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646)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외전 127화
약혼식 (5)
중간에 사소한(?) 소란이 있었지만, 다행히 약혼식은 성황리에 끝을 맺을 수 있게 됐다.
강우는 아직 웨딩드레스 차림의 세 연인, 아니 아내들을 바라보며 헤벌쭉 미소를 지었다.
“흐흐. 이제 그러면 우리 부부 사이가 된 거지?”
“흐응… 그런데 이건 결혼식이 아니라 약혼식 아니었나요?”
리리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그거지 뭐.”
“호호호. 그러면 약혼식이 아니라 그냥 결혼식이라 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요?”
당연한 의문이었다.
강우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그래도 나중에 결혼식은 시훈이나 발록도 다 초대해서 성대하게 열어야지.”
이렇게 집에서 조촐하게 한 것을 가지고 결혼식이라고 하기는 좀 그랬다.
“헤헤. 전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요.”
한설아는 강우가 선물해준 반지를 연신 쓰다듬으며 배시시 웃었다.
이제 정식으로 그의 아내가 된 이상, 성대한 결혼식이고 뭐고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그토록 바라던 꿈이 이뤄지게 되었으니깐.
“강우 씨이~”
한설아가 살짝 몽롱한 눈빛으로 강우를 끌어안았다.
끝없이 차오르는 행복감에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흐응! 강우! 결혼은 나중에 내가 성룡이 되고 나서 해!!”
약혼식의 진행자를 맡았던 에키드나는 거센 콧바람을 내뿜으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행복해하는 세 여인의 모습을 보니 질투가 샘솟은 모양.
강우는 피식 웃으며 그녀의 흑갈색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알았어. 그렇게 할게.”
“호호. 그러면 결혼식은 좀 나중이 되겠네요.”
용이 평균적으로 성룡으로 성장하는 건 800살 전후라고 한다.
지금 에키드나가 500살 정도니 앞으로 300년이란 기나긴 시간이 더 남은 것이다.
“흐응! 아냐! 나는 강우 덕분에 다른 용보다 성장이 훠~얼씬 빨라!”
에키드나가 고개를 저으며 외쳤다.
그녀의 말마따나, 또래의 다른 용에 비해서 그녀의 성장 속도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이미 성룡 이상만 사용할 수 있다는 용언 마법도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깐.
“1년~2년. 아니, 늦어도 3년 안에는 성룡이 될 거야!!”
에키드나는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그렇게 빨리?”
“흐응! 전에 내 팬이 그렇게 말해줬는걸!”
“팬? 아, 그러고 보니 팬클럽에 용신도 있다 했지.”
용신이 직접 보증한 거라면 믿을 만하다.
‘3년이라.’
보통 사람들에겐 꽤나 긴 시간이었지만, 영생에 가까운 삶을 살아가는 그의 입장에선 그리 긴 시간도 아니었다.
‘그럼 결혼식은 3년 후로 할까.’
그 정도면 아카르트와의 싸움도 끝나고 여유가 있을 것이다.
“…안 해.”
“응?”
“난, 너 같은 놈이랑 결혼 안 한다고!”
차연주가 씨익, 씨익 얼굴을 붉히며 외쳤다.
아직 아까 전 일의 분노가 가라앉지 않은 모양.
강우는 거친 숨을 몰아 내쉬는 차연주의 뒤로 돌아가 그녀를 자상하게 끌어안았다.
“미안하다니깐.”
“이익!! 미안한 줄 아는 놈이 그딴 짓을 한 거냐!!”
차연주는 사납게 이를 드러내면 그의 발을 있는 힘껏 짓밟았다.
-나, 나나나… 나. 부. 터?
“아아아아악!!!”
돌이킬 수 없는 흑역사가 머리를 스쳤는지 그녀는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괴성을 내질렀다.
“하하하! 아니야. 진짜 엄청 귀여웠어, 연주야.”
“그딴 개소리는 이제 안 믿….”
“진짜라니깐?”
진심이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 강우는 잔뜩 화가 난 차연주에게 고개를 기울였다.
다소 거칠게 입술을 겹쳤다.
“으읍!!”
차연주는 동그랗게 눈을 뜨며 흠칫 몸을 떨었지만, 강우를 밀쳐내지는 않았다.
입술 사이로 말랑말랑한 혀까지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푸, 푸하!! 부, 부끄럽게 남들 앞에서 뭐 하는 짓이야!!”
“흐흐. 남이 아니잖아. 이제.”
“그, 그건 그렇지만.”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피하는 차연주에겐 더 이상 불같은 분노는 느껴지지 않았다.
“하아. 하여튼 진짜… 내가 왜 이런 놈을.”
깊은 한숨을 내쉬며 강우의 뺨을 쭈욱 잡아 늘였다.
