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623)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외전 104화
판데모니움의 마왕 (2)
“삐야아아악!! 지, 진짜 마왕이다!!! 진짜 마왕이라고요!!!”
호로스가 경기를 일으키며 눈을 떨었다.
“사,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저는 그냥 이 정신 나간 인간한테 억지로 끌려 온 것뿐입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마왕니이이이임!!”
“…….”
빠악!
시끄럽게 떠드는 호로스의 머리통을 한 대 후려친 강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앞을 바라보았다.
“쟤가 마왕이라고?”
검은 늪의 중앙에 서 있는 청년.
판데모니움의 마왕은 허리까지 오는 기다란 흑발에 새하얀 피부, 가느다란 턱선에 오뚝한 콧날을 지닌, 어딘가 중성적으로 느껴지는 인상의 미청년이었다.
“워매, 뭐야.”
절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디지게 잘생겼네.”
솔직히 저 정도면 김시훈과도 비빌 수 있을 것 같았다.
“근데 악마들의 왕치고는 굉장히 인간처럼 생겼는데?”
좀 요란한 복장을 하고 있을 뿐이지 그냥 생김새만 보면 완전히 사람과 똑같이 생겼다.
“호호호. 강우님이 하실 말씀은 아니지 않나요?”
리리스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건 그렇지만.”
자신은 애초에 악마가 아닌 인간 태생이었다가 악마가 된 케이스 아닌가.
판데모니움의 마왕은 그런 것도 아닐 텐데 인간이랑 똑같이 생겼으니 좀 신기해 보였다.
그때, 호로스가 거대한 눈을 껌뻑이며 그에게 외쳤다.
“무, 무슨 헛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마왕은 과거 인간이었으니 당연히 인간과 똑같이 생겼죠!”
“…뭐?”
강우의 두 눈이 부릅뜨였다.
“판데모니움의 마왕이… 과거에 인간이었다고?”
“삐야악!! 어린애도 다 아는 소리를 뭘 그렇게 놀랍다는 듯이 물어보시는 겁니까!!”
호로스가 답답하다는 듯 외쳤다.
“판데모니움의 마왕, 오현성은 과거 만 년 전에 판데모니움에 떨어져 마왕의 자리까지 오른 전설적인 존재 아닙니까!! 이건 판데모니움의 악마만이 아니라 탑의 인간들도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
강우의 입이 쩍 벌어졌다.
‘뭐야 이거?’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흑발의 청년을 바라보았다.
‘쟤도 인간 출신이라고?’
심지어 만 년 전에 판데모니움에 떨어졌단다.
“허.”
절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이거 뭐 진짜 평행세계야??’
단순한 우연으로 치부하기에는 지나치게 공교롭다.
“…잠깐.”
그때, 강우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만약 진짜 저놈이 평행세계의 나라면.’
만약 그렇다면,
판데모니움의 마왕도 마해(魔海)를 지니고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띠링.
[아뇨, 수호자님. 저 악마는 마해를 지니고 있지 않아요.]맑은 방울소리와 함께 푸른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창세의 탑이 존재하는 세계는 어디까지나 외계(外界)에 불과해요. 평행세계가 아닙니다.]“그럼 쟤는 뭔데.”
강우는 검은 늪지대의 중앙에 고고히 서 있는 판데모니움의 마왕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두 세계의 마왕이 똑같은 인간 출신이라니.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저 마왕과 자신 사이에 공통점이 너무 많았다.
“저거 봐. 나랑 생긴 것도 비슷하게 생겼잖아!”
[수호자님, 양심이 있으세요?]슈바.
그래, 솔직히 저놈이 조금, 아주 찌~일끔 더 잘생기긴 했다.
진짜 개미 불알만큼 미세한 차이로….
[추해요, 수호자님. ( ̄(エ) ̄)]“닥쳐.”
임자는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생겼다고 했어.
“아니, 근데 평행세계가 아니라면 어떻게 이럴 수 있는데?”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공교롭지 않은가.
[창세의 탑이 존재하는 세계는 삼원의 세계와 가까이에 있는 만큼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은 있어요. 하지만, 평행세계처럼 대칭점에 놓인 세계는 아니에요.]“흠.”
강우는 쯧, 혀를 차며 메시지를 치웠다.
솔직히 납득하긴 어려웠지만, 일단 더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일단 지금은 판데모니움의 마왕이 마해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걸 알았으면 됐다.
