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622)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외전 103화
판데모니움의 마왕 (1)
“강우 씨!!! 일어나 보세요 강우 씨!!!”
귓가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
걱정과 불안에 휩싸인 그 목소리에 이끌리듯 의식이 깨어난다.
깊은 물 속을 헤엄쳐 올라가는 듯한 감각.
점멸했던 의식이 돌아옴과 동시에,
“우욱!! 우웨에에에엑!!”
참을 수 없는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본능적으로 몸을 돌려 바닥에 구토를 쏟아냈다.
“가, 강우 씨!!!”
한설아가 눈물을 글썽거리며 등에 손을 올렸다.
보드랍고 상냥한 감촉이 옷 너머를 통해 전해졌다.
“야!! 오강우! 괜찮은 거야?!”
“다들 진정하고 일단 떨어지렴. 마왕님이 힘들어하시잖아.”
한설아에 이어 차연주와 리리스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리리스의 말을 들은 건지 자신의 몸을 붙잡고 있던 한설아와 차연주가 떨어졌다.
“허억, 허억, 허억!”
강우는 바닥에 손을 짚은 채 거친 숨을 몰아 내쉬었다.
머릿속이 어지럽다.
시야가 뒤죽박죽 흔들린다.
기억이, 방금 전까지 생생하게 그를 난도질하던 기억의 편린들이 머릿속을 헤집는다.
“아, 으.”
덜덜덜 몸을 떨며 고개를 돌렸다.
눈물을 글썽이며 어쩔 줄 몰라 하는 한설아의 모습이 보였다.
다급히 손을 뻗어 그녀를 잡아끌어 당겼다.
-와락!
“어, 어? 가, 강우 씨?”
“…….”
눈물을 글썽거리던 한설아는 갑작스럽게 강우가 자신을 끌어안자 동그랗게 눈을 떴다.
당황해하는 그녀에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이번에는 차연주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 일어나자마자 뭐 하는 짓이야 인마!”
차연주는 버럭 소리치면서도 그의 손길을 따라 포옥 품에 안겼다.
두 여인을 끌어안은 강우는 다시금 손을 뻗으려고 했다.
“후훗, 그렇게 애타게 찾지 않으셔도 괜찮답니다?”
그때, 허공을 향해 뻗어가는 그의 손을 잡은 리리스가 강우의 몸을 뒤에서 상냥하게 끌어안았다.
“마왕님의 리리스는 여기 있어요.”
귓가에 속삭이는 달콤한 목소리.
녹아내리는 듯한 그 목소리에 혼란스럽던 머릿속이 조금은 진정됐다.
“…조금만.”
세 연인들을 끌어안은 채 메마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조금만 이대로 있어 줘.”
“…….”
“…….”
그녀들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식은땀에 젖은 강우의 머리칼을 쓸어넘겨 주거나, 팔을 끌어 안아줬다.
따스한 온기가 전신을 휘감았다.
질척한 어둠에 휩싸여 있던 의식이 그 온기에 점차 깨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X발.’
치밀어오르는 욕지기를 억지로 삼켰다.
‘트라우마라는 게 이거였구나.’
처음 구천지옥에서 떨어졌을 때의 기억.
비참하고, 처참하며, 처절했던 하루.
“…….”
굳게 입을 다물었다.
트라우마는 그날 하루의 기억으로 끝나지 않았다.
지옥에서의 생활은 하루하루가 끔찍한 악몽이었고, 처절한 사투였다.
마치 주마등이 스쳐 가듯 지옥에서의 나날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물론, 만 년 동안의 모든 기억들이 떠올랐던 것은 아니었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처절한 사투 속에서 특히 더 끔찍했던 날들만 생생하게 되풀이됐다.
‘어떻게든 잊고 살았었는데.’
기억이라는 날카로운 칼날이 그를 난폭하게 헤집었다.
식은땀에 젖은 머리칼을 쓸어올렸다.
“후우… 이제 괜찮아.”
거칠어진 숨을 고르며 세 연인에게서 떨어졌다.
악몽이라는 것이 으레 그렇듯, 의식이 깨어나니 그를 괴롭히던 기억의 파편들이 빠른 속도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내가 얼마 정도 쓰러져 있었어?”
체감상으로는 몇 년 동안 쓰러져 있던 기분이었다.
“하루 동안 쓰러져 계셨어요.”
