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604)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외전 85화
막간
“아, 아으.”
흥건히 바닥을 적신 핏물.
퀭한 눈두덩이에서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중년의 사내가 비참하게 바닥을 기었다.
정갈하게 빗어 넘겨져 있었던 회색 머리칼은 한 올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뜯어져 휑하니 머리가 드러났다.
벌레처럼 바닥을 기고 있는 그의 몸은 만신창이라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
사지는 기괴한 방향으로 뒤틀려 있었고, 피부는 찢겨져 근육과 지방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살아있는 것이 기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처참한 모습.
그런 사내를 아무런 감정이 담기지 않은 차가운 시선으로 내려다보던 강우는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가늘어지는 눈.
“너희들은 애초에 이 지구의 인간이 아니라는 거지?”
툭툭, 바닥을 기고 있는 살바토르의 옆구리를 발끝으로 치며 물었다.
“그, 그렇, 다.”
뻐억!
공을 차듯 옆구리를 후려쳤다.
찢겨 나간 피부에서 핏물이 쏟아졌다.
“커헉!!!”
“새끼가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
처음에야 싸우기 전이었으니 그럴 수 있다 치지만, 줘터지고 나서도 계속 반말을 지껄이다니.
‘머리털이 없어서 그런가?’
반들반들해진 살바토르의 머리를 찰싹 후려쳤다.
동방예의지국 마더 코리아에서 태어나 자란 그로서는 감히 용서할 수 없는 상황.
“안 되겠다. 외계인 새끼한테 예의라는 걸 가르쳐 주지.”
강우는 몸을 숙여 살바토르의 앞니를 손가락으로 잡았다.
“어, 어흐억?”
살바토르의 어깨가 격렬하게 떨렸다.
강우는 손가락으로 앞니를 꽉 쥔 채 외쳤다.
“예절 주입권!!!”
뚜둑.
펜치로 썩은 치아를 뽑아내듯 앞니를 잡아 뽑았다.
“어어어어어억!!!”
터져 나오는 절규와 함께 동방예의지국의 따스한 예절이 살바토르에게 흘러 들어갔다.
“자, 다시. 애초에 이 지구의 인간이 아니라는 거지?”
“흐, 흐렇… 습히다.”
“뭐?”
“흐렇, 흡히다!”
“말을 왜 똑바로 안 해 이 새끼야!!!!”
뻐억!
거칠게 안면을 후려쳤다.
“지금 나 놀리는 거야? 어? 왜 발음을 그따구로 하는데?”
“히, 히빨히….”
앞니가 부러진 살바토르가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뭐야? 지금 내 탓이라는 거야?”
“하, 하힙니다!”
“근데 왜 발음을 똑바로 안 하는데?”
“혹, 혹바로 하헸흡니다!”
“끼요오오오오오오옷!!!”
계속해서 어눌한 발음으로 말하는 살바토르의 모습에 미칠 듯한 분노가 끓어 올렸다!
이것은 분명 자신을 능멸하기 위한 놈의 술수가 분명하다!
“탈태 한 번 더.”
“헤, 헤발!!! 흐, 흐헛만흔!!!!”
“받고 한 번 더 추가.”
이 새끼가 감히 날 놀려?
기껏 머나먼 타지에서 온 외계인에게 예절까지 주입해줬는데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것은 정말 참을 수 없었다.
“흐아아아아아악!!!”
끔찍한 비명을 내지르며 살바토르가 몸을 비틀었다.
‘근데 이러다 이 새끼 뒤지겠다.’
그건 곤란했다.
적당히 손을 떼고 다시 질문을 이어갔다.
“그럼 어떻게 지구에 온 거냐?”
게이트를 타고 넘어왔다면 그들의 움직임이 어느 정도 추적이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추적은커녕 광명교라는 정신 나간 사이비 집단이 퍼지고 나서야 그 존재를 알아차렸다.
“히, 힛흘 하고….”
발음을 알아듣기가 어려웠기에 재생의 권능으로 대충 치아만 재생시켰다.
“쿨럭! 쿨럭! 허억, 허억. 비, 빛을 타고 들어왔습니다.”
“뭐라고?”
빛을 타고 왔다는 건 또 무슨 개소리야.
“아카르트 님의 은총을 받은 자들은 그분의 힘을 빌려 빛과 동화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 그렇게 빛과 동화하여 지구로 들어왔습니다.”
“뭔 씨발.”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이러니까 추적이 안 되지.’
신체를 빛으로 바꿔 게이트를 넘어온다면 대체 무슨 수로 추적을 하란 말인가?
‘위키 홀릭을 추적할 수 없었던 것도 이런 이유였겠군.’
무슨 유령처럼 형체도 없는 빛으로 변해 날아다닌다면 사실상 추적은 불가능하다.
“근데 니 새끼는 왜 빛으로 변신해서 안 튄 거냐?”
물론 빛으로 변신한다고 해도 이미 주변 전체를 심연으로 뒤덮은 이상 도망은 못 쳤겠지만.
