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640)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외전 121화
Endless Eight (7)
[크, 학!]탐식의 불에 꿰뚫린 가슴.
태양과 같은 황금빛으로 이루어진 그의 육체에 검은 불꽃이 퍼져 나갔다.
마치 짐승의 무리에 산 채로 뜯어먹히는 것과 같은 끔찍한 격통이 머릿속을 뒤흔들었다.
[흐, 아, 아아.]몸을 숙이며 탐식의 불에 뜯어 먹히고 있는 가슴에 손을 올렸다.
손바닥에 박힌 연녹색의 보석.
노스트리안의 힘이 담긴 보석이 시간을 되돌렸다.
[허억! 허억! 허억!]포탄을 맞은 것처럼 뻥 뚫려 있던 가슴의 상처가 점차 아물었다.
하지만 시간을 되돌려 상처를 입었던 일 자체를 ‘없었던’ 것으로 만들었음에도 가슴의 상처는 완전히 치료되지 않았다.
노스트리안 본인이 사용하지 않는 이상 한 번 ‘파괴’가 이루어진 것은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완전하게 없었던 것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역시, 힘을 다루는 게 좀 어설프긴 하네?”
상처를 완전히 재생시키지 못한 솔라를 바라보며 강우는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크읏….]솔라는 인상을 찌푸리며 손바닥에 박힌 연녹색 보석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자신의 힘만으로는 이 강대한 악(惡)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솔라의 시선이 루나에게 향했다.
루나는 자신이 싸우고 있는 악마의 부하로 보이는 두 명과 치열하게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다.
[으읏!]전신이 태양과도 같은 황금빛으로 되어있는 솔라와 반대로, 마치 달을 연상시키는 것처럼 푸르스름한 몸체를 지닌 루나는 낮은 신음을 흘리며 뒷걸음질 쳤다.
김시훈이 뒷걸음질 치는 그녀를 빠르게 쫓았다.
“창궁무애검법(蒼穹無涯劍法).”
나지막한 목소리와 함께 검이 움직였다.
새하얀 서리가 맺힌 검날이 마치 허공에 녹아내리는 것처럼 투명하게 변하더니, 이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각도로 꺾어 들어오며 그녀를 노렸다.
남궁세가(南宮世家)의 정수가 담긴 검법이 김시훈의 손을 통해 완벽하게 발현됐다.
[그래 봤자 어차피 인간의 무예(武藝)!]촤라라락!
낭창거리는 연검이 뱀처럼 몸을 꿈틀거렸다.
푸르스름한 기운과 함께 그녀를 노리고 들어오던 김시훈의 검격이 모조리 튕겨 나갔다.
[아카르트 님에게 전수 받은 제 무예에 닿을 수는 없습니다!]루나는 날이 선 목소리로 외치며 손목에 스냅을 주었다.
촤르르르!
그녀의 연검이 뱀처럼 김시훈의 검을 휘감더니 이내 위로 튕겨버렸다.
검자루를 쥐고 있던 김시훈의 손바닥이 찢어지며 그의 검이 멀찍이 튕겨 나갔다.
검사(劍士)가 검을 손에서 놓쳐버리는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천뢰삼장(天雷三掌).”
파지지직!!
김시훈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물이 흐르듯 진각을 밟으며 장법(掌法)을 펼쳤다.
푸른 뇌전이 맺힌 손바닥이 루나의 배를 노리고 쏘아졌다.
[흥!]루나는 자신의 복부를 노리고 쏘아지는 장법에 코웃음을 치며 가볍게 손목을 튕겼다.
손에 쥔 낭창거리는 연검이 순간적으로 5미터가 넘는 길이로 쭉 늘어나더니 뱀처럼 똬리를 틀었다.
똬리를 튼 연검이 장법을 펼치는 김시훈의 팔을 휘감으려는 듯 위협적으로 움직였다.
“크읏…!”
이대로 있으면 연검에 휘감겨 오른팔 전체가 뜯겨나갈 위기에 처한 김시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때,
“비켜라 애송이!”
뒤에서 발록이 김시훈의 목덜미를 잡으며 잡아당겼다.
김시훈의 몸이 뒤로 튕겨 나갔다. 아니, 튕겨 나간 정도가 아니라 아예 날아가 버렸다.
다급히 낙법을 취해 바닥에 착지한 김시훈은 날카롭게 발록을 노려보았다.
“발록, 너 이 자식!”
“크하하하핫! 그러게 누가 이 몸의 앞을 막으라고 했나!”