리리스가 손수건으로 그의 입가를 닦아주며 말했다.
“하루라….”
작은 실소가 흘러나왔다.
고작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정말 괜찮으신 건가요, 강우 씨?”
한설아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손을 잡았다.
“응, 이제 괜찮아. 임자는 언제 일어났어?”
“저랑 연주랑 언니는 다 한 시간쯤 걸려서 일어났어요.”
“끄응.”
아무래도 자신 혼자 꽤나 늑장을 피운 모양이다.
“무슨 기억이 떠올랐던 거야?”
차연주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냥, 좀. 이것저것.”
“…….”
대답을 피하며 짧게 혀를 찼다.
구천지옥에서 있었던 일들을 그녀들에게 모두 설명하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에휴.”
차연주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가볍게 옆구리를 꼬집었다.
“나중에 이 누나한테 다 말해줘야 한다? 엉?”
“왜? 궁금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머리카락처럼 새빨갛게 그녀의 뺨이 타올랐다.
“아, 아니! 안 궁금하거든!! 그, 그 뭐냐. 그러니까….”
말을 더듬으며 시선을 피했다.
우물쭈물 입술을 달싹이며 베베 몸을 꼬더니, 이내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직 겨, 결혼을 한 건 아니지만… 그, 비, 비슷하다 해야 하나? 뭐, 그런 거니까. 부, 부부 사이에 비밀은 없어야지! 응!”
부끄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진짜 부끄러운 말을 내뱉었다.
강우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순간 심장이 멎을 뻔했다.
“크으으!! 우리 연주 누나 귀여워서 우짜냐!!”
“아악!! 뭐, 뭐 하는 짓이야 이 자식아!!”
쪽쪽쪽!
차연주를 끌어안으며 뺨에 연신 입술을 맞췄다.
그녀는 품속에서 거친 욕설을 흘리며 퍽퍽 주먹을 휘둘렀다.
그런 그녀의 모습조차도 너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흐흐흐! 그래, 솔직히 식만 안 올렸지 부부 맞지! 고럼, 고럼!”
마음속에 남아 있던 껄끄러운 기억의 편린들이 어느새 눈 녹듯이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참을 수 없는 충동이 치밀어 올랐다.
쭈와아압.
뺨에 입술을 맞추는 것을 넘어 쭈욱 볼살을 빨아들였다.
“이, 이 미친놈이!!!! 놔!! 놓으라고오!!”
꺅꺅 비명을 지르며 발로 그를 걷어찼다.
강우는 그녀가 발로 걷어차던 욕지기를 쏟아붓던 신경 쓰지 않고 그녀를 끌어안은 팔에 단단하게 힘을 줬다.
“연주 저거 일부러 그러는 걸까요?”
“흐응, 글쎄.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 말이야. 재능이라면 저것도 재능이겠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한설아와 리리스가 차연주를 유심히 바라보며 가늘게 눈을 떴다.
저런 천연스러운 요망함으로 남심을 뒤흔들다니.
저것이 철저한 계산에서 이뤄진 것이 아니라면 실로 무시무시한 재능이다.
“저, 저도 연주처럼 욕을 해보면 될까요?”
“후훗. 한번 해보렴?”
눈을 반짝이며 물어보는 한설아를 향해 리리스가 작게 미소 지었다.
한설아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 강우 씨!”
“응?”
“X, X발 새끼!!”
“어?”
갑자기?
“X자식! X발 놈!”
“아니.”
엑스맨 뭔데.
“왜, 왜 그래 임자?”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우으….”
기대했던 반응이 아니었던 건지 한설아는 잔뜩 풀이 죽은 표정으로 축 어깨를 늘어트렸다.
“강우 씨에게 욕이라니… 모, 못 하겠어요!”
“방금 신나게 했잖아.”
강우는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리리스를 바라보았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달다는 듯 한설아를 가리켰다.
“호호호, 우리 설아도 참 사랑스럽지 않나요?”
어깨를 으쓱이더니 짙은 미소와 함께 한설아를 끌어안았다.
“아니, 임자가 사랑스러운 거야 당연한 건데.”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한설아를 바라보던 강우는 실소를 흘렸다.
“그나저나.”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호로스, 이놈은 어디 있어?”
“저~기 있어요.”
리리스가 통로 구석을 가리켰다.
“으, 아으.”
