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557)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외전 38화
Welcome to Earth (3)
“아, 아아.”
사령관은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뒷걸음질 쳤다.
깨어나지 않는 악몽 속에 빠진 듯한 감각.
공포에 잠식된 몸이 제어를 잃었다.
뒷걸음질 치는 그의 바지가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오, 오지 마.”
발작을 일으키듯 외쳤다.
“오지 말라고!!”
“왜 자꾸 오지 말라 그래?”
괜히 더 가고 싶게.
“히익!”
“하하하하!”
겁에 질린 사령관을 내려다보며 강우는 웃음을 터뜨렸다.
아수라장이 된 조종실에서 쓰러진 의자를 하나 잡아 세우더니 느긋한 표정으로 앉았다.
“솔직히, 이건 상성이 너무 안 좋았어.”
애처롭게 몸을 떨고 있는 사령관을 바라보며 쯧쯧 혀를 찼다.
상성이 좋지 않다.
그 표현이 가장 적합할 것이다.
‘화력만 놓고 보면 오히려 저쪽이 더 뛰어날 수도 있겠지.’
그들의 기술력은 지구와는 비교하는 것이 민망할 정도로 뛰어났다.
단순하게 물리력으로만 계산했을 때, 그들의 무기는 김시훈이나 발록의 파괴력을 뛰어넘는 화력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한테 너희들의 잘난 무기들은 아무 소용없거든.”
그들의 무기에는 신성이 담겨 있지 않았다.
아무리 화력이 강하다고 하더라도 신성이 담기지 않은 공격이라면 신격의 보호에 막혀 그 위력이 극단적으로 줄어들어 버리는 것이다.
불합리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상성 차이.
신격의 보호라는 사기적인 방어를 뚫을 수 없는 그들에게는 애초에 패배가 확정된 싸움이었다.
“뭐, 사실 신격의 보호 같은 게 없어도 별반 다르지 않았겠지만.”
낄낄낄.
어깨를 들썩였다.
패러사이트가 침공했을 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지금 지구에는 말 그대로 ‘괴물’이라도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강자들이 즐비했으니까.
‘하물며 이놈들은 패러사이트보다도 훨씬 아래니까.’
객관적으로 따져봤을 때 은하연맹군의 전력은 패러사이트보다 훨씬 아래였다.
아무리 기술력이 좋다고 해도 결국 그들은 인간에 불과했으니까.
‘대체 무슨 수로 수많은 행성을 정복하고 다녔다는 거지?’
강우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려했던 것보다 외계(外界)의 전력을 별 볼 일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아니, 그건 아닌가.”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사실 지구의 전력은 나나 시훈이, 발록에게 너무 집중되어 있으니까.’
최근에는 그 자리에 설아가 끼기도 했다.
어쨌든, 만약 자신들이 없이 플레이어들만으로 은하연맹군을 막으려 했다면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날고 긴다는 최상급 랭커라고 해도 거대 전함을 상대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테니까.
‘솔직히 지금 지구는 파워 밸런스가 개판이긴 하지.’
자신과 최상위 플레이어 사이에는 손오공과 미스터 사탄급의 차이가 있었다.
과거 구천지옥을 지배하던 시절이 우습게 느껴질 정도로 성장했으니 그의 기준만으로 은하연맹이 강하고 약하고를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뭐, 너희가 수많은 행성을 지배했는지 아닌지는 내가 알 바 아니고.”
지금 그가 해야 할 일은 아니었다.
“너, 아카르트라고 아냐?”
“…아카르트?”
사령관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고개를 젓는 그의 모습에서 딱히 거짓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카르트가 개입된 건 아닌 건가?’
강우는 쯧, 혀를 차며 팔을 들어 올렸다.
아카르트에 대해 아는 정보가 없다면, 더 이상 그를 살려둘 이유가 없었다.
“모르면 뒈져야….”
그때.
-삐이이이이이익!!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 끔찍한 경보음이 조종실을 뒤흔들었다.
“…뭐야?”
강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까부터 경보음은 계속 울리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 정도가 달랐다.
경고의 의미가 아니라 고막을 찢어버리려고 음폭탄을 터트린 수준의 경보음이었다.