가장 억울한 것은, 이런 상황이 됐음에도 마음속 한구석에서는 ‘아, 볼 잡아당기니 좀 귀엽네’ 같은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고 있다는 것.
그녀 자신도 이미 그에게 벗어날 수 없을 정도로 깊게 빠져버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뭐… 아, 앞으로 잘 부탁해.”
“흐흐흐. 이 오빠만 믿어. 평생 고생시키지 않을 테니깐.”
“헹, 나한테 용돈 받으며 사는 놈이 잘도 그런 말을 하네.”
“아, 그건.”
강우(무직 백수 기둥서방)는 흠칫 몸을 떨며 시선을 피했다.
원래 그도 쌓아둔 재산이 많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건물 전체를 사고, 입맛에 맞게 리모델링을 한데다 리리스가 키우는 정보조직에까지 돈을 투자하게 되면서 빈털터리가 되어버렸다.
물론 가디언즈에 돈을 달라 요청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명목상 가디언즈의 일원일 뿐, 실제 업무에 관련된 일은 전혀 손대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출근도 안 한다.
그런 입장에서 뻔뻔하게 돈을 요청하기는 아무래도 양심이 찔렸다.
“끄응. 게이트에 마석이라도 채취하러 가야 하나….”
마음 잡고 몬스터를 사냥하기만 한다면 하루에 수십, 수백억을 버는 것도 우스웠다.
차연주가 피식 웃음을 흘리며 장난스럽게 그의 볼을 잡아당겼다.
“됐네요. 돈은 이 누나가 줄 테니깐 얌전히 집에 처박혀 있어.”
“연주 누나….”
차오르는 감동에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호호호, 그럼.”
한설아는 눈을 반짝이며 에키드나의 뒤로 돌아갔다.
“응? 왜 그래, 설아?”
“이제 에키드나는 잠깐 쉬고 있으렴.”
“흐, 흐응…? 자, 잠깐!”
에키드나의 어깨를 잡은 한설아의 손에서 검은빛이 흘러나왔다.
“아, 으.”
에키드나의 눈이 풀리며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한설아가 저주 계열 마법 중 졸음이 쏟아지게 만드는 마법을 사용한 것이다.
드래곤이기에 당연히 뛰어난 마법 저항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과거 천신 세라핌이 이룩한 경지보다 더욱 높은 경지에 들어선 한설아의 마법에 저항할 수는 없었다.
“후엥.”
풀썩.
쓰러지는 에키드나의 몸을 사뿐히 받아낸 한설아는 에키드나를 안고 그녀의 방 침대 위에 눕혔다.
“자, 그러면 강우 씨.”
“으, 응?”
웨딩드레스 차림으로 그의 앞에선 한설아는 품속에서 종이를 한 장 꺼내 팔랑팔랑 흔들었다.
아까 강우가 반강제적으로 작성한 혼전 계약서였다.
“계약서에 적힌 약속을 지켜주실 시간이에요♥”
“그거 아까 장난이라고….”
“호호호. 오늘만큼은 달라요~ 그렇죠?”
그렇게 말하며 동의를 구하는 눈빛으로 리리스와 차연주를 돌아보았다.
“후후훗.”
“크, 크흠!!”
리리스는 특유의 고혹적인 미소를 지었고, 차연주는 얼굴을 붉힌 채 헛기침을 내뱉을 뿐, 두 여인 모두 딱히 부정하지는 않았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아직 웨딩드레스 차림의 아내들을 바라보며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들이 지금 뭘 원하는지 예상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도 지금, 그녀들과 똑같은 기분이었으니깐.
‘솔직히 60번은 개오바긴 한데.’
그래도 할 수 있는 만큼은 해볼 생각이다.
‘신혼 첫날부터 의무방어전을 펼칠 수는 없지!’
굳게 주먹을 쥐며 눈을 빛냈다.
무직 백수에 기둥서방이라면 다른 거라도 열심히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자신도 웨딩드레스 차림의 아내들을 보고 끓어오르는 욕망을 참기가 어려웠다.
“다들 따라와.”
쾅!
거칠게 침실의 문을 열며 입고 있는 턱시도의 넥타이를 풀어헤쳐 던져 버렸다.
“어머, 강우 씨이~”
“호호, 오늘은 좀 박력 있으시네요.”
“꼴값 떠네.”
세 아내들이 각자 한 마디씩 던지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 * *
“끄응~ 차!”
늦은 새벽.
리리스가 두 팔을 높게 들어 기지개를 켰다.
그녀의 피부는 반들반들 윤기가 흘렀고, 만족스러운 미소로 가득 차 있었다.
달칵.
그때, 방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며 샤워를 마친 한설아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소곤거리듯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강우 씨는 주무시고 계신가요?”
