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634)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외전 115화
Endless Eight (1)
커튼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햇살.
“흐음.”
어젯밤은 멘탈이 박살 난 차연주를 달래주느라 새벽까지 시달렸기 때문에 아직 피로가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강우는 이불을 끌어당기며 조금 더 잠을 이어가기 위해 푹신한 침대에 파고들었다.
“흐응! 강우우우우!! 일어나 봐!!”
콰앙!
그때, 방문이 거칠게 열리며 에키드나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퍼억!
“커헉!!”
달려오던 기세 그대로 점프한 에키드나가 누워있는 강우의 몸 위에 그대로 떨어졌다.
강우는 배를 강타하는 무게에 허리를 굽히며 낮은 비명을 흘렸다.
“으… 뭐야? 뭔 일인데?”
“헤헤헤!”
배 위에 올라탄 에키드나가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강우의 어깨를 잡아 흔들며 외쳤다.
“내일!! 드디어 내일이야!!”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잔뜩 흥분한 표정의 에키드나가 보였다.
“뭐가 내일인데?”
“전에 주문했던 옷이 내일 도착한다구!!”
“옷?”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무슨 옷 말하는 거야?”
“왜 전에 설아랑 연주랑 같이 옷 사러 갔을 때 있었잖아! 그때 주문한 옷들이 내일 도착해!”
“…아.”
그러고 보니 그때 따로 옷을 주문 제작했다고 들은 기억이 떠올랐다.
“꽤 오래 걸렸네?”
“흐응!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네 벌이나 주문했으니깐!”
에키드나는 거센 콧바람을 내뿜으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허리에 척 손을 올렸다.
“네 벌을 주문했다고?”
굳이 옷을 네 벌이나 따로 주문 제작할 필요가 있나?
“헤헤, 내 것만 아니라 연주랑 설라랑, 리리스 것도 같이 주문했어!”
“아, 그렇구만.”
그랬다면 네 벌이다 따로 주문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나저나 무슨 옷을 주문했는데?”
저렇게 흥분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뭔가 특별한 옷이라도 주문한 것 같았다.
“흐흐.”
에키드나는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눈을 반짝였다.
“글쎄에~ 무슨 옷일까~? 강우가 어~~엄청 맘에 들어 할 옷인데!”
“뭐길래 그래?”
저렇게 뜸을 들이는 것을 보니 괜히 더 호기심이 끌어 올랐다.
“한 번 맞춰봐!”
“음… 잘 생각이 안 나는데.”
자신이 엄청 마음에 들어 할 옷이라.
‘전에 오피스룩이랑 가죽 바지만 해도 엄청 좋았는데.’
아니, 조금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호텔에서 봤던 그녀들의 수영복 차림도 있었다.
‘그땐 진짜 기절할 뻔했지.’
특히 리리스가 입었던 슬링샷 비키니의 파괴력을 떠올리자 지금도 전율이 일 것만 같았다.
“이번에도 수영복 같은 거야?”
“땡!”
에키드나가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강우는 그런 야한 옷만 좋아하는구나?”
“아니, 그걸 싫어하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냐?”
나이를 많이 먹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그는 팔팔한 성욕과 육체를 지닌 남자였다.
다른 여자도 아니고 연인들의 조금은 과감한 옷차림을 반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렇게 야한 옷은 아니라구! 다시 맞춰봐!”
“음… 그러면 무슨 코스프레 같은 건가?”
에키드나는 만화나 에니메이션을 좋아하니 충분히 가능성 있었다.
‘전에 일본에 놀러 갔을 때 메이드 카페인가 뭔가 간 적도 있으니까.’
당시는 좋다기보다는 부끄럽고 어색했었지만, 만약 그런 공개된 장소가 아닌 집 안에서 연인들이 그런 옷을 입어 준다면 확실히 느낌이 다를 것 같았다.
‘전에 에키드나가 입었던 게 메이드 복이었나.’
그걸 한설아와 리리스, 차연주가 입는다고 상상하니 벌써부터 입꼬리가 삐쭉삐쭉 올라가기 시작했다.
남들 앞에 입고 나가기는 상당히 쪽팔리는 차림이겠지만, 뭐 어떤가.
‘어차피 집 안에서만 입을 건데.’
흐흐흐.
강우의 입가에서 음흉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아, 이거 진짜 좋을 것 같네.’
메이드 복을 입은 한설아가 저번에 에키드나가 했던 것처럼 주인님이니 뭐니 불러준다면 그대로 심장이 멎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땡! 그것도 틀렸어!”
“흠.”
이번에도 고개를 젓는 에키드나를 바라보며 침음을 흘렸다.
“대체 무슨 옷을 주문했는데 그래?”
이쯤 되니 진짜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다.
“히히히! 내가 주문한 옷은… 짜잔! 바로 이거야!!”
에키드나가 뒤에 감추고 있던 태블릿을 앞으로 내밀었다.
