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58)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59화
미끼를 물어버렸구만(2)
집 밖으로 나온 김시훈은 지하철을 타고 목동으로 향했다.
과거 강우도 사냥한 경험이 있었던 C급 게이트였다.
‘과거라고 말할 정도로 오래지나지는 않았지만 말이야.’
강우가 트롤을 잡으며 레벨을 올렸던 것은 고작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고 보면 그때 헬하운드를 만난 이후부터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 같네.’
C급 게이트에서 마주친 지옥의 마물.
그를 처치한 이후 레드로즈 길드의 지원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강우는 말 그대로 폭발적인 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다.
‘그나저나 C급 게이트에 왔다는 의미는….’
강우는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목동역 밖으로 걸어 나가는 김시훈을 바라보았다.
그가 C급 게이트로 향하고 있다는 의미는 태수, 설아를 비롯한 모든 파티원들이 20레벨 이상에 도달하여 3차 각성을 마친 상태라는 사실을 의미했다.
‘빠르군.’
그와 비교할 수는 없었지만 김시훈 파티의 성장 속도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빨랐다.
강우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권능으로 최대한 기척을 숨긴 채 김시훈의 뒤를 따랐다.
“안녕하세요.”
“안녕, 시훈 오빠~!”
“반갑소, 시훈 형씨!”
역 밖으로 나온 김시훈은 먼저 도착해 있는 파티원들과 인사를 나눴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어색한 인사가 아닌, 나름 파티간의 정이 쌓인 것처럼 친근한 인사였다.
“…설아 씨는 왜 그러십니까?”
태수에게 다가간 김시훈은 한설아를 돌아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설아는 세상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채 애꿎은 바닥을 발끝으로 긁고 있었다.
태수는 김시훈의 어깨를 살짝 붙잡고 한설아에게서 떨어뜨리며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최근 강우 형님이 바쁜 일이 있으셔서 일주일째 집에 아예 안 들어오고 있다는 것 같소.”
“아….”
김시훈의 입에서 짧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는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설아 씨는 강우 씨에게 마음이 있으니까.’
어지간히 멍청하지 않다면 그녀의 행동을 조금만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사냥 중 쉬는 시간에도 강우의 말을 자주했고, 그에 대해서 말할 때는 항상 뺨을 붉히며 즐겁다는 듯이 말했다.
‘강우 씨가 일주일이나 집을 비웠다라….’
그는 고레벨 플레이어였다.
일주일 정도 집을 비울 이유는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아예 연락이 안 되시는 겁니까?”
“아니, 그건 아닌 것 같소. 매일 문자도 하고 전화도 가끔 한다고 하는데 무슨 일인지 몸을 움직일 수 없으신 상황이라고 하오.”
“흠…. 그럼 게이트 안에 계신 건 아니네요.”
당연한 얘기지만, 게이트 안에서는 전파가 터지지 않았다.
게이트 안과 밖에서 서로 연락하기 위해서는 마석을 사용해서 만든 마도구가 별도로 필요했다.
“끄응. 물어봐도 대답을 안 해주신다고 하오.”
“하하…. 그렇다면 저렇게 침울해할 만하겠네요.”
김시훈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한설아를 바라보았다.
“설아 언니~ 너무 침울해 있지 마. 강우 오빠도 사정이 있겠지.”
“하아. 그러시겠지….”
한설아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발끝으로 땅을 긁으며 중얼거렸다.
“혹시 내가 해주는 요리에 질리신 건가…? 아니면 설마 다른 여자라도….”
되도록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감이 커져갔다.
그와 만난 기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 짧은 사이에 그녀의 일상은 강우가 없었던 시절을 떠올릴 수 없게 만들 정도로 많이 바뀌어버렸다.
이렇게 침울해하고 있는 것은 그녀만이 아니었다.
집에 홀로 남겨진 에키드나의 경우 지금 그녀보다 상태가 훨씬 심각했다.
“언니랑 강우 오빠 같이 산다고 했지?”
“으, 응.”
