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617)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외전 98화
탐욕의 회랑 (3)
“이 양아치 자식.”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거대한 배낭에 회랑의 사자(使者)에게서 뜯어낸 유물을 담고 있는 강우를 바라보며 차연주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헛웃음을 흘렸다.
회랑의 사자를 협박해 받아낸 유물의 숫자는 23개.
기대했던 것보다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오스로에스의 사도들에게 하루 동안 뜯어냈던 유물의 양의 두 배가 넘는 수확을 한 번에 올린 것이다.
“양아치는 그 문지기 놈이 양아치인 거고. 이제까지 받은 유물의 숫자가 딱 다섯 개로 떨어지지 않는 것만 봐도 알잖아?”
회랑의 사자는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처음에는 다섯 개의 유물만 필요하다고 하다가 점차 그 숫자를 늘려 받았을 것이다.
“그런 그렇지.”
“그러니까 내가 한 건 어디까지나 정당방위다, 이 말이야.”
하늘을 우러러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다는 듯 당당하게 말했다.
“아, 응. 그래. 네 똥 굵다 이놈아.”
차연주는 포기했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후훗. 그럼요. 강우 씨는 아무 잘못도 없으세요.”
한설아가 방긋 웃으며 짐을 챙기고 있는 강우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흐흐흐. 역시 임자는 알아줄 거라고 믿고 있었어!”
“하지만… 갑자기 괴성을 지르시는 건… 조금, 그… 보기 그랬어요.”
그녀는 어떻게 해야 강우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말을 해야 할까 고민하듯 조심스럽게 말했다.
“원래 저런 놈들한텐 미친 것처럼 보이는 게 기세를 확 꺾어버릴 수 있거든.”
“으음. 하지만….”
“임자가 싫으면 다음부턴 안 할게.”
“시, 싫다뇨! 전 강우 씨의 어떤 모습도 사랑할 수 있어요!”
“흐흐. 그럼 됐고.”
강우는 고개를 돌려 한설아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춘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배낭이 너무 크니까 아공간에 보관해야겠네.”
역시 파밍 중 최고는 인간 파밍이라고 했던가.
며칠째 두 눈을 부릅뜨며 돌아다녔을 때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던 유물들이 무슨 황금 고블린의 배를 가른 것처럼 벌써 서른 개가 넘게 쌓였다.
“그럼 이제 슬슬 들어가자고.”
류코노스톡을 보관했던 아공간에 배낭을 던져 넣은 강우는 이미 활짝 열려있는 회랑의 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 으.]몸이 반파된 채 죽어가고 있는 문지기를 뒤로 한 채 회랑의 안으로 들어왔다.
“와, 이건 또 뭐야.”
“저, 저게 전부 금화인가요?”
은은한 촛불이 타오르고 있는 복도에는 가장자리를 따라 번쩍번쩍 빛나는 금화들이 쭉 늘어져 있었다.
어떤 곳은 금화가 아니라 아예 금괴 덩어리가 굴러다니고도 있었다.
“탐욕의 회랑이라는 게 이런 의미였나.”
강우는 다소 심드렁한 표정으로 금화가 가득 쌓인 복도를 바라보았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눈이 뒤집힐 만한 광경이었지만, 그에겐 그저 요란한 빛을 내뿜는 장애물들이 복도를 가로막고 있는 것 정도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어차피 돈은 썩어 넘칠 만큼 많으니까 말이야.’
물론 차연주에 비하면 적지만, 그의 재산은 말 그대로 평생에 걸쳐 펑펑 쓰더라도 문제없을 만큼 막대했다.
“가, 강우 씨. 조, 조금만 가져가도… 될까요?”
한설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과거 가난에 허덕이며 살았던 탓인지 그녀의 눈에는 복도의 쌓여 있는 금화가 탐스럽게 보였던 모양.
“굳이 가져갈 필요가 뭐가 있어? 어차피 돈은 충분하잖아?”
차연주 또한 강우처럼 심드렁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하, 하지만. 뭔가 아까워서.”
“헤에, 설아 너 그렇게 안 봤는데 꽤 돈을 밝히는구나?”
“아냐! 솔직히 저걸 보고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 연주 네가 더 이상한 거라고!”
“뭐,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긴 한데.”
솔직히 대부분의 사람이었다면 복도 가득 쌓인 금화를 보고 눈이 뒤집혔을 것이다.
“여기선 참아, 임자.”
“강우 씨….”
“사실 뭐 돈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게 당연하지만.”
강우는 가늘게 눈을 뜨며 복도에 쌓인 금화를 바라보았다.
“보통 이런 곳에서 저 금화를 가져가게 되면 함정 장치가 발동하는 게 국룰이거든.”