‘뭔데 엔진이 뜯겨나갈 때보다 경보음이 더 크냐?’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흥미롭다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상황을 살폈다.
“아….”
“…….”
“사, 사령관, 님.”
조종실에 있던 은하연맹군의 표정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들은 전함의 3분의 1이 날아가고, 엔진이 통째로 뜯겨 나갈 때보다 오히려 더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덜덜 몸을 떨었다.
“설, 마….”
사령관의 표정 또한 마찬가지.
그는 믿고 싶지 않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부하들을 바라보았다.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난 부하는 아직 용케 작동하고 있는 홀로그램 모니터를 확인했다.
“락테온 알파가… 구속구를 파괴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하.”
소식을 들은 사령관은 자포자기한 표정으로 털썩 누웠다.
락테온 알파.
은하연맹의 모든 자원을 투자했다 해도 과언이 아닌 ‘프로젝트’에 투입될 예정이었던 안드로이드의 명칭이었다.
하지만 락테온 알파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고, 결국 베타 버전을 새롭게 만들어 프로젝트에 투입하게 됐다.
락테온 알파에 존재하는 치명적인 결함.
그것은 다름 아닌─
‘인격’이 생겨 버렸다는 것.
-쿠우우웅!
“커헉!”
거친 폭발과 함께 조종실의 문짝이 우그러져 터져 나갔다.
거침없이 조종실 안으로 들어온 백발의 청년이 은하연맹군의 목을 움켜쥐었다.
“커흑! 컥! 사, 살려…!”
“…….”
우두둑!
망설임 없이 은하연맹군의 목을 꺾어버린 백발의 청년은 무심한 눈으로 몸을 돌렸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바지를 적신 채 공포에 질려 있는 사령관이 있었다.
저벅, 저벅.
백발의 청년은 사령관을 향해 뚜벅뚜벅 발걸음을 옮겼다.
“자, 잠깐! 기다려라, 락테온 알파!”
“…….”
“지금 날 죽이면 프로젝트는… 커헉!”
락테온 알파라고 불린 청년은 바닥에 쓰러진 사령관의 가슴을 거칠게 짓밟았다.
“코드는 어디 있지?”
락테온 알파의 입에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무런 감정이 담겨 있지 않은, 무기질적인 목소리.
사령관은 눈을 굴리며 입술을 짓씹었다. 손을 들어 강우를 가리키며 외쳤다.
“침입자를 처리하면 코드를 넘겨주마!”
“…침입자?”
그제야 락테온 알파의 시선이 강우에게 향했다.
흥미롭다는 듯 상황을 지켜보던 강우는 헛웃음을 흘렸다.
“이건 또 뭔 전개야?”
갑작스럽게 나타난 백발의 청년.
조종실에 들어오자마자 은하연맹군을 공격하는 모습을 보니 서로 아군 같아 보이지 않았다.
“…….”
사령관의 가슴을 짓밟고 있던 락테온 알파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너는, 누구지?”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넌 뭐냐?”
“…….”
“뭐, 뭐 하고 있어?! 프로젝트의 코드를 알고 싶다면 저 침입자를 죽이라니까!”
사령관이 발작을 일으키듯 소리쳤다.
지그시 그를 내려다보던 락테온 알파가 가슴에서 발을 떼고는 강우에게 몸을 돌렸다.
“락테온 알파 2식.”
허리를 숙인 채,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철컥, 철컥, 철컥!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백발 청년의 등이 갈라지며 새하얀 슈트가 그의 몸을 뒤덮었다.
발록의 패왕갑(霸王鉀)과는 다른, 오로지 과학의 힘만으로 만들어진 슈트.
“와, 씨바 뭐야? 아이언맨이야?”
강우는 탄성을 흘리며 새하얀 슈트를 입은 락테온 알파를 바라보았다.
사령관과 락테온 알파가 대체 무슨 관계인지,
프로젝트 코드라는 건 또 뭔 소리인지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간지 개작살나네.”
나도 하나만 주면 안 됨?
“…….”
락테온 알파는 대답하지 않았다.
크그그그긍!
슈트의 등이 열리며 강렬한 제트엔진이 뿜어졌다.
