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575)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외전 56화
바이오하자드 (2)
“Karrr?”
“GureEEEEEEEEE!!”
통역 마법으로도 그 의미를 해석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괴성.
칠판을 쇳조각으로 긁어내는 듯한 악몽 같은 절규가 터져 나왔다.
괴물들에게 동료를 부르는 능력이라도 있는 것일까.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치던 괴물들이 몇 배는 늘어나 주변을 둘러쌌다.
보는 것만으로 숨이 턱 막히고 덜덜 떨리는 공포스러운 광경.
하지만,
[하찮은… 미물이군.]과거 구천지옥의 악마조차 공포에 질리게 만들었던 분노의 대공에게는 조금도 두렵지 않은 광경이었다.
하찮은 벌레들이 모여 자신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고 있는 모습에는 오히려 실소가 흘러나올 지경.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괴물들을 살폈다.
하찮다.
감히 분노의 대공 앞에 이빨을 드러낸 존재가 이토록 하찮기 그지없는 벌레들이라니.
[분노(忿怒)의 대공 앞에서 감히 이빨을 드러낸 것을 후회토록 하거라.]소름 끼치게 차가운 목소리.
태초의 악몽에서 태어난 것처럼 끔찍한 괴물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그의 붉은 눈빛은 고요히 타올랐다.
그는 사탄.
분노의 대공이자, 헤아릴 수 없는 악마들의 공포로서 자리 잡은 존재.
그가 두려움을 느끼는 존재 따윈 없─
“아주 지랄 똥을 싼다.”
[허억?!]사탄은 기겁한 표정으로 숨을 들이켰다.
고요하게 타오르던 붉은 눈동자가 마치 폭풍을 만난 것처럼 미친 듯이 흔들렸다.
그는 다급히 바닥에 몸을 웅크리더니 두 팔을 들어 머리를 보호했다.
“뭐하냐?”
[아, 아무것도 아니다.]잔뜩 겁에 질려 있던 사탄이 크흠, 헛기침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나저나 이게 대체 어떻게 된….]그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떨었다.
이제까지 마왕에게 몇 번 소환되어 그의 꼭두각시로 일한 기억은 있지만, 이토록 의식이 선명하게 소환된 것은 처음이었다.
원래는 마치 약에 취한 듯 몽롱하고 희미한 의식을 지닌 채 소환됐었다.
육체 또한 부정형의 검은 점액질로 흔들리는 것이 아닌, 제대로 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우우우우웅!
그의 양손에 거대한 마기가 흘러나왔다.
과거 구천지옥에 대공으로 군림했던 당시와 흡사한 수준의 힘.
아니, 오히려 그때보다도 더욱 짙은 마기가 느껴졌다.
“이번 소환에는 좀 공을 들였거든.”
강우는 가볍게 몸을 풀며 말했다.
가디언즈의 지원을 바랄 수 없는 이상, 계속해서 증식하는 괴물을 막기 위해서는 전력이 더 필요했다.
‘맘 같아서는 좀 더 소환하고 싶지만.’
지금 사탄처럼 의식과 힘이 멀쩡한 상태로 소환할 수 있는 악마는 하나였다.
물론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는 악마들이야 무리한다면 여기서 더 소환이 가능하지만,
‘별 의미 없겠지.’
심연에서 소환된 악마는 자신처럼 불사(不死)의 육체를 지니고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대신 공격력과 기동성은 그만큼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지금 도시 전체에 창궐하는 정체불명의 괴물은 일반적인 좀비 영화에 나오는 좀비 따위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의 피지컬과 끈질긴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찍어내듯 어중이떠중이 악마들을 소환해 봤자 괴물들을 막을 수 없다.
‘여기선 차라리 제대로 된 전력을 하나 만드는 게 나아.’
복잡한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고 있는 사탄을 돌아봤다.
사탄이 지닌 절멸의 권능은 닿는 대상의 몸을 조각조각 분해시켜 버리는 힘을 지니고 있다.
아무리 끈질긴 생명을 지닌 괴물이라도, 그의 권능 앞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으리라.
“바알 새끼를 소환할 수 있으면 더 좋았겠지만….”
지금 멀쩡한 상태로 소환할 수 있는 건 사탄까지가 한계였다.
“자, 그럼 다시 시작해 볼까.”
강우는 과거 사탄의 무기, ‘분노’를 움켜쥐며 씩 입가를 올렸다.
이제 쓸 만한 전력도 소환했으니 다시 닥치는 대로 괴물들을 썰어버릴 시간이다.
척!
칼끝을 괴물들에게 향하며 외쳤다.
