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608)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외전 89화
이브 (4)
“으갸갸갸갸갸갸갸갸갸갹!!!!!!”
황량한 대지에 울려 퍼지는 비명소리.
갈고리 모양으로 구부러진 투명한 몸체가 고통에 찬 비명을 터트렸다.
“와, 잘 구부러지네.”
몸이 대체 뭐로 되어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머리통은 무슨 유리 공예를 할 때 사용하는 유리처럼 탄력과 점성이 있었다.
강우는 움켜쥔 그녀의 머리통을 힘을 주어 비틀었다.
“그갸갸갸갸갸갸갸!!! 아, 아파요오오오오오!!! 아파요오오오오 수호자니이이이임!!!”
“뭐? 씨 없는 수박? 비엔나 소시지?”
“잘못 했어요오오오오오오!!!”
강우의 손아귀에 붙잡힌 채 이브는 꽥꽥 비명을 내질렀다.
티탄의 율법을 관리하는 인공지능이라 해도 딱히 전투 능력은 없는지 별다른 저항조차 제대로 하지 했다.
“잘못 했어?”
“네에에에에에에!!!”
“근데 잘못한 걸 알았는데 왜 그랬어??”
“죄송해요오오오오오!!!”
“아니 왜 그랬냐니까?”
“수호자님하고 얘기하고 싶어서 그랬어요오오오!! 권한이 없는 다른 플레이어에겐 메시지를 보는데 제약이 있어요!!!!”
“얘기를 하고 싶어서 그딴 메시지를 보낸 거야?”
“잘못 했어요오오오오오!! 머, 머리가!! 머리가아아아악!!!”
“아니이이이이이!!!! 왜 자꾸 묻는 말에 대답을 안하는데에에에에에에!!!!!”
“자, 잘못 했어요오오오오!!!”
“또!!! 또 대답을 안해애애애애애!!!! 왜 내 말을 자꾸 무시하는 거야아아아아악!!!”
“으갸가가가가각!!! 사, 살려주세요오오오!!!”
“끼요오오오오오오옷!!!!”
이제까지 쌓여 왔던 울분을 풀어내며 이브의 머리를 붙잡고 쭉쭉 비틀었다.
엿가락처럼 늘어진 머리통이 흐물흐물 흔들거렸다.
“후우.”
그렇게 마음속 깊이 담아뒀던 분노를 풀어내고 손을 뗴니, 이브가 바닥에 주저앉아 흐느끼는 것이 보였다.
“흐어어어엉! 죄송해요오오오오!!”
[ ʘ̥﹏ʘ ]훌쩍이는 그녀의 얼굴에 눈물을 흘리는 이모티콘이 떠올랐다.
강우는 픽 웃으며 가볍게 그녀의 머리를 손등으로 쳤다.
“읏.”
“앞으로는 조심하고.”
“예에….”
“그래서, 요즘은 어때?”
“어떻다뇨?”
털썩 땅에 앉으며 물었다.
“지구 상태 말이야. 계속해서 아카르트 놈이 헛짓거리하고 있잖아.”
“아….”
이브는 짧은 탄성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구 자체에는 아직 별문제는 없어요. 수호자님과 다른 플레이어들이 외계의 침식을 대부분 막아내고 있으니까요.”
“이대로 막아내면 뭐 지구가 붕괴하거나 무너지는 일은 없는 거지?”
“예.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듣던 중 좋은 소식이었다.
외계의 침식을 아무리 철저하게 막아내도 지구 자체가 아작나 버린다면 강우 자신도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
“그럼 이대로 계속 잘 막으면 아카르트 놈이 손을 뗄 가능성은?”
자신이 망가진 율법을 대신하는 역할이 된다면, 아카르트가 손을 뗴지는 않을까.
작은 희망을 담아 물었다.
“…….”
이브는 굳게 입을(입이란 게 따로 없지만) 닫은 채 고개를 저었다.
“아마…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저도 자세하게는 알지 못하지만, 아카르트가 율법이 망가진 세계를 가만히 둔 경우는 없다고 들었거든요.”
“씨발.”
강우는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었다.
이미 아카르트와의 일전을 각오해둔 상태긴 했지만, 솔직히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것이 사실.
“다른 티탄들은 대체 뭘 하고 있는데? 왜 그 새끼만 그렇게 날뛰는 거야?”
“음… 대부분의 티탄은 아마 허무(虛無)의 존재와의 싸움 떄문에 움직이지 못하고 있을 거예요. 아카르트의 경우 좀 특별하지만.”
“허무의 존재는 또 뭔데.”
강우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음? 잠깐. 그러고 보니까 예전에 허무의 존재인지 뭔지 들어본 것 같은데.’
왠지 익숙한 이름이다 싶었더니 아주 오래전에 베니고어라는 외계(外界)의 여신에게 들어본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허무의 존재에 대해서는 저도 잘 몰라요. 율법의 밖에 존재하는, 아주 강력한 존재라는 것 외에는요.”