굉음과 함께 락테온 알파의 몸이 쏘아졌다.
“아니, 진짜 딱 하나만. 두 개까진 바라지 않을게.”
“…….”
“혹시 컬러는 검은색 안 됨?”
“…….”
“안 되나 보네.”
까비요.
“…말이 많은 놈이군.”
“자랑할만한 게 주둥이밖에 없어서요.”
“네게 원한은 없지만, 죽어줘야겠다.”
락테온 알파는 딱딱한 목소리로 말하며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철컥!
손등에서 튀어나온 날카로운 블레이드가 강우의 몸을 갈랐다.
-까아앙!
“……!”
단단한 강철을 후려친 듯 맑은소리가 울려 퍼졌다.
락테온 알파는 공격이 실패하자마자 다급히 거리를 벌렸다.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블레이드와 강우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뭐지?”
“신성이라는 거지.”
“신성, 이라고?”
락테온 알파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신성이라는 것이 뭔지는 모르지만, 그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았다.
한시라도 빠르게 이 전투를 끝내고 프로젝트의 코드를 손에 넣어야 한다.
“차핫!!”
락테온 알파가 양팔을 벌렸다.
철컥, 철컥, 철컥!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슈트의 등에서 십수 개의 포신이 솟구쳤다.
마치 고슴도치가 가시를 세우듯 돋아난 포신.
-쿠구구구궁!!
포신에서 불이 뿜어졌다.
수십 발의 소형 미사일이 강우를 노렸다.
“보면 볼수록 탐이나네.”
휘파람을 불며 여유롭게 손을 들어 올렸다.
신격의 보호를 믿고 아무런 방어를 안 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계속 훈련구역 허수아비마냥 두들겨 처맞는 것도 썩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
‘간만에 몸 좀 풀어볼까.’
강우의 입가가 비틀어 올라갔다.
파워드 슈트를 착용한 은하연맹의 정예병이나, 지구의 과학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첨단 과학 무기들에는 딱히 관심이 가지 않았지만.
저 ‘락테온 알파’라는 존재에는 묘하게 흥미가 돋았다.
“칼날의 권능.”
락테온 알파가 뽑아냈던 블레이드처럼 강우의 손바닥에서도 검은 칼날이 솟구쳤다.
가볍게 스텝을 밟으며 칼날을 휘둘렀다.
-쩌저저저적!!
마해와 육체가 융화되며, 심연의 마기로 인해 새로운 능력을 개화(改化)하게 된 칼날의 권능.
검날이 휘둘러지는 경로를 따라 공간 자체가 ‘갈라’지며 마치 나무뿌리와 같은 칼날의 줄기가 뻗어갔다.
마치 허공에 촘촘한 그물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은 모습.
“흑라(黑羅).”
짧은 시전어와 함께 허공에 만들어진 칼날의 그물이 쏘아지는 미사일을 모조리 갈라 버렸다.
“크윽!”
락테온 알파는 이를 악문 채 원거리에서 끝없이 포격을 쏘아냈다.
총탄과 미사일이, 레이저와 플라즈마 캐논이 조종실 전체를 뒤흔들었다.
하지만,
그중 어떤 공격도 칼날의 그물을 뚫지는 못했다.
“아아.”
허망하다는 듯, 허무하다는 듯 씁쓸한 웃음을 흘렸다.
락테온 알파는 떨리는 눈으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후우.”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저 칼날의 그물을 뚫을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죄송합니다. 대장님….”
남은 것은 ‘일반적이지 않은’ 방법뿐이었다.
락테온 알파는 슬픔에 잠긴 눈으로 누군가를 떠올리듯 허공을 응시했다.
다시는 볼 수 없는,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기계장치의 신’을 떠올리며.
“하아.”
짧은 숨을 토해낸다.
오른팔을 들어 천천히 왼쪽 가슴 위에 올린다.
슈트를 열어젖히고, 보안 레벨을 해제한다.
파지직! 푸른 스파크가 튀어오른다.
신에게 기도를 올리는 신도처럼 경건한 목소리로 말한다.
“오버히트(Overheat).”
치이이이이이익!!
새하얀 슈트가 붉게 달아오르며 어마어마한 양의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