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506)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507화
종말의 날 (4)
-콰드드드득!!
마치 믹서기에 고기를 넣고 갈아버린 것과 같은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붉은 쇠사슬에 휘감긴 악마들의 육체가 처참하게 터져 버렸다.
후두두둑.
검은 피가 비처럼 쏟아졌다.
“하아, 하아.”
차연주의 입에서 거친 숨이 흘러나왔다.
‘너무 욕심을 부렸나.’
상황이 시급하다고는 해도, 악마들을 처리하기 위해 너무 큰 기술을 사용해 버리고 말았다.
비틀.
순간적인 마력 탈진 현상에 그녀의 몸이 휘청거렸다.
“연주야!”
버프를 유지하고 있던 한설아가 다급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내 쪽은 신경 쓰지 마!”
차연주는 고개를 저으며 외쳤다.
지금 이 정도 위력의 포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설아의 버프가 필수 불가결했다.
자신 하나를 위해 그녀의 버프를 멈출 여유는 없었다.
“크르르르! 죽어라, 인간 계집!!”
쇠사슬의 폭풍을 뚫고 들어온 악마 하나가 차연주를 향해 망치를 휘둘렀다.
닿는 것만으로 곤죽이 될 것 같은 거대한 망치가 머리를 노렸다.
탁.
백 텀블링으로 망치를 피한 차연주는 가벼운 동작으로 손을 뻗었다.
촤르르륵!
손목에서 쏘아진 쇠사슬이 망치의 자루를 휘감았다.
“흐읍!”
탁, 탁, 탁!
대지를 박차며 가볍게 뛰어올랐다.
“멍청한 년!”
망치를 휘두르던 악마가 씨익 입가를 올렸다.
툭 치면 부러질 것처럼 생긴 인간이 자신의 망치에 쇠사슬을 휘감았다는 것은 죽여달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후웅!
손에 쥔 망치를 거칠게 휘둘렀다.
쇠사슬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차연주의 몸이 공중으로 솟구쳤다.
“죽어라!!”
도리깨를 휘두르는 것처럼 차연주의 몸을 이리저리 휘두르던 악마가 거칠게 망치를 내리찍었다.
-쿠우우웅!
대지가 움푹 파였다.
“음?”
악마의 눈이 커졌다. 망치의 움직임에 따라 땅에 처박혀 곤죽이 될 거라 생각했던 여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여기다 이 새끼야.”
턱.
순간적으로 망치를 휘감고 있던 쇠사슬을 늘어트린 차연주는 땅이 아닌 악마의 목덜미로 착지했다.
5미터가 훌쩍 넘는 거대한 악마의 목에 올라탄 그녀는 악마의 목에 쇠사슬을 휘감았다.
그리고.
“홍련 5식.”
촤르르르륵!!
악마를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쇠사슬이 뻗어 나갔다.
마치 살아 있는 뱀을 연상시키듯 바닥을 쓸며 뻗어 나간 쇠사슬이 악마들의 몸을 휘감았다.
“주박(蛛搏).”
거미줄처럼 뻗어 나간 쇠사슬이 악마와 악마의 몸을 연결시켰다.
“잔재주를!”
망치를 들고 있던 악마가 몸에 휘감긴 쇠사슬을 거칠게 뿌리쳤다.
“크아아아악!!”
“머, 멈춰 이 미친!!”
그가 난동을 부리자 악마와 몸과 몸 사이를 잇는 쇠사슬이 움직였다.
쇠사슬에 돋은 날카로운 가시들이 악마의 피부를 파고 들어가 살점을 뜯었다.
“헹, 어디 날뛰고 싶은 만큼 날뛰어 보시지.”
차연주는 코웃음을 치며 올라탄 악마의 목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제, 제길!”
쇠사슬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쇠사슬이 더욱 깊게 파고들었다.
악마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멀뚱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자, 이 정도면 어느 정도 정리가….”
마법진 안으로 난입한 악마들을 제압한 차연주는 한결 홀가분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젠장.”
방위진을 향해 날아오는 악마의 숫자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포화를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지만, 균열을 통해서 쉼 없이 악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
특히 고대 마수들을 고기 방패 삼아 포화를 억지로 뚫어버리자 전보다 더욱 많은 숫자의 악마들이 방위진을 파괴하기 위해 날아들고 있었다.
‘끝이 없어.’
아무리 다수를 상대하는데 특화된 힘을 지닌 그녀라고 해도 끝도 없이 쏟아지는 악마의 무리를 모조리 상대할 수는 없었다.
“크르르르!”