“가랏 사탄! 분뇨의 대공의 힘을 보여줫!”
[나, 나는 분노….]“그래, 그래. 잘 알았으니까 일단 저 괴물 새끼들부터 쳐 죽여.”
사탄의 말을 자르며 강우도 자세를 취했다.
사탄이 떨리는 눈빛으로 강우의 손에 쥐어진 양손검을 바라보았다.
[그, 그건 내 검….]“빨리! 시간 없어 새끼야!”
퍼억!
엉덩이를 걷어차인 사탄은 데굴데굴 바닥을 굴렀다.
“KuRRRRrrrAAAAAA!!!”
주변을 둘러쌌던 괴물들이 괴성을 터트리며 달려들었다!
“뒤져 이 씹새들아!!”
강우는 거칠게 달려 나가며 존나게 검을 휘둘렀다.
폭발적인 참격!
괴물들의 육편이 폭풍 속의 민들레 씨앗처럼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끄흐으윽… 내, 내 검….]사탄은 서러움에 찬 눈물을 흘리면서도 강우의 명령에 따라 착실하게 몸을 움직였다.
무기가 없다 하더라도 그는 대공.
이런 조잡한 괴물따위는 맨손으로도 어렵지 않게 쓸어버릴 수 있었다.
[으아아아아아!!]“KiiiiiiiiAaaaaaaaaaaAA!!”
마왕에게서 받은 초월적인 분노를 괴물들에게 풀어낸다!
굳게 움켜쥔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괴물들의 몸이 풍선 터지듯 박살 나 흩어졌다!
[왜! 왜!! 왜!!! 나만!!!]분노가 끓어오를수록 그의 움직임은 한층 더 빨라지고, 난폭해졌다.
수십에 달하는 괴물들이 1분도 되지 않는 시간에 쓸려나갔다.
[내가 한 게 아니라고!!!]처절한 절규!
[알렉인지 레이날드인지 씨팔 누군지도 모른다고오오오오!!!]터져 나오는 증오!
[나한테 대체 왜 그러는데에에에에에에에!!!!]폭발하는 분노에 휩싸인 괴물들이 처참하게 쓸려나갔다!
“그렇지! 장하다 김사탄!!”
저 드라군 씹새들을 네 손으로 멸망시켜 버리렴!
“똥과 오줌으로 싹 다 죽여 버렷!!”
[으아아아아아!!! 분뇨가 아니라 분노라고오오오오!!!]사탄은 피눈물을 흘릴 기세로 처절하게 울부짖으며 괴물들을 학살했다.
확실히 대공이라는 강력한 전력 하나가 느니 혼자 했을 때와는 속도 자체가 달랐다.
그렇게 주변의 괴물들을 싸그리 정리했을 때쯤,
-찔꺼억.
갑작스럽게 자신의 그림자에서 녹색 촉수 하나가 기어 나왔다.
“끼에에에에에에에엨!!!”
강우는 발작을 일으키듯 괴성을 지르며 촉수와 거리를 벌렸다.
덜덜덜.
그의 다리가 애처롭게 떨렸다.
반사적으로 분노를 움켜쥐어 휘두르기 직전,
“아아, 마왕님. 들리시나요?”
촉수 끝이 꾸물렁 거리며 리리스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어, 응. 들려.”
“통신이 안 돼서 이렇게 연락드릴 수밖에 없었어요.”
“아….”
그제야 납득했다는 듯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긴 건 도저히 납득이 안 가지만.’
질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
“그래서, 숙주는 찾았어?”
“아뇨. 아직 못 찾았어요. 하지만 좀 특이한 개체들은 발견했어요.”
“특이한 개체?”
의문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예. 다른 괴물보다 훨씬 더 큰 덩치를 지닌 괴물들이에요. 그 괴물들을 중심으로 다른 괴물들이 모여 무리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인간을 사냥하는 것도 그냥 무작정 따라가는 것에서 지능적으로 변했고요.”
“뭘 어떻게 사냥하고 있는데?”
“인간들을 죽이는 게 아니라 납치해서 미끼처럼 사용하고 있어요.”
“이런 씨발.”
안 그래도 상대하기 짜증나는데 한층 더 상황이 골치 아파졌다.
“호호. 그렇게 얼굴 찡그리지 마세요, 마왕님. 저희에겐 오히려 좋은 기회니까요.”
“좋은 기회라고?”
“특수 개체들이 마치 누군가의 지시를 받은 것처럼 서로 정확하게 구역을 나눠서 인간들을 사냥하고 있어요.”
강우의 눈이 반짝였다.