“아.”
그제야 한설아는 짧은 탄성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재물에 눈이 멀어 봉변을 당하게 되는 것은 흔해 빠진 클리셰였다.
“제,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흐흐. 돈 걱정할 필요 없어, 임자. 살다가 돈이 모자라면 우리 연주한테 좀 받으면 되니까.”
“이 자식이?”
“우리 연주 누나만 믿고 삽니다, 제가!”
“뭐래, 짜식이. 줄 생각 없거든?”
차연주는 흥, 콧바람을 내뿜으며 고개를 홱 돌렸다.
“뭐… 네가 정~ 필요하다면 조금은 빌려줄게. 단! 정중하게 무릎 꿇고 부탁한다면 말이지.”
“에구, 우리 연주 아주 이뻐 죽겠어.”
“에이 씨, 저리 안 꺼져?!”
강우가 다가가 끌어안으려고 하자 차연주가 그를 밀쳐냈다.
그때,
“강우 님, 여기 좀 보세요.”
“응?”
주변을 살피던 리리스가 강우를 불렀다.
그녀가 가리킨 곳을 보자 처참하게 박살 나 있는 기계장치 같은 것이 보였다.
“이건….”
“누군가 의도적으로 부순 것처럼 보여요.”
그것도 녹이나 먼지가 전혀 없는 것을 보니 파괴된 지 오래된 것 같지도 않았다.
“선객이 있었네.”
강우 일행이 오기 얼마 전, 이곳에 누군가가 지나갔다는 의미.
‘지금 타이밍에 여길 지나갔다면.’
혹시,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히, 히익! 서, 설마!!!”
호로스가 거대한 눈을 껌뻑이며 비명을 질렀다.
아무래도 강우와 같은 생각을 한 모양.
“마, 마왕이 여길 지나간 거 아닙니까?!”
“그럴 수도 있지.”
입구 근처에서 류코노스톡 서식지가 파괴되어있는 것을 봤으니 가능성은 충분했다.
“어서 빨리 여기서 나가야…!”
“시끄러, 인마.”
“삐야아아악!”
호로스의 머리통을 붙잡고 질질 끌고 복도를 걸어갔다.
“속도를 좀 높이자.”
선객이 있다는 것을 안 이상 느긋하게 던전을 구경하며 지나갈 수는 없었다.
강우 일행은 빠르게 복도를 걸었다.
계속해서 밑으로 내려가는 복도를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자.
“여긴 또 뭐야.”
은은하게 촛불이 타오르던 복도에 분홍빛 연기가 들어찼다.
“미향(迷香)이네요.”
리리스가 가볍게 혀를 차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녀의 머리칼이 넓게 펼쳐지더니 복도 안에 가득 찬 분홍빛 연기를 모조리 빨아들였다.
“땡큐.”
“후훗. 이 정도 미향쯤은 제게 아무것도 아닌걸요.”
하긴. 서큐버스 퀸인 그녀에게 있어 미향을 다루는 것쯤은 대수로운 일이 아닐 것이다.
“물욕 다음에는 색욕인가.”
강우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대충 이 ‘탐욕의 회랑’이란 곳이 어떤 곳인지 알 것 같았다.
미향이 걷힌 복도를 거침없이 걸어갔다.
“강우 씨, 저기….”
“여기도 이미 지나갔구만.”
복도 안으로 들어가는 도중 한설아가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관능적인 복장을 입은 여인들의 머리 없는 시체가 나뒹굴고 있었다.
“이것도 죽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아요.”
“거리가 멀지는 않은 모양이네.”
그렇다면 여기서 더 지체할 이유가 없다.
“가자.”
강우는 망가진 함정들을 뒤로하고 계속해서 복도를 나아갔다.
‘여긴 식욕인가.’
계속해서 복도를 나아가자 난장판이 된 음식물들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두 쪽으로 쪼개진 식탁 옆에 요리사 복장을 입은 고양이들의 시체가 보였다.
‘일단 함정을 미리 다 박살 내준 건 개꿀이네.’
복잡한 함정들은 먼저 지나간 마왕이 싹 다 파괴했기에 자신은 그냥 복도를 따라 쭉 걸어가기면 하면 됐다.
“이거 만나면 고맙다고 인사라도 해야겠어.”
낄낄 웃음을 흘리며 다시 복도를 따라 걸었다.
그렇게 수면욕, 권력욕을 테마로 한 복도를 아무 방해도 없이 지나가자,
“또 문이야?”
“그러게?”
처음 들어왔던 문보다는 조금 작은 크기의 문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여, 여긴 시련의 회랑의 입구입니다.”
“시련의 회랑?”
“예.”
