“허세는 적당히 부리십시오.”
아라카일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욕망을 잃은 악마는 더 이상 강해질 수 없습니다.”
마왕은 욕망을 버리고, 지구로 돌아갔다.
약탈과 착취와 찬탈을 멈추고 인류를 지키기 시작했다.
악마의 근본을 이루는 것은 욕망.
그 욕망을 버린 악마에게 발전이 있을 리가 없다.
“푸흡! 하하하하하!!”
마왕은 배를 움켜쥔 채 웃었다.
검은 점액질로 이루어진 날개가 요란하게 펄럭였다.
“그래, 맞는 말이지.”
욕망을 잃은 악마는 더 이상 강해질 수 없다.
틀림없는 사실이다.
욕망만이 악마를 강하게 만든다.
욕망만이 악마를 나아가게 만든다.
욕망만이,
오로지 욕망만이 악마를 완성시킨다.
“그런데.”
아라카일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 있었다.
“이거 어쩌냐.”
마왕은 검은 점액질의 날개를 활짝 펼쳤다.
욕망만이 악마를 악마로서 존재하게 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단 한 순간도 욕망하지 않은 적이 없는데.”
그가 욕망을 잃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도.
“난.”
남들과 아무렇지 않게 대화하고.
사랑하고, 화내고, 슬퍼하고, 즐거워하며.
웃고, 떠들고, 만지고, 쓰다듬고, 끌어안을 때도,
사랑하는 이와 입술을 겹칠 때도,
광대처럼 장난을 칠 때도,
피크닉을 즐기며 시끌벅적 떠드는 순간에도.
“배고파서 미칠 것 같거든.”
-쩌적.
흉측하게 입가가 비틀어 올라간다.
찢겨진 입가에서 붉은 살점과 잇몸이 보인다.
새하얀 이빨이 돋아난다.
“크읏!”
아라카일의 표정이 창백하게 굳었다.
과거 마왕에게서는 느겨보지 못했던, 전신을 짓눌러 터트리는 듯한 마기가 그를 압박했다.
“이런 미친….”
아라카일의 눈가가 떨렸다.
그는 입술을 짓씹으며 톱날로 이우러진 손을 들어 올렸다.
“베히모스의 뿔을 먹엇!”
그의 명령에 따라 나락의 군단은 자루 안에 든 검은 가루를 입안에 털어 넣었다.
“크아아아아!!”
나락의 군단이 흉포한 포효를 내질렀다.
나무뿌리와 같은 흉측한 혈관이 전신에 돋아나며, 신살(神殺)의 힘이 담긴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나락의 군단이여.”
아라카일은 톱날을 높게 들어 올렸다.
“왕을 죽여라.”
톱날을 내리그었다.
그리고.
-쿠구구구궁!
지축이 뒤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나락의 군단이 돌진했다.
“하아.”
마왕은 열띤 숨을 토했다.
억누르고 있던 욕망을 해방하자, 끔찍한 허기가 몸을 지배했다.
갈증에 목이 타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
“죽었!!”
선두로 달려온 악마가 무식할 정도로 큰 대검을 휘둘렀다.
신살의 힘이 담긴 대검이 머리를 쪼갤 듯 다가왔다.
“철벽의 권능.”
마왕은 몸을 뒤로 젖히며, 권능을 사용했다.
마해의 안에 잠들어 있는 수백 가지의 권능 중 하나가 발현됐다.
-카가가강!
시끄러운 쇳소리와 함께 신살의 힘이 담긴 대검이 튕겨 나갔다.
공격이 막히자마자 악마는 다급히 몸을 뒤로 빼내려 했다.
뒤로 빠져나가는 그의 몸을, 마왕의 손이 붙잡았다.
“아….”
무언가 말하기도 전에,
날카로운 이빨이 돋은 입이 쩍 벌어진다.
-콰드드득.
살점이 찢겨나가며, 뼈가 우그러졌다.
검은 핏물이 분수처럼 튀었다.
“몰아붙여!!”
아라카일이 사납게 외쳤다.
순식간에 마왕을 둘러싼 나락의 군대가 사방에서 공격을 퍼부었다.
마왕은 씩 웃으며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중지에 낀 검은 반지가 뾰족한 쐐기의 형태로 변했다.
움켜쥔 쐐기를 바닥에 내려찍었다.
-촤자자자자자작!!
쐐기를 내려찍은 곳 주변으로 송곳과 같은 검은 칼날이 솟구쳤다.
다리에서부터 허벅지, 엉덩이에서부터 입까지 검은 칼날이 관통했다.
단 일격에, 수백에 달하는 나락의 군단이 사라졌다.
-우득, 우드드득!
악마의 몸을 꿰뚫은 검은 칼날에서 ‘입’이 나타났다.
칼날에서 나타난 입이 살점을 물어뜯었다.
살점을 씹어 삼키는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크아아아아!”
일격에 수백이 죽었다고 해도, 나락의 군단의 숫자는 만에 달했다.
죽인 숫자만큼의 악마들이 쉴 틈 없이 마왕을 몰아붙였다.
-푸욱! 콰드득!
신살의 힘이 담긴 무기들이 하나둘씩 마왕의 몸에 틀어박혔다.
비틀.
고슴도치처럼 온몸에 무기가 박힌 마왕이 휘청였다.
“지금이다!!”
아라카일은 톱날을 허공에 휘저으며 나락의 군단을 재촉했다.
‘조금만 더 몰아붙이면…!’
궁지에 몰린 마왕은 개문을 사용할 것이다.
하지만.
“헤.”
힘이 다한 듯 휘청거리던 마왕이 언제 그랬냐는 듯, 혀를 길게 내민 채 바로 섰다.
짤캉, 카강.
마왕의 몸에 가시처럼 박혀 있던 무기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어?”