“흐흐. 혹시 오빠가 더 이상 참기 힘들어서 나가 있는 거 아니야?”
“참기 힘들다고?”
“강우 오빠도 팔팔한 청춘이잖아. 언니처럼 예쁜 사람이랑 한 지붕 아래 있으면…. 으흐흐. 오빠의 네오 암스트롱 제논….”
“거기까지.”
한설아를 신나게 놀리고 있는 은비의 머리를 김시훈이 가볍게 쥐어박았다.
그는 산뜻한 미소를 지으며 한설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은비 말은 신경 쓰지 마세요. 강우 씨도 사정이 있으실 겁니다. 일단 저희와 달리 고레벨 플레이어시잖아요.”
“아, 예. 그렇겠죠….”
“저희도 강우 씨와 같은 자리에 서기 위해서는 얼른 사냥을 해서 레벨을 높이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아….”
침울해져 있던 한설아의 표정에 의욕의 불씨가 타올랐다.
그녀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김시훈의 말을 긍정했다.
“그럼, 들어가 보죠.”
김시훈은 그렇게 말하며 C급 게이트 입구로 향했다. 태수와 설아, 은비가 그의 뒤를 따라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끄응.”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강우는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침음을 흘렸다.
‘뭔가 묘하게 죄책감이 드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막상 이렇게 그녀가 침울해 하는 모습을 보니 묘한 죄책감이 밀려왔다.
‘에키드나는 상황이 더 심할 거고.’
한설아야 그렇다 치더라도 에키드나는 강우에 대한 의존증이 상당히 심했다.
그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주 연락을 해줬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날수록 효과가 희미해지는 것 같았다.
‘빨리 끝내고 싶은 건 이쪽도 마찬가지라고.’
강우는 게이트를 향해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기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김치찌개를 먹지 못한 지도, 편안한 침대에 누워 잠을 자지 못한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사람이라는 게 있다가 없으면 더 괴롭다고 했던가.
만 년 만에 간신히 맛본 일상이라는 쾌락을 스스로 억제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다고 미끼를 뿌려놓고 낚싯대를 내팽개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방심은 치료제가 없는 독이었다.
안일하게 김시훈에게서 떨어져 있다가 그를 잃기라도 한다면 그만큼 멍청한 짓은 없었다.
“…갈까.”
강우는 입구에서 간단한 절차를 마친 뒤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 * *
-쿵!
“크르르르르!!”
“크으! 거 힘 한번 무식하게 센 놈이구만!”
트롤이 휘두르는 거대한 몽둥이를 방패로 막아낸 태수의 입에서 침음이 흘러나왔다.
“하압!”
-콰직!
태수가 자신의 상반신만 한 방패를 땅에 내려찍자 트롤의 다리 부분의 땅이 움푹 들어갔다.
사나운 기세로 태수를 공격하던 트롤의 몸이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설아 씨!”
“예!”
트롤이 중심을 잃은 것을 확인한 김시훈이 재빠르게 땅을 박찼다.
그가 보낸 신호에 설아는 준비해 둔 마법을 외쳤다.
“부스트!”
짧은 시동어와 함께 설아의 몸에서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와 김시훈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트롤을 향해 달려가는 그의 움직임이 확연하게 빨라졌다.
김시훈은 몸을 낮게 숙이며 거칠게 진각을 밟았다.
묵직한 소리와 함께 그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땅에 새겨졌다.
-촤앙!
‘잠룡검법 제2초식 비룡일섬.’
진각을 통해 전해진 힘이 발을 타고 그의 전신에 퍼져나갔다.
김시훈은 그 힘을 이용해 허리를 비틀며 단전 안에 담긴 내공을 끌어올렸다.
비룡일섬(飛龍一閃).
호수에 웅크리고 있던 용이 순식간에 하늘로 솟구쳐 오르듯 아래에서부터 휘둘러진 그의 검이 트롤의 몸을 길게 갈랐다.
무신 천태황의 영혼을 통해 받아들인 검법이 김시훈의 몸을 통해 현세에 펼쳐졌다.
