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632)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외전 113화
특성 뽑기 (3)
“쓰으, 후우.”
깊게 숨을 들이마신 후 천천히 내뱉었다.
자세를 낮춘 채 검자루를 움켜쥔 손에 힘을 더했다.
검푸른 빛을 뿌리고 있는 마검(魔劍)이 요사스럽게 빛났다.
‘불의 찬탈자.’
화르르르륵!!
황금빛과 검은빛이 뒤섞인, 검은 태양과도 같은 불길이 몸을 감쌌다.
뱀이 똬리를 트는 것처럼 몸을 감싼 불길이 점차 검푸른 검이 있는 곳으로 모여들었다.
-쿠구구궁!
검푸른 검 안에 불길이 모여 응축되자 거대한 진동이 수련실 전체를 뒤흔들었다.
‘여기까지.’
지하 수련실이 아무리 강력한 결계로 보호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더 불을 응축시켰다가는 아파트 전체가 붕괴할 수도 있었다.
“흡!”
쿠웅!
거칠게 진각을 밟으며 낮게 숙이고 있던 허리를 튕겼다.
그대로 미디르를 사선으로 베어 올렸다.
-화르르르르륵!
허공에 그어진 불길의 선.
검날 안에 응축되어 있던 탐식의 불이 폭발하듯 전면으로 뿜어져 나갔다.
화산이 터지기라도 한 것처럼 부채꼴 방향으로 넓게 펼쳐진 탐식의 불이 수련실 벽 결계에 부닥쳤다.
콰드드드드득!!
“어, 어어? 잠깐만 시바!!”
탐식의 불을 최소 20초 정도는 견딜 수 있을 정도로 설계해둔 결계가 5초도 되지 않아 금이 쩍쩍 가면서 부서지고 있었다.
이대로는 지하 수련실이 박살 나고 그대로 아파트 전체가 무너져 내리게 된다.
“조졌다아아아아앜!!!”
어떻게 마련한 보금자리를 이대로 날려버릴 수는 없는 노릇.
강우는 쥐고 있던 미디르를 집어던지고 결계를 박살내고 있는 탐식의 불을 향해 몸을 던졌다.
“커허어어억!!”
자신이 사용한 기술을 자기가 막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
응축된 탐식의 불길이 강우를 집어삼켰다.
피라냐 떼에 집어 삼켜진 듯 몸 곳곳이 순식간에 너덜너덜해졌다.
“크으으.”
전신을 타고 올라오는 끔찍한 고통.
하지만 고통의 신음을 흘리는 강우의 입가에는 숨길 수 없는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그래, 바로 이거지!!’
예상했던 것보다 한층 더 강력한 위력.
【불의 찬탈자】효과로 응축된 탐식의 불은 이전과는 격이 다른 파괴력을 보여주었다.
“흐흐흐. 역시 간절한 놈이 승리한다니깐.”
설마 SSS급 특성이 아니라 B급 특성으로 이 정도의 스펙 업을 하게 될지는 생각도 못 했지만, 어쨌든 굉장히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막상 이렇게 되니 더 돌려보고 싶네.’
아직 그에게는 다섯 번의 기회가 더 남아 있었다.
이번 일로 인해 무조건 높은 등급의 특성을 얻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안 이상, 욕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쯧.”
잠시 고민을 이어가던 강우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이건 다른 애들한테 사용해야지.”
【불의 찬탈자】 특성으로 인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한 힘을 손에 거머쥐었다.
굳이 여기서 더 욕심을 내서 돌릴 필요는 없으리라.
‘그만큼 다른 애들의 스펙 상승도 중요하니깐.’
마음 속 한 구석에 남아 있는 미련을 떨쳐내며 몸을 돌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고층으로 올라갔다.
현관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려 했을 때,
“아, 형님!”
반대편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며 김시훈이 걸어 나왔다.
“지금 도착했냐?”
“하하. 죄송합니다. 일이 바빠서 조금 늦었습니다.”
“흐흐. 괜찮아. 나도 이제 막 도착했으니깐.”
김시훈과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갔다.
넓은 거실에는 그의 연락을 받고 온 발록과 한설아, 리리스와 차연주가 앉아 있었다.
“다들 모였어?”
“마왕니이이이이임!!!”
쿠웅!
발록이 거대한 덩치를 일으키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안 그래도 흉악하게 생긴 얼굴을 더욱 험악하게 일그러트렸다.
“와 씨.”
생긴 것 봐라.
“왜 이 발록을 두고 저 요망한 것과 유물 탐사를 가신 겁니까!!”