태블릿의 화면에 떠올라 있는 옷의 정체는,
“…아.”
옷을 보자마자 절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제야 왜 이렇게 옷을 제작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했는지, 왜 에키드나가 이렇게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웨딩… 드레스?”
“흐응! 흐응! 맞아! 웨딩드레스야!!!”
“…….”
강우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각각 디자인이 다른 네 벌의 웨딩드레스를 보고 있자니, 이런저런 바쁜 일이 있다는 핑계로 결혼식을 올리는 것을 미루고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결혼이라.’
당연히 기회가 된다면 지금 그의 연인들과 모두 결혼식을 올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지금은 좀 그런데.”
변명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지만, 지금 당장 식을 올리기에는 여러모로 부담되는 것은 사실이다.
결혼식을 올리는 것은 아카르트에 대한 일들을 모두 처리하고 나서도 늦지 않았다.
“흐흥! 나도 당장 결혼식을 올리자는 얘기는 아니야!”
“그럼 왜 웨딩드레스를 준비한 건데?”
“결혼식 말고 약혼식! 그냥 우리끼리만 간단하게 약혼식을 올리는 거야!!”
“…아.”
벼락을 맞은 듯 강우는 크게 눈을 떴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연인들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니 등골을 타고 전율이 퍼졌다.
믿을 수 없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행복감이 전신을 뒤흔들었다.
‘약혼식이라.’
지금 생활만 해도 사실상 결혼을 한 거나 다름없긴 했다.
네 명이 함께 자고, 같은 집에서 생활하니까.
심지어 최근 들어서는 차연주나 리리스, 한설아를 연인이 아니라 그냥 아내라고 부르고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뭔가 느낌이 달랐다.
완벽한 줄 알았던 퍼즐에 비어있던 마지막 조각을 채워 넣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너무 행복해서 당장에라도 괴성을 지르며 펄쩍펄쩍 뛰어오르고 싶은 기분이었다.
‘드디어.’
드디어 자신에게도 정식으로 아내가 생기는 것이다!
“푸흐! 하하하하하하!!!”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머리를 새하얗게 불태우는 듯한 행복감에 발을 동동 굴렀다.
“결혼!! 결혼이다아아아아!!!”
끓어오르는 충동을 참지 못하고 집 안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외쳤다.
올라간 입꼬리가 아무리 애를 써도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가 결혼이라니.’
처음 구천지옥에 떨어졌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만 년 동안의 처절한 발버둥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친다.
그때 자신은 알았을까.
이런 믿을 수 없는 날이 찾아오리라는 것을.
“응, 그래. 하자, 약혼식.”
강우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결혼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자, 이제까지 꾸물거리며 미뤄두고 있었던 것이 멍청하게 느껴졌다.
“흐응! 흐응! 좋아!! 내일 그럼 다 같이 약혼식 올리자!!”
“아, 근데 에키드나 넌 안 돼.”
“뭐, 뭐?! 나, 나는 왜!!!”
쿠웅!
에키드나가 충격을 받았다는 듯 눈을 글썽거렸다.
강우는 피식 웃으며 에키드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중에 성룡이 되고 나서 생각해 보자고 했잖아.”
“흐응!! 생각할 것도 없는걸!! 나도 강우랑 결혼할 거야!!”
“그걸 정하는 게 지금이어선 안 돼.”
에키드나의 마음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자신의 미래를 단정 짓기에는 아직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자신이 그녀를 여자로서 보고 있지 않다.
그런 상태에서 약혼을 하는 것도 말이 되지 않을 것이다.
“우으…. 기껏 내 것도 샀는데에.”
에키드나는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푹 숙였다.
풀이 죽은 그녀의 모습을 보자 왠지 어마어마한 죄책감이 밀려왔다.
“나중에. 나중에 꼭 입자.”
“흥! 그런 말 해놓고 나중에 강우가 나 몰라라 하면 난 뭐가 되는데?”
“그런 일은 없을 거야.”
딱 잘라 말했다.
“…진짜?”
“응.”
만약 나중에 시간이 지나 성룡이 되어서도 지금 그녀가 지닌 마음이 변치 않는다면 그녀의 마음을 받아줄 생각이었다.
“흐응! 흐응! 약속! 나중에 가서 다른 말하기 없기야?!”
에키드나가 새끼손가락을 내밀며 외쳤다.
피식 웃으며 그녀가 내민 새끼손가락에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과연 그때 가서 네 마음이 변하지 않을지는 잘 모르겠다만.”
왜 어렸을 시절에는 나중에 크면 누구누구와 결혼하겠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지 않던가.
원래 그런 약속은 대부분 나이를 먹고 크게 되면서 차차 잊혀지게 마련이다.
“흐응! 어떨 때 보면 강우는 내가 진짜 어린애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나는 설아보다 훠~얼씬 연상이라구!”
“아.”
