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647)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외전 128화
천년 전쟁 (1)
“뭐야, 이 자식. 설마 지금 이 타이밍에 발록이랑 같이 있는 꿈을 꾸고 있는 거야?”
영상을 바라보던 차연주는 인상을 팍 구겼다.
꿈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강렬한 인상에 남은 기억을 바탕으로 만들어지고는 한다.
전날 하루 종일 게임을 했을 때 그 게임과 관련된 꿈을 꾼다거나, 기억에 남는 영화나 드라마를 봤을 때 인상의 남는 장면이 꿈에서 떠오르지 않던가.
“대체 왜.”
물론 그게 아닌 경우도 많았지만 바로 어제 약혼식이라는, 기억에 가장 강렬히 남을 이벤트를 겪은 강우가 뜬금없이 발록과 함께 있는 꿈을 꾸고 있을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 그러게? 나도 당연히 약혼식에 대한 꿈을 꾸고 계실 줄 알았는데.”
한설아 또한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
오로지 리리스만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뚫어져라 영상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건….”
황량한 붉은 대지를 하염없이 걸어가고 있는 강우와 발록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녀는 가늘게 눈을 떴다.
“꿈이, 아니야.”
“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언니?”
“꿈이 아니면 저게 뭔데?”
“…기억.”
리리스는 강우의 이마에 올린 손을 살며시 움직이며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이건… 마왕님의 기억이야.”
꿈이 아닌, 과거 실제로 그가 겪은 ‘기억’의 단편.
그 기억의 단편이 그녀의 힘을 통해 영상화되어 재생되고 있었다.
“엥? 언니 특성은 꿈을 보여주는 거 아니었어?”
차연주가 동그랗게 눈을 뜨며 물었다.
리리스는 상태창을 확인하듯 허공에 몇 차례 손짓하더니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특정한 조건이 달성되면 꿈이 아니라 실제 기억을 보는 게 가능하대. 지금 막 알게 된 거라 나도 모르고 있었어.”
“그 조건이 뭔데요?”
“으음. 잠시만 기다려 보렴.”
다시금 허공에 손짓하던 리리스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어머머~ 후훗. 마왕님도 차암~”
“왜 그래 언니?”
“후훗. 기억을 보는 조건은 대상과 완전한 ‘신뢰’ 관계가 성립했을 때 가능하다네.”
“아.”
그제야 리리스가 왜 갑자기 몸을 베베 꼬았는지 이해한 차연주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로써 강우가 자신을 완전히 신뢰하고 있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나 다름없으니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하리라.
“그러면 저건 꿈이 아니라 강우 씨의 진짜 기억이라는 거죠?”
“그렇단다.”
“와아.”
한설아는 짧은 탄성을 흘리며 작게 손뼉을 쳤다.
“강우 씨의 과거….”
강우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았다.
그녀가 알고 있는 것은 만 년 전에 그가 지옥에 떨어졌고, 수많은 역경 끝에 일곱 대공에게 승리하고 마왕의 자리에 올라섰다는 것 정도였다.
그가 지옥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고난과 역경을 겪었는지, 그녀는 알지 못한다.
“언니, 그럼 저게 언제쯤 기억이야? 발록이랑 같이 있으니깐 언니도 좀 있으면 나오나?”
“…아니.”
리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저건 아직 나랑 만나기 전이셔.”
“만나기 전이라고? 언니랑 강우랑 구천지옥에서 만난 거 아니었어?”
“흐음. 이건 좀 설명이 필요하겠네.”
강우가 되도록 구천지옥의 일은 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이런 상황에서 아무 설명도 없이 넘어갈 수는 없었다.
“마왕님이 구천지옥에 오신 건 처음 일천(一天)지옥에 떨어지시고 나서 구천 년이 지나고 난 이후란다.”
“응, 그건 전에 들은 적 있어.”
“그때 구천지옥에 오시자마자 발록을 만나셨고, 대공들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셨지.”
그것이 구천지옥의 판도 전체를 뒤흔들어 버린, ‘천년 전쟁’의 시작이었다.
“천년 전쟁이라면… 구천지옥에 오시자마자 거의 바로 전쟁을 선포하신 거네요?”
