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567)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외전 48화
넥타르(Nectar) (4)
“……예?”
마치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듯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강우는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멍청한 표정으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리, 리리스?”
등골을 타고 흐르는 서늘한 불길함에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불렀다.
리리스의 표정이 팍 일그러졌다.
“말귀를 영 못 알아듣는 권속이네. 내가 여왕님이라 부르라 하지 않았니?”
발가락을 벌려 가볍게 뺨을 꼬집으며 살짝 화난 표정으로 강우를 내려다보았다.
“…어, 음.”
강우의 눈빛이 흔들렸다.
‘뭐지?’
이건 또 뭔 개 같은 일이 일어난 거지?
‘설마 술주정이야 이게?’
아무래도 지금 리리스의 이상행동은 술주정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리리스. 좀 취한 것 같은….”
“쓰읍. 내가 대체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을 생각이니?”
리리스는 날카롭게 눈을 뜨며 발끝으로 뺨을 꾹꾹 짓밟았다.
“…….”
강우의 입이 굳게 닫혔다.
갈등이 서린 표정으로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뭐 어떻게 해야 해, 이거.’
그냥 무시하고 나갔다가는 왠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예를 들어, 그녀가 마지막 남은 이성의 한 조각까지 놓아버리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거나 하는 대형 참사가.
‘이런 씨발!!’
안 된다.
그것만큼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안 그래도 얼마 전 유리에와 리리스의 더블 촉수를 보고 멘탈이 찢어발겨지지 않았던가.
게다가 지금은 그녀가 술에 만취한 상태.
리미터가 해제된 그녀가 촉수로 무슨 짓을 할지 감히 예상할 수 없었다.
‘막아야 해.’
강우의 눈에 결연한 투지가 타올랐다.
끔찍하고 처참하고 비극적인 최후를, 인류의 종말과 파멸을 막아야 한다.
‘여기서는….’
그녀의 술주정에 맞춰줄 수밖에 없다.
“죄송합니다, 여왕님. 권속의 본분을 잊고 감히 여왕님의 존함을 입에 담아버렸습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재빠르게 무릎을 꿇은 채 그녀의 발아래 머리를 조아렸다.
그는 사죄하기에 앞서 대가리부터 박을 수 있는 남자.
한때 바알을 극락으로 보내버렸던 프로 애널━써커.
고작 연인의 괴랄한 술주정에 어울려주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호호호. 드디어 말귀를 알아들은 모양이구나.”
리리스는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조아린 강우의 머리를 발로 쓰다듬었다.
“자, 다시 한번 말해보렴. 내가 누구라고?”
“리리스 여왕님입니다.”
“어머, 아주 잘 알고 있구나.”
기특하다는 듯 손뼉을 쳤다.
“자, 그럼 어디 여왕에게 봉사를 한번 해보렴.”
그녀는 강우의 머리 앞에 쓰윽 발을 내밀었다.
“흐응~ 안마… 라고 했던가? 그걸 한 번 해봐 주렴.”
“옙.”
고개를 끄덕인 강우는 그녀의 검은 스타킹에 쌓인 발을 잡고 꾹꾹 주무르기 시작했다.
“하응!”
리리스의 입에서 달뜬 교성이 흘러나왔다.
움찔, 움찔.
한 번 손을 움직일 때마다 리리스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하아. 하아. 아주 기분이 좋구나.”
“여왕님의 행복이 바로 제 행복입니다.”
자존감 따위는 나락까지 집어던진 강우는 간신배가 지을 법한 미소를 지으며 열심히 안마를 이어갔다.
“어머, 기특한 말을 하는구나.”
리리스는 허리를 숙여 발마사지를 하고 있는 강우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후훗. 상을 줘야겠네?”
쓰르르륵.
그녀의 검은 머리칼이 길게 늘어나며 굳게 닫힌 방문을 슬쩍 열었다.
그렇게 해서 거실까지 뻗어 나간 검은 머리칼에 딸려 온 것은 달콤한 향이 풍기는 보랏빛 액체.
축하 파티 이후 남은 넥타르였다.
“자, 마음껏 마시렴.”
쪼르륵.
그녀는 잔에 담긴 넥타르를 자신의 다리 위에 뿌렸다.
매끄러운 다리를 타고 흘러내린 넥타르가 그녀의 발끝에 방울져 맺혔다.
