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534)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외전 15화
위키 홀릭 (1)
-치이이이익!!
새하얀 증기가 폭발하듯 뿜어진다.
등갑에서 뿜어진 새하얀 증기가 날개처럼 펼쳐진다.
증기에 담긴 뜨거운 열기가 아지랑이처럼 공기를 일그러트린다.
태산(太山)조차 일격에 터트려 버릴 수 있는 아득한 힘이 주먹에 담긴다.
“흐─아아아아아!!!”
난폭한 데몬 로어와 함께 새하얀 증기에 휩싸인 주먹이 휘둘러졌다.
그 기세는 말 그대로 패도(覇道).
눈앞의 모든 것을 짓뭉개고 박살내며 우뚝 서 마땅한 가공할 힘이 소년의 몸을 후려쳤다.
-쿠구구구구궁!!!
수십 겹의 결계로 보호되고 있는 단련실이 지진이 난 것처럼 뒤흔들렸다.
악몽 같은 폭력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소년의 몸이 곤죽이 되어 터져 나갔다.
꾸르륵.
풍선처럼 폭발했던 소년의 육체에서 타르와 같은 검은 점액질이 흘러나왔다.
“천룡(天龍)─”
그때, 새하얀 서리가 휘몰아치는 검을 든 청년이 발을 박찼다.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잘생긴 외모를 지닌 청년의 몸에서 푸른 용이 똬리를 튼 채 포효하는 듯한 모습이 일순 환영처럼 스쳐 지나갔다.
거칠게 포효하던 푸른 용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검은 점액질을 향해 사납게 달려들었다.
“난무(亂舞)!”
촤자자자자작!!
1초도 되지 않은 찰나의 시간에 수백 번의 검격이 공간을 찢어발겼다.
음속을 아득히 초월한 그 어처구니없는 속도에 거대한 폭풍이 만들어져 주변을 휩쓸었다.
꾸르륵거리며 모여들던 검은 점액질이 순식간에 칼날 폭풍에 휩싸여 흩어졌다.
끔찍할 정도의 파괴(破壞).
살아 숨 쉬는 생명체라면 결코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은 그 처절한 파괴 속에서.
-쿠르르르륵!!
“크윽!”
“헛!”
잘게 조각나 흩어지고 있던 검은 점액질이 갑작스럽게 몸을 키웠다.
부채꼴로 퍼져나간 검은 점액질이 검을 든 청년을 노렸다.
“위험햇-!”
검은 갑주를 뒤집어쓴 거인이 청년의 몸을 밀쳤다.
한쪽 팔을 앞으로 뻗으며 넓게 펼쳐진 검은 점액질을 막았다.
-카드드득! 카득! 카가가가각!!
쇳덩어리가 갈려 나가는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검은 점액질에서 돋아난 새하얀 이빨. 그 숫자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무수하게 돋아난 이빨이 칠흑의 갑주를 씹어 삼켰다.
거인의 팔을 보호하고 있던 칠흑의 갑주는 순식간에 걸레짝이 되어 너덜너덜하게 변했다.
칠흑의 갑주 안에 보호되고 있던 근육질 육체에까지 새하얀 이빨이 파고들었다.
“제길!”
검을 든 청년이 거인의 어깨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양팔을 높이 든 채, 타오르는 듯 거대한 검강(劍罡)이 솟구쳤다.
거인의 팔을 씹어 삼키는 검은 점액질을 향해 푸른 검강이 내려 찍혔다.
-화르르륵!
“허업!”
그 순간, 검은 점액질에서 검은색과 황금색이 뒤섞인 불꽃이 타올랐다.
혼돈(混沌)을 불사르며 타오르는 탐식(貪食)의 화염.
검은 태양과도 같은 그 불길이 푸른 검강을 눈 깜짝할 사이에 먹어치우며 난폭하게 몸을 비틀었다.
“크으으으으!”
탐식의 불에 닿은 육체는 화상(火傷)이 아닌, 맹수에게 물어뜯긴 듯한 열상(裂傷)이 생기게 된다.
청년은 살점이 짓이겨지고, 찢겨나가는 끔찍한 통증에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내공을 움직여 출혈을 막은 청년은 다시금 검을 움켜쥐었다.
“흐아아아아!!”
걸레짝이 된 칠흑의 갑주를 걸친 거인도 전혀 기세가 꺾이지 않은 난폭한 포효를 내지르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여기까지.”
검은 점액질이 꾸물럭거리는 곳에서 솟아난 입에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청년과 거인의 움직임이 뚝 멈췄다.
“하아, 하아.”
“크윽.”
청년은 상처를 움켜쥐며 표정을 찡그렸고, 거인은 너덜너덜해진 주먹을 움켜쥐며 몸을 웅크렸다.