설상가상으로 포화를 뚫어내고 살아남은 마수들이 방위진을 향해 진격해 오기 시작했다.
마수의 크기는 어림잡아도 20여 미터는 가볍게 넘을 정도로 거대했다.
‘저건 막을 수 없어.’
마수의 경우 신살의 힘은 없었지만 기본적인 육체 스펙이 너무 압도적이었다.
“…젠장.”
차연주의 입에서 나지막한 욕설이 흘러나왔다.
“크르르르!”
거대한 마수가 몸을 비틀며 꼬리를 후려쳤다.
차연주가 마수를 향해 다급히 쇠사슬을 쏘아 보냈다.
-철컹!
“읏!”
악마들을 상대할 때 쇠사슬을 너무 많이 사용했기 때문일까, 손목에 묵직한 감각이 흐르더니 마수를 향해 쏘아지던 쇠사슬이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제길!”
거친 욕설을 흘리며 뒤로 몸을 빼내려고 할 때.
-파직! 파지지지직!!
푸른 번개가 튀어 올라 마수의 꼬리를 후려쳤다.
“붉은 머리! 여긴 더 이상 무리야!”
우리엘이 외쳤다.
“…붉은 머리가 뭐냐, 꼬맹아.”
“뭐? 꼬맹이? 내가 너보다 못해도 10배는 더 살았어!”
“흥, 생긴 게 꼬맹이면 꼬맹이인 거지.”
“이 건방진 인간이…!”
차연주와 우리엘이 도끼눈을 뜨며 서로를 노려보았다.
“둘 다 진정하세요.”
둘 사이에 내려앉은 금발의 천사, 미카엘이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미안. 이럴 때가 아니었지.”
차연주는 순순히 고개를 숙이며 물러섰다.
“으… 진짜 끝도 없이 몰려오네.”
지긋지긋하다는 듯 몰려드는 바알의 군세를 바라보았다.
악마 하나하나가 강한 것도 있지만, 과연 끝이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엄청난 숫자가 더 문제였다.
마치 벌집을 지키려는 벌떼처럼 엄청난 숫자의 악마들이 방위진을 파괴하기 위해 모여들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돼.’
필사적으로 방위진을 지키고 있었지만, 더 이상 지킬 여력이 부족했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난다면….’
차연주는 고개를 돌렸다.
마법진에 마력을 쥐어짜 내어 흘려보내고 있는 플레이어들과 천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의 상태는 이미 상당히 지친 상황.
여기서 그녀가 자리를 비우면 방위진을 이루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악마의 손아귀에 갈가리 찢겨나갈 것이다.
“…….”
꾸드득.
차연주는 굳게 주먹을 쥐었다.
여기선, 목숨을 바쳐서라도 그들을 지키는 수밖에는 없었다.
-아아, 내 목소리 들려?
그때, 차연주의 귀에 낀 통신기로부터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 강우?”
-어.
“강우, 여기에 김시훈 좀 보내줄 수 있어? 더 이상 우리만으로는 못 버텨.”
-퇴각해.
“…뭐? 퇴, 퇴각하라고?”
-응. 방위진은 이제 포기할 거야.
“그, 그게 무슨 개소리야!”
차연주는 두 눈을 부릅뜨며 물었다.
방위진을 포기하다니.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죽게 내버려 둔다는 말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걱정하지 마.
피식, 강우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탈출할 방법은 미리 만들어 뒀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되면 마법진이….”
차연주는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마법진을 돌아보았다.
-괜찮아.
“…괜찮다고?”
-그래. 애초에….
귓가에 들리는 사악한 웃음소리.
-처음부터 그 마법진은 미끼였으니까.
“…….”
차연주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미끼, 라는 말을 듣는 순간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띵했다.
‘이 마법진이 미끼였다고?’
분명 전달받은 작전상으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마법진을 지켜야 한다고 했었다.
실제 그녀는 그 작전에 따라 필사적으로 마법진을 지켰다.
그런데.
이제 와서 미끼였다니?
“아니 넌 왜 같은 아군까지 속이는 거야?!”
차연주는 한껏 일그러진 표정으로 외쳤다.
마법진이 미끼였다는 것은, 애초에 이쪽에 투입한 모든 병력이 적을 낚기 위한 미끼였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야….
통신기를 통해 강우의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더 필사적이 되니까.
“…….”
차연주는 입을 쩍 벌리더니, 이마를 탁 쳤다.
“야 이 개….”
뭐 이런 천하의 개새끼가 있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
처음부터 이런 개새끼였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이러니까 시스템 창에 개새끼라고 뜨지.’
차연주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데?”