“그, 그건… 아카르트 님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그래서 아까 그렇게 빛을 내려달라 지랄했던 거구만.”
“…….”
싸우려고 하는 줄 알았는데 존나게 튈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잠깐 그러면.’
강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위키 홀릭은 제멋대로 빛으로 변신해서 돌아다녔잖아.’
위키 홀릭은 가능했는데 살바토르는 불가능했다면.
“너… 아카르트의 권속 중에서 어느 정도냐?”
“…예?”
“아카르트 새끼 똘마니 중 몇 순위냐고.”
“새, 새끼라니! 불경한!”
“지랄하지 말고.”
강우는 다시 한번 옆구리를 거칠게 걷어찼다.
살바토르의 입에서 짧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저는… 아카르트 님의 권속 중에선 다, 다섯 번째 서열입니다.”
“다섯?”
그렇다면 적어도 살바토르 윗급의 놈이 넷은 더 있다는 의미.
“하아. 씨바.”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김시훈과 대적이 가능한 수준의 권속이 넷이나 더 있다니.
심지어 서열로 나뉘어 있는 것을 보면 살바토르 윗급은 김시훈에게도 벅찬 강자일 가능성이 컸다.
‘넷 중 하나가 위키 홀릭이라 치면.’
셋의 정체는 아직 오리무중이다.
“윗 서열에 있는 놈들에 대해 말해봐.”
“그, 그건.”
살바토르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 저도 잘 알지 못합니다.”
“위키 홀릭은?”
“위키 홀릭…?”
“아, 그 황금색 사자 새끼 말이야.”
“모, 모르겠습니다. 권속끼리 만날 일은 거의 없어서….”
“그럼 서열은 어떻게 아는데?”
“아카르트 님이 저를 칭하실 때 ‘다섯 번째 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래도 구라를 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뭐, 좋아. 그럼 지금 그 아카르트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왜 직접 오지 않지?”
무슨 용사에게 경험치를 퍼주는 마왕도 아니고 직접 오지 않고 쫄따구만 계속 보내는 이유가 대체 뭐란 말인가.
“그분은….”
그 순간, 고통에 비틀거리던 살바토르의 움직임이 갑작스럽게 멈췄다.
“세계를… 천칭이 기울어진 세계를 구원하고 계신다.”
“…….”
살바토르는 감정이 담기지 않은, 기계적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기울어진 천칭에 균형을! 기울어진 천칭에 균형을!!”
“야.”
“기울어진천칭에균형을기울어진천칭에균형을기울어진천칭에균형을.”
“야, 씨발!”
강우는 거칠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살바토르의 몸을 붙잡았다.
뭔가 이상하다.
‘설마 또 자폭하는 건가?’
초조한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살바토르의 몸에서 전과 같은 황금빛은 흘러나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만신창이가 된 와중에도 은은하게 황금빛으로 육체에서 빛이 사라지고 있었다.
“야, 야야야!! 뒤지면 안 돼!!”
강우는 다급하게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낸 후 그의 입에 쑤셔 넣었다.
재생의 권능을 사용해 만신창이가 된 살바토르의 육체를 치료했다.
뒤틀렸던 사지가 제 위치를 찾고 뒤집힌 피부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겉보기에는 멀쩡한 상태가 되었지만,
“기울어진천칭에균형을기울어진천칭에균형을기울어진천칭에균형을.”
“…젠장.”
강우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살바토르는 망가진 기계처럼 아무런 영혼 없는 중얼거림을 반복하고 있었다.
‘뭐가 문제였지?’
앞선 대화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아카르트에 대해 직접 물어본 게 실수였나.”
아무래도 무슨 트리거처럼 아카르트 자신에 대한 정보를 흘리게 되면 이처럼 폐인이 되어버리는 모양.
예전에 악마교에서도 사용했던 방법이었다.
“구원은 개뿔.”
정보를 통제하기 위해 자신의 권속에게 폐인이 되어버리는 세뇌를 걸어버리는 놈이 잘도 세계를 구원하겠다.
‘문제는.’
이 새끼들이 진짜 세계를 ‘구원’하고 있다 스스로 굳게 믿고 있다는 점.
모자라고 무식한 새끼가 신념을 가지는 것만큼 골 때리는 일은 없다.
“…아니.”
생각을 이어가던 강우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 아예 논리가 없는 새끼들은 아냐.’
울부짖던 청년 전도사의 목소리가 머리를 울렸다.
-당신도 아실 텐데요! 끝없는 외계의 침식! 무너진 율법(律法)과 천칭!
그의 말마따나 지금 지구는 외계의 침식에 대해 아무런 내성이 없다.
언제, 어디서 패러사이트와 은하 연맹 같은 적이 나타날지 모른다.
-이 세계의 종말(終末)은 머지않았습니다!! 침몰하는 배나 마찬가지란 말입니다!!
“침몰해 가는 배, 라고.”
어쩌면 그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
지구는 무수한 외계(外界)의 침식에 난도질당해,
머지않은 미래에 종말을 맞이할 수도 있다.
