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583)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외전 64화
몽마(夢魔)의 우리 (1)
-치이이이익!
고기가 기름에 튀겨지듯 구워질 때 나는 더없이 맑은소리가 주방에 울려 퍼졌다.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워, 냄새 좋다. 뭔 고기야?”
오늘은 연인들보다 늦게 일어난 강우는 거실 전체에 냄새에 배를 긁적이며 방에서 나왔다.
프라이팬에 고기를 굽고 있던 한설아가 방긋 웃었다.
“오늘은 투플러스 등급 한우 안심으로 스테이크를 만들어 드리려고요.”
“크으. 미쳤다.”
투플러스 등급 한우 안심이라니.
예전이었다면 꿈에도 꾸지 못할 고가의 식재료였다.
“헤헤. 요즘 힘쓰실 일이 많으시잖아요. 좋은 고기 먹고 기운 차리시라고 제가 샀어요.”
“임자아아아!”
강우는 고기를 굽고 있는 그녀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최근 차연주가 리리스에게 붙잡혀 사실상 같이 살게 되면서부터 체력을 소모할 일이 전보다 많아지기는 했다.
“어, 어머? 고, 고기 타요, 강우 씨.”
“흐흐. 괜찮아.”
지금 고기가 문제인가.
임자의 사랑스러운 마음 씀씀이에 보답해주는 것이 더 중요했다.
“대낮부터 지랄 말고 얌전히 앉아 인마.”
식탁에 앉아 있던 차연주가 날카롭게 눈을 뜨며 그를 노려봤다.
강우는 한설아의 등에 찰싹 달라붙은 채로 씩 입가를 올렸다.
“크흐흐. 부러운 거냐?”
“부, 부럽긴 개뿔!”
“이리와, 우리 연주도 한 번 안아줘야지.”
“꺼져 이 새끼야!”
“하아. 어젯밤에는 그렇게 귀엽더니….”
아련한 눈빛으로 어젯밤의 기억을 떠올렸다.
리리스나 한설아처럼 함께 잠자리를 가진지 오래되지 않은 탓일까, 침대에서의 차연주는 숨이 턱 막힐 정도의 귀여움을 보여주고는 했다.
‘그 장면을 보여주지 못하는 게 한이네.’
보여주면 진짜 대가리 깨짐.
“한 일곱 번쯤 했을 때는 오빠라고 불러줬는데….”
“씨, 씨발! 안 닥쳐?!”
“흐흐흐. 자, 우리 연주도 이리와.”
“아! 꺼지라고 진짜!”
말로는 쌍욕을 퍼부으며 꺼지라고 해도 막상 다가가서 끌어안아 주자 밀쳐내지 않고 조심스럽게 허리에 손을 올리는 것이 바로 차연주의 매력이다.
“…스 해 줘.”
새빨갛게 얼굴을 붉힌 차연주가 고개를 푹 숙이며 웅얼거렸다.
“엉?”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를 바라보자.
“키, 키스해 달라고! 나만 아침에 못 했단 말이야!”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
‘아, 진짜.’
우리 연주 너무 귀여워서 어쩌냐.
연주만이 아니다.
한설아도, 리리스도.
같이 지내면 지낼수록 점점 더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미칠 것 같았다.
‘오래 사귀면 서로 질리게 된다는데.’
그녀들에 한해서는 절대 그런 일 따위는 없으리라 맹세할 수 있었다.
“그래, 우리 연주가 해달라는데 해줘야지!”
“씨, 씨발! 키스하지 마!”
“아니 방금 해달라며.”
“아, 아무튼 하지 마!”
뒤늦게 부끄러워졌는지 강우를 밀어내며 빼액 소리쳤다.
하지만 이제 발록과 비등한 힘을 가지게 된 강우를 그녀의 힘으로 밀어낼 수는 없었다.
그녀의 손목을 잡으며 가볍게 입술을 겹쳤다.
“어머, 어머. 이제 연주도 꽤나 대담해졌네~♬”
리리스는 지금 상황이 참을 수 없이 즐겁다는 듯 손뼉을 치며 환하게 웃었다.
“흐응! 고기! 설아 어서 고기 먹고 싶어!”