“에휴. 누가 오강우 자식 아니랄까 봐.”
처음 듣는 정보에 한설아와 차연주는 눈을 반짝이며 흥미를 보였다.
그나저나 구천지옥에 막 진입하자마자 그 세계의 최강자라 불리는 일곱 대공 전원에게 전쟁을 선포하다니.
이걸 호기롭다 해야 할지, 멍청하다 해야 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극단적인 행동이었다.
“마왕님은 전쟁이 시작되고 난 후 200년쯤 지나서야 처음 나랑 만나셨어.”
“아하. 그럼 저 때는 강우랑 발록만 같이 다녔던 거구나.”
리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흥미롭게 영상을 바라보던 차연주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근데 강우 저 자식은 왜 그렇게 서둘러서 전쟁을 선포한 거야?”
강우의 성격상 준비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으면 싸움 자체를 걸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강우가 구천지옥에 오자마자 전쟁을 선포하다니.
그답지 않은 일이었다.
“그건….”
리리스가 가늘게 눈을 뜨며 말끝을 흐렸다.
“나도 잘 모른단다.”
“엥? 언니도 몰라?”
“마왕님이 그때 일은 말씀해 주시지 않았거든.”
“그러면 지금 보는 저 영상은….”
“응. 맞아.”
리리스는 물끄러미 영상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마왕님에게 들은 적 없는 시절의 얘기야.”
“오오.”
차연주는 탄성을 흘리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리리스조차 모르는 강우의 과거.
구천지옥에 올라가서 리리스를 만나기까지의 200년 간의 공백.
그런 진귀한 기억에 흥미가 솟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서 보자!!”
“호호. 진정하렴.”
“강우 씨의 과거를 이렇게 직접 볼 수 있다니….”
세 여인은 각자 기대에 찬 시선으로 영상을 집중했다.
황량한 붉은 대지를 하염없이 걸어가던 강우가 발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린 그는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언제까지 쫄래쫄래 따라올 생각이야?
-답을 구할 때까지.
발록이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답했다.
“오, 뭐야. 발록이 강우한테 반말하는 거야?”
“시, 신기하네요.”
영상을 본 차연주와 한설아는 동그랗게 눈을 떴다.
강우의 말이 이어졌다.
-답은 네 엄마한테 가서 찾으라니깐?
“이 새끼 말투는 여전하네.”
-내게 부모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헐.
-뭐 그렇게 놀라지?
-아니, 부모가 없다는 말에 안 놀라는 게 이상한 거 아니냐?
-악마들은 대부분 ‘마기의 씨앗’에서 탄생한다. 번식을 통해 탄생하는 악마는 극소수에 불과하지.
발록의 담담한 대답에 차연주와 한설아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리리스를 향했다.
“응. 발록의 말이 맞아.”
“진짜? 그 마기의 씨앗이라는 게 뭔데?”
“으음. 그건 악마들도 잘 모른단다. 그저 검은 균열 같은 게 허공에 생겨나고… 그 균열 속에서 악마가 태어나니깐.”
처음 듣는 정보에 차연주와 한설아는 호기심에 찬 표정으로 이것저것 그녀에게 물었다.
답변을 해주던 리리스는 이내 영상을 손으로 가리키며 방긋 웃었다.
“궁금한 건 나중에 얘기해 줄 테니 지금은 영상에 집중하는 건 어떠니?”
“아, 미안. 언니.”
“일단 영상부터 쭉 볼게요.”
세 여인들은 아무런 잡담 없이 빠져들 듯이 영상에 집중했다.
* * *
“그래. 뭐, 엄마가 없다 치자고. 근데 왜 그 답인지 뭔지를 나한테 구하려는 건데? 아니 애초에 대체 뭐가 궁금한 거야, 새끼야.”
“어떻게.”
발록은 떨리는 눈으로 강우를 응시했다.
“어떻게, 네놈은 일천(一天)의 지옥에서 구천지옥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거지?”
“존나 강하니까.”
“…….”
“됐지? 그럼 이제 걸리적거리지 말고 꺼져.”
“너는….”
발록은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강우를 노려보았다.
“강하지 않다.”
사실이다.
