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543)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외전 24화
다시, 일상? (1)
“정말! 제가 못 살아요!”
눈시울이 붉어진 한설아가 버럭 외쳤다.
어젯밤 강우가 연락도 없이 외박을 한 것에 대해 그녀가 어느 정도 진정했을 무렵, 강우는 위키 홀릭과 마주쳐 정체불명의 공간에 갔다 왔다는 것을 사실대로 말했다.
‘마음 같아서는 계속 숨기고 싶었지만.’
이번에 있었던 일들은 강태수를 통해 김시훈에게 보고될 것이다.
그렇다면 곧 긴급회의가 열릴 테고, 설아 또한 가디언즈에 가입되어 있으니 회의에 참석하게 될 것이다.
‘어차피 숨길 수 없는 문제야.’
거짓말이 들통나기 전에 자신의 입으로 말하는 것이 낫다.
그리고 애초에 위키 홀릭과 아카르트, 라잔에 대한 일들은 숨기고 싶다고 마음대로 숨겨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아카르트가 이 세계를 노리고 있다는 것이 확실해진 이상, 최대한 정보를 공유하며 대비를 해둬야 했으니까.
“그러게 제가 밖은 위험하다고 말씀드렸잖아요!”
한설아는 강우가 위키 홀릭에게 잡혀갔다는 말에 뚝뚝 눈물을 흘리며 그의 몸을 끌어안았다.
강우의 작은 몸을 끌어안은 그녀의 어깨가 파르르 떨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손을 들어 그녀의 등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미안. 이번 일은 내가 잘못했어.”
강태수의 트롤링 때문에 위키 홀릭에게 잡혀간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전에 섣부르게 밖으로 나간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었다.
“정말… 전 이제 강우 씨 없이는 하루도 못 산다고요….”
한설아는 깊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강우를 끌어안은 팔에 힘을 더했다.
강우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보다 마왕님. 그 아카르트라는 존재에 대해서 다시 한번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옆에서 조용히 얘기를 듣고 있던 리리스가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사실 뭐 나도 아직 걔가 티탄이라는 것 말고는 제대로 아는 건 없어.”
강우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가이아나 오딘처럼 신화로서 전승이 남아 있는 것도 아니었고, 직접 보거나 대화를 나눈 적조차 없었다.
지금 자신이 알고 있는 거라고는,
“또라이 새끼라는 것 정도밖에 몰라.”
“그건… 뭐, 그 괴상한 사원을 만든 것만 봐도 의심의 여지가 없네요.”
리리스는 기가 찬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구잡이로 사람을 납치해와 진리를 깨달으라는 개소리와 함께 가둬버리다니,
미쳐도 단단히 미치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짓이다.
“일단 위키 홀릭을 붙잡는 게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네요. 아카르트의 수하라면 어느 정도 정보를 가지고 있을 테니까요.”
“그렇긴 한데.”
강우는 쯧, 혀를 찼다.
“내가 그 사원을 개박살 내버려서 위키 홀릭이 계속 활동할지 모르겠네.”
납치해온 존재를 가둘 감옥이 사라진 이상 더 이상 위키 홀릭이 활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아… 듣고 보니 그러네요.”
리리스는 난처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지금 당장은….”
“저쪽에서 먼저 움직이기 전까지 딱히 할 건 없지.”
기본적인 정보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애초에 위키 홀릭만 해도 정확한 정보를 얻을 방법이 없었는데 아직 직접 움직인 적도 없는 아카르트에 대한 정보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 이브라고 했나요? 시스템은 아카르트에 대해 잘 모르는 건가요?”
“아, 걔랑은 이제 끝이야.”
허어? 허우워어어어어?
-띠링!
[죄송합니다.]‘꺼져.’
[율법이 망가진 탓에 오류 메시지가 출력됐었습니다.]‘넌 그 말밖에 못 하지?’
더 할 말 없으면 우리 사이 이제 정리해.
[다, 다시는 수호자를 우롱하지 않겠습니다!ฅ(⌯͒•̩̩̩́ ˑ̫ •̩̩̩̀⌯͒)ฅ!]아니 시스템 메시지에 이모티콘도 출력할 수 있는 거였어?
이래도 되는 거야?
‘뭔가 플레이어의 존재를 근본부터 부정당한 기분인데.’