특수 개체를 중심으로 모인 괴물의 무리.
능지가 향상된 사냥 방법과 정확하게 나뉜 구역.
“…그렇다면.”
“예. 이 특수 개체를 잡아서 조사한다면 숙주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좋아.”
강우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대로, 이건 좋은 기회였다.
“마왕님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특수 개체의 위치를 알려드릴게요. 연주 씨와 설아 씨에게도 알려 드릴 테니 동선이 겹치지 않을 거예요.”
“에키드나는?”
“음… 아무래도 에키드나에게 맡기기는 조금 걱정돼서요.”
“그건 그렇지.”
특수 개체가 얼마나 강한지 아직 확실하지 않은 상황.
한설아나 차연주라면 그 실력을 믿을 수 있지만 에키드나는 조금 불안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럼 에키드나한테는 생존자들을 모아서 보호하는 데 집중해 달라고 해.”
“예, 알겠습니다.”
스르륵.
녹색 촉수가 다시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퍼어어엉! 쿠구구구구궁!!
저 멀리서 굉음이 울려 퍼지며 수십 가닥의 붉은 쇠사슬이 높게 치솟아 오르는 것이 보였다.
“연주는 벌써 시작했나.”
아무래도 차연주는 벌써 특수 개체란 놈들과 조우한 모양.
“이쪽도 조금 속도를 올려야겠구만!”
강우는 사탄의 기다란 꼬리를 움켜쥐고는 천공으로 권능을 사용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우어어어어어어!]그의 처량한 울음소리가 도시 상공에 울려 퍼졌다.
* * *
리리스가 말한 특수 개체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AaaaaaaaaKAraaaaaaaAA!!”
“아아아아악!!”
“사, 살려줘!!! 살려 주세요!!!”
무려 천에 가까운 괴물들이 모인 무리.
그 중심에는 5미터 정도 되는 덩치의 괴물이 꾸물럭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특수 개체라고는 했지만 뭔가 변종 같은 건 아니었고, 그냥 괴물들 여럿이 뭉쳐 만들어진 거대한 살덩어리와 같은 생김새를 지니고 있었다.
“생긴 거 씨발 진짜.”
절로 욕지기가 흘러나오는 미친 비주얼이었다.
리리스가 보고한 것처럼 괴물들은 사람들을 납치해 미끼로 사용하며 영웅심 넘치는 주변 인간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존나 쓸데없는 짓 하고 있네.”
누가 미쳤다고 이런 상황에서 붙잡힌 사람들을 구하겠다고 저 괴물 무리에 달려든단 말인가?
“으아아아아아아아!!”
“이 빌어먹을 괴물 새끼들!!”
“아니 씨발?”
진짜 달려들잖아?
“죽어라 이 괴물 새… 커헉!!”
“아아악! 사, 살려 줘!! 뭐, 뭐야?!”
플레이어로 보이는 몇몇 사람들이 무기를 꺼내든 채 괴물의 무리를 향해 돌진하다가 제대로 무기 한 번 휘둘러보지 못하고 사지가 뜯겨나가는 것이 보였다.
애초에 숫자 차이만 하더라도 백배에 가까우니 일반적인 플레이어 입장에선 상대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뭐야 저 신비로운 빡대가리 새끼들은.”
능력도 좆도 없으면서 왜 저기 달려드는 거야.
순식간에 전신이 뜯어먹힌 플레이어들이 발작을 일으키듯 몸을 떨며 피를 토해내더니, 곧 괴물이 되어 무리에 합류하는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씨바랄.”
이러다가 진짜 군단이 되겠다.
여기서는 더 늦기 전에,
“가라아아아아아앗!! 사탄모오오오오온!!!”
포켓몬을 강제로 납치, 감금한 뒤 잔인하고 처절하게 조교한 후, 친구라는 명목으로 살인적인 전투를 강요하는 비인간적인 사이코패스 주인공처럼 외쳤다.
“너로 정했다아아아아아!!!”
전신의 힘을 쥐어짜내며 메이저리그의 야구 선수처럼 완벽한 자세를 취했다.
사탄의 꼬리를 붙잡은 오른팔을 있는 힘껏 뒤로 젖히며 왼발을 높게 들었다.
─전력을 쏟은 투구(投球).
[으아아아아아아아악!!!]공중에서 미친 듯이 회전한 사탄의 몸이 괴물들 무리에 정확히 꽂혔다.
-쿠우웅!
먼지 구름이 피어오르면 괴물들의 시선이 사탄에게 집중됐다.
[나, 나는… 분노, 다아….]형편없이 바닥에 처박혀 있던 분노의 대공이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