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637)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외전 118화
Endless Eight (4)
“그러니까, 지금 형님 말씀은….”
“시간이, 되돌아가고 있다는 겁니까?”
강우의 연락을 받고 모인 김시훈과 발록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그래.”
“으음.”
“8일이 반복되고 있다니….”
강우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니, 설사 그들은 강우가 어떤 거짓말을 하더라도 찰떡같이 믿고 따르는 충성심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들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하루가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은 쉽사리 믿을 수 없는 소식이었다.
“물론 완벽하게 반복되고 있는 건 아냐. 아까 말했잖아.”
“죽은 사람은 시간이 되돌아 왔을 때 사라진다는 것 말씀입니까?”
“아, 그러고 보니 오늘 점심 뉴스에 실종 사건이 유독 많이 보였죠. 가디언즈에서도 몇 번 보고 받은 적이 있습니다.”
김시훈은 짧은 탄성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 말씀대로라면 지난 3일 동안 사망했던 모든 사람들이 시간이 되돌아온 순간 한 번에 사라지면서 실종 사건이 그렇게 많아진 거군요.”
“그렇지.”
사람은 어떤 이유에서든지 죽는다.
하지만 하루가 반복됨에 따라 사람들의 기억은 리셋되는데 죽은 사람은 되살아나지 않기에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다는 건….”
김시훈이 턱을 쓰다듬으며 가늘게 눈을 떴다.
“즉, 놈들이 시간을 되돌리는 것 자체가 불완전하다는 말씀이시죠?”
“바로 그거지.”
완벽하게 시간을 되돌리는 것이 가능했다면 죽은 사람 또한 죽기 전 과거로 돌아가 살아나야 했다.
하지만 홍승현을 통해 증명됐듯, 한 번 죽은 사람은 시간이 되돌아간다 해도 되살아나지 않았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그 자리에서 흔적을 감출 뿐.
“제가 되살아났을 때랑은 상황이 다르군요.”
발록 또한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발록은 ‘시간을 되돌려서’ 죽음에서 되살아난 경험이 있었다.
당시 심연에 잠식되어 제정신이 아니었던 강우에겐 정확한 기억이 남아 있지 않았지만, 나중에 한설아를 통해 그때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해 들었다.
‘노스트리안만 하더라도 발록 하나의 목숨을 되살리는데 임자에게 준 모든 힘을 소모해야 했었어.’
당연히 노스트리안도 아닌 놈들이 죽은 존재를 되살릴 수 있을 리가 없다.
아니, 이브의 말 대로라면 노스트리안 본인이 나선다고 하더라도 지구의 시간을 완벽하게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그 허점을 노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반쪽짜리 회귀라는 걸 알았다고 해도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 모르는 이상 아무런 의미 없는 것 아닙니까?”
김시훈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죽은 사람들이 되살아나지는 않지만, 11월 8일의 시간이 반복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회귀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알았다고 해도 시간을 되돌리는 원흉을 찾아내어 막지 않은 이상 하루가 반복되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불러들이면 되지. 이쪽으로.”
강우는 씩 웃으며 아래를 가리켰다.
그가 발록, 김시훈을 부른 곳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불리는 에베레스트산이 위치한 장소였다.
이 주변은 대격변 당시 수십 개의 게이트가 연달아 열린 탓에 아직도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마경(魔境)이 되어있었다.
“무슨 수로 이곳으로 부르신다는 겁니까?”
김시훈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잘 생각해 봐.”
강우는 팔짱을 낀 채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죽은 사람은 되살아나지 않아. 즉, 이번 일을 벌인 놈들은 ‘시간을 되돌리는 것’ 자체를 완벽하게 하지 못한다는 의미지.”
“그건… 그렇죠.”
“근데 그게 과연 사람의 목숨에만 국한된 일일까?”
“예?”