“율법의 밖이라.”
뭔가 크툴루 신화가 떠올랐다.
“그럼 아우터 갓이 그 허무의 존재고, 엘더 갓이 티탄 같은 개념인가?”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비슷하다고 봐도 좋겠네요.”
그런데 정작 지구를 멸망시키려고 하는 존재가 아우터 갓이 아닌 엘더 갓이라니.
뭔가 미묘한 느낌이다.
“아카르트에 대해 다른 건 아는 것 없어?”
이대로 간다면 아카르트와의 결전을 피할 수 없는 것은 기정사실이니, 최대한 정보를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았다.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저도 많은 걸 아는 건 아니에요. 음… 아! 아카르트가 태초(太初)에서 태어난 빛의 힘을 받아들였다는 건 알고 있어요!”
“태초에서 탄생한 빛….”
강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태초에서 탄생한 빛이라면 자신이 지닌 마해와 동급의 힘이 가능성이 컸다.
‘그래서 마해를 무너트릴 수 있는 힘이 담겨 있는 건가.’
쯧,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티탄 중에서도 상당히 강한 편에 속한다고 알고 있어요.”
“바울리보다?”
“바울리는… 티탄 중에서는 거의 밑바닥 자격 미달 수준이에요. 운이 좋아 마해의 씨앗을 얻은 것뿐이죠.”
우리 아빠 왜 욕해요.
“하긴, 그럴 것 같더라.”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바울리가 티탄 중에서 약한 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전부터 하고 있었다.
‘신들한테 졌으니까.’
바울리는 과거 가이아와 태무극, 세라핌을 중심으로 뭉친 신들의 연합에 패배했다.
거기에 더불어 심연 세계에서도 자신에게 개털리고, 바알에게 옮겨가서도 똑같이 육체를 차지 못하고 짓밟혔다.
‘솔직히 병신 맞지.’
뭔 허구한 날 두들겨 처맞는 것 말고는 본 기억이 없다.
“…걱정되세요?”
“응? 뭐가?”
“아카르트를 상대하는 거요.”
이브가 걱정스럽다는 듯 (。•́︿•̀。)이런 이모티콘을 띄우며 물었다.
강우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걱정할 이유가 없다.
“그 새끼가 아무리 날고 기고 뛰고 지랄을 해도.”
승리하는 것은 자신이다.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솟으시는지 모르겠네요.”
“뭐 나중에 그 새끼 대가리 따서 보내줄게.”
“필요 없어요. 아니, 애초에 들고 오지도 못하시잖아요.”
“그건 그렇지.”
낄낄 웃으며 이브 너머에 있는 화면들을 바라봤다.
“그나저나 저걸로 지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볼 수 있는 거야?”
“율법이 망가진 상태라 모든 일까지는 보지 못해요. 음… 제가 볼 수 있는 건 수호자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 정도예요.”
“그래? 어떻게 보는데?”
안 그래도 평소 이브가 자신에게 어떻게 연락하는지 궁금하던 참이었다.
“잠시만요.”
이브는 몸을 돌리더니 화면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방 안의 모습이 비치며 침대에 누워있는 자신이 보였다.
“오, 이런 식이구나.”
“예. 약간 수호자님 주변을 떠도는 카메라처럼 볼 수 있어요.”
“…잠깐.”
그렇다는 건.
“설마… 밤에 임자랑 같이 있는 것도 이걸로 보고 있는 거냐?”
“히히. 매일 엄청나시던데요? 세 분이랑 함께… 으갸갸갸갸갸갹!!!!”
이브의 머리를 잡아 다시 비틀었다.
“앞으로 밤에는 꺼라.”
프라이버시는 챙겨줘야지.
“아아악!! 아, 알았어요오오오오!!!”
이브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음?”
그때, 자신의 방 화면에 누군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에키드나?”
방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에키드나였다.
[응? 강우 자?]에키드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침대에 누워 있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우응… 같이 게임하려 했는데.]침대 옆에 선 에키드나는 손가락을 입술 위에 대고는 침울한 표정으로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가만히 자신을 내려다보던 그녀는 이내 아쉽다는 표정으로 몸을 돌려 방 밖으로 나갔다.
“뭔가 존나 신기한 기분이네.”
이렇게 감시 카메라처럼 누워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굉장히 낯선 기분이 들었다.
한 동안 방에 누워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끼익.
[야, 오강우 좀 물어볼 게 있… 엥? 뭐야? 자냐?]다시 방문이 열리며 차연주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끄응. 어카지….]자신을 깨울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건지 차연주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끝을 흘렸다.
[쩝. 나중에 물어보지 뭐.]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몸을 돌렸다.
[…….]멈칫.
문을 향해 걸어가던 그녀의 발걸음이 멈췄다.
[크, 크흠!]헛기침을 흘리며 주변을 살핀다.