그러고 보니 에키드나는 오백 살이 넘었지.
외모만 보면 기껏 해봤자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니 자기도 모르게 착각하고 말았다.
“흐응! 어쨌든 내가 성룡이 되면 그땐 결혼해 줘야 해?”
“알았어.”
눈을 반짝이는 에키드나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 * *
그날 밤 저녁.
“강우 씨~ 식사 준비 끝났어요~”
“응.”
강우는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왔다.
차연주와 리리스, 에키드나는 이미 식탁에 둘러앉아 있었다.
[오늘의 뉴스입니다. 한우리 길드가 대전에 발생한 S급 게이트 공략에 성공했습니다. 다만 이번 게이트 공략에 한우리 길드의 핵심 전력인 오정현 플레이어와 김춘봉 플레이어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으며….]거실 쪽에 틀어둔 TV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리모컨을 들어 TV를 껐다.
“아니, 뉴스 좀 보자 이것아.”
밥을 먹으며 뉴스를 보던 차연주가 눈살을 찌푸렸다.
“뉴스보다 더 중요한 소식이 있어서.”
강우는 씩 웃으며 식탁에 앉았다.
“중요한 소식? 뭔데?”
“내일 에키드나가 주문한 웨딩드레스가 도착한데. 그래서 말이야….”
아침에 에키드나와 나눴던 약혼식 얘기를 꺼냈다.
“뭐, 뭐, 뭐, 뭐라고?!”
얘기를 들은 차연주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힌 채 말을 더듬었다.
“가, 가가가가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왜, 싫어?”
“아, 아니!! 싫다는 게 아니라!! 그, 그게. 흐어어헝허어으아긍아.”
무릎을 올려 그 사이에 얼굴을 묻은 차연주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성을 내질렀다.
“후훗. 마왕님과 약혼식이라니… 새삼스러운 느낌도 있지만 좀 기대되네요.”
리리스는 방긋 미소를 지으며 고혹적으로 입술을 핥았다.
여유로운 태도와는 달리 그녀의 머리칼은 부채꼴 모양으로 넓게 치솟아 올라 정신 사납게 꾸물거리고 있었다.
“약혼, 식…. 강우 씨랑… 약혼식….”
마지막으로 한설아는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며 연신 약혼식이라는 단어를 중얼거렸다.
나지막이 단어를 중얼거리던 그녀의 눈가에 투명한 눈물이 맺혔다.
“어? 이, 임자?”
“아… 죄송해요. 왜, 왜 이러지 참.”
한설아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하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고 오히려 더 줄줄 쏟아져 내렸다.
“…임자.”
“흐윽! 해, 행복한데… 너무 행복해서… 누, 눈물이 멈추지를 않아요.”
눈물을 흘리고 있는 한설아를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잔잔한 미소가 절로 입가에 지어졌다.
“강우 씨….”
“응,”
“사랑해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어쨌든, 다들 내일 시간 비워 줘.”
“예! 꼭 비워둘게요!!”
“끄응… 길드 일도 좀 있긴 한데… 뭐, 어, 어쩔 수 없지.”
“호호. 내일이 기대되네요.”
세 여인은 들뜬 목소리로 미소를 지었다.
‘약혼식이라.’
강우 또한 기대감에 부푼 채 저녁 식사를 마쳤다.
잔뜩 흥분에 찬 표정으로 내일 무엇을 할지 토의를 하는 연인들에게 붙잡혀 새벽 늦게까지 어울려 준 후 잠자리에 들었다.
‘무슨 선물을 줘야 하나.’
약혼식 기념으로 무슨 선물을 줄지 생각하며 강우는 스마트폰을 들어 올렸다.
‘11월 9일.’
12시가 지나 날짜가 바뀐 스마트폰의 화면을 바라보며 잔잔한 미소를 띄웠다.
이제까지 11월 9일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평범한 날짜에 불과했지만.
‘앞으론 다르겠지.’
이번 약혼식은 왠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 * *
커튼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햇살.
“힘세고 강한 아침!”
강우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연인들은 이미 일어났는지 침대에는 자신 혼자뿐이었다.
“흐흐흐흐!! 오늘 드디어 장가가는 날이구만!!!”
정식 결혼식이 아닌 약혼식에 불과했지만, 그냥 오늘로 장가를 간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파혼을 할 것도 아니었으니깐.
강우는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지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그때,
-콰앙!
“흐응! 강우우우우!! 일어나 봐!!”
“어이쿠.”
거칠게 방문을 열고 들어온 에키드나가 그에게 폴짝 뛰어올랐다.
“헤헤헤!!”
품에 안긴 에키드나가 밝게 웃었다.
강우는 그녀의 흑갈색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옷은 몇 시쯤….”
“내일!! 드디어 내일이야!!”
응?
“뭐가 내일인데?”
“전에 주문했던 옷이 내일 도착한다구!!”
“…….”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