천천히 발을 들어 강우의 입가 옆에 가져다 대었다.
“…예?”
마시라고?
이걸?
“뭘 꾸물거리고 있는 거니?”
리리스가 발끝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고혹적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어서 마시렴♥”
영혼에 스며드는 듯한 강렬한 유혹.
이성을 뒤흔드는 서큐버스 퀸의 명령이 귓가에 흘러들어왔다.
“지….”
지져스 씨발!!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쌉에반데.’
여왕님 플레이까지는 어떻게 어울렸지만, 술을 다리에 들이부은 후 핥아 마시라는 명령을 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검은 스타킹 끝에 방울져 떨어지는 넥타르를 바라보는 강우의 눈빛이 가늘게 떨렸다.
‘어… 뭐야?’
쿵쿵.
거칠게 심장이 뛴다.
마른 침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다.
묘하게,
강렬한 갈증이 끓어올랐다.
“아… 씨바, 맞다.”
어질어질한 머리. 흔들리는 시야.
그제야 강우는 자신도 정상은 아닌 상태라는 사실을 자각했다.
리리스처럼 만취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그 또한 몸이 달아오를 정도로는 취한 것이다.
“흐응. 이러다 내가 주는 포상이 모두 바닥에 떨어지지 않겠니?”
리리스는 망설이는 강우를 내려다보며 발끝을 그의 입술에 가져다 댔다.
“자, 어서.”
야릇한 목소리로 속삭이며,
“꼴사납게 혀를 움직이면서… 필사적으로 핥아 마셔보렴♥”
다시 한번 명령했다.
“우오오오오오오!!”
초월적인 욕망이 끓어올랐다.
강우는 어질어질한 정신 속에서 그녀의 발을 두 손으로 잡았다.
‘그래! 씨바 까짓것 이게 뭔 대수라고!!’
이제 와서 더 버릴 자존심도 없다.
아니, 애초에 그와 리리스는 서로 사랑을 맹세한 연인 사이.
연인 사이에 이 정도 일탈 정도는 귀여운 것 아니겠는가!
‘여왕님의 명령은 절대적!’
무조건 따를 수밖에 없다…!
“명에 따르겠습니다.”
“후훗. 착한 아이구나.”
리리스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강우는 꿀꺽, 침을 한 번 삼킨 후 검은 스타킹 끝에 방울진 넥타르를 향해 천천히 혀를 뻗었다.
‘나는 오늘.’
【인격】을 포기한다.
“낼름.”
“하읏!”
혀에 닿는 깔깔한 스타킹의 감촉.
고작 몇 방울을 혀에 대었을 뿐인데도 입안에 페브리즈를 한 통 처넣은 것처럼 어마어마한 넥타르의 향이 밀려왔다.
강우는 정성스럽게 그녀의 발을 혀로 핥았다.
발을 핥는 그의 표정은 어찌 보면 경건하게까지 느껴질 정도로 엄숙했다.
‘하기로 한 이상.’
뒤가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한다!
“핥핥핥핥.”
“흐읏! 자, 잠깐! 처, 천천히 핥으렴!”
리리스가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몸을 비틀었다.
그런 그녀의 명령을 자비 없이 무시하며 더욱 혀끝의 움직임에 힘을 더했다.
“핥핥핥핥핥핥!!!”
“이, 이 몹쓸 권속 같으니!”
투닥투닥.
리리스가 발을 핥고 있는 강우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때렸다.
하지만 말은 그렇게 하는 것치고 전혀 힘은 담겨 있지 않아 때린다기보다 토닥이는 느낌이었다.
“후우.”
여왕님의 포상(?)을 남김없이 핥아 마신 강우는 뿌듯한 표정으로 입가에 묻은 넥타르를 닦았다.
“하아, 하아, 하아.”
리리스는 거친 숨을 내쉰 채 침대에 쓰러졌다.
“정말… 발칙한 권속이로구나.”
“여왕님의 명령에 따랐을 뿐입니다.”
“흥. 입만 살아서는.”
어느 정도 정신을 회복한 리리스는 다시금 몸을 일으켜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짙게 미소 지은 그녀는 침대에 걸터앉은 채 손바닥으로 자신의 옆자리를 팡팡 내려쳤다.
“자, 이리 올라오렴.”
