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607)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외전 88화
이브 (3)
“무작위로 얻는 특성에 무슨 실력이 있어.”
뭐 손댈 수도, 조작할 방법도 없는 룰렛에 무슨 실력이고 나발이고 어딨단 말인가.
그냥 운이지.
[헤헹!] [이게 다아~ 간절함이 부족하셔서 그래요!] [⁽⁽◝( ˙ ꒳ ˙ )◜⁾⁾]너 진짜 만나면 대가리를 반으로 접어주마.
[호호홋~ 만나실 수 있다면 얼마든지요~]티탄의 율법의 일부 기능을 사용할 수 있게까지 됐는데도 아직 이브와는 직접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찾지 못했다.
이브가 있는 공간은 심연 속 세계처럼 일반적인 공간의 개념과 완전히 동떨어진 장소기 때문.
“후우. 가라, 인마.”
강우는 한숨을 내쉬며 손을 휘휘 저었다.
눈앞에 떠올랐던 메시지창이 손짓에 날아갔다.
[아앗! 오랜만에 연락 드렸는데 벌써 보내시려고요? 아직 특성 확인도 안 하셨잖아요!]“그럼 닥치고 있던가.”
쯧.
가볍게 혀를 차며 【유체 이탈(A급)】이라 적힌 메시지를 클릭했다.
【유체 이탈(A급)】
*육체에서 영혼을 분리하여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영혼 상태에서는 물질을 투과할 수 있으며, 물리력을 발휘할 수는 없습니다.
*영혼 상태에서는 정령계나 아스트랄계와 같은 비물질적인 차원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영혼 상태에서는 영적인 힘이 담긴 공격에 치명적인 피해를 받게 됩니다.
“딱히 특별할 건 없네.”
특성의 이름 그대로 유체 이탈을 할 수 있다는 내용.
‘어딜 조사하는데 쓸 만하긴 할 것 같은데.’
영혼 상태에서는 물질을 투과할 수 있다 하니 어디 복잡한 던전 같은 곳을 탐사할 때는 유용할 것 같았다.
“근데 굳이 이것까지 쓸 필요가 있으려나.”
어차피 주시자의 권능이나 통찰의 권능을 사용하면 어지간한 벽들은 투과해서 보는 것이 가능했다.
얼마 전 발록과 갇히게 된 몽마의 우리 정도에서나 쓸 수 있을 법한 능력.
“쯧.”
역시 예상했던 대로 쓸 만한 능력은 아니었다.
영혼 상태에서 물리력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영적인 공격에 취약해지기까지 한다니 더더욱 쓸 이유가 없다.
“…근데.”
그나마 좀 특이한 거라면.
“정령계랑 아스트랄계는 또 뭐야.”
뭔 놈의 차원이 이렇게 많단 말인가.
[둘 다 지구에서는 진입할 수 없는 차원이에요. 물론 아직은, 말이지만요.]티탄의 율법이 망가지면서 무수한 외계(外界)가 지구에 침식하고 있는 상황.
지금은 갈 수 없는 세계라고 해도 나중에는 어찌 될지 알 수 없었다.
“뭐… 일단 얻었는데 한 번 써보기라도 할까.”
강우는 사무실에 있는 침대 위에 누웠다.
평소 연인들과 함께 큰방을 주로 사용하기에 자주 누워볼 기회는 없었지만, 그래도 가끔 쉴 때 즐겨 사용하는 침대였다.
“어디 보자.”
지그시 눈을 감고 머릿속에서 몸과 영혼이 분리되는 장면을 떠올렸다.
특성을 획득한 순간 어떻게 그 특성을 사용할 수 있는지는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흘러들어오기 때문에 딱히 어렵지는 않았다.
“오.”
유체 이탈을 사용하자 푸르스름한 유령 상태가 되어 공중에 떠올랐다.
고개를 내려 아래를 보니 눈을 감은 채 침대에 누워 있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존나 신기하네.”
자신이 누워 있는 모습을 이렇게 두 눈으로 보게 될 줄이야.
뭔가 신비로운 기분이었다.
영혼 상태가 된 강우는 천천히 날아올랐다.
방 천장에 닿은 몸이 쑤욱 벽을 뚫었다.
‘벽을 넘을 수 있는 건 좋네.’
하지만 그뿐.
벽을 넘으며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다는 것 외에 딱히 쓸만한 구석은 보이지 않는 능력이었다.
“에잉.”
[새로운 특성은 어떠신가요?]“구려.”
솔직히 이게 왜 A급 특성인지 잘 알 수 없을 정도로 별 쓸모가 없었다.
