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593)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외전 74화
나 홀로 집에 (4)
“어차피 할 일도 없을 테니 같이 PC방이나 가….”
현관문을 열고 신발을 벗으며 들어오는 차연주의 시선이 거실로 향했다.
“…어?”
눈으로 흘러들어온 정보를 머릿속에서 받아들이지 못한다.
난장판이 된 거실.
나체로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린 채 괴성을 지르고 있는 강우.
대형 TV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살색의 향연.
마치 태초에서 비롯된 가장 끔찍한 악의와 살의가 겹쳐 만들어진 참혹한 악몽 속에 들어온 감각.
“…….”
“…….”
강우와 차연주의 시선이 허공에 교차했다.
대화는 없었다.
버퍼링이 걸린 인터넷 방송처럼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본 채 정지했다.
“오, 강… 우?”
희미한 이성의 끄트머리를 붙잡은 차연주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번쩍 들어 올려져 있던 강우의 팔이 천천히 내려갔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해야.”
“뭐가 오해야 이 새끼야.”
“다 설명할 수 있어.”
“지껄여봐.”
“…….”
강우는 굳게 입을 다문 채 잠시 뜸을 들였다.
대형 TV에서 흘러나오는 요란한 신음 소리가 사고(思考)를 방해한다.
‘지금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
그녀를 이해시키고, 납득시킬 수 있는 유일한 답은─
“프….”
“프?”
“프, 플라잉 프로그.”
“그게 뭔데, 씨발아.”
“아니 그게.”
지금 이 개지랄판을 설명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강우는 절망에 가득 찬 표정으로 차연주를 바라보았다.
“아.”
차연주는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탄성을 흘리더니 스마트폰을 꺼냈다.
찰칵.
지금 강우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무슨…!”
멘탈이 찢어발겨진 상태에서 멍 때리느라 미처 반응하지 못했던 강우가 두 눈을 크게 떴다.
사진을 찍혀 버리고 말았다…!
“그러니까.”
사진을 찍자마자 강우가 그랬던 것처럼 드라이브에 저장을 완료한 차연주는 차갑게 식은 눈빛으로 거실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집을 비우자마자 이런 개지랄을 하셨겠다?”
“여, 연주야.”
“흐, 흐흐흐흐! 재밌네. 아~~주 재미있어 우리 강우? 설아도 엄청 재밌어할 거야. 그렇지?”
“누나. 사랑하는 연주 누나. 내 말 좀 들어봐.”
“응? 존나 잘 듣고, 존나 잘 보고 있는데? 너~무 잘 보여서 문제지. 씨바 와. 회의가 밀려서 돌아오니 설마 내 애인이라는 놈이 거실에서 당당하게 그 짓을 하고 있을 줄은 진짜 생각도 못 했지.”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우리 변태 꼬맹이 새끼 3명으로도 부족했어? 앙?”
“아니요. 언제나 차고 넘치는 만족과 행복을 느끼고 있습니다. 리얼루요.”
“근데 이건?”
척. 팔짱을 낀 채 날카롭게 눈을 뜻 차연주가 대형 TV의 화면을 째려보며 물었다.
“…궁금해서 그랬습니다.”
“호오. 궁금하셨다?”
“아니 진짜라고.”
강우는 그녀들이 자리를 비우고 나서의 상황을 절절하게 설명했다.
솔직히 무슨 말을 하건 이런 모습을 보여 버린 이상 다 구차하고 비참한 변명으로 들릴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 이 지랄을 긍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그래서, 혼자 있을 기회가 거의 없으니까 평소엔 하지 못하는 걸 한번 해보고 싶었다고?”
“예.”
“솔직히 너라면 그 말을 믿을 수 있겠냐?”
“아뇨.”
개쌉소리하지 말라고 했겠죠.
“그치?”
“아니, 근데 진짜라고오오!! 믿을 수 없는 건 솔직히 나도 아는데!”
“그, 그 차림으로 다가오지 마, 새끼야!!”
억울한 표정을 지은 강우가 다가오자 차연주가 얼굴을 붉히며 버럭 소리쳤다.