“여기 바글거리는 몬스터 말이야. 얘들도 해당하지 않을까? 아니, 애초에 생물이 아닌 ‘지형’이 파괴되면 얘들은 그걸 완벽하게 복구할 수 있을까?”
“아.”
그제야 김시훈은 강우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깨달았다는 듯, 탄성을 내뱉었다.
“이놈들은 게임으로 치면 하루마다 서버를 롤백시키고 있는 거야.”
그것도 완벽한 롤백이 아니다.
자신들이 되돌릴 수 없는 데이터는 무시해버리면서까지 필사적으로,
어설프고 조악하게 시간을 되돌리고 있었다.
“즉.”
복구해야 하는 데이터가 많으면 많을수록,
11월 8일과 11월 9일 사이에 쌓인 데이터의 변화가 많을수록 그들은 완벽하게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
“얘들이 복구할 수 없는 양의 ‘파괴’를 만들어낸다면.”
강우는 미디르를 꺼내 들었다.
검푸른 빛으로 번들거리는 마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우우웅!!
마검의 검날에 검푸른 빛이 타올랐다.
부(否)의 감정으로 이루어진, 파괴적인 힘의 광선.
씨익 입가를 비틀어 올리며 발아래 펼쳐진 높은 산봉우리를 향해 미디르의 검끝을 겨눴다.
지이이이잉! 파앙!!
드래곤이 브레스를 내뱉듯 검푸른 광선이 일직선으로 쏘아졌다.
“이쪽으로 기어오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단 의미지.”
쿠구구구구궁!!!!
에베레스트산 정상에 수북하게 쌓여 있던 만년설(萬年雪)이 검푸른 광선에 휩쓸려 무너져 내렸다.
원래라면 영적(靈的)인 타격이 주가 되는 공격이었지만, 심연의 마기의 힘으로 쏘아지는 광선은 물리적인 파괴력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쿠르르릉!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만년설이 거대한 눈사태가 되어 주변의 모든 것을 휩쓸어 버렸다.
“발록.”
자연재해가 일어난 것과도 같은 파괴의 현장을 내려다보며 강우는 발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전에 몸이 좀 근질거린다고 했지?”
낄낄 웃으며 물었다.
발록의 눈이 반짝였다.
“크하하하핫!!! 이것 때문에 저희를 부르신 거였군요!!!”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호탕하게 웃었다.
“자━ 그러면!!”
철컥, 철컥, 철컥!!
검은 갑주가 그의 몸을 뒤덮기 시작했다.
치이이익!
등 쪽에서 제트엔진이 분사되는 것처럼 흰색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몸을 반쯤 비틀며 오른 주먹을 높게 들어 올렸다.
검은 갑주에 뒤덮인 날개를 크게 펄럭이며,
“마왕님의 명에 따라 마음껏 날뛰어 보겠습니다아아아아!!!”
눈사태가 휩쓸고 있는 대지를 향해 유성이 떨어지듯 쏘아져 내렸다.
“오라!! 패왕의 천력이여!!!”
【패왕(霸王)의 천력】을 발동시킨 발록은 있는 힘껏 주먹을 쥐었다.
쿠득! 쿠드드득!!
근육이 부풀어 오르며 그의 몸을 뒤덮은 검은 갑주가 터질 듯 삐걱거렸다.
다섯 배가 증폭된 근력.
패왕(霸王)의 힘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무지막지한 힘이 대지를 강타했다.
-쿠과가가가가가강!!!!
발록이 내려찍은 곳을 중심으로 마치 수면에 돌덩이를 집어 던진 것처럼 원의 형태로 대지가 뒤집혔다.
진짜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주변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대지의 지반이 박살 나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
“크르르르르르륵!!”
에베레스트산 주변에 서식하고 있던 몬스터들은 갑작스러운 재해(災害)에 기겁하며 도망쳤다.
수백, 수천에 달하는 몬스터들이 무너지는 대지를 피해 필사적으로 달렸다.
“그렇군요.”