평소라면 자기도 키스를 해달라며 달라붙었을 에키드나였지만, 눈앞에서 구워지고 있는 소고기의 자태에 푹 빠져버렸는지 양손에 나이프와 포크를 든 채 흥분에 찬 콧김을 내뿜고 있었다.
“호호. 조금만 기다리렴.”
한설아는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스테이크를 테이블 위에 올려뒀다.
“잘 먹겠습니다~”
시끌벅적한 소란과 함께 평소와 같은 식사 시간이 이어졌다.
누가 요리에선 식재료의 차이가 그냥 깡패라고 했던가.
최고 등급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게 안심을 한 점 입에 넣자마자 입안에서 살살 녹아내렸다.
같이 곁들여 먹으라고 설아가 직접 만들어준 소스도 고기와 환상적으로 어울렸다.
‘역시 돈이 좋긴 해.’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그렇게 식사가 끝난 후.
설아를 도와 뒷정리를 하고 있었을 때,
“음? 뭘 보고 있는 거야?”
한설아가 스마트폰의 화면을 멀뚱히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으음. 제 카드 등록하고 있어요. 인터넷 쇼핑은 별로 해본 적 없어서 좀 어렵네요.”
“옹. 뭐 사려고 하는데?”
설아가 인터넷 쇼핑이라니.
리리스 뺨칠 정도로 기계치인 그녀에게 있어 상당히 드문 일이었다.
“음….”
한설아는 잠시 뜸을 들이며 말끝을 흐렸다.
“강우 씨.”
“엉?”
“강우 씨는 개랑 고양이 중에 뭐가 더 좋으신가요?”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는 것?”
“호호호.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녀는 입가를 가린 채 흥분에 찬 눈을 번들거리며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 속에 뭔가 건드려서는 안 될 심연이 도사리고 있는 듯한 감각.
“으음. 역시 강우 씨한텐 개보다는 고양이가 더 어울릴 것 같단 말이죠.”
“아니, 그러니까 뭔데.”
왜 갑자기 나한테 개가 어울리니 고양이가 어울리니 고민하고 있는 거야.
“강우 씨.”
“어, 엉?”
“사랑해요.”
한설아가 강우를 꼬옥 끌어안으며 그의 얼굴에 마구잡이로 키스를 퍼부었다.
이대로 있으면 안면 내출혈로 사망하는 게 아닐까 격렬하게 키스를 날린 그녀는 더없이 행복하다는 미소를 지으며 눈을 꼭 감고 강우를 끌어안은 팔에 힘을 더했다.
“나도 임자를 사랑… 아니, 잠깐. 말 돌리지 말고. 대체 그걸 왜 물어봤냐니깐?”
“앗! 벌써 시간이 이렇게! 오늘은 연주랑 에키드나랑 같이 옷 사러 나가기로 했어요!”
한설아는 노골적으로 대답을 회피하며 입고 있던 에이프런을 벗고는 호다닥 방 안으로 들어갔다.
“…….”
홀로 주방에 남은 강우는 불안한 눈빛으로 달려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왠지 알 수 없지만, 순간적으로 그녀의 뒷모습에 비릿하게 웃고 있는 레이라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에이, 아무것도 아닐 거야.’
우리 착한 임자가 그럴 리 없어.
응응.
그렇고말고.
“으응? 왜 그렇게 표정이 안 좋으세요, 마왕님?”
“어? 아냐. 아무것도. 그나저나 다 쇼핑 간다는 것 같은데 리리스 넌 안 가?”
“호호. 저는 마왕님에게 게이트 이상 현상을 보고드려야 하니까요.”
“아.”
그러고 보니 아직 오늘 보고를 받지 않았다.
“쩝. 그럼 빨리 보고 끝내고 리리스 너도 같이 가.”
마음 같아서는 지금 바로 보내주고 싶었지만, 매일 하는 게이트 이상 현상 체크를 빼먹을 수는 없었다.
이런 건 보통 한 번 빼먹으면 꼭 큰 사건이 터지기 마련이었으니까.
“후훗. 네, 마왕님.”
리리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오늘 준비한 서류를 내밀었다.
“음.”
빠르게 체크해 봤지만 역시 오늘도 별다른 이상은 없어 보였다.
그때, 함께 서류를 검토하던 리리스가 가늘게 눈을 뜨며 말했다.
“마왕님. 이건 아직 게이트 이상 현상인지 아닌지는 정확하게 파악이 안 된 정보가 하나 있는데요.”