발록은 뒤쪽에서 호호호 웃고 있는 리리스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외쳤다.
“넌 유물 찾는 데 도움이 안 되잖아.”
발록에겐 탐색 능력이 전무했다.
유물 탐사에 데려가 봤자 별 도움이 되진 않았을 것이다.
‘아니, 결과적으로 보면 도움이 됐으려나.’
유물 탐사는커녕 두들겨 패고 약탈만 하고 왔으니까.
오히려 탐색 능력이 뛰어난 리리스가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크윽! 하, 하지만!”
“그리고 그때 바빴어, 짜식아.”
“으….”
발록은 풀이 죽은 표정으로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강우는 피식 웃으며 손등으로 발록의 배를 가볍게 쳤다.
“담에 뭔 일 있으면 부를 테니까 구시렁거리지 마, 인마.”
“흐흐. 약속하신 겁니다?”
풀이 죽은 표정으로 어깨를 늘어트리고 있던 발록이 언제 그랬냐는 듯 씩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아무래도 방금 전 표정은 연기였던 모양.
강우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자신도 깜빡 속았을 정도로 완벽한 표정 변화였다.
“짜식이 그지 같은 것만 배워서는… 요즘 좀 근질거리냐?”
“별로 싸울 일이 없었으니까요.”
“하긴.”
발록은 뼛속까지 전투에 절어 있는 천생 전사였다.
지구의 평화로운 일상이 따분하게 느껴지는 것도 당연했다.
“뭐, 그래도 좀만 참아라. 어차피 이제 슬슬 아카르트 놈도 움직일 테니까.”
“크흐흐. 알겠습니다.”
발록은 씨익 웃으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보다 형님, 무슨 일로 부르신 겁니까?”
뒤따라 들어온 김시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다들 선물을 줄 게 있어서 말이야.”
“선물이요?”
“한 명씩 새로운 특성을 개화시켜 줄 거야. 물론, 얻는 특성의 등급은 무작위로 정해진다만.”
“트, 특성을 개화시킨다고요?”
김시훈의 얼굴이 경악에 물들었다.
플레이어에게 특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위치를 차지하는지 생각한다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일반적으로 특성은 10레벨 단위로 이루어지는 각성이 아닌 이상 얻을 수 없다.
“어, 어떻게 특성을 개화시킨다는 말씀입니까?!”
“음… 설명하면 좀 복잡하긴 한데.”
강우는 이브에 대한 것과, 자신이 수호자로서 티탄의 율법의 일부 기능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는 것, 그리고 유물에 담긴 티탄의 힘에 대해 짧게 설명했다.
“와, 그래서 그렇게 눈깔 뒤집혀서 강도질을 한 거구나?”
차연주가 탄성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도질이라니. 난 어디까지나 정당하게 양도받은 거야.”
“지랄.”
“뭐, 어쨌든. 지금부터 각자 한 개씩 특성을 개화시켜 줄 거야.”
“얻는 특성의 종류나 등급은 무작위라고 했지?”
“엉.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자신에게 맞는 특성이 나오는 것 같더라고.”
촉수 팽창이나 불의 찬탈자만 하더라도 자신과 아예 아무런 연관성도 없는 특성은 아니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특성을 얻을 확률이 더 높은 것 같았다.
‘유체이탈을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니지만.’
다른 건 몰라도 유체이탈은 자신과 전혀 아무런 연관도 없는 특성이었다.
“그 특성이라는 게 정확히 무엇입니까?”
플레이어가 아닌 발록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음… 권능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돼.”
“궈. 권능 말씀입니까?”
“물론 높은 등급이 떠야 권능과 비벼볼 만하지만.”
권능 중에서도 이게 대체 왜 권능인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쓰레기 같은 권능도 많으니 비슷한 건 사실이다.
“그럼 임자 먼저.”
“저, 저부터요?”
“왜? 나중에 할래?”
“아뇨. 강우 씨의 첫 번째가 될 수 있어서 기뻐요.”
“뭔가 단어 선택이 좀 위험한 것 같은데.”
임자 자꾸 그러면 우리 또 수정 펀치 맞아.
“후훗. 잘 부탁드려요, 강우 씨. 처음이니까 상냥하게 해주셔야 해요?”
“아니.”
한설아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그에게 다가왔다.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이브, 부탁해.”
[예, 수호자님!]촤라라락!!
푸른 메시지창이 그녀의 몸을 감싼 것과 동시에 룰렛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띠링!
[【황홀한 미식가(S등급)】 특성을 개화(開化)하였습니다!]“어? S급 특성이네요?”