“후훗. 응. 잘 주무시고 계셔.”
리리스는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는 강우의 머리칼을 가볍게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강우 이 자식 오늘 좀 피곤했나?”
한설아를 따라 샤워를 마친 차연주는 젖은 머리칼을 수건으로 닦아내며 물었다.
원래라면 아직까진 팔팔했을 강우는 침대에 기절한 듯이 쓰러져 잠들어 있었다.
“호호. 많이 피곤하시긴 하셨을 거야.”
“왜?”
“으음. 그건 나중에 따로 말해줄게.”
한설아와 차연주는 아직 모르지만, 강우는 아카르트의 추종자와 전투를 벌인 후 한숨도 자지 않고 바로 약혼식에 참여한 상태였다.
당연히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피곤한 상태일 수밖에 없었다.
“아, 알고 계셨으면 말씀해주시지 그랬어요, 언니. 그랬으면 강우 씨를 푹 쉬게 해드렸을 텐데….”
한설아가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으로 발을 동동 굴렀다.
강우가 피곤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그에게 이런 혹사(?)를 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호호. 마왕님께서 바라신 일이니깐.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말렴. 그냥 좀 피곤하신 것뿐이니 한숨 자면 금방 다 나으실 거야.”
“끄응. 그래도….”
“아 참, 그보다 좋은 생각이 하나 떠올랐는데 다들 어떠니?”
“응? 무슨 생각?”
“호호호.”
리리스는 방긋 미소를 지으며 강우의 이마 위에 손을 올렸다.
“내가 얼마 전에 【꿈의 탐구자】라는 특성을 얻지 않았니?”
“어? 서, 설마.”
“강우 씨의 꿈을 후, 훔쳐보실 생각이신 가요?!”
“어머, 훔쳐보다니. 누가 들으면 나쁜 짓이라도 하는 줄 착각하지 않겠니?”
어디까지나 그녀는 ‘사랑하는 남편’이 무슨 꿈을 꾸며 곤히 잠들어 있는지 궁금할 뿐이었다.
“으, 으으. 큭.”
“어머?”
때마침 잠들어 있던 강우가 마치 악몽이라도 꾸고 있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신음을 흘렸다.
한설아는 눈을 반짝이며 리리스의 옆에 착, 앉았다.
“강우 씨가 좋지 않은 꿈을 꾸고 계신 것 같아요, 언니! 저희는 아내로서 남편이 어떤 악몽에 시달리는지 알아야 해요!”
강우의 꿈을 염탐할 수 있다는 사실에 꽤나 흥분한 듯 거친 숨을 몰아 내쉬고 있었다.
한설아의 동의까지 얻은 리리스는 짙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의 이마를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러면….”
“잠깐! 잠깐만 기다려 언니!!”
“응? 무슨 문제라도 있니?”
갑자기 팔을 쭉 뻗어 그녀를 막아서는 차연주를 돌아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차연주는 진지한 표정으로 잠들어 있는 강우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지금… 강우 이 자식이 무슨 꿈을 꾸는지 보겠다는 거지?”
“응.”
“그렇다면━”
후다닥!
차연주는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향했다.
냉장고에서 무언가를 꺼내 온 그녀는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이게 빠질 수 없지!”
치익!
차연주는 캔 맥주를 따며 실실 웃음을 흘렸다.
오강우의 꿈 탐방이라는 꿀잼 컨텐츠를 보면서 맥주를 마시지 않는 것은 죄였다.
“호호호. 어차피 마셔도 안 취하지 않니?”
“이런 건 느낌이 중요한 거야, 느낌이!”
“후훗. 그럼 잠깐만 기다려 봐, 연주야. 간단하게 안줏거리 좀 만들어 올 테니깐.”
“오, 땡큐!”
한설아가 거실로 나가더니 냉장고에서 치즈와 크래커를 꺼내 접시 위에 올린 후 딸기잼을 발라 간단한 안주를 만들었다.
그녀 또한 기대감에 가득 찬 표정으로 맥주를 한 캔 들고 다시 방 안으로 돌아왔다.
“짠.”
“집에서 이렇게 술 마시는 건 오랜만이네.”
한설아와 차연주는 가볍게 캔을 부딪쳤다.
그런 그녀들의 모습에 리리스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럼 시작할게.”
강우의 이마에 손을 올린 리리스는 【꿈의 탐구자】 특성을 사용했다.
우웅!
마치 홀로그램처럼 강우의 이마 위에 네모난 영상이 떠올랐다.
세 여인이 함께 보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적당한 크기였다.
홀로그램처럼 허공에 떠오른 영상 속에는━
“응?”
붉은 모래가 가득 쌓인 구천지옥을 거닐고 있는 강우와, 그의 뒤를 따라 걷고 있는 발록의 모습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