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56)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57화
은밀한 동영상(3)
“…알았어.”
강우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메모리칩을 내밀었다.
‘동영상에 뭔가 비밀이 있긴 한 모양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가 진짜 야X을 목적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우에게서 메모리칩을 받아든 그녀는 잠시 고민에 잠긴 표정으로 메모리칩을 내려다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강우 너도 같이 보자. 결국 너도 알아야 할 내용일 테니까.”
‘아니,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인데.’
이 동영상에 무언가 다른 정보가 담겨 있다는 확신이 섰으나 지금 당장은 기분이 묘해지는 말이었다.
“화연아, 그 요원 쪽은 어때?”
“…죽었다.”
어지럽게 널브러진 시체들을 뒤지던 백화연이 무겁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는 강우에게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어떻게 된 일인지 들을 수 있겠나?”
“저도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잘 모르겠네요.”
강우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처음 메모리칩을 건네준 청년을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을 그녀에게 설명했다.
“그 메모리칩을 받자마자 저들이 습격해 왔다고?”
“그렇습니다.”
“…정말 우연히 사건에 연루된 모양이군.”
백화연은 머리가 아프다는 듯이 흐트러진 은발을 쓸어 올렸다.
“그보다 저도 좀 알고 싶네요. 대체 무슨 일입니까?”
“우선 영상을 보고 사정을 설명해주겠네.”
“아, 맞다. 그 영상 말입….”
강우의 말이 이어지기 전에, 골목에서 묘한 교성이 울려 퍼졌다.
차연주가 자신의 스마트폰에 메모리칩을 넣고 영상을 재생한 것이다.
“이, 이게 뭐야….”
차연주는 그녀의 머리칼처럼 붉게 달아오른 표정으로 말을 더듬었다.
그녀에게 다가간 백화연이 동영상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페이크 영상이군. 이건 본부에 있는 영상 해독기로 보지 않으면 본 내용을 알 수 없다.”
“아니, 왜 이런 걸 페이크 영상으로 쓰는 거야!”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차연주가 소리쳤다.
백화연은 덤덤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런 영상이기 때문에 페이크로서 의미가 있지 않은가? 실제 본부대에서도 페이크 영상으로 성인 동영상을 추천하고 있다. 강동훈 요원은 부대에서 배운 대로 했을 뿐이다.”
“아, 아니 잠깐. 그렇다는 얘기는….”
차연주는 다급한 표정으로 강우에게 고개를 돌렸다.
“너, 너 아까 이 동영상 봤지.”
“그래.”
“근데 왜 아무 얘기도 안 하는데!”
“아니 지금 바로 써야 한다기에….”
“쓰긴 뭘 써!”
그녀는 홍당무처럼 붉어진 얼굴로 소리쳤다.
동영상의 진실에 대해 알게 된 강우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안 그래도 나도 과연 뭐에 쓸지 궁금하던 차였어.”
“이, 이 자식이….”
그녀는 차오르는 수치심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하지만 그에게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성급하게 메모리칩을 받아낸 것은 다름 아닌 그녀였으니까.
“그래서,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그 동영상이 뭐길래 그런 거야?”
“하아….”
무언가 말하려던 차연주는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사정을 설명했다.
그녀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강우를 궁금하게 만들었던 의문들이 하나씩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악마교 내부에 잠입해 있던 정부 요원과 오늘 접선하기로 했는데 그게 틀어진 거라고?”
“그래. 구조신호를 받고 주변을 샅샅이 뒤졌는데도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어. 그러던 중에 마지막 신호를 받고 바로 달려온 곳이 여기야.”
“흐음. 그렇다는 건 저 메모리칩에는 악마교에 대한 정보가 들어 있던 거였군.”
사내들이 갑자기 그를 죽이려고 했던 이유도, 차연주가 중요한 영상이라고 달라고 했던 것도 이제야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오늘 게이트를 지키던 화랑부대원들이 잘 보이지 않았던 거였군.’