한설아는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창을 보며 동그랗게 눈을 떴다.
“진짜?”
S급 특성이면 일반 플레이어 기준에서는 평생 가도 얻을까 말까 할 정도로 높은 등급의 특성이었다.
물론 한설아나 차연주, 김시훈과 같은 사기적인 스펙의 플레이어를 기준으로 해도 S급 특성이면 결코 낮은 등급은 아니었다.
“무슨 특성인데?”
“황홀한 미식가, 라는 이름의 특성이네요.”
“황홀한 미식가?”
역시 특성의 이름만 가지고는 그 성능을 유추하기 어려웠다.
“무슨 능력인데?”
“음… 잠시만요.”
한설아는 자신에게만 보이는 메시지창을 조작해 특성의 상세설명을 읽었다.
“자신이 만든 요리의 맛을 향상시키는 특성이에요.”
“…뭐, 라고?”
아니 뭐야.
‘임자의 김치찌개가 더 맛있어진다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
이미 매일 먹어도 전혀 질리지 않을 정도로 극상의 맛을 지닌 그녀의 김치찌개가 더 맛있어질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믿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S급 특성이니 미각이 녹아내릴 정도로 황홀한 맛을 보여줄 것은 생각할 필요조차 없는 일.
‘미, 미쳤다!’
강우는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번쩍 들어 올렸다.
“대박!! 대바아아아앜!!!”
한설아에게 달려들어 그녀의 뺨에 키스 세례를 퍼부었다.
“임자 사랑해!! 역시 난 임자밖에 없어어어어!!”
“어, 어머 강우 씨도 차암~ 다들 보잖아요~”
한설아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강우를 밀어내기는커녕 환하게 웃으며 그를 끌어안았다.
아니, 끌어안는 것을 넘어 고개까지 살짝 돌리며 뺨에 쏟아지는 키스를 입술로 유도했다.
“헤헤헤. 강우 씨가 이렇게 좋아하시니 다행이네요.”
그녀는 배시시 미소를 지으며 몸을 베베 꼬았다.
“아주 그냥 지랄을 해라 지랄을.”
차연주가 꼴 보기 싫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근데 S급 특성치고는 너무 별것 없는 거 아냐? 그냥 맛을 올려주는 게 끝이야?”
“완성된 요리에 따라서 특수한 효과가 부여되기도 한대.”
“아하.”
그제야 차연주는 대충 알 것 같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버프 계열 특성이네. 근데 무슨 효과를 부여하는데?”
“음… 그건 직접 만들어봐야 알 것 같아.”
“흐응.”
차연주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며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그런 특성이면 나한테 필요한 건데.”
“사람 몇 죽이려고 네가 저 특성을 얻냐.”
“아, 아니!! S급 특성이면 내 요리도 맛있게 될 수 있거든!”
차연주가 기다란 다리를 뻗어 강우를 퍽퍽 때렸다.
강우는 낄낄 웃으며 그녀의 다리를 잡아 장난스럽게 발을 간질였다.
“아악! 놔, 놔 이 자식아!!”
“흐흐흐. 감히 서방님에게 발길질을 해?”
“아, 그 대사는 좀 깬다.”
“죄송.”
갑자기 정색하며 지적하는 차연주의 모습에 강우는 움찔 어깨를 떨었다.
사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좀 많이 오글거렸다.
‘그나저나. 버프 계열 특성이라.’
일단 음식에 걸리는 효과가 무엇인지에 따라서 특성의 성능이 좋은지 안 좋은지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흐흐. 굳이 버프가 없더라도 요리 맛이 좋아지기만 하면 상관없지만.’
살아가는 데 있어서 맛있는 먹거리는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
‘맛있다’라는 감각은 그것만으로도 삶을 지속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자, 목적이 되곤 하니까.
‘나도 그랬고.’
지옥에 있던 만 년 동안 얼마나 그 감각을 갈망하며 그리워했던가.
‘이 정도면 특성 뽑기 값을 충분히 했어.’
기대했던 것과 달리 직접적인 전력 상승은 없었지만, 이 정도면 충분한 값어치를 하고도 남았다.
“좋아, 그럼 다음은.”
강우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발록에게 까닥까딱 손짓을 보냈다.
발록이 흉악한 미소를 지으며 몸을 일으켰다.
얼굴만 보면 당장에라도 사냥감의 사지를 찢어 죽이고 피로 목욕을 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저건 사실 그냥 단순히 기대감에 차 있는 표정이다.
“크흐흐흐!! 잘 부탁드립니다, 마왕님. 처음이니 상냥하게….”
“넌 하지 마, 이 자식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