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626)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외전 107화
마검 미디르 (1)
“크하아악!! 카학!!”
탐식의 불이 오현성의 몸을 휘감았다.
그는 불길에 휩싸인 채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카흑… 컥….”
격렬했던 몸부림이 점차 약해졌다.
이윽고, 오현성의 움직임이 완전히 멈췄다.
“쯧.”
강우는 바닥에 쓰러진 오현성의 시체를 내려보며 혀를 찼다.
또 하나의 마왕을 내려다보는 그의 눈빛은 숨길 수 없는 실망에 가득 차 있었다.
“그래도 꼴에 몸이 다 뜯겨나가진 않았네.”
원래 탐식의 불의 휩싸이게 되면 화상(火傷)이 아닌 짐승의 이빨에 물어뜯긴 듯한 참혹한 열상(裂傷)이 생긴다.
일반적으로는 탐식의 불이 몸 전체에 옮겨붙으면 마치 수십, 수백 마리의 짐승이 뜯어먹은 것 같은 끔찍한 시체가 남게 된다.
하지만 오현성의 시체는 탐식의 불에 휩싸였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멀쩡한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 봤자지만.’
어찌 됐든 제대로 된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허망하게 죽은 건 마찬가지다.
“에휴.”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RPG 게임에서 기대하면서 보스 룸에 들어왔는데 2~3방만에 보스가 쓰러지면 딱 이런 기분일까.
판데모니움의 마왕이라고 하기에 너무 큰 기대를 품고 있었던 것 같았다.
‘아무리 내가 강해졌다고 해도 그렇지.’
아직 육체의 재구성도 완료되지 않은 시점에서 심연 해방조차 사용하지 않고 가볍게 이기게 될 줄은 몰랐다.
전에 상대했던 아카르트의 추종자들보다도 몇 수는 아래였다.
‘그래도 좀 기대하긴 했는데.’
목을 태우는 갈증.
만족스럽게 싸우지 못한 몸이 더욱 강렬한 자극을 갈구했다.
강우는 끓어오르는 욕망을 억눌렀다.
‘참아야지.’
앞으로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이런 갈증은 더욱 많이 겪게 될 것이다.
지금부터 익숙해지지 않으면 나중에 고생할 것이 뻔했다.
“뭐야? 벌써 끝났어?”
차연주가 걸어오며 물었다.
“엉.”
“생각보다 되게 싱겁게 끝났네. 호로스 자식이 엄청 호들갑을 떨길래 강우 너라도 좀 고전할 줄 알았는데.”
“내 말이.”
왜 그렇게 실망감이 많이 드나 싶더니 다 호로스의 호들갑 때문이었다.
마왕의 흔적을 발견할 때마다 지랄발광을 하니 괜히 기대감만 부풀어 오르지 않았던가.
“그러고 보니 그 서큐버스들은?”
“계속 시끄럽게 굴어서 기절시켜 놨어.”
“땡큐.”
“걔들은 어쩌게? 저번처럼 언니가 데려다 쓸 거야?”
차연주가 고개를 돌려 리리스를 바라보며 물었다.
리리스는 호호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쓰고 싶기는 한데… 쟤들은 좀 골치 아플 것 같네.”
“끄응. 그럼 어쩌지.”
“죽이면 되지 않겠니?”
리리스는 뭐가 고민이냐는 듯 태연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 그건 그렇지만.”
차연주는 어색하게 웃었다.
적이니 죽이는 게 당연하지만, 자신보다 월등히 약한 상대를 죽이는 건 어쩐지 거부감이 들었다.
그녀는 리리스나 강우처럼 악마가 아닌 어디까지나 인간이었으니까.
“그럼 그냥 여기 근처에다가 두고가.”
어색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는 차연주를 바라보며 강우가 말했다.
“그래도 돼?”
“걱정할 만한 놈들도 아니니까.”
원래라면 모조리 죽여서 후환이 남을 만한 일을 만들지 않지만, 저 두 서큐버스의 경우 솔직히 후환을 걱정할 필요조차 없는 상대였다.
“오키. 그럼 그렇게 할게.”
“흐흐흐. 우리 연주 착하기도 하지~ 이리 와바, 오빠가 뽀뽀해 줄게!”
“아, 좀 꺼져 제발!”
차연주가 다가오는 강우를 밀쳐내며 외쳤다.
“후훗. 그럼 대신 저한테 해주세요, 강우 씨.”
한설아가 옆에서 채가듯이 그를 끌어안고는 가볍게 입을 맞췄다.