눈앞에 떠오른 푸른 메시지창을 바라보며 혼란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진지한 다큐멘터리를 시청하고 있던 도중 나레이션이 갑자기 ‘수컷 소가 암컷 소의 발을 밟았을 때 내뱉은 소리를 아십니까? 바로 암소쏘리입니다, 하하하’ 뭐 이 지랄하는 걸 본 듯한 기분이었다.
“아… 뭐, 그래서 아카르트에 대해 더 아는 건 없는 거냐.”
이모티콘의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강우는 이브에 대한 분노도 잊은 채 벙찐 목소리로 물었다.
[전에 말씀드린 것 외에 다른 것은 저도 모릅니다.]눈앞에 떠오른 메시지창을 넘기며 쯧, 혀를 찼다.
“모른다네.”
“…그렇군요.”
리리스는 가늘게 눈을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지금은 이 세계를 노리는 존재가 있다, 정도로 생각만 해두는 게 나을 거야. 어차피 그쪽에서 먼저 움직임을 보일 테니까.”
“그렇게 속 편하게 있어도 괜찮을까요…?”
“불편하게 있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그건… 그렇지만요.”
리리스는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세요, 언니. 앞으로는 제가 강우 씨를 24시간 밀착 경호할 테니까요.”
한설아는 강우의 몸을 뒤에서 끌어안으며 흥분에 찬 콧김을 흐응! 내뿜었다.
뭔가 에키드나 같네.
“어머, 설아한테만 그런 좋은 일을 맡길 순 없지.”
리리스는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앞쪽에서 강우를 끌어안았다.
“…….”
두 연인 사이에 끼인 채 또다시 싸이버거가 될 처지에 놓인 강우는 가볍게 마기를 끌어 올리며 몸을 털었다.
강력한 마기가 두 여인을 살며시 밀어냈다.
“경호는 필요 없어.”
“어멋?!”
“마왕님…?”
깜짝 놀란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한설아와 리리스에게 말했다.
“이제 내 몸 하나 지킬 힘 정도는 있으니까.”
“어, 어떻게 되신 거예요, 강우 씨?”
“힘이 돌아오신 건가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꽉 품에 끌어안으면 벗어나지 못한 채 바동거렸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가벼운 동작만으로 그녀들의 품을 벗어나 버렸다.
강우는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저었다.
“어느 정도는. 완전히 돌아오려면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지금 정도면 다른 누군가의 경호를 필요로 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런… 가요.”
한설아는 억장이 무너진 듯한 표정으로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지구를 노리는 강력한 적이 있는 만큼 강우의 힘이 돌아온 것에 대해 기뻐해야 마땅하지만, 왠지 모를 아쉬움과 미련이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응? 그런데 왜 키는 그대로인 거예요?”
한설아가 동그랗게 눈을 뜨며 물었다.
“아… 그게. 뭐, 내부의 힘을 되찾는 게 먼저니 뭐니 개소리를 하면서 외적인 성장은 나중으로 미뤘다더라고.”
“허, 허업!”
어둡게 물들었던 한설아의 표정이 단숨에 환하게 밝아졌다.
“나이스!”
그녀는 주먹을 불끈 움켜쥐며 외쳤다.
“아니, 임자. 이건 좋아할 일이 아니잖아.”
이대로면 계속 프랑소와가 찌그러든 채라니까?
“호호호.”
한설아는 입가를 손으로 가리며 웃음을 흘렸다.
강우의 머리칼을 슥슥 쓰다 넘기며 말을 이었다.
“확실히 그건 아쉽지만… 이런 귀여운 강우 씨의 모습을 보는 것도 포기하기 어려운걸요?”
어차피 언젠가 강우가 원래의 몸으로 되돌아가게 되면 다시 보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지금 즐길 수 있을 때 최대한 즐겨두고(?) 싶었다.
“…임자의 취향은 잘 모르겠어.”
“저는 강우 씨라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도 좋아요♥”
녹아 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
순수함 마저 느껴지는 망설임 없는 대답에 강우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럼 이런 것도 좋아?”
강우는 최은희와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한설아의 손을 가볍게 잡았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녀를 올려다보며 살며시 옷깃을 끌어당겼다.
“나… 무서워, 설아 누나.”
“허업!”
한설아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코를 막았다.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코피가 흘러내리는 것이 보였다.