“자꾸 혼잣말을 지껄이고 있는 저 인간은 누구예요?”
“흐응, 감히 현성님을 앞에 두고 건방지네요.”
판데모니움의 마왕, 오현성의 그림자 속에서 두 여인이 몸을 일으켰다.
각각 푸른색과 붉은색의 머리칼을 지닌 여인들이었다.
감히 한설아에 비할 수는 없었지만 둘 다 꽤나 이쁘장하게 생긴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녀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찡그린 얼굴로 강우를 노려보았다.
“…아니.”
오현성은 그녀들의 물음에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저건 인간이 아니다.”
흑요석과 같은 오현성의 눈동자가 강우를 향했다.
마치 본질 그 자체를 꿰뚫어 보는 듯한 깊고, 투명한 눈빛.
“예?”
“인간이 아니라고요?”
오현성의 옆에 나타난 두 여인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강우를 살폈다.
“오, 뭐야.”
강우는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내며 오현성을 바라보았다.
씨익, 입가를 올리며 그에게 다가갔다.
“그래도 보는 눈은 좀 있나 보네?”
자신이 인간이 아닌 악마란 것을 한 번에 눈치채다니.
마기의 지배자 특성으로 인해 마기의 기척 자체를 항시 감추고 다니는 그의 입장에선 꽤 놀라운 일이었다.
“…넌 누구지? 판데모니움에서 나를 제외하고 다른 인간이 악마가 되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오현성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강우의 정체가 단순히 악마가 아닌, 자신과 같이 인간에서 악마가 된 케이스라는 것까지 꿰뚫어 분 것 같다.
“어, 그러니까. 나는….”
강우는 난처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구천지옥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그에게 자신의 다른 세계의 마왕이라는 것을 설명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걸 뭐 어떻게 말한담.’
고민에 잠긴 채 판데모니움의 마왕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의 손에 쥐어진 검이 눈에 들어왔다.
“아.”
검푸른 빛으로 타오르는 검.
한눈에 보더라도 보통 검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기세를 풀풀 흘리고 있는 검을 본 순간,
“아, 아아.”
깨달았다.
깨달아 버리고 말았다.
“그래.”
등골에 짜릿한 전율과 함께 소름이 달린다.
서로 다른 두 세계.
똑같이 지옥 밑바닥에 떨어져, 만 년이라는 아득한 시간을 처절하게 싸워온 두 사람.
이브의 말로는 평행세계가 아니라 했지만.
그게 어쨌다는 말인가.
“이건, 틀림없는.”
주먹을 불끈 쥔다.
뜨거운 무언가가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치솟아 오른다.
터질 듯이 맥동하는 심장!
말릴 수 없는 충동!
이것은,
이것이야말로━
“【인류애】… 아니, 아니!!!”
어쩌면 이것은 인류애를 넘어서 【동료애(同僚愛)】라 불러야 함이 옳다!!
“뭐…?”
“아아아!!! 그래!! 왜 처음 본 순간 깨닫지 못했을까!!!”
강우는 자신의 멍청함을 한탄하듯 쿵쿵, 발을 굴렀다.
시련의 회랑에서 떠오른 기억들이 다시금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끔찍했던 지옥의 기억.
악몽이나 다름없는 나날.
그 누구의 이해도 바랄 수 없는 고독한 싸움━
“나는… 너의 진정한 이해자.”
“……?”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을!!! 그 누구도 공감할 수 없는 절망을!!! 유일하게 공감하며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존재!!!!”
“대체 뭔 헛소리를 하는 거냐.”
“그래!!!!”
쿠우웅!!!
강우는 격정에 한 표정으로 거칠게 발을 굴렀다.
검은 늪지대에 고인 어둠이 폭발하듯 원형으로 퍼졌다.
두 팔을 활짝 벌리며 판데모니움의 마왕을 향해 걸어갔다.
“나는! 너의 【친구】다!!!”
그렇다.
살고 있는 세계는 다르지만, 두 사람은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지옥으로 떨어졌을 때 느꼈던 절망.
살기 위해 마물의 똥을 몸에 바르고, 악마의 살점을 뜯어먹으며 연명했을 때의 처절한 기억들.
그것은 두 세계를 통틀어 자신과 오현성만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설사 지금 처음 본 사이라 하더라도 감히 【친구】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미치기라도 한 거냐?”