화랑 1군이 주둔하는 화서역 근처에서 접선할 예정이었던 것만큼 그들도 지원 병력으로 파견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맞아. 그, 그러니까 야X 때문에 그렇게 말한 건 아니라고! 알겠지?!”
“알았어. 그렇게 흥분하지 마.”
차연주는 어지간히 부끄러웠는지 강우의 멱살을 움켜쥐며 소리쳤다.
그런 그녀에게 에키드나가 다가와 멱살을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을 억지로 떼어냈다.
“강우에게 함부로 굴지 마.”
에키드나는 강우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경계심 어린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이 애는….”
“내가 전에 말했던 소환수야.”
“아, 이게 그 드래곤이야?”
차연주는 신기하다는 듯이 에키드나를 위아래로 살폈다.
드래곤이라는 느낌은 조금도 들지 않는, 그저 인형 같은 외모의 소녀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았다.
“진짜 네 소환수 맞아? 엄한 짓 한 거 아니지?”
“사람을 어디까지 쓰레기로 보는 거야.”
“아… 뭐, 아무리 그래도 그런 짓을 할 놈은 아니지.”
차연주는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넌 그런 저급한 쓰레기가 아니라 좀 다른 종류의 쓰레기니까.”
“…칭찬이야, 욕이야?”
강우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옆에 있던 에키드나가 차연주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그 말 취소해.”
“읏….”
“강우는 쓰레기가 아니야. 내 소중한 사람이야.”
“그, 그게….”
“취소하지 않으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에키드나는 마기를 풀풀 피어 올리며 말했다.
인형 같은 외모의 소녀가 내뱉는 말에 차연주는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적였다.
“알았어. 취소할게.”
“…그럼 됐어.”
에키드나는 마기를 뿜어내던 것을 멈추고는 끌어안은 강우의 몸에 머리를 묻었다.
강우는 자신에게 뺨을 비비는 그녀의 머리칼을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차연주는 그런 그의 모습에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흘렸다.
“대체 무슨 수를 쓴 거야?”
“두터운 인망과 깊은 배려심 덕분이지.”
“헛소리하지 마.”
차연주는 질린다는 표정으로 그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주변 상황을 정리하던 백화연이 차연주와 강우가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일단 지금 바로 본부로 가지. 그곳에서만 이 영상을 해독할 수 있다.”
“알았어. 강우 너도 갈 거지?”
“뭐, 이렇게 된 이상 빠지기도 애매하지.”
강우는 어깨를 으쓱이며 백화연의 뒤를 따라 걸었다.
* * *
화랑부대의 본부는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장소에 있었다.
백화연을 따라 들어간 본부는 으리으리했던 플레이어 관리소와는 달리 담백한 느낌이 드는 건물에 위치해 있었다.
“오셨습니까, 백화연 단장님!”
백화연이 본부 안으로 들어가자 화랑부대의 제복을 입은 플레이어들이 우르르 달려 나와 깍듯이 허리를 숙였다.
백화연운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강동훈 요원이 순직했다. 유족에게 연락은 내가 하겠으니 사후 보상 처리를 부탁한다.”
“아….”
“그는 국가유공자다. 결례가 되는 일이 없도록 유족들을 모셔라.”
“알겠습니다!”
백화연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을 이었다.
“장현재 단장님은 어디 계시지?”
“현재 일본 SS급 게이트 조사에 파견 나가셨습니다.”
“흠….”
장현재.
그녀의 상관이자 화랑 1군을 책임지고 있는 화랑부대 최고 권력자였다.
국내에서는 백강현을 제외하고는 대적할 자가 없다고 알려진 강자.
‘단장님이 계셨더라면….’
백화연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있었다면 강동훈 요원이 임무 중에 죽는 일도 생기지 않았을 것 같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조사실로 가겠다. 영상 해독기를 가지고 오도록.”
“예!”
백화연은 강우와 차연주를 이끌고 조사실로 향했다.
메모리칩 안에 담긴 영상을 영상 해독기로 조정한 후에 틀자 어두운 배경의 방이 나타났다.