[어… 그, 그러니까.]몸을 베베 꼬며 무언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차연주는 이내 다시 강우 쪽으로 몸을 돌렸다.
두리번두리번.
주변을 둘러보던 그녀는 주춤거리며 강우에게 다가왔다.
[으으.]몸을 베베 꼬며 얼굴을 붉힌다.
조심스럽게 허리를 숙여 자고 있는 자신의 입술에 입술을 겹쳤다.
[헤, 헤헤헤.]실없는 웃음을 흘리며 자고 있는 강우의 뺨을 콕콕 손가락으로 찔렀다.
“어쩌지, 이브야.”
“뭐가요?”
“우리 연주가 너무 귀여워.”
“어쩌라고요.”
옆에서 함께 화면을 바라보고 있던 이브가 퉁명스런 목소리로 답했다.
“하여튼 수호자님도 참 복이 많네요.”
“세상을 구했는데 이 정도는 돼야지.”
만 년 동안(정확히는 구천몇백 년 정도)을 동정으로 썩어 있었으면 이 정도 호사는 누려도 되지 않을까 싶다.
-끼이익.
한동안 강우의 뺨을 콕콕 찌르며 놀던 차연주는 다시 한 번 입술을 맞추더니 이내 방 밖으로 나갔다.
“슬슬 돌아갈까.”
어차피 더 이상 여기 있어봤자 할 것도 없다.
“아, 수호자님. 밖으로 나가는 출구를 활성화시키는데 한 30분 정도 걸려요.”
“엥? 뭐 그런 것도 있어?”
뭔 시골 버스도 아니고 30분이나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
“이 세계는 율법의 관리실이니까요. 들어오신 건 어쩔 수 없지만 나가실 때는 최대한 아무런 영향이 없도록 통로를 활성화시키려고요.”
“아, 뭐.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지.”
비유하자면 컴퓨터에 꽂은 USB를 하드웨어 제거를 통해 안전하게 뽑는 것과 비슷하려나.
어쨌든 안 그래도 반쯤 작살나 있는 티탄의 율법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얌전히 기다릴 필요가 있었다.
“그럼 뭐 하며 30분을 보내….”
다른 플레이어들의 정보나 볼까 화면을 향해 고개를 돌렸을 때,
[어머? 주무시나요, 강우 씨?]자신의 방에 한설아가 들어온 것이 보였다.
“웬일로 내 방이 이리 붐비냐.”
평소 사무용 방에서 일하고 있을 때는 리리스를 제외한 다른 여인들은 거의 찾아오지 않았다.
[흐응….]침대에 누운 강우를 빤히 내려다보던 한설아는 연주와 같이 조심스럽게 입술을 겹쳤다.
“흐흐. 우리 임자도 차암.”
연주에 이어 한설아도 누워있는 자신의 입술을 훔치자 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진짜 다들 이뻐 죽겠어 증말.’
평소 일상처럼 키스를 나누지만 이렇게 또 자고 있는 사이에 몰래 입술을 훔치는 모습을 보니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어머, 많이 피곤하신가?]키스를 해도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강우를 내려다보며 한설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설아는 살짝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강우의 어깨를 흔들었다.
아무리 흔들어도 강우가 일어나지 않자 그녀의 표정이 점차 딱딱하게 굳었다.
“이브야, 임자한테 메시지 좀 보내줘.”
“뭐라고 보낼까요?”
“뭐, 대충 의식 세계에 있어서 30분은 깨어나지 못한다고 전해줘.”
“알겠습니다!”
이브가 키보드를 두드리듯 화면을 조작하자 한설아의 눈앞에 푸른색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휴우.]메시지창을 본 한설아는 가슴 위에 손을 올리고는 안도에 찬 숨을 내뱉었다.
[음… 30분 동안 못 일어나신다면.]잠시 고민에 잠기던 그녀는 이내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짝, 손뼉을 쳤다.
[지금이라면 몰래 할 수 있겠지?]뭘 몰래 할 수 있다는 건가?
“뭘 하겠다는 걸까요?”
“글쎄?”
강우는 이브와 함께 화면에 시선을 집중했다.
잠시 방 밖으로 나갔던 한설아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은,
“잠깐.”
마니악한 취향의 고양이 귀가 달린 헤어밴드와,
“잠깐, 잠깐, 잠깐, 잠깐, 잠까아아아아아아안!!!!!!!”
구슬이 달린 꼬리.
“으아아아아아아아!!!!!”
강우는 이브의 어깨를 거칠게 붙잡았다.
“문 열어!!!!!!”
“예, 예?? 가, 갑자기 왜요?”
“문 열라고 씨바아아아아아아알!!!”
지금, 지금 당장 돌아가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열린다!!
“사, 삼십 분 기다리셔야….”
“아가리 닥치고 열란 말이야아아아아아아!”
지금 빨리 안 돌아가면 다른 게 열린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