그곳에는 창백한 표정의 호로스가 무릎을 끌어안은 채 덜덜 몸을 떨고 있었다.
호박만한 크기를 지닌 눈알에서 뚝뚝 눈물이 떨어지는 것이 참 구슬프게 보였다.
“넌 무슨 트라우마를 겪었냐?”
괜히 궁금해져서 물어봤다.
호로스는 창백한 표정으로 강우를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사,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아니 넌 또 왜 지랄이야.
“다시는 반항하지 않을게요! 제발요!! 갑자기 막 괴성을 지르면서 머리통을 깨부수지 말아 주세요!!!”
아.
“…설마 트라우마로 본 게 나냐?”
호로스가 맹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 음. 그… 뭐냐.”
미안.
“흐으윽! 너, 너무 무서웠습니다!”
“말만 잘 들으면 아무 짓도 안 할 테니까 걱정 마.”
호로스는 생각 이상으로 쓸모가 많았다.
주시자의 권능으로 조사할 수 없는 공간을 육안으로 직접 확인할 수도 있었고, 강우가 잘 알지 못하는 판데모니움에 대한 지식도 두루 갖추고 있었다.
‘원래는 회랑 안으로 들어오면 잡아먹으려고 했지만.’
아직은 쓸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흐윽… 저, 정말인가요?”
“고럼, 고럼.”
생긴 것만 좀 어떻게 하면 말도 잘 듣고 괜찮은 놈이었다.
“그럼 일단 다시 출발해 볼까?”
늦게 일어난 탓에 하루나 지체되어 버리고 말았다.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호로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났다.
“이대로 쭉 내려가면 되는 거지?”
“그, 그렇습니다.”
“가자.”
강우는 앞장서서 밑으로 쭉 이어진 계단을 내려갔다.
“그런데 정말 이걸로 끝이야? 시련의 회랑이라는 것 치고는 별거 없는 것 같은데.”
가장 늦게 일어난 자신이 할 말은 아니지만 호로스조차 무사히 정신을 차린 것을 보니 솔직히 시련의 회랑이라는 거창한 이름치고는 난이도가 높지 않은 것 같았다.
“회랑의 가장 깊은 곳에 들어가시면 마검의 시험이 하나 더 남아 있다고 합니다.”
“마검의 시험?”
“예. 아마 그 시험이 이 고대 던전에서 가장 위험하고 어려울 겁니다.”
“근데 마검이 무슨 시험을 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호로스의 설명이 이어졌다.
“마검 미디르에는 고대에 존재했던 강력한 마룡(魔龍)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합니다. 그 마룡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검의 힘을 사용하기는커녕 미쳐 날뛰다가 죽어버린다고 하더라고요.”
“마검이라는 게 에고 소드였어?”
강우의 눈이 반짝였다.
에고 소드(Ego Sword).
판타지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강력한 장비들의 특징이었다.
‘그러고 보니 잉그리움도 자아가 있긴 했지.’
자신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후려친 마검도 그의 의지를 따라 뽈뽈뽈 날아오고는 했다.
“그럼 하루 늦어졌다고 해서 그 마왕이란 놈이 유물을 채가고 튀었을 가능성은 적겠네?”
무려 10성 유물의 시험이니 판데모니움의 마왕이란 놈도 꽤나 고생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건… 확답드릴 수가 없네요.”
호로스는 거대한 눈을 껌뻑이며 고개를 저었다.
“마검 미디르도 분명 탑에 현존하는 유물 중 가장 강력한 유물이기는 하나… 마왕이라면 어렵지 않게 시험을 통과할 거라 생각합니다. 그가 판데모니움에서 보여줬던 전설적인 업적들을 생각하면요.”
“그렇단 말이지.”
여기서 더 이상 꾸물거리고 있을 시간이 없다는 의미.
판데모니움의 마왕이 먼저 유물을 가지고 튀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는 한시라도 빨리 회랑의 끝에 도착해야 한다.
“바로 출발하자.”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시련의 회랑을 지난 뒤에도 몇 가지 함정처럼 보이는 것이 있었지만, 이번에도 역시 앞서간 마왕이 함정을 박살 냈는지 발동하지 않았다.
그렇게 도착한 회랑의 가장 깊은 곳.
마치 늪을 연상시키는 것처럼 질척한 어둠이 깔린 곳에,
“…너흰 누구지?”
마왕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