[어쩔 수 없네요. 다음 기회를 노려보죠!] [(۶•౪•)۶]“쩝. 아카르트의 권속이 언제 올지도 모르는데.”
강우는 신경질적으로 머리칼을 쥐어뜯었다.
영혼 상태에서는 물리력을 사용할 수 없다 했지만 자신의 몸 정도는 만질 수 있는 모양.
이걸 보면 다른 영체도 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근데 딱히 귀신같은 게 보이진 않네.”
영혼 상태가 되면 주변에 유령들이 둥둥 떠다니는 것이 보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눈을 씻고 찾아도 자신 외에 다른 영체는 보이지 않았다.
“에휴.”
한숨을 내쉬며 다시 육체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다음 기회를 노려보자는 메시지창을 치우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때,
-쑤욱!
“응?”
푸른 메시지창 너머로 손이 쑥 들어가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벽을 통과했을 때와는 명백히 다른 감각.
무언가를 통과한 게 아니라, 문턱을 넘어 들어간 듯한 감각이었다.
“뭐야 이거?”
강우는 동그랗게 눈을 뜨며 푸른 메시지창 안으로 몸을 던졌다.
“…여긴.”
황량한 공간.
마치 설원에 들어온 듯 끝없이 펼쳐진 새하얀 대지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여긴 또 어디야?”
갑작스러운 상황에 강우는 당황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시스템창 너머에 이런 세계가 존재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전 특성의 설명에 적힌 글귀가 자연스럽게 머릿속을 스쳤다.
*영혼 상태에서는 정령계나 아스트랄계와 같은 비물질적인 차원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비물질적인 차원.
‘아까 지금 지구에서는 정령계나 아스트랄계에 들어갈 수 없다 했으니까.’
그렇다면.
“설마 여기….”
“수, 수호자님?”
새하얀 공간 속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
강우는 그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마치 유리로 만들어진 것처럼 투명한 육체를 지닌 존재가 있었다.
자칫하면 주변 풍경과 구분이 안 될 정도로 투명했지만, 자세히 집중해서 보니 투명한 육체는 인간 여성의 것과 흡사한 형체를 하고 있었다.
강우는 눈을 크게 뜬 채 자신을 부른 존재를 응시했다.
“…이, 브?”
“아앗!! 지, 진짜 수호자님이신가요?!”
이브는 화들짝 놀란 목소리로 펄쩍 뛰어올랐다.
“어, 어떻게 여기 오신 거죠?!”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대체 자신은 무슨 수로 이브가 있는 세계에 들어올 수 있었단 말인가?
“이거 설마 영혼 상태에서 들어올 수 있는 곳이야?”
“아뇨! 그럴 리가요! 아무리 영체라고 해도 이 공간에는 들어올 수 없을 텐데….”
잠시 말끝을 흘리던 이브가 짝, 손뼉을 쳤다.
“아… 그러고 보니 수호자님은 다를 수도 있겠네요.”
“다르다고?”
“예. 율법의 접근 권한이 있으시니까 들어오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즉, 비물질적인 세계에 진입할 수 있다는 유체 이탈 특성의 능력과 티탄의 율법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이 겹치면서 이 세계에 진입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
“와아! 이곳에 저 말고도 다른 존재가 오게 되다니!!”
이브는 밝은 목소리로 폴짝 뛰어올랐다.
“저, 정말… 너, 너무 기뻐요!! 감동이에요!!”
[٩(ˊᗜˋ*)و!!!]눈, 코, 입도 없이 맨들맨들한 그녀의 얼굴 위에 환호하는 이모티콘이 떠올랐다.
강우는 환호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인공지능에도 외롭다는 감정이 있는 건가?’
분명 처음 그녀의 존재를 알게 됐을 때는 이렇게 감정적이지 않았다.
그녀가 이렇게 풍부한 감정 표현을 하기 시작한 것은 분명,
‘바알이 티탄의 율법을 작살내고 나서 부터지.’
단순한 추측에 불과하지만, 티탄의 율법이 망가진 것이 그녀가 이처럼 풍부한 감정을 가지게 된 원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러한 감정은 원래 티탄의 율법을 관리하는 ‘인공지능’에겐 필요하지 않은 요소였을 테니까.
‘인공지능에게 감정이라.’
지난 은하 연맹의 침공 사태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만났던 감정을 지닌 인조인간.
눈물을 흘리며 죽어가던 그의 모습과 이브의 모습이 어째서인지 살짝 겹쳐 보였다.
“여기가 그럼 티탄의 율법이 있는 곳이야?”
끝없이 펼쳐진 새하얀 대지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브는 고개를 훙훙 저었다.
“아뇨, 이곳은 단순히 제가 있는 의식 세계예요.”