-촤악!
“크어어어어!!”
종아리에서부터 겨드랑이까지.
몸의 반 이상이 갈라진 트롤이 고통에 찬 괴성을 내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무식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몬스터답게 몸이 반으로 갈라져 있음에도 함부로 다다갈 수 없을 정도로 난폭하게 몸을 비틀고 있었다.
“라이트닝 스피어!”
하지만 아무리 난폭하게 몸을 비틀고 있다고 하더라도 원거리 공격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은비가 쏘아낸 뇌전의 창이 트롤의 가슴을 정확히 꿰뚫었다.
“크어어어어.”
바닥에 쓰러진 채 미친 듯이 몸을 비틀던 트롤이 이내 입에서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쓰러졌다.
“후우. 역시 C급 몬스터는 강하네요.”
“전에 잡던 리자드맨 놈들은 5마리 이상도 거뜬했는데 이놈들은 3마리만 넘어도 위험할 것 같소.”
태수는 트롤의 공격을 막은 손이 저릿한지 연신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말했다.
“그래도 한 달도 되지 않아서 트롤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레벨을 올린 게 어디입니까.”
“하하하! 이게 모두 시훈 형씨 덕분이요. 햐… 파티를 짤 때부터 딱! 느낌이 오기는 했지만 설마 한 달도 안 돼서 C급 게이트에 올 줄은 몰랐소.”
태수는 자신이 트롤을 잡은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호들갑을 떨며 외쳤다.
“저도 여러분이 없었다면 이렇게 빨리 C급 게이트에는 올 수 없었을 겁니다.”
김시훈은 특유의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빨리 마석을 채취하고 이동하죠.”
“아, 트롤의 심장에 쪽에 고인 피는 회복약 재료로 비싸게 팔린다고 했으니 그것도 채혈해 가요.”
김시훈 파티는 가뿐하게 처리한 트롤의 시체에서 마석과 피를 채혈하고는 다음 사냥감을 찾아 이동했다.
“호오.”
그 모습을 숨어서 지켜보고 있던 강우의 눈이 반짝였다.
‘확실히 전보다 성장했어.’
파티의 움직임 자체가 달랐다.
서로의 역할을 정확히 인지하고 그에 맞춰서 움직이는 모습에서는 노련미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설아가 회복만 가능했으면 좀 붕 떴겠지만 그것도 아니고.’
원래 너무 강한 파티에서는 힐러의 위치가 약간 애매해졌다.
파티가 너무 강한 탓에 상처 자체를 거의 입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한설아는 힐러와 버퍼, 두 가지 역할을 모두 수행할 수 있는 전천후 서포터였다.
힐러가 필요 없을 정도로 강한 파티에 섞여 있어도 전혀 위치가 애매하지 않았다.
‘내가 버스를 태워줄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네.’
강우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김시훈 파티의 뒤를 따랐다.
‘그건 그렇고.’
강우는 주변을 살피며 쯧 하고 혀를 찼다.
“슬슬 입질이 올 때가 됐는데….”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소환 계획까지 남은 시간이 머지않았으니 그들도 초조해져 있을 것이다.
먹음직스러운 미끼를 향해 참지 못하고 달려들기 충분한 시간.
강우는 주시자의 권능을 사용해 김시훈 파티의 주변을 살폈다.
‘응?’
그때, 강우의 권능에 두 사람이 김시훈 파티를 향해 접근하는 것이 느껴졌다.
목동 C급 게이트가 인기 없는 사냥터도 아니었으니 다른 파티와 우연히 마주치는 것 자체는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트롤을 단 한 방에 처리하고 접근하고 있어.’
그들을 김시훈 파티에게 접근하는 사이 마주친 트롤 두 마리를 각각 한 방에 썰어버리고는 마석조차 채취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김시훈 파티를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이건….”
강우의 눈이 반짝였다.
일주일의 기다림이 보상 받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미끼를 물어버렸구만.”
강우는 입술을 핥으며 이제 막 두 사람과 마주친 김시훈 파티의 뒤를 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