“우, 우선 그 옷이나 입어.”
그녀는 바닥에 널브러진 옷가지를 주워 강우에게 집어 던졌다.
“…….”
다시금 내려앉은 침묵 속에서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하아.”
차연주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아니, 뭐. 솔직히 존나 믿을 수 없는데. 사실 뭐… 그래,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
집에 혼자 있을 때 뭔가 알 수 없는 해방감이 느껴진다는 건 그녀도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저런 개지랄을 하는 경우는 드물겠지만.
평소 연인들에게 붙잡혀 생활하는 강우의 입장에서 꽤나 큰 스트레스를 느꼈을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만약 거짓말이라고 해도 뭐… 이게 잘못된 일은 아니니까.”
외도(外道)를 한 것도 아니고 그냥 다 큰 성인이 성인 동영상을 본 것에 불과하다.
썩 기분은 좋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매몰찬 비난을 쏟아낼 수도 없는.
그냥 그 정도의 일이었다.
“그, 그렇지?”
강우는 한결 환해진 표정으로 물었다.
방긋.
차연주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근데 나 혼자만 그렇게 생각한 걸 수도 있으니까 네가 아주 죽고 못 사는 임자한테도 한 번 물어보자.”
“연주 누나아아아아아아!!!”
강우는 재빠르게 달려와 그녀의 다리를 붙잡았다.
마음 같아서는 그녀가 들고 있는 스마트폰을 억지로라도 뺏고 싶었지만, 드라이브에 저장된 이상 그럴 수도 없다!
‘아이디랑 비밀번호만 알았더라도…!’
그녀는 강우가 힘으로 스마트폰을 빼앗아갈 위험을 이미 생각해둔 듯, 드라이브에 사진을 저장한 후에 로그아웃을 해버렸다.
아무리 강우라 해도 그녀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억지로 끄집어낼 수는 없었다.
“……히.”
자신의 발에 달라붙은 채 애처로운 눈빛으로 올려다보는 강우의 모습에 차연주의 입꼬리가 씰룩 올라갔다.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감각!
간지럼을 태우듯 서서히 등골을 타고 퍼지는 전율!
“이히히히히히히!!”
바짓가랑이를 붙잡은 채 애원하는 강우를 내려다보며 실성한 것처럼 웃음을 흘렸다.
“아아, 이런 기분이었구나?”
어째서 그토록 강우가 자신을 놀렸는지 조금이지만 이해가 됐다.
“여, 연주 너, 너 설마….”
“후, 후후후. 후후후후후후! 그래, 이 새끼. 이제까지 좋다고 실컷 날 놀렸었지?”
차연주의 눈빛이 강렬한 분노로 이글거렸다.
사납게 입술을 혀로 핥은 그녀는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강우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우리 강우한테 무슨 명령을 해볼까?”
“…명령?”
“후후후후! 진짜 몰라서 그런 표정을 짓는 건 아니겠지?”
으드득.
이제까지 강우에게 놀림을 당하면 얼마나 부끄러웠던가!
마음속에 차곡차곡 담아왔던 분노가 터질 듯 끓어올랐다.
“크윽.”
강우는 입술을 짓씹었다.
설마 차연주에게 놀림을 당하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히히히히!”
차연주는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두 손으로 입을 덮으며 낄낄거리더니, 이내 소파로 걸어가 척 앉으며 다리를 꼬았다.
“자, 그러면 우선 춤이라도 한 번 춰보실까?”
“뭐, 뭐라고?”
“왜? 진정한 자유를 깨달아서 기뻤다며?”
그러면 그 기쁨을 춤으로 표현해야지.
“어서 춰 봐. 이 누나가 여기서 자~알 봐줄 테니까!”
“…….”
강우는 아연한 표정으로 입을 쩍 벌렸다.
눈앞에서 춤을 추라니!
‘어쩜 이렇게 잔인할 수가!’
사람에게 저런 수치스러운 명령을 내리다니!
‘악마다! 이건 악마야!!’
나도 악마긴 한데!
“흐흐. 뭐 해? 어서 추라니까?”
“…….”