발록은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며 김시훈과 교체하듯 루나를 공격했다.
“으랏차아아아!”
검은 갑주에 휘감긴 그의 주먹이 루나의 머리를 노렸다.
마치 주먹이 아닌 공성추(攻城錘)가 휘둘러지는 위협적인 소리가 대기를 찢었다.
[힘은 무시무시하지만….]미끄러지듯 뒤로 이동해 가볍게 주먹을 피한 루나는 차갑게 눈빛을 번뜩였다.
[품위가 부족하네요.]앞으로 뻗은 발록의 주먹 위에 손을 올린 그녀가 마치 먼지를 털어내듯 팔을 떨었다.
“크읏?!”
발록의 거대한 덩치가 마치 짜고 치는 레슬링을 하는 것처럼 공중에서 한 바퀴 빙글 돌았다.
그녀의 힘이 아닌, 자기 자신의 힘이 오히려 역으로 돌아오는 듯한 감각.
[하압!]그녀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빛이 회오리치며 발록의 몸을 휘감았다.
푸른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간 발록이 형편없이 바닥을 굴렀다.
쿠웅!
종잇장처럼 날아간 발록은 제대로 된 낙법조차 펼치지 못하고 땅에 처박혔다.
“크흐, 크하하하하핫!! 이거 재미있구만!”
형편없이 바닥을 굴렀음에도 발록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부드러운 산들바람처럼 연약하게 느껴졌던 루나의 손짓에 이렇게 큰 충격을 입으며 튕겨 나갔다는 사실이 그의 피를 끓어오르게 했다.
“어이, 애송이. 무공인지 뭔지 중에서 저런 기술 있지 않나?”
“금나수(擒拿手)의 일종이야. 뭐 어떻게 금나수를 써야 너 같은 덩치를 날려 보낼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잠시 거리를 벌린 채 발록과 루나의 교전을 지켜보던 김시훈은 쯧, 혀를 찼다.
‘전혀 보이지 않았어.’
무공에 대해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그의 눈으로도 방금 전 발록을 날려 보냈던 루나의 움직임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힘이 강한 건 아니야.’
루나와의 교전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녀의 힘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단순한 파괴력만 놓고 본다면 발록이나 자신이 몇 배는 우세하다.
하지만.
‘공격이 전혀 닿지 않아.’
형체가 없는 바람을 상대로 싸우는 듯한 감각.
다가가려 하면 멀어지고, 멀어졌다 싶으면 어느새 바로 앞에 있다.
무엇보다 살아있는 것처럼 낭창거리는 연검이 상대하기 굉장히 까다로웠다.
‘설마… 내가 순수하게 기술로 밀릴 줄이야.’
몇 번의 교전을 통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아카르트에게 직접 전수 받았다고 자랑한 무예는,
확실히 자신이 익힌 무공 이상이었다.
“이게… 아카르트의 추종자.”
김시훈은 딱딱하게 표정을 굳혔다.
확실히 이제까지 싸워왔던 적들과는 그 격을 달리하는 존재였다.
“발록.”
“응? 뭐냐 애송이?”
“네가 앞쪽에서 시선을 끌어줘, 내가 도중에 기습할 테니까.”
“하? 설마 지금 협공을 하자는 거냐?”
발록은 어처구니없다는 헛웃음을 흘렸다.
지금 루나와 2대 1로 싸우고 있기는 하지만, 이제까지 둘은 협공은 펼치지 않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태그 매치를 하듯 서로 한 번씩 그녀와 싸웠을 뿐이었다.
그것만 하더라도 전사의 자존심을 상당히 구겼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협공이라니?
“동시에 상대하지 않고서는 답이 없어.”
“흐음.”
발록은 가늘게 눈을 뜨며 침음을 삼켰다.
김시훈의 말대로 동시에 협공을 하지 않고서는 어려운 상대였다.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답했다.
“알겠다. 협공하도록 하지.”
그는 전사(戰士)이기 이전에 왕의 명령을 따르는 수하였다.
그에게 있어 승리를 위해 자존심을 접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이미 구겨질 자존심도 없으니 말이야.’
말이 협공을 안 했다지 김시훈과 위치를 바꿔가며 루나를 압박한 건 사실이었다.
이미 둘이서 차륜전을 펼쳐 놓고 이제 와서 전사의 자존심이니 뭐니 신경 쓰는 것도 우습다.
“저쪽의 시선을 끌면 되나?”