차연주가 읏, 입술을 깨물며 그를 노려보았다.
“그나저나 10성 유물이라는 게 생각보다 별로 대단치 않은 물건 같네요.”
리리스는 오현성의 손에 아직 쥐어져 있는 검푸른 검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10성 유물을 들었던 것치고는 오현성은 너무 허망하게 패배해 버렸다.
“아니, 그건 아냐.”
“예? 아니라고요?”
“유물 자체의 스펙은 엄청 나.”
마검은 무려 ‘탐식의 불’을 튕겨냈다.
오현성이 제대로 다루지 못했을 뿐이지 마검 자체의 스펙은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아마 마지막에도 팔을 마그마로 바꾸는 뻘짓을 하지 않고 마검에 의존해서 싸웠으면 조금 더 싸움은 길어졌을 것이다.
‘하긴, 제대로 다루는 것도 이상하지.’
오현성은 마검을 손에 넣자마자 자신과 싸웠다.
검을 다루는 데 익숙하지 않은 것이 당연했다.
“흐응, 그런가요?”
“흐흐흐. 그러니까 이번 유물 탐사의 성과는 성공적이라고 봐야지.”
사실 유물 탐사라고 해봐야 탐사 내내 강도질만 하고 돌아다닌 것 같지만, 어쨌든 다수의 유물과 무려 10성 유물도 손에 넣을 수 있게 됐으니 초대박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그럼 슬슬 마검을 사용해 볼….”
씨익 웃으며 오현성의 시체에 다가가려고 했을 때.
-철퍽, 철퍽.
검은 늪지대에서 오현성이 몸을 일으켰다.
“…뭐?”
강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살았다고?’
그럴 리가.
탐식의 불에 당한 것치고 시체가 멀쩡하긴 했지만 그래도 설마 자신이 오현성의 숨통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을 리는 없었다.
분명 오현성은 죽었다.
“근데 왜….”
저렇게 멀쩡하게 움직이고 있단 말인가.
비틀, 비틀.
오현성은 손에 쥔 검을 지팡이처럼 바닥에 찍은 채 몸을 일으켰다.
[키, 히.]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
오현성의 것이 아닌, 여인처럼 높은 톤의 목소리였다.
[꺄하하하하하하하하핫!!!!!]쿠구구구궁!!!!
늪지대 전체가 뒤흔들렸다.
오현성은 있을 수 없는 각도로 허리를 뒤로 젖히며 광기에 찬 웃음을 터뜨렸다.
[드디어!! 드─디어 육체를 손에 넣었구나아아아!!]광기의 찬 여인의 웃음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부르르 몸을 떨며 입꼬리를 올렸다.
오현성의 두 눈이 검푸른 빛으로 번뜩였다.
‘아니.’
저건 오현성이 아니다.
강우는 오른팔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쩌적.
손바닥이 갈라지며 검은 칼날이 솟구쳤다.
“미디르냐?”
드디어 몸을 손에 넣었느니 뭐니 떠들었으니 아마 미디르의 의식이 오현성의 육체를 잠식한게 맞는 것 같았다.
‘그래서 탐식의 불에 당하고도 육체가 멀쩡했구만.’
미디르에는 탐식의 불을 튕겨낼 수 있을 정도의 힘이 있었으니까.
[으히히히, 바로 맞췄네?]“딱히 숨길 생각도 없어 보이더만.”
[꺄하하핫!! 그건 그렇지!]오현성, 아니 미디르는 어깨를 들썩이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까지 검신에서만 타오르고 있던 검푸른 빛이 오현성의 몸 전체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내가 정말 아주 오~~~랜 만에 육체를 얻은 거라서 말이야.]미디르는 혀를 길게 내밀었다.
[지금 너무 몸이 근질거려서 미칠 것 같거든?]그러니까.
[잠깐만 좀 놀아달라고!!!!]콰아아앙!!!
미디르가 거칠게 발을 굴렀다.
팡! 팡! 팡!
허공을 ‘밟으며’ 질주한 그녀가 거칠게 검을 내려찍었다.
강우는 검은 칼날을 들어 올리며 공격을 막았다.
-쿠궁!!
주르르륵!!!
강우의 몸이 늪지대를 가로지르며 뒤로 쭉 밀려났다.
아찔한 충격에 오른팔이 저릿했다.
[꺄하하하하핫!!!]다시금 허공을 박차며 미디르가 날아올랐다.
발을 한 번 구를 때마다 검푸른 빛이 폭발했다.
-텅! 텅! 텅!
허공을 밟으며 바짝 다가온 미디르.