“가, 강우 씨, 어디서 그런 요망한 짓을….”
끓어 넘치는 행복을 주체할 수 없다는 듯 한설아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아니, 뭐… 크흠. 전에 비슷한 건 했으니까.”
강우는 자신이 말해 놓고도 부끄러운지 살짝 얼굴을 붉히며 답했다.
“최, 최고예요, 강우 씨!!”
한설아는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내쉬며 강우를 끌어안았다.
타오르는 듯한 눈빛으로 강우를 바라보며 그의 양어깨를 굳게 잡았다.
“오, 오늘 하루만… 누, 누나라고 계속 불러주실 수 있나요?”
“어?”
아니, 그건 좀….
“제발요!! 부탁드릴게요, 강우 씨!!”
“…….”
강우의 얼굴에 괜히 했다는 후회가 스쳤다.
하지만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은 법.
이제는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었다.
‘뭐, 임자가 좋아한다며 야.’
이 정도는 맞춰줄 수 있었다.
마마 플레이라는 극한의 미친 짓도 경험했는데 누나가 큰 대수일까.
강우는 설아의 품에 살짝 안기며 말을 이었다.
“나 배고파, 설아 누나.”
“하, 하아, 하아. 자,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그, 금방….”
한설아가 거친 숨을 내쉬며 주방으로 향하려 했을 때,
“설아! 아침 준비 끝났어!”
“…아.”
주방에서 귀여운 핑크색 체크무늬 에이프런을 입은 에키드나가 나왔다.
한설아는 아차, 하는 표정으로 이마를 탁 쳤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아침은 에키드나가 준비하고 있었지….”
그녀는 실망감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오, 뭐야. 에키드나가 직접 만든 거야?”
“흐응! 강우가 좋아하는 김치찌개야!”
에키드나가 허리춤에 손을 척 올리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턱을 올렸다.
“설아가 알려준 레시피대로 만들었어! 나 잘했지?”
“…….”
“서, 설아? 왜 그렇게 무서운 표정을 짓는 거야?”
“하아.”
한설아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입술을 삐죽 내밀며 고개를 저었다.
하필이면 이런 중요할 때(?)에 직접 요리를 해주지 못하게 될 줄은 몰랐다.
‘…괜찮아!’
풀이 죽어있던 것도 잠시.
한설아는 눈을 빛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쨌든 오늘 하루는 강우에게 ‘누나’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이 기회를 충분히 만끽해야지!’
그녀는 의욕에 가득 찬 표정으로 눈을 반짝였다.
“에키드나가 만들어주는 건 처음 아닌가?”
그런 그녀를 아는지 모르는지 강우는 식탁에 차려진 김치찌개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의자에 앉은 강우는 젓가락을 들어 밥 위에 김치와 돼지고기를 올린 후 꿀떡 집어삼켰다.
‘오, 뭐야. 맛있는데?’
당연히 한설아가 해준 것만큼은 아니지만, 처음 만들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맛있는 김치찌개였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고기를 좀 더 크게 썰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게 좀 아쉽네. 밥이랑 김치랑 쌓았을 때 한입에 안 들어갈 것 같은 크기가 딱 좋은데.”
“흐응! 다음에는 좀 더 크게 썰게!”
에키드나가 콧김을 내뿜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다시금 김치찌개를 향해 젓가락을 옮겼다.
그때,
“어머.”
어째서인지 의욕에 활활 타오르는 눈빛으로 옆자리에 앉은 한설아가 강우의 허벅지 위에 척 손을 올렸다.
강우가 흠칫 몸을 떨며 그녀를 돌아보자 한설아는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그의 귓가 가까이에 입을 가져다 대었다.
후우. 뜨거운 숨을 귓가에 불어넣으며,
“저는 한입 크기도 좋던데요?”
녹아내릴 듯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
누나 나 죽어.
* * *
다음 날.
“끄응.”
어젯밤 늦게까지 한설아의 욕망에 어울려주던 강우는 피곤하다는 듯 기지개를 켰다.
“아, 그러고 보니.”
한동안 통 얼굴을 보지 못했던 여인의 모습이 머리에 떠올랐다.
“잘 지내고 있나?”
강우는 스마트폰을 들어 올려 통화 버튼을 눌렀다.
스마트폰의 화면에 ‘차연주’라는 이름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