-마법진 중앙에 가면 푸른 수정 구슬이 세 개 있을 거야. 거기에 마력을 흘려 넣기만 하면 돼.
“…알았어.”
차연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다 마법진 쪽으로 모여!!”
악마들을 막고 있던 천사와 플레이어들에게 외쳤다.
“후우.”
마법진 중앙에 도착한 차연주는 강우가 말한 대로 푸른 수정 구슬을 찾아 마력을 흘려 보냈다.
-우우우우웅!!
“이건….”
“무, 무슨 일이죠?”
마법진에서 흘러나온 강렬한 빛이 타오르듯 주변을 휘감았다.
마법진 위에 있던 플레이어와 천사들의 몸이 허공에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지금이다!”
“마법진을 부숴!”
마법진을 지키던 병력이 빠져나간 것을 확인한 악마들이 광포한 괴성을 지르며 마법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때,
“제길! 도망쳐라, 이 멍청한 것들아!!”
아몬의 거친 호통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악마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아몬을 바라보았다.
마법진을 파괴하라고 하더니, 뜬금없이 도망치라니?
“함정이다!! 빨리 거기서 벗어나!!”
아몬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푸핫!”
강우는 참기 힘들다는 듯 억누른 웃음을 흘렸다.
“이미 늦었어.”
입술을 핥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 순간.
“…어?”
마법진을 지키고 있던 플레이어와 천사들이 동시에 사라졌다.
덩그러니 남게 된 악마들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
아몬이 절박한 표정으로 손을 뻗었지만,
-콰과과과과광!
마법진이 폭발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푸헤헤헤헿!!”
강우는 배를 붙잡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게 왜 병신처럼 우르르 달려들어?”
어떻게든 포화를 막기 위해 병력을 쏟아부었던 것이, 오히려 최악의 선택이 되어버렸다.
강우는 마법진의 폭발에 휩쓸려 잿더미가 된 악마들을 내려다보며 낄낄 어깨를 들썩였다.
“끌, 끌끌끌. 아주 열심히 머리를 썼구나, 마왕.”
아몬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지팡이를 움켜쥐었다.
이번 폭발로 인해 바알의 모든 군세가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꽤나 심각한 타격을 입은 것은 사실이었다.
지구를 멸망시키고 구천지옥의 영역으로 만들더라도 단시간에는 절대 복구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아주 재미있어….”
“야, 야야.”
“설마 마왕이라는 자가 이런 품위 없는 수작질을 할 줄이야.”
“야, 우냐? 응? 설마 울어?”
“바알님이 아신다면 아주 실망스러워 하셨….”
“푸헤헤헿!! 이 새끼 운데요!! 다들 여기 봐봐!”
이 새끼 울고 있어!
“…….”
아몬은 움켜쥔 지팡이를 부러트릴 기세로 꾹, 쥐며 이를 악물었다.
굵은 힘줄이 이마에 돋아났다.
그는 사납게 눈을 뜨며 강우를 노려보았다.
‘어차피 저런 여유도 여기까지다.’
꽤나 큰 피해를 입었다고는 하나, 바알의 군세가 전멸한 건 아니었다.
-쿠웅!
아몬은 움켜쥔 지팡이를 거칠게 내려찍었다.
붉은 균열이 더욱 크게 벌어지며.
[이곳이 지구인가.] [크하하하하!! 이날을 얼마나 고대해왔던가!] [이곳은 이제 우리의 영토이니라!]외계(外界)의 존재들이 균열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히야, 많이도 데리고 왔네.”
강우는 각양각색의 외모를 지니고 있는 외계의 존재를 바라보았다.
팔짱을 낀 채, 느긋이 고개를 돌렸다.
-촤앙!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김시훈이 검을 들고 걸어 나왔다.
“천랑(天狼) 부대, 준비 끝났습니다.”
“그래.”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됐든 방위진이 파괴된 이상, 이제 남은 것은 서울이라는 전장을 중심으로 한 난투전 외에는 없었다.
“출(出)!”
김시훈의 짧은 외침과 함께, 가디언즈의 플레이어들이 외계의 무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카앙! 쿠구궁!
그렇게 본격적으로 시작된 가디언즈와 바알의 군세의 격돌.
그 전까지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던 가디언즈 측에서도 죽는 인원이 하나둘씩 급속도로 늘어났다.
“…….”
그 전란(戰亂)의 중심에서.
“이쯤 뜸 들였으면 슬슬 기어 나올 때 되지 않았어?”
강우는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붉은 균열 너머를 응시했다.
-히, 히히.
그에 응답하듯,
맑은 소년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