강우는 조용히 입술을 짓씹더니 이내 천천히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배워 본 적도 없는 춤을 무슨 반주도 없이 하려 하니 진짜 죽을 맛이다.
어지간해서는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 그조차 지금은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미칠 듯한 수치심이 밀려왔다.
“푸흡! 꺄하하하하하!! 그게 뭔 춤이야!!”
차연주는 배꼽을 부여잡으며 폭소를 터트렸다.
어찌나 즐거운지 늘씬하게 뻗은 두 다리를 파닥이기까지 한다.
“…….”
강우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지로 삼켰다.
놀릴 때는 잘 몰랐는데, 당해보니 굉장히 빡치긴 한다.
‘빌어먹을.’
설마 다른 연인도 아니고 차연주에게 이런 수모를 겪게 될 날이 올 줄이야!
“푸흐흐흐흐! 자~ 그럼 이제 뭘 시켜볼까나~?”
차연주는 참을 수 없이 즐겁다는 표정으로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는 두 발을 쭉 내밀며 까딱까딱 흔들었다.
“자, 우선 이 누나 발이라도 주물러 봐, 인마.”
“…….”
평소라면 발 마사지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해줬을 일인데, 왠지 이런 상황이 되니까 괜히 더 깊은 빡침이 올라왔다.
“그래. 해줄게. 해주면 되잖아.”
“아앙? 그래라니? 누나한테는 존댓말 써야지?”
차연주는 기세등등해진 표정으로 콧대를 높이며 말했다.
“…….”
강우는 순간 치밀어 오르는 격노를 두 눈을 지그시 감으며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으히히히! 아, 씨바 진짜 개 기분 좋네!!!”
세상 행복하다는 듯 웃음을 흘리던 그녀는 늘씬한 다리를 강우에게 내밀었다.
“자, 자. 얼렁얼렁 주물러 봐.”
“…예.”
강우는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그녀의 발을 잡고 꾹꾹 눌렀다.
“흐읏…! 으. 어으, 시원하다.”
차연주는 자신의 발을 주무르고 있는 강우를 내려다보며 소파 등받이에 편하게 등을 기댔다.
“읏! 야! 조금 더 살살 주물러 인마!”
“…….”
“대답!”
“알았어. 살살 주무를게.”
“어허! 내가 뭐라고 했지? 누나한테 존댓말 쓰라 했어, 안 했어?”
“…살살 주무, 르, 겠습니다.”
“푸흐흐흐! 아~ 너무 좋다~! 그래! 이게 인생이지!”
그녀는 낄낄 웃으며 입술을 핥았다.
웃음소리가 귓가를 울릴 때마다 실시간으로 강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격렬한 분노가 스멀스멀 기어올라 왔다.
“히히히! 오강우 이 새끼!! 내가 그동안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이제 좀 알겠냐?!
“…그동안?”
즐거워하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던 강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무언가 중대한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는 듯한 감각.
터질 듯한 분노로 혼란스러운 머릿속에서 잊고 있던 중요한 사실을 끄집어냈다.
“아.”
그러고 보니.
‘나도 있잖아?’
그녀와 함께한 추억이 담긴 사랑의 앨범.
그 앨범 속 한 페이지를 꺼내어 들춘다면 어떻게 될까?
‘아니. 잠깐만.’
생각해 보니 그녀의 무기는 사진 한 장이었고, 자신은 각종 사진부터 동영상까지 풀세트로 무장하고 있다.
즉, 그녀는─
“하.”
애초에 자신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이 간단한 사실을 이제야 떠올리다니.’
당황하긴 진짜 많이 당황했었던 모양이다.
“…….”
강우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발을 주무르던 것을 멈추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엉? 뭐야? 누가 멋대로 멈추….”
차연주는 팍 인상을 쓰며 강우를 쏘아붙이려다 이내 다급히 입을 다물었다.
“어, 그.”
갑자기 분위기가 바뀐 강우의 모습에 움찔 몸을 떨었다.
“왜, 왜 그렇게… 무서운 표정을 짓는 거야… 요?”
오들오들.
차연주의 등골을 타고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