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649)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외전 130화
천년 전쟁 (3)
“…반쪽짜리 악마라고?”
반쪽짜리는 의미에서, 하프.
즉 번식을 통해 탄생한 악마들은 다른 악마들과 달리 ‘결함’이 존재한다는 의미였다.
강우는 고개를 돌려 벌벌 떨고 있는 두 악마를 바라보았다.
‘겉보기엔 잘 모르겠는데.’
나이가 어려 보인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다른 악마랑의 차이를 잘 알 수 없었다.
“뭔 차이가 있는데?”
“흐음.”
발록은 낮은 신음을 흘리며 턱을 긁적였다.
“너, 일천지옥에서 구천지옥까지 올라왔다고 했었나?”
“엉. 알고 접근한 거 아냐?”
“그럼 그때 동안 ‘어린’ 악마를 본 적 있나?”
“뭐? 그야 당연히….”
어?
“…그러고 보니 악마 중에서 어린 악마는 본 기억이 없네?”
강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제까지 구천 년이라는 아득한 시간 동안 많은 악마를 만나왔고, 먹어치웠다.
그 자신조차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마기의 ‘바다’가 생길 정도로 셀 수 없는 악마들을.
그런데.
‘그중에 어린 악마는 없었어.’
마물의 새끼들은 자주 봤지만, 악마의 경우는 어린 악마를 본 기억이 없었다.
평소에 딱히 신경을 쓰지 않아 이상한 점을 눈치채지 못했는데, 천천히 생각해 보니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마기의 씨앗에서 태어난 악마는 기본적으로 모두 성체로 태어난다.”
“태어난 그 순간부터 성체라고?”
“그렇다. 물론 지식적인 부분이나 경험적인 면에서는 부족하지만 육체 자체는 더 이상 성장이 필요 없는 최상의 상태로 태어나지.”
그렇다면 발록은 처음 태어난 그 순간부터 5미터에 달하는 거체를 지닌 근육몬이었다는 건가.
‘상상하니 좀 역겨운데.’
갓 태어난 5미터 근육 덩어리가 어린아이와 같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본다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하지만 하프들은 다르다.”
발록은 일반적인 악마에 비해 한창 왜소한 체격을 지니고 있는 두 악마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하프들은 유체(幼體)로 태어나, 성장의 과정을 거쳐 비로소 완전한 악마로 거듭난다.”
“아하.”
성장(成長)이 필요하다는 것.
그것은 힘의 논리로 이루어진 악마들의 사회에서는 치명적인 단점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결함이었다.
“그래서 반쪽짜리라고 하는 거야?”
“그런 이유도 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뭐야, 여기서 더 있다고?”
절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하프는━”
발록은 가늘게 눈을 뜬 채, 경멸에 찬 시선으로 두 악마를 노려보았다.
“욕망하지 않는다. 아니, ‘다른’ 것을 욕망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겠군.”
악마는 수명의 제약이 없는 만큼, 영생(永生)의 삶에 짓눌려 미치는 걸 막기 위해 본능적으로 욕망을 하게 된다.
욕망하는 것이 전투의 쾌락일 수도, 강력한 힘일 수도, 막대한 권력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들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욕망하며, 그것을 원동력 삼아 살아간다.
악마에게 있어 욕망이란 근원이자, 근본이며, 삶 그 자체였다.
“다른 것을 욕망한다고?”
“하프는 타자(他者)를 욕망한다. 자기 자신의 이득과 목숨보다는 다른 악마들과의 관계에 더 집착하지. 한마디로 말해서, 이놈들은 이타적(利他的)이다.”
“아.”
짧은 탄성을 흘렸다.
이타적인 악마.
자신보다도, 다른 악마를 더 위하는 악마.
그것은━
‘반쪽짜리 악마가 맞네.’
악마로서는 치명적인 결함이었다.
‘그래서 아까 회색 악마나 발록이 하프에게 저런 시선을 보내는 건가.’
발록의 경우 그 정도가 덜하지만 어쨌든 하프들을 경멸에 찬 시선을 보고 있는 것은 같았다.
“그런데 좀 이해가 안 되네. 너도 섬기는 주인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지 않냐?”
비록 패잔병이 되어 살아남기는 했지만, 발록은 지금도 과거 섬겼던 벨제부브의 복수를 위해 자신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그것 또한 충분히 이타적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은가.
“흐음.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군.”
“그치?”
“하지만, 맞는 말 또한 아니다. 그분에게 충성을 바치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그것이 내 욕망이기 때문이다.”
“뭔 차이야 그게.”
나를 위해 남을 돕건, 남을 위해 남을 돕건 어차피 같은 말 아닌가.
욕망의 주체(主體)가 다를 뿐 그 결과는 같았다.
“그러니까━”
“아니, 됐다. 됐어.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해서 어따 쓰겠냐.”
솔직히 하프가 악마들 사이에서 차별을 받건 말건 관심도 없다.
“된장? 그건 또 무슨 말이냐?”
“네 대가리에 차 있는 거랑 비슷한 거야.”
“뭐?”
“됐고.”
말을 자르며 페리안과 페르라 자신을 소개한 악마들에게 다가갔다.
“아까 너네 여기가 ‘우리 구역’이라고 했지?”
“예, 예!!”
히끅!
페리안이 딸꾹질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의 입가가 씩 올라갔다.
“너네 구역에 몇 마리가 모여 살고 있냐?”
“사, 삼백 정도 같이 살고 있어요.”
삼백.
집단 활동을 많이 하지 않는 악마치곤 꽤나 많은 숫자였다.
“그중에 너네 같은 하프는 얼마나 되는데?”
“대, 대부분이 하프예요.”
“대부분이 하프라고?”
“…네.”
“그게 말이 되나?”
강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프라는 건 악마와 악마 사이에 태어난 악마라고 했다.
그렇다면, 적어도 그들을 낳은 부모는 하프가 아니지 않겠는가.
“악마는 대부분 자식을 낳자마자 버린다.”
“뭐?”
이어지는 발록의 설명에 강우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부모가 자식을 낳자마자 버린다고?”
“그렇다.”
“대체 왜?”
“응? 왜냐니. 당연하지 않은가? 자식이란 것은 결국 성욕의 부산물일 뿐. 그 귀찮고 연약하기 짝이 없는 생물을 굳이 왜 기른단 거지?”
“공자가 불알을 치며 놀랄 논리네.”
오히려 자신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발록의 표정에 강우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이게 진짜 지옥식 육아 방법이지.’
지옥에 비하면 아직 한국은 살만한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여하튼. 페리안이라고 했나?”
“예, 예!”
“너희가 모여 사는 구역을 알려줘. 데려다줄 테니깐.”
“저희를… 데려다주신다고요?”
“또 여기 근처를 어슬렁거리면 이런 놈들을 만나게 될지 모르잖아?”
머리가 뚫려 죽은 회색 피부의 악마를 툭툭 치며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들의 마을 전체를 털어먹기 위해서는 최대한 경계심을 품지 않게 만들어야 했다.
“아… 가, 감사합니다!!”
페리안은 순진한 미소를 지으며 허리를 숙였다.
강우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바로 안내해 드릴게요!”
“아, 잠깐만.”
몸을 돌려 머리가 뚫린 회색 피부의 악마가 쓰러져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거는 먹고 가야지.”
“예?”
쩌적.
강우의 손바닥이 갈라지며 날카로운 이빨이 돋친 검은 점액질이 주르륵 흘러나와 악마의 시체를 뒤덮었다.
우드득! 우드드드득!!
곧이어, 뼈를