오현성은 눈살을 찌푸리며 강우를 노려보았다.
강우는 큰 상처를 입었다는 듯 가슴을 부여잡고 비틀거렸다.
“혀, 현성아!!! 친구 사이에 그런 심한 말을 하면 어떻게 해?!!!!”
어쩌지, 나 상처받은 것 같아!!!
이 상처는 유물로밖에 치료받을 수 없는데!!!
“…설마 지금 서로 인간에서 악마가 되었다는 것 때문에 친구라 말하고 싶은 거냐?”
오현성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강우를 바라보았다.
강우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내 말이 바로 그 말이야!!! 우리는 둘 다 같은 고통, 같은 절망을 맛보면서 살아왔어!! 이 세계에서 유이(有二)하게 진정으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사이라는 거지!!!”
“…….”
“너는! 내 친구야!!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린 친구라고!!”
주먹을 불끈 쥐며 그에게 다가갔다.
“어딜 감히!”
“거기서 한 발자국이라도 더 움직인다면 가만두지 않겠어요!”
오현성의 그림자에서 나타났던 두 여인이 쌍심지를 켜고 강우에게 달려들었다.
강우는 달려드는 두 여인을 향해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터엉!!!
“꺄아아아아악!!”
손가락이 튕긴 곳을 중심으로 마기의 파동이 원형으로 퍼졌다.
거대한 마기에 휩쓸린 두 여인이 데구르르르 바닥을 구르며 멀찍이 튕겨 나갔다.
“…….”
오현성의 눈이 반짝였다.
그는 뒤로 날아가 두 여인을 슬쩍 돌아보더니 놀랍다는 눈빛으로 강우를 바라보았다.
“과연, 미친 소리를 떠들만한 실력은 있었군.”
파동이 터진 시간은 짧았지만, 그 안에 담긴 강력한 마기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상대를 잘못 골랐지만 말이야.”
자신이 지닌 힘에는 닿지 못할 것이다.
“친구… 친구, 라.”
실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낯선 단어의 울림.
오현성은 차가운 웃음을 흘리며 강우를 바라보았다.
“그래, 좋다. 친구라고 하자고.”
자신 외에 인간에서 악마가 된 존재는 처음 본다.
흥미가 솟았다.
“크으!! 좋아!! 아주 좋아!!! 오늘부터 우리는 베스트 프랜드(Best Friend)다, 현성아!!”
과감하게 그의 어깨에 팔을 올리며 덩실덩실 춤을 췄다.
“아, 그런데 현성아. 아까 전에 네가 나한테 심한 말 했잖아?”
친구에게 미친놈이라니.
어찌 그러니 심한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살면서 욕이라고는 해본 적도, 해볼 생각도 하지 않았던 강우의 입장에선 너무 상처가 되는 말이었다.
“이게 내가 원래 상처를 받으면 좀 막 많이 화나고 미칠 것 같고 그래.”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이게 근데 딱 마침!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기 좋은 물건을 네가 가지고 있네!”
환한 미소를 지으며 오현성의 어깨를 두드렸다.
“현성아. 원래 친구 사이에는 니꺼내꺼가 따로 없는 거야.”
뜨거운 눈빛으로 오현성을 바라보며,
“그러니까━”
말을 이었다.
“네가 지금 들고 있는 유물 좀 나 빌려줘라.”
“…뭐?”
“금방 돌려줄게. 응? 잠깐만 빌려줘 봐.”
“…….”
“아~ 진짜 표정이 왜 그래? 잠깐만 쓰고 돌려준다니깐? 설마 친구 말을 못 믿는 거 아니지?”
혓바닥을 내밀며 엄지손가락을 혀끝에 대고, 새끼손가락으로 이마를 찍었다.
“자, 봐봐. 내가 진짜 우리 엄마도 걸 수 있어!!!”
근데 사실 엄마가 없긴 해.
“…….”
“에이 씨, 뭐야? 그래도 못 믿어? 하, 참! 좋아!! 내가 우리 아빠도 걸게!!! 우리 아버지의 이름과 명예를 걸고 금방 돌려줄게!!”
내가 죽여 봐서 아는데, 우리 아버지 진짜 대단하신 분이야.
“진짜 이렇게까지 했는데 안 빌려주면 내가 좀 많이 섭하다? 응?”
어깨를 쥔 손에 힘을 더하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