철컥.
김시훈이 허리춤에서 검을 꺼냈다.
새하얀 서리가 검신에 맺힌, 아름다운 검이었다.
“형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허공답보(虛空踏步)를 펼치며 빠르게 공중을 날아서 이동한 김시훈이 도망치는 몬스터 무리 앞에 섰다.
“이십사수매화검법(二十四手梅花劍法).”
【천무고(千武庫)】에 기록되어 있는 절세의 무공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올랐다.
한 번도 실제로 펼쳐본 적 없는 무공이지만, 그에겐 상관없었다.
그는 다른 누구도 아닌 김시훈이니까.
“매화만리향(梅花萬里香).”
검강이 맺힌 검끝이 수천 개로 갈라지며 마치 눈꽃이 휘날리듯 휘몰아쳤다.
짙은 매화향이 주변에 퍼져 나갔다.
“키에에에엑!!!”
“크아아아!!”
검강으로 이루어진 눈꽃의 폭풍에 휩쓸린 몬스터들의 몸이 믹서기에 갈린 듯 조각조각 해체됐다.
에베레스트산에 서식하던 수백, 수천의 몬스터들이 김시훈의 검끝에 허무하리만큼 간단하게 학살당했다.
“푸헤헤헤헿!! 뒤져!! 다 뒤지라고!!!”
[꺄하하하하하핫!!! 그래 뿌숴!! 다 작살 내버리라고!!! 마왕님!!]강우는 폭소를 터트리며 미친 듯이 미디르를 휘둘렀다.
답답했던 기분이 한 번에 해소되는 듯한 짜릿한 감각.
지금 이 상황이 퍽 마음에 드는지 광기에 찬 미디르의 웃음소리도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구원’을 방해하는 자들이여. 지금 당장 그 행동을 멈춰.] [라.]단순한 자연재해를 넘어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는 에베레스트산 일대에 낮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나는 중후한 남자의 목소리였고, 뒤에 짧게 이어 말한 것은 여인의 목소리였다.
‘역시.’
강우는 혀를 길게 내밀며 낄낄 웃었다.
그가 예상했던 대로,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의 ‘파괴’를 일으키는 것이 정답이었다.
“에이~ 댁들이 뉘신지는 알아야 멈추든가 말든가 하지~ 응?”
능글맞게 웃으며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 누군지는 이미 알겠지만.’
대뜸 구원이니 뭐니 떠드는 미친놈들은 ‘그 새끼들’ 말고는 없다.
[나는 아카르트 님의 세 번째 추종자, 솔라.] [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아카르트 님의 네 번째 추종자, 루나.] [다.]“아니 루나 분량 뭔데.”
쟤도 말 좀 시켜줘 이 양심 없는 놈아.
‘아카르트의 추종자가 둘이나 왔군.’
확실히 추종자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스케일의 일이긴 했다.
“너희들이 지금 시간을 되돌리고 있는 거냐?”
[그렇다. 우리는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 이 행성의 시간을 정지시켰.] [다.] [더 이상 ‘구원’을 방해한다면 아카르트 님의 이름으로 그대들을 용서하지 않겠.] [다.]황폐해진 땅에 울려 퍼지는 두 개의 목소리.
하지만 아직까지 그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글쎄에~ 어디 말로만 부탁해선 멈추겠나? 응? 구원이고 나발이고 시간을 원래대로 돌려놔 이것들아. 그러면 그만둘 테니까.”
[거절한다. 우리는 세계를 구원하는 자. 악(惡)의 말을 따를 수는 없.] [다.]단호한 목소리로 답했다.
‘이 정도로는 정지시킨 시간을 되돌릴 생각이 없나 보구만.’
하긴.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지구의 시간을 멈추게 만든 것을 ‘구원’이라 믿고 있다.
‘이놈들을 튀어나오게 해야 할 텐데.’