꾸르륵. 꾸륵.
십여 초의 시간이 흘렀다.
꾸물럭거리던 검은 점액질이 모여 사람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
거인의 주먹에 곤죽이 되어 터져 나갔던 소년의 몸이 시간을 되돌린 듯 상처 하나 없는 말끔한 몸으로 되돌아왔다.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온 소년, 강우는 우선적으로 몸의 성장부터 체크했다.
-띠링.
[심연(深淵)의 마기의 영향에 따라 육체의 재구성이 촉진됩니다.] [신체가 0.02㎝ 성장합니다.]“제기랄.”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창을 본 강우의 입에서 낮은 욕설이 흘러나왔다.
‘점점 더 효과가 떨어지고 있어.’
김시훈과 발록의 힘으로 의도적으로 육체를 훼손시켜, 마해를 자극시키는 방법은 점차 그 효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지금까지 총 5.78㎝가 성장한 건가.’
처음에는 한 번에 4㎝ 이상이 성장하면서 조금만 더 노가다를 하면 원래 육체로 되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처음 그 한 번 이후로는 효율이 극단적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김시훈까지 수련에 참전했음에도 이 모양이라면.
‘이거 다음번에는 아예 성장 안 할지도 모르겠는데.’
푸른색 메시지창을 바라보며 쯧, 혀를 찼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효율이 떨어지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의도적으로 육체를 훼손시킨다는 방향성 자체가 틀린 건 아니야.’
의도적인 육체의 훼손으로 인해 마해를 자극시키는 것은 분명 육체의 재구성을 촉진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문제는.’
강우는 가늘게 뜬 눈으로 김시훈과 발록을 바라보았다.
둘의 공격으로 그의 몸이 작살이 나도 마해가 자극받지 않는 이유.
그것은 지극히 단순하게, ‘마해가 김시훈과 발록의 공격에 익숙’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저 둘이 아무리 살기를 담아봤자 진짜 살기와는 차이가 있을 테니까.’
김시훈과 발록은 그 누구보다 자신을 신뢰하고 있다.
그를 공격하라는 명령에 살기를 품고 달려든다고 해도 반드시 죽여 버리겠다는 수준의 살기를 품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자신의 육체는, 마해는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김시훈과 발록은 ‘위협’이 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더 이상 이 방법은 의미가 없어.’
자신을 죽음의 문턱으로 밀어 넣으며 마해를 자극시킬 정도의 ‘다른 존재’가 필요했다.
그것도 김시훈과 발록처럼 죽이는 시늉만 하는 아군이 아닌, 명확한 적의를 품고 있는 ‘적’이.
‘말이 쉽지 어디서 그런 놈을 구해.’
강우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해를 자극시킬 정도의 힘을 지닌 적이라니.
찾으려고 작정해도 쉽게 찾을 수 없는 존재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상처를 치료하고 있는 김시훈과 발록의 모습이 보였다.
최상격 신과도 싸워 이길 수 있는 저 두 괴물이 손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당하는 모습에서 ‘어? 뭐 약해졌니 뭐니 해도 그냥 존나 센 거 아냐?’라는 생각이 절로 들겠지만.
여기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남아 있었다.
‘지금 나는 오로지 육체가 재생할 때 흘러나오는 마해빨로 싸우고 있는 거란 말이지.’
만약 김시훈과 발록이 자신의 육체를 ‘파괴’하지 않은 상태에서 전투를 했다면, 둘의 옷깃도 스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처맞았을 것이다.
즉.
간단하게 말해서.
‘적이 날 죽이지 않고 붙잡아서 봉인 같은 거라도 하는 순간 좆된다는 거지.’
물론 봉인을 당한다고 해도 마해가 ‘위험하다’라고 느끼게 되면 그를 묶고 있는 봉인을 박살내고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마해가 위협을 느끼는 타이밍이 언제인지 알 수 없다는 것.
최악의 경우 몇 년 동안 붙잡혀 있다가 나올 수도 있었다.
“그건 안 되지.”
상상조차 하기 싫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지난 3년간 자리를 비우는 동안, 그의 빈자리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받았는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으… 이제야 상처가 좀 낫는군요.”
발록이 멀쩡해진 주먹을 흔들며 걸어왔다.
“저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겠네요.”
발록과 같은 사기적인 재생력이 없는 김시훈은 쓴웃음을 지으며 짓이겨진 피부 위에 붕대를 감았다.
“미안하다. 내가 재생의 권능을 쓸 수만 있으면 바로 나았을 텐데.”
“아뇨, 괜찮습니다. 형님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 상처는 아무렇지 않아요.”
“어이구, 이 기특한 자식.”
강우는 김시훈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기며 씩 웃었다.