저 인간의 뒤를 따라다닌 후로 몇 번 싸우는 모습을 봤지만, 오강우란 이름의 인간은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
물론 평범한 구천지옥의 악마들은 감히 손댈 수 없을 정도로 강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대공은커녕 상위 악마만 하더라도 어렵지 않게 그를 이길 수 있을 정도의 수준에 불과하다.
실제로 자신만 하더라도 저 인간을 상대로 이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아직은, 말이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
오강우란 인간은 악마나 마물을 ‘먹으’면서 강해진다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 능력이 필요하다.”
“무슨 능력?”
“악마를 먹으면서 강해지는 능력 말이다.”
“아, 포식의 권능? 그건 주고 싶어도 줄 방법이 없어 인마.”
강우는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저었다.
실제로 악마가 지닌 권능을 다른 악마에게 넘겨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애초에 줄 이유도 없고.’
지금 당장은 이길 방법이 없어서 가만히 내버려 두고 있지만, 발록이라는 악마 또한 자신의 먹잇감에 불과했다.
‘언젠간 뼈까지 통째로 씹어먹어 주마.’
그의 목표를 위해서라도 발록이 지닌 강대하고 파괴적인 마기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군. 인간이 지닌 권능이기에 혹시 배울 수 있을까 기대했다만.”
“어림도 없지.”
“그나저나 인간. 너는 분명 대공을 노리고 있다 하지 않았나?”
“엉? 맞아.”
“…어째서 대공을 노리고 있는 거지?”
“걔들의 무기가 필요하니깐.”
쯧, 혀를 차며 답했다.
“대공의 무기가 필요하다고?”
“그래. 대공의 무기가 모두 모이면 차원까지 찢어버릴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들었거든.”
까득.
사납게 이를 갈며 말을 이었다.
“난 그 힘을 이용해서 지구로 돌아갈 거야.”
“지구? 아아, 인간들의 세계 말이군.”
“그래.”
강우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의 망설임조차 없는 행동이었지만, 어째서인지 발록은 고개를 끄덕이는 강우의 표정이 몹시 ‘지쳐있다’ 느꼈다.
발록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헛된 꿈을 꾸는군.”
일곱 대공의 무기를 모두 모으겠다니.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생각이 아니었다.
“그건 네가 상관할 바 아니고.”
“뭐, 어쨌든.”
발록은 강우의 뒤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네가 목표로 하는 것이 대공의 죽음이라면.”
쿵, 쿵.
붉은 대지에 거대한 발자국이 찍혔다.
“나도 함께하겠다.”
“하….”
강우는 질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 보니 이 자식, 패잔병이라고 했던가.’
원래 벨제부브라는 대공을 섬기고 있었는데, 바알인가 뭔가 하는 악마에게 패배해 주인을 잃었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그의 목표는 주인을 죽인 바알일 것이다.
‘뭐… 당장은 신경 쓸 필요 없나.’
어차피 대공의 무기를 모으기 위해서는 바알을 죽여야 했다.
목표가 같은 이상 잠깐 동행을 해도 상관없으리라.
‘쓸모없다 싶으면 나중에 죽여 버리면 되고.’
어쨌든 당장은 같이 다녀서 손해 볼 건 없다.
심지어 지금 발록은 자신보다 훨씬 강했으니까.
“…….”
“…….”
그렇게 지옥에 떨어진 후 처음으로 다른 악마와 동행을 하게 된 강우는 하염없이 펼쳐진 붉은 대지를 걸었다.
처음 지옥에 왔을 때는 매일같이 끔찍한 허기와 갈증에 시달렸지만, 지금은 육체 전체가 악마에 가깝게 되어버렸기 때문에 딱히 허기와 갈증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다만.
‘칼칼한 김치찌개 한 번 먹었으면 소원이 없겠네.’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있는 ‘먹는다’는 행위의 쾌락이 잔향처럼 남아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쉬며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크아아아아악!! 사, 살려 줘어어!!!
높게 솟은 붉은색 암벽 너머에서 처절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따 새끼 목청 한 번 우렁차네.”
“갈 건가?”
“가야지.”
뭔 당연한 소릴 하냐는 듯 심드렁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공짜로 시체 하나 뜯어먹을 기횐데.”
비명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