강우의 손에 붙잡혀 질질 끌려오고 있던 호로스가 눈을 껌뻑이며 말을 이었다.
“탐욕의 회랑을 지나, 과거의 시련과 마주하여 이겨낸 자들만이 회랑의 가장 깊은 곳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
“이번에 탑에 퍼진 전승의 내용입니다. 저 전승 때문에 많은 악마들과 사도들이 이곳으로 모이게 된 것이지요.”
판데모니움의 마왕도 그중 하나이리라.
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굳게 닫혀있는 문을 바라보았다.
“그럼 일단 여기를 지나가야 한다는 말이지?”
“네, 맞습니다.”
“아까 전에 과거의 시련과 마주하라 했는데, 그건 뭔 소리야?”
“시련의 회랑에 들어가는 순간 과거의 가장 끔찍했던 기억이 떠오르게 된다고 합니다.”
가장 끔찍했던 기억이라.
강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골치 아프네.’
이런 정신적인 공격에는 마해의 불사(不死) 능력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어떻게 할까?”
차연주가 그를 돌아보며 물었다.
“들어가야지.”
여기까지 와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 판데모니움의 마왕이란 놈도 들어간 모양이니까.”
이곳까지는 이어지는 복도는 쭉 일직선으로 이어져 있었다.
벽을 부수고 나간 흔적도 없었으니 판데모니움의 마왕은 이미 시련의 회랑으로 진입했다 생각하는 것이 옳으리라.
“다들 괜찮겠어?”
강우는 리리스와 한설아, 차연주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녀들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씨익 웃으며 시련의 회랑으로 통하는 문 앞에 섰다.
“뭔가 강우 씨가 제일 먼저 이겨내실 것 같네요.”
“저 자식 멘탈 하나는 알아주니까.”
차연주가 쯧, 혀를 차며 말했다.
“과거의 가장 끔찍한 기억이라… 대체 무슨 기억이 떠오를까요?”
“글쎄.”
강우는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저었다.
‘리리스에게 당했던 기억이라도 떠오르려나.’
등골을 타고 퍼지는 소름.
꽤나 끔찍한 경험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시련의 회랑으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
-끼익.
문 사이로 검은 어둠이 흘러나옴과 동시에,
“아.”
의식이 점멸했다.
* * *
“으으.”
한설아는 부르르 몸을 떨며 눈을 떴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이 흘러나왔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식은땀이 턱에 맺혔다.
“…….”
꾸욱.
거칠게 입술을 깨물었다.
과거의 기억.
술에 취한 오빠가 자신과 어머니를 일방적으로 구타하며 난동을 피웠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구역질이 날 것처럼 속이 울렁거렸다.
시야가 흔들리며, 다리에 힘이 풀렸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아.’
현실처럼 느껴질 정도로 생생한 기억에 그녀는 자신의 몸을 끌어안으며 파르르 떨었다.
“일어났니?”
“응. 먼저 일어났어요, 언니?”
“호호호. 나도 조금 전에 일어났단다.”
리리스는 가볍게 웃음을 흘렸다.
미소 짓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평소와 달리 어딘가 서글퍼 보였다.
“…….”
한설아는 굳이 리리스에게 어떤 기억을 떠올리게 됐는지 묻지 않았다.
“연주랑 강우 씨는요?”
“아직 안 일….”
콰앙!
“으아아아아아아!!!! 빌어먹을 악마교 놈들!!!”
그때, 차연주가 벌떡 몸을 일으키며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그녀의 눈을 타고 뚝뚝 눈물이 흘러내렸다.
“연주야, 괜찮아?”
“하아, 하아, 하아. 제길… 기분 진짜 더럽네.”
차연주는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자신의 머리칼을 헝클였다.
그녀에게 떠오른 기억은 과거 동생처럼 아꼈던 길드원이 악마교에 납치당했을 때의 기억이었다.
“…하아.”
끓어오르는 분노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몇 번 주먹을 움켜쥐며 몸을 푸니 어지러움이 조금 가셨다.
“강우는?”
“아직이셔.”
“새끼, 제일 빠르게 일어나니 뭐니 하더니 지가 제일 늦는구만.”
차연주는 피식 웃으며 눈을 감은 채 바닥에 누워있는 강우에게 다가갔다.
“야, 혹시 자는 척하는 거 아니지?”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여기서 좀 기다리자, 연주야.”
“엉.”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한 시간,
“후훗, 마왕님은 잠꾸러기시네요.”
두 시간,
“이 새끼 더럽게 안 일어나네.”
세 시간,
“강우 씨…?”
그리고.
하루가 지났다.
“강우 씨!! 강우 씨!! 일어나 보세요, 강우 씨!!!”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