실제로 아카르트의 권속들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이곳에 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랄.”
강우는 차갑게 웃었다.
침몰해 간다면 끄집어 올리면 된다. 끄집어 올릴 수 없다면 물이 들어오지 않도록 모조리 막아버리면 된다.
감히 아무도 지구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짓밟아 터트리면 된다.
‘그러니까.’
구원은 필요치 않다.
“뭐… 무슨 지랄을 해도 그 새낀 결국 기어오겠지만.”
싱가포르 사건에 이어서 광명교 사건까지.
아카르트는 지구에 자신의 권속들을 보내어 ‘구원’을 할 계획을 짜고 있었다.
‘하는 짓거리만 보면 그냥 테러범 새끼들이지만.’
종말(終末) 오기 전, 사람들을 죽여 다른 세계에 환생시킨다는 터무니없는 논리.
그것도 전원 환생은 불가능하고 아카르트의 은총을 받은 몇몇만 환생할 수 있다는 것 같다.
“하여튼 오지랖은 씨발 드럽게 넓어요.”
쯧, 혀를 차며 눈살을 찌푸렸다.
구원이고 나발이고 이쪽에서 알아서 하겠다 하는데 저쪽에서 더 호들갑을 떨어대니 짜증이 치밀어오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에휴.”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리자,
“…우으.”
관중들이 모두 대피하고 휑하니 빈 라이브 회장에 흑갈색 머리칼의 소녀만이 남아있었다.
강우와 눈이 마주친 에키드나는 움찔, 몸을 떨었다.
“다친 곳은 괜찮아?”
강우는 그녀에게 다가가며 상처를 살폈다.
옆구리의 상처가 꽤 심하다.
“자, 마셔.”
어느새 말끔하게 상처가 사라진 손가락을 다시 물어뜯어 피를 냈다.
“…강우.”
에키드나는 머뭇거리는 표정으로 강우를 올려다보았다.
“빨리 안 마시면 다 사라지니까. 얼른 마셔.”
“으응.”
에키드나가 작은 혀를 내밀어 손가락을 핥았다.
간지럽다.
아카르트의 빛이 아닌, 자기 자신의 사용한 마법에 당한 상처였기에 재생의 권능을 사용하자 금방 상처가 아물었다.
“미안해, 강우.”
말끔하게 상처를 회복한 에키드나는 풀이 죽은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다.
“도망치지 않고… 싸워서, 미안해.”
“…….”
잔뜩 겁에 질린 듯 가늘게 몸을 떨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강우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분명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살바토르의 상대가 되지 않는 것도.
팬들을 버리면 도망칠 수 있다는 것도.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난.”
마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솔직히 잘 이해를 못 하겠어.”
“…강우.”
“얼굴조차 제대로 모르는 놈들을 왜 목숨을 걸고 싸우는지.”
“그건.”
“난, 에키드나 네가 위험에 처할 바에야 그런 놈들은 싹 다 뒤져도 괜찮다 생각해.”
아니, 그녀만 안전할 수 있다면 이 라이브 회장에 모인 수만 명의 사람이 싸그리 몰살당해 뒤져도 상관없다.
“…….”
에키드나는 굳게 입을 다문 채 가볍게 주먹을 쥐었다.
무언가 말하고 싶은 것을 참는 듯 움켜쥔 주먹이 떨린다.
그녀의 머리칼을 상냥하게 쓰다듬는다.
“하지만. 그건 결국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강우?”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에키드나 네가 내 말을 무조건적으로 따를 필요는 없어.”
그녀와 자신은 다르다.
가치관과 생각, 판단, 행동.
서로에게 무엇이 소중한지도 다르다.
그에겐 소중하지 않은 것도, 그녀에겐 소중할 수도 있다.
자신이 다르게 생각한다 해서 그것을 강요할 이유도, 권리도 없다.
“그래도… 조금 더 네 몸을 신경 써 줬으면 좋겠어.”
강우는 잔잔한 미소를 흘리며 에키드나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가, 강우!”
에키드나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흐응! 흐응! 흐응!”
거친 콧바람을 내뿜으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더니 이내 다시 풀이 죽은 표정으로 고개를 떨군다.
‘뭐지?’
조울증인가?
“…고마워, 강우.”
에키드나가 슬며시 옷깃을 잡았다.
“나도… 강우가 젤루 소중하니까. 앞으로는 꼭 안 다칠게.”
“그래.”
“…강우.”
“응?”
“업어줘.”
“엉?”
갑작스러운 그녀의 제안에 강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에키드나는 옷깃을 쭉쭉 잡아당기며 애교를 부리듯 몸을 꼬았다.
“빨리이~ 업어줘어~”
“그래, 뭐. 어려운 것도 아니고.”
강우는 뒤돌아서서 쭈그려 앉았다.
폴짝.
에키드나가 그의 등 위에 올라탔다.
“헤헤헤.”
그녀의 입가에 배시시 미소가 지어졌다.
“강우.”
“응?”
“나는 네 명 낳을래.”
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