“응. 그러면 내가 기회를 봐서 기습할게.”
“크흐흐흐! 실수로 날 노리지 마라, 애송이.”
“덩치가 워낙 산만 해서 그건 확답주기 어렵겠는데.”
김시훈과 발록은 시답잖은 농담으로 긴장을 풀고는 동시에 루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흐응, 이제야 둘이 동시에 공격할 생각이 들었나 보죠?]루나는 짐짓 여유로운 표정으로 자세를 취했지만, 그녀의 눈빛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저 둘을 동시에 상대하는 건….’
입술을 짓씹으며 연검을 쥔 손에 힘을 더했다.
전투에 시작하기에 앞서, 솔라가 그러했듯 아카르트에게 기도를 올려 그 힘을 빌렸음에도 저 둘을 상대로 치명상을 입히지 못했다.
‘아카르트 님의 힘을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어.’
여기에 이제 본격적인 협공까지 이뤄진다면 버틸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았다.
‘…그렇다면.’
루나의 시선이 솔라에게 향했다.
공교롭게도 솔라 또한 자신을 바라보며 눈짓을 보내고 있는 도중이었다.
[솔라!]루나는 굳은 결심을 한 듯 그의 이름을 나지막이 불렀다.
솔라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남은 방법은 ‘그것’뿐인 것 같군.]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 힘을 사용한다면 나중에 그 대가가 만만치 않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루나.] [이쪽으로 오세요, 솔라.]루나와 솔라가 전장을 이탈해서 서로에게 향했다.
-촤아악! 쿠웅!
[크읏!] [읏!!]전투 도중 갑작스럽게 자리를 이탈한 대가는 가볍지 않았다.
솔라의 등이 미디르에 크게 베였고, 루나는 발록과 김시훈에게 동시에 공격을 허용했다.
[시작해요, 솔라.] [알겠소.]공격을 몸으로 받아내면서까지 서로에게 접근한 솔라와 루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양팔을 뻗었다.
솔라와 루나의 두 손이 깍지를 꼈다.
그리고,
-우우우우우웅!!!
둘 사이에서 눈이 부실 정도로 폭발적인 빛이 뿜어져 나왔다.
“뭐야 저건 또?”
강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 루나와 솔라를 바라보았다.
[나는 솔라. 태양을 증명하는 자.] [나는 루나. 달을 증명하는 자.]점차 증폭되어가는 빛.
이제까지와는 비교되지 않는, 아찔한 힘의 폭풍을 만들었다.
둘은 마치 뮤지컬의 배우가 된 것처럼 서로의 손을 잡으며 노래를 부르듯 주문을 읊었다.
[나, 태양으로 태어나 달이 되리.] [나, 달로 태어나 태양이 되리.]루나와 솔라.
둘의 시선이 교차한다.
깍지를 낀 양손이 마치 녹아내리듯 흘러내려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맑게 퍼지는 목소리.
솔라와 루나. 각각 태양과 달에서 태어난 상반된 두 존재가,
하나가 되어가는 그 순간.
“이것 들이?”
강우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지금 설마 합체하려고 하는 거야?”
하는 꼴을 보니 어딜 어떻게 보더라도 합체가 맞다.
서로를 끌어안은 루나와 솔라의 육체가 점차 녹아내리며 하나가 되고 있었다.
원래라면 이런 합체 도중엔 공격하지 않는 것이 암묵적인 룰이었지만━
“시훈아아아아아아앜!!! 발로오오오오옥!!!!”
목청이 터져라 둘의 이름을 부르며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질주했다.
“지금이다!!! 지금이야아아아아!!!!”
합체를 하고 있는 루나와 솔라의 몸은 지금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었다.
“이 새끼들 조져!!!!”
완전히 무방비가 된 솔라의 등에 미디르를 쑤셔 넣었다.
[커헉!!!] [소, 솔라아아아!!]합체 도중에 공격받은 솔라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기겁한 표정의 루나가 그의 몸을 붙잡았지만, 합체가 도중에 끊긴 탓인지 솔라는 눈을 까뒤집고 부들부들 몸을 떨고 있었다.
[이, 이 비겁한 자가!!!!!]루나가 부들부들 떨며 강우를 노려보았다.
“푸헤헤헤헤헤헿!!!”
강우는 횡재했다는 듯 폭소를 터트렸다.
“아니, 그러게 누가 싸우다 도중에 합체하래?”
부르르 몸을 떨고 있는 솔라의 등을 다시 한번 칼로 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