“옙!”
후다닥 침대 위로 올라갔다.
“가만히 있으렴.”
그녀는 강우의 허벅지 위에 살며시 머리를 올렸다.
“후훗. 감촉이 좋구나.”
무릎을 베고 누운 리리스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강우는 그런 그녀의 머리칼을 슬며시 쓰다듬었다.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지어졌다.
‘신선한 기분이긴 하네.’
이제까지 본 적도, 상상조차 한 적도 없는 그녀의 모습.
언제나 자신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바치며 충성했던 그녀의 모습만 봐오다가 이런 모습을 보니 굉장히 신선하고 신기한 기분이었다.
‘아니, 최근 기준으로 하면 좀 다른가.’
정식으로 사귀고 난 이후에는 충성스러운 부하라기보단 요염한 누나 같은 느낌이 더 강했다.
어쨌든, 어느 쪽이건 이렇게 여왕님처럼 강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처음이었다.
“왜 히죽히죽 웃고 있는 거니?”
“여왕님이 사랑스러워서 그랬습니다.”
“읏…!”
리리스의 몸이 움찔 떨렸다.
“…그, 그런 말을 함부로 하지 말렴.”
고개를 홱 돌려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숨기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푸흡!”
부끄러워하는 그녀의 모습에 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
찌릿.
가늘게 눈을 뜬 리리스가 노려보는 것이 느껴졌다.
“건방진 권속에게는 벌이 필요하겠네.”
어느새 몸을 일으킨 그녀는 강우의 어깨를 밀어 넘어트렸다.
몸 위에 올라탄 그녀는 달뜬 숨을 내쉬며 요염하게 웃었다.
“흐으음. 뭔가 방이 덥구나.”
“예? 에어컨 개빵빵하게 틀어 뒀….”
“덥구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니?”
“존나 더워서 불타버릴 것 같습니다. 냉수라도 가져다드릴까요?”
“아니. 거기 가만히 누워있으렴.”
몸을 일으키려는 강우를 지그시 누르며 먹잇감을 노리는 포식자처럼 입술을 핥았다.
“이럴 때는 몸을 움직여 땀을 빼는 것이 좋지 않겠니?”
고혹적인 눈빛으로 뺨을 쓰다듬었다.
“아니, 우선 다른 애들부터 먼저 방으로 옮기….”
“흐응. 누가 말대답을 해도 된다고 했니?”
다시금 여왕님 모드로 돌아온 리리스가 강우의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 대었다.
“후훗. 벌이 끝날 때까지 가만히 있으렴.”
꿀꺽.
그녀는 거친 숨을 내쉬며 반쯤 풀어 헤쳐진 옷을 벗어 던졌다.
그리고.
“아침까지 쉬지 않고 귀여워해 주겠… 후엥.”
풀썩.
그대로 침대 위에 쓰러졌다.
“……엥?”
동그랗게 뜬 눈으로 침대에 쓰러진 리리스를 바라봤다.
콕콕 손가락으로 찔러도 반응이 없다.
“뭐야?”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리리스를 살폈다.
새액, 새액.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하.”
허탈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잠든 거야?”
어딜 어떻게 봐도 잠든 게 맞았다.
“…….”
뭐라 설명할 수 없는 허망함과 안도감 속에 강우는 머리를 긁적였다.
“…일어날까.”
아직 거실에는 술에 취한 에키드나와 한설아, 차연주가 쓰러져 있었다.
“끙차. 어우, 다들 완전히 뻗었네.”
“흐응…. 가, 강우… 소, 속이 이상해에….”
“그래, 그래. 좀 쉬어.”
거실에 나온 강우는 에키드나를 안아 방으로 옮겼다.
“후음…. 강우 씨이….”
그다음은 한설아.
“잘자, 임자. 레이라에게 들은 말은 다 잊고.”
강우는 한설아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는 거실로 나왔다.
“연주는 저쪽 방으… 응? 어, 뭐야? 일어났냐?”
“…….”
거실에는 비몽사몽 한 표정의 차연주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
“…아.”
강우를 발견한 차연주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도도도도.
소파를 박차고 달려온 그녀가 강우에게 폴짝 뛰어올랐다.
“오빠~앙! 어디 갔었어?! 히히! 연주 두고 가지 마아!!”
“…….”
얜 또 뭐야 씨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