“뭔데?”
“최근 대구 쪽에 있는 B급 게이트에서 다수의 사망자가 나왔어요.”
“음. 그래서?”
플레이어가 게이트에 들어갔다 죽는 건 굳이 보고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흔한 일이다.
“근데… 그 상태가 좀 이상해요. 숫자도 평소 사망자보다 훨씬 많고요.”
이건 좀 흥미가 가는 정보였다.
“어떤 식으로 이상한데?”
“다들 미라처럼 삐쩍 말라비틀어진 채 죽었어요.”
“말라비틀어져서 죽었다고?”
변종 슬라임이나 흡혈귀와 같은 몬스터가 출몰하기라도 한 건가?
“예. 완전히 뼈에 살가죽이 달라붙은 채 죽었다고 해요.”
“음.”
“그리고 수상한 점은 그것만이 아니에요.”
“또 뭔데?”
“피해자가 모두 남성이에요.”
리리스가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남녀 혼성 파티로 들어가도 남성 플레이어만 납치당해서 죽였다고 하더라고요.”
“허.”
확실히 수상쩍은 상황이다.
“그런데 잠깐. 이게 게이트 이상 현상이 아니라고?”
이 정도 일이면 게이트 이상 현상이 아니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리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이 사건의 원흉은 게이트 ‘밖’으로 나오지는 않은 것 같아요.”
“아.”
강우는 대충 상황이 이해됐다는 듯 짧은 탄성을 흘렸다.
‘게이트 이상 현상은 외계의 존재가 게이트 밖으로 나왔을 때 감지할 수 있으니까.’
게이트는 일종의 외계와 지구를 잇는 일종의 ‘통로’ 역할이다.
즉, 상대가 그 통로에 계속 남아 있을 경우 감지가 되지 않는다.
“그러면 자신의 영역을 만들고 그 밖으로는 나오지 않는 종류의 몬스터일 가능성이 높겠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렇단 말이지.”
강우는 가늘게 뜬 눈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면 사실 조사할 이유가 없긴 한데.’
지구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 외계의 존재까지 찾아 죽일 여유는 없었다.
애초에 게이트 밖으로 나오는 외계의 존재만 해도 모두 추적이 불가능한 상황인데 게이트 밖으로 나오지 않는 존재까지 일일이 찾아 조사할 인력이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리리스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 짧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게이트에 출입한 플레이어만이 아닌 신원 미상의 시체까지 발견되고 있어요.”
“신원 미상의 시체라고?”
뭔 소리야 그건 또.
“예. 게이트에 출입기록도 없고, 애초에 DNA기록이나 지문을 조사해 봐도 조회조차 되지 않는 시체가 다수 발견됐어요.”
“…….”
강우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플레이어는 협회에서 자격증을 획득하는 과정에 의무적으로 DNA나 지문을 등록할 의무가 있었다.
아니, 굳이 플레이어가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지문 정도는 국가에 등록이 되어 있다.
‘외국인… 일 가능성은 없겠지.’
외국인이라고 해도 일단 대한민국 내의 게이트에 출입하기 위해서는 관련 자격증이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신원 확인은 당연히 하는 거고.
신원을 속이고 은밀하게 게이트 내부에 진입한 걸 수도 있지만, 그런 플레이어가 한두 명도 아니고 다수가 있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확인은 해보자.
“외국인 플레이어일 가능성은?”
“이미 외국인 플레이어 데이터베이스도 조사해봤어요. 외국인 플레이어도 아니에요.”
역시 리리스가 이런 사소한 것을 놓칠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외국인도, 한국인도 아닌 신원 미상의 시체가 발견됐다면.
-나는 이슈왈다의 7성 사도 김태호라고 한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기억.
진리의 사원에서 마주친 또 다른 세계의 인간들.
“…이건 조사할 필요가 있겠네.”
다른 세계의 인간까지 발견된 이상,
게이트 밖까지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조사대를 파견할까요?”
“아니.”
강우는 고개를 저었다.
드륵.
의자를 끌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가 직접 갈게.”
안 그래도 요즘 종마 노릇하며 이리저리 쥐어짜이(?)느라 몸이 축나고 있었는데, 좋은 기회였다.
‘씨바 것 백수 탈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