“그나저나 형님. 죄송하지만 내일은 시간을 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응? 아, 괜찮아. 이제 이 수련은 그만할 거거든.”
“그, 그만두시는 겁니까?”
김시훈이 아쉽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엉. 더 해봐야 별 효과는 없을 것 같네.”
“…그렇군요.”
“그보다 내일은 뭔 일 있어?”
붕대를 감은 김시훈의 상처에 외상치료용 포션을 하나 꺼내어 부으며 물었다.
“음… 최근 기이한 괴물이 일어나고 있다는 정보를 들어서요.”
“기이한 괴물? 외계의 침식이랑 관련된 거야?”
“그건 아직 모르겠습니다.”
“무슨 괴물인데?”
김시훈은 서리검을 허리춤에 꽂아 넣으며 말을 이었다.
“사람들 앞에 갑작스럽게 나타나 문제를 던지고, 문제를 맞히지 못하면 어딘가로 끌고 가는 괴물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뭐야 그건 또.”
“아직 소문만 무성하지 정확한 정체가 파악되지 않은 괴물입니다.”
“흐음.”
강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턱을 쓰다듬었다.
‘문제를 맞히지 못하면 어딘가로 끌고 간다, 라.’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존재가 하나 있었다.
“스핑크스 같은 건가?”
“예. 조금 다르긴 하지만요.”
확실히 다르긴 했다.
스핑크스는 문제를 맞히지 못하면 들여보내 주지 않는 것에 비해, 이건 문제를 맞히지 못하면 정체불명의 장소로 끌고 간다 했으니까.
“근데 이 문제라는 게 좀… 특이하더군요.”
“무슨 문제를 내는데?”
“보통 스핑크스하면 난센스 퀴즈 같은 걸 떠올리지 않습니까?”
“그렇지.”
“근데 이 괴물은 무슨 수능에서 나올 법한 질문을 한다고 합니다. 수학 문제라던가, 아니면 역사적인 사건의 연도라거나, 유명한 예술가 남긴 명언 같은 것도 물어본다고 하더군요.”
“…뭐냐 그 묘하게 현실적이면서 좆같은 놈은.”
“저번에 광주 쪽에서 나타났을 때는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날짜를 물어봤다고 하네요.”
“아니, 그걸 어떻게 맞춰.”
차라리 난센스 퀴즈가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런 역사 지식의 경우 세세한 날짜까지 외우고 다니는 사람은 드물 테니까.
그것도 한국에 와서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날짜에 대해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당시 질문을 들었던 플레이어가 예전 독일 역사에 관해 공부한 적이 있어서 운 좋게 맞췄답니다.”
“골 때리는 괴물 새끼네.”
혹시 그 괴물의 이름이 ‘나무위키’ 뭐 이런 거냐?
“하하하. 실제로 플레이어 중에서는 그 괴물을 ‘위키 홀릭’이라고 부르는 플레이어도 있더군요.”
나무위키충 맞네.
“바알이 뒤졌다 했더니 별의별 미친 컨셉의 괴물이 다 돌아다니네.”
강우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아직 끌려갔던 사람 중에 돌아온 사람은 없고?”
“예, 없습니다.”
“그럼 죽었겠네.”
그런 정신 나간 괴물에게 끌려간 사람이 살아있는 길 바라는 것은 너무 긍정적인 생각이었다.
“문제를 맞히지 못하면 괴물에게 끌려간다, 라.”
강우는 가늘게 눈을 떴다.
“아, 정확히 말하면 괴물에게 끌려가는 게 아닌 어딘가로 ‘전이’된다고 합니다.”
“전이… 된다고?”
이세카이로 가버리는 거야?
“그건 모르겠습니다.”
“일단 조사가 필요한 놈은 확실하네.”
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내 쪽에서도 한 번 알아볼 테니까 뭐 건진 거 있으면 연락 줘라.”
“위험하게 형님이 움직이실 필요는….”
“안 움직여 인마. 딱 봐도 위험한 냄새가 풀풀 풍기는데 미쳤다고 내가 직접 그걸 찾아 나서겠냐? 그냥 리리스 통해서 소문만 모아보려는 거야.”
아직 힘도 되찾지 못한 상황에서 이런 정체불명의 현상의 뒤를 쫓는 것은 무모한 짓이었다.
“예. 알겠습니다.”
김시훈은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고는 몸을 돌렸다.
“자, 그러면.”
비글 10마리를 동시에 풀어 놓은 것처럼 난장판이 된 단련실을 바라보며 허리를 쭉 폈다.
“뒷정리 부탁한다.”
사탄을 소환한 강우는 정겹게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환하게 웃었다.
[…….]빗자루를 움켜쥔 사탄의 표정이 검게 썩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