영상에 가장 먼저 보인 대상은 붉은 악마 가면을 쓰고 있는 정체불명의 사내의 모습이었다.
‘붉은 악마 가면.’
영상을 바라보는 강우의 눈이 반짝였다.
조덕현에게 들었던 말들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저자가 악마교를 전도하고 다니는 그놈인가.’
강우는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영상을 바라봤다.
[추기경님.] [말해라.]어두운 방 안으로 들어온 한 사내가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얼굴 전체에 기하학적인 문양의 문신을 새긴 사내였다.
그는 공손한 태도로 추기경이라고 불린 가면 사내의 발아래 머리를 조아리며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소환’ 준비가 거의 끝나가고 있습니다.] [얼마 정도 기다리면 되지?] [4주…. 빠르면 3주 안에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3주라.]붉은 가면의 사내는 3주라는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빠르군. 지원을 받은 건가?] [예. 역시 대형 길드라 그런지 건네준 제물이 대부분 B이상의 특성을 가진 플레이어였습니다.] [좋군.] [흐흐흐. 저희의 염원이 이뤄질 순간도 머지않았습니다.] [이제 막 첫 걸음을 디딘 것에 불과하다. 아직 진정한 목적을 이루기까지는 멀었어.] [하지만 이번 일이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교단에서도 더 큰 지원을….] [거기까지.]붉은 가면의 사내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끊었다.
가면사이로 보이는 그의 눈빛이 섬뜩하게 빛났다.
[소환의 준비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되도록 말을 삼가라.] [예…!]붉은 가면 사내의 말에 바닥에 머리를 조아린 사내가 깍듯하게 대답했다.
영상은 그 장면에서 끊어졌다.
“…….”
무거운 침묵이 조사실 안에 내려앉았다.
백화연과 차연주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동영상이 꺼진 빔 프로젝터의 화면을 바라보았다.
“흠.”
강우 또한 눈살을 찌푸리며 짧은 동영상에서 얻어진 정보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추기경, 소환 그리고 대형 길드.’
동영상을 통해서 얻을 수 있던 정보는 세 가지.
첫째. 붉은 가면의 사내가 ‘추기경’이라고 불린 것을 보아 그 위의 세력이 더 존재한다는 것.
둘째. 그들이 무언가를 지구에 소환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
셋째. 그들을 지원해 주고 있는 대형 길드가 있다는 것.
“…지금으로서는 대형 길드를 조사하는 방법밖에 없겠군.”
“응?”
강우의 중얼거림을 들은 백화연이 놀랍다는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일단 스파이가 있다는 사실이 들켰으니 소환 계획에 대해서는 저쪽에서 필사적으로 숨기겠죠. 현 단계에서 그들의 본 교단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건 그들을 지원해 주고 있다는 대형 길드를 찾는 방법밖에 없어요.”
“허….”
짧은 시간에 생각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그의 말에 그녀는 탄성을 흘렸다.
“자네 이쪽에 관련된 일이라도 하고 있는 건가?”
전략가 혹은 분석가. 그런 직종의 사람이 아니라면 이렇게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제안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아니, 그냥… 원래 저런 놈이야.”
강우에게 다가온 차연주가 살짝 질린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강우는 처음 그녀와 만났을 때부터 짧은 대화만으로 그녀가 접근한 의도부터 상황까지 순식간에 파악한 인간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차연주는 그런 그의 능력을 인정하며 향후 대책에 대해서 물었다.
“뭐, 지금 할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지.”
강우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한울, 레드로즈, 온누리, 미르, 사나래. 연주 네가 있는 레드로즈 길드를 제외한 다른 네 길드 중 하나가 악마교와 연줄이 있을 거야.”
“그건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구체적으로 누가 연줄이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잖아.”
대형 길드의 세력은 정부에서도 함부로 건들일 수 없을 만큼 막강했다.
조사하고 싶어도 마음대로 조사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방법이 하나 있지.”
“무슨 방법…?”
“그건.”
강우는 입가에 짙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