“의식 세계?”
“음, 음. 뭐라고 해야 할까요. 아! 비유하자면 약간 관리실? 비슷한 거예요!”
“호오.”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관리실이라고 하기엔 뭐 암것도 없는데?”
“헤헤. 잠시만요.”
이브는 작게 웃더니 가볍게 손뼉을 쳤다.
촤라라라라락!!
그녀의 뒤편에 마치 컴퓨터의 화면과 같은 네모난 화면들이 좌르르륵 떠올랐다.
그곳에는 지금도 실시간으로 복잡한 문자열들이 올라가고 있었다.
“뭐야 저건?”
“티탄의 율법이 기동하는 걸 실시간으로 표시해 주는 거예요.”
그녀는 수백, 수천 개의 화면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플레이어가 레벨을 올리거나, 새로운 특성을 얻거나 하는 그런 것들이 여기에 쫙 표시돼요!”
“아하.”
이제 대충 뭔지 알 것 같았다.
“그럼 저걸 통해서 네가 나한테 연락했던 거네?”
“예!”
이브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화면들을 쭉 훑어보며 물었다.
“근데 지금은 이렇게 가만히 내버려 둬도 돼? 뭔가 계속 숫자나 글자들이 올라가고 있는데.”
“어차피 기본적으로는 티탄의 율법이 다 처리해요. 제가 손댈 수 있는 부분도 많지 않고요. 제 역할은 어디까지나 관리에요.”
이브는 빙글 몸을 돌리며 말했다.
“그럼 계속 여기서 저 화면들만 보면서 지내는 거야?”
왠지 자신을 보곤 환호성을 터트렸던 이브의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갔다.
매일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화면만 봐야 한다면 그도 미칠 듯한 외로움에 시달릴 리라.
“헤헤. 그렇게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외로움이라는 감정 자체가 희미하기도 하고, 여기서 지구에서 일어나는 이런저런 일들을 보는 것도 꽤 재밌거든요.”
“다행이네.”
그래도 마냥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지는 않으니 좀 안심이 되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브와는 서로 협력하는 동업자 관계였으니까.
“그래도 수호자님을 이렇게 직접 만나 뵐 수 있게 된 건 너무 좋아요!!!”
몸을 빙글빙글 돌리며 기쁨을 표했다.
“그렇게 좋냐?”
“그럼요! 이렇게 직접 수호자님과 만나게 될 줄은 진짜 상상도 못 했어요!”
이브는 방방 뛰어오르며 소리쳤다.
(❁´▽`❁)이런 모양의 이모티콘이 그녀의 얼굴에 떠올라 있었다.
이곳에 다른 존재가 들어온 것이 어지간히도 기쁜 모양.
“그래, 나도 이렇게 만나게 돼서 반갑다.”
따스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채 양팔을 벌렸다.
어서 이리와 안기라는 듯 손을 까딱였다.
“아.”
이브는 잠시 주저하는 듯 망설이더니,
“수호자니이이이이이임!!!!”
[♡⁺◟(●˙▾˙●)◞⁺♡]맨들맨들한 얼굴에 이모티콘을 띄우며 도도도 달려왔다!
“이브야!!!”
이렇게 그녀를 직접 만날 날을 얼마나 마음속 깊이 고대하고 있었던가!
“아아! 역시 수호자님은 따듯하신 분이에요!!”
고작 인공지능에게 불과한 자신을 이토록 따스하게 대해주다니!
“수호자님!!”
“이브야!!”
“수호자니이이이임!!!”
“이브야아아아아아악!!!”
강우와 이브는 양팔을 활짝 벌리며 서로를 향해 달려갔다.
산듯하게 불어오는 바람.
이브와의 거리가 점차 가까워진다.
타닥!
경쾌하게 발을 박찬다.
몸이 공중에 떠오름과 동시에,
“수호… 커허어어어어어억!!!”
전신의 체중을 담아 드롭킥을 날렸다.
-쿠웅! 쿵! 퍼덕.
공깃돌처럼 날아간 이브의 몸이 형편없이 바닥을 굴렀다.
“수, 수호자… 님?”
저벅, 저벅.
강우는 그녀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며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정말, 내가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자, 잠깐! 지, 진정! 진정하세요, 수호자님!!”
“나는, 나는… 정말로 궁금해 이브야. 너무 궁금해서 참을 수 없을 정도야!”
호기심 천국!!!
“예? 뭐… 뭐가 궁금하신데요?”
덜덜 몸을 떠는 그녀를 바라보며 강우는 방긋 미소를 지었다.
“정말 네 대가리가 ‘?’ 모양으로 접힐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