마왕에게 달려든 나락의 군단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일몰(日沒).”
하늘이 어둡게 물들었다.
검은 마기로 뒤덮인 하늘에서, 검은 태양과도 같은 불길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치이이이익!!
“크아아아악!”
“크학, 아악!”
살점이 타들어 가는 냄새. 메케한 연기가 마기로 뒤덮인 하늘 아래서 피어올랐다.
바닥에 쏟아진 검은 피가 뜨거운 열기에 부글부글 끓었다.
어둠으로 물든 하늘 아래,
한 악마만이 오롯이 서 있었다.
“이, 이건….”
나락의 군단의 눈빛에 공포의 감정이 서렸다.
“왜 그래, 애들아.”
마왕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직 허기를 채우기엔 한참은 모자란다는 듯, 신경질적으로 입가를 핥았다.
“내가 가르쳐 줬잖아. 공포에 질려 도망가면 오히려 적에게 기회를 주게 되는 거라고.”
달콤한 목소리로, 먹잇감을 유혹했다.
“그치? 애들아. 내 말 기억하지?”
지금이 기회야.
“지금이 아니면, 날 죽일 수 없을 거야.”
환하게 웃으며 공포에 질린 악마들을 향해 말했다.
“으, 으으.”
“으아아아!!”
나락의 군단이 포효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마왕은 활짝 양팔을 벌린 채 그들을 맞이했다.
“정신 차려라, 이 머저리 같은 것들아!!”
아라카일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유리한 건 이쪽이다!”
방금 전 공격으로 죽은 나락의 군단의 숫자는 이천 정도.
그 하나하나가 베히모스의 뿔가루를 먹은 상태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희생이 따른 것이 사실이지만, 아직 그 몇 배는 되는 숫자의 악마가 살아 있었다.
“흐아아아!”
아라카일은 단정하게 쓸어넘겼던 머리칼을 휘날리며, 발걸음을 박찼다.
톱날을 교차하며 마왕을 향해 달려들었다.
“약탈(掠奪).”
카드드드득!!
교차하던 톱날이 불꽃을 튀기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마왕의 심장을 노렸다.
‘빨리 개문을 사용하게 해야 해…!’
그래야만 작전을 완성할 수 있었다.
아라카일은 이를 악물며 톱날에 바알에게 받은 신격을 더했다.
톱날이 순식간에 심장 근처까지 도달했다.
‘됐다!’
아라카일의 눈이 반짝였다.
그때,
-콰득!
마왕은 몸을 숙여 아라카일의 톱날을 향해 ‘머리를 내밀’었다.
톱날이 그의 두개골을 파고 들어가 뇌를 찢어발겼다.
“무슨….”
개문을 사용하지 않는 한, 마왕은 불사(不死)가 아니었다.
머리가 파괴되면,
죽는다.
‘이렇게 허망하게?’
아라카일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마왕의 머리를 꿰뚫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턱.
“…어?”
죽었다고 생각한, 아니 죽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한 상태의 마왕이 팔을 움직였다.
그의 톱날을 움켜쥐었다.
“왜, 왜 안 죽….”
콰드드드득!!
톱날을 움켜쥔 마왕은 그대로 힘을 주어 그의 팔을 뽑아버렸다.
“아아아악!!!”
아라카일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우득, 우드득.
반으로 쪼개졌던 마왕의 머리가 순식간에 재생되기 시작했다.
마왕은 짙은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채, 잡아 뽑은 아라카일의 팔을 씹어 삼켰다.
아라카일은 경악에 찬 표정으로 뒤로 물러섰다.
“어, 어떻게?”
“어떻게 긴, 개문을 쓰면 안 죽는 거 너도 알잖아?”
“뭐…?”
아라카일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마왕을 바라보았다.
‘그러면 개문을 쓰고도….’
멀쩡하게 이성을 유지하고 있단 말인가.
“제, 제길!”
아라카일은 다급히 뒤돌았다.
개문을 쓰고도 이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면, 자신에게 승산은 없다.
“크읏!”
아라카일은 허공에 톱날을 그었다.
톱날의 날이 반짝이며 미리 준비해둔 마법진이 발동했다.
-쩌적!
나락의 군단이 도착했을 때와 같은 검은 균열이 허공에 생겼다.
아라카일은 균열 속으로 다급히 몸을 던졌다.
‘개문을 사용하고도 이성을 유지하다니!’
상상하지도 못한 일이었다.
신격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설마 ‘개문(開門)’의 허점을 극복하다니.
수십, 수백 년을 곁에서 지켜본 마왕의 가장 큰 약점이었던 그 허점이 고작 몇 년 사이에 메워졌으리라 어찌 생각한단 말인가.
“제길, 제길, 제길!!”
아라카일은 서서히 닫혀가는 균열을 돌아보며 입술을 짓씹었다.
나락의 군단을 잃어버린 것이 뼈아프긴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나중에 다른 대책을….”
“아니.”
균열 사이로, 마왕의 손이 비집고 들어왔다.
“이, 이런 미….”
아라카일의 표정이 경악에 휩싸였다.
-쿠구구구궁!!
닫히기 시작한 균열을 억지로 잡아 벌렸다.
공간이 뒤틀리며 어마어마한 충격이 주변 대지를 뒤흔들었다.
“나중은 없어.”
쩌억.
억지로 잡아 벌려진 균열 사이로, 날카로운 이빨이 보였다.
“아….”
아라카일의 입에서 짧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오싹한 전율이 등골을 타고 퍼졌다.
“당신은….”
아라카일은 떠올렸다.
잊고 있던 것을, 잊으려고 했던 것을.
지나갔다고 생각했던 것을, 잊혀졌다고 믿고 있던 것을.
‘마왕(魔王)’이라는 존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