목소리가 워낙 넓게 울려 퍼지다 보니 이 자식들이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모습을 드러낼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김시훈은 초조한 표정으로 입술을 씹었다.
“그래? 그러면━”
강우는 태연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기어 나오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들어주면 되지.”
귀밑까지 입꼬리가 찢어 올라갔다.
‘이 짓거리를 벌인 놈이 아카르트의 추종자라서 다행이야.’
만약 이번 사건을 벌인 범인이 ‘아카르트의 추종자가 아니’었다면 상당히 골치 아팠을 것이다.
적이 모습을 숨기면 이쪽에서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들이 아카르트의 추종자라면, 해결법은 지극히 간단하다.
“무슨 수로 저들을….”
“시훈아, 그거 알아?”
“어떤 것 말씀입니까?”
“저놈들은 어디까지나 이 세계를 ‘구원’하려고 한다는 거.”
“예?”
김시훈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강우를 돌아보았다.
‘그래.’
아무리 뒤틀리고, 비틀리고, 일그러진 신념이라도.
그들은 지구를 ‘구원’하기 위해 움직인다.
‘그렇다면.’
화르르르륵!!!
탐식의 불이 검푸른 검신 위에 타오른다.
뱀처럼 검신을 둘러싼 탐식의 불이 그 속으로 흘러 들어가 뭉친다.
무시무시한 불이,
세상 전체를 집어삼킬 정도로 거대한 겁화(劫火)가 마검 안에 몸을 웅크렸다.
“지그으으으으으음!!!! 당자아아아아아아아앙!!!!”
거칠게 발을 구르며 포효했다.
짙은 마기가 뒤섞인 데몬 로어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시간으으으으을!! 원래대로 되돌려어어어어엌!!!!”
[악(惡)의 말을 따를 가치는 없.] [다.]“안 해? 안 한다고오오오오오오?? 지금 분명 안 한다고 했지이이이이???”
슬픔이,
차올랐다.
“아, 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앜!!!!”
머리를 쥐어뜯으며 눈을 뒤집어 깠다.
“내가아아아아아!!!! 내가아아아아아앜!!! 내일이 안 오면어어어어언!!! 장가를 못 가는 데에에에!!!”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른다.
이것은 필시 만 년 동안 장가를 가지 못한 노총각이 흘리는,
【실연(失戀)】의 눈물.
“아아아아아!!! 슬퍼어어어어!!! 슬퍼서 눈물이 멈추지를 않아아아아아아!!!”
[제정신이 아닌 악마로.] [군.]“너희들이!!!! 너희들이 날 이렇게 만든 거야!!!!!”
사지를 덜덜덜 떨면서 거품을 쏟아냈다.
“이제 다 필요 없어어어어어!!! 이제 평생 장가도 못 갈 텐데에에에에에!!! 이딴 세계는 필요 없다고오오오오!!!!”
미디르를 높게 들어 올렸다.
그 어떤 망설임도, 자중도 없이 전신의 힘을 긁어모아 탐식의 불을 태웠다.
마검 안에 응축된 세계를 집어삼킬 겁화.
이대로 검을 내려긋는다면━ 확실하게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탐식의 불에 집어 삼켜져 죽게 된다.
[잠깐!!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당장 멈춰라!!!]“혀, 형님!! 제정신입니까?!”
솔라와 루나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김시훈조차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강우를 향해 달려왔다.
“내가아아아아아!! 장가를 못 가는데에에에에!!!! 임자라아아아앙!! 연주라아아아앙! 리리스라아아앙!! 웨딩 드레스 차림도 못 보는 데에에에에에!!! 세계가 무슨 의미냐아아아아앜!!!”
광기에 찬 절규를 내뱉으며,
-화르르르르륵!!!
탐식의 겁화(劫火)를 내리그었다.
[마, 막아아아아아!!!] [지구를 지켜야 합니다!!!!]두 구원자(救援者)가 지구의 멸망을 막기 위해 다급히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