검푸른 빛에 휩싸인 검이 강우의 목을 노렸다.
슈욱!
가볍게 스텝을 밟으며 미끄러지듯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검은 칼날이 솟구쳐 있는 오른팔을 들어 올리는 척을 하며 빠르게 몸을 비틀어 왼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촤악!
왼손등이 갈라지며 검은 칼날이 솟구쳤다.
검은 칼날이 역으로 미디르의 목을 노리고 찔러 들어갔다.
‘이건 맞았다.’
그렇게 확신한 순간,
[키히히히히!]우드드득!
미디르는 있을 수 없는 기괴한 각도로 목을 꺾었다.
정수리가 머리에 닿을 정도로 목이 뒤틀렸다.
“이런 씹…!”
생각지도 못한 대처.
검은 칼날이 목젖을 살짝 스치며 빗나갔다.
[으라아아아아차아아앗!!!!]미디르는 목이 뒤틀린 채 그대로 주먹을 쥐어 강우의 복부를 향해 휘둘렀다.
반사적으로 무릎을 들어 주먹을 막았다.
-뻐어어어억!!
“크으!!”
몸이 포탄처럼 뒤로 튕겨 나갔다.
[꺄하하하핫!!]미디르는 광소를 터뜨리며 뒤로 튕겨 나가는 강우를 바짝 쫓았다.
아직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강우의 바로 위로 따라붙은 미디르가 거칠게 검을 내려찍었다.
[반으로 갈라져 죽어!!]빙글.
뒤로 튕겨나가는 와중에 몸을 돌렸다.
허리를 향해 내려 찍히는 검을 무시한 채 미디르의 몸을 향해 왼손을 쫙 펼쳤다.
화르르륵!
왼손에 뭉친 탐식의 불이 사납게 타오르며 미디르를 노렸다.
몸쪽을 향해 쏘아낸 것이기에 방금 전 보여줬던 기괴한 관절 비틀기로도 피할 수 없었다.
[으익!]미디르는 강우의 허리를 향해 내려찍고 있던 검을 다급히 틀어 올렸다.
터엉!
탐식의 불로 이루어진 화염의 구체가 검푸른 빛에 튕겨 허공으로 날아갔다.
“흐읍!”
미디르가 탐식의 불을 튕겨내는 사이, 강우는 뒤로 넘어지듯 몸을 기울이며 양팔로 땅을 짚었다.
뒤로 튕겨나가고 있던 몸에 급제동이 걸리며 백 텀블링을 하듯 몸이 빙글 돌아갔다.
몸을 떠미는 관성을 거스르지 않고 자신을 바짝 쫓아오고 있는 미디르의 머리통을 향해 오버헤드 킥을 날렸다.
-뻐어어어어억!!
[캬하아아악!!]미디르가 비명을 지르며 데구르르 바닥을 굴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에서 흐른 핏물을 손등으로 쓱 닦았다.
[꺄하핫! 역시 강하네, 너!]미디르는 즐겁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너도 저 대가리에 공성추 맞은 마그마 빌런보다 훨씬 낫네.”
강우는 미디르의 주먹에 맞은 충격으로 가늘게 떨리는 무릎을 내려다보며 마주 웃었다.
억눌렀던 욕망이 다시금 끓어오른다.
타오르는 듯한 갈증이 몸을 태운다.
혀를 길게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오현성과는 비교도 할 수 없어.’
오현성의 육체를 차지한 미디르는 그보다 몇 배는 되는 파괴적인 힘을 지니고 있었다.
‘저건 진짜 물건이야.’
마검에 대한 욕망이 한층 더 짙어졌다.
“너는 내가 꼭 가져야겠다.”
[어맛? 지금 작업 거는 거야? 끼히히히히!!]미디르는 능청스럽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이거 어쩌나.]광기에 찬 눈을 번들거리며 입가를 올렸다.
[내가 그렇게 쉬운 여자가 아니거든!]촤아아아아악!!
미디르가 다시금 질주했다.
음속 넘어선 속도에 해일이 일어난 것처럼 늪지대가 양쪽으로 갈라졌다.
“리리스, 연주랑 설아 데리고 뒤로 물러나 있어.”
차연주와 한설아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이 타오르는 듯한 갈증을 조금이라도 더 해소하고 싶었다.
“예, 마왕님.”
“…이번엔 너무 흥분하지 마라?”
“가, 강우 씨! 히전죽! 히전죽이에요!!!”
히전죽은 또 뭐야.
“저 마검이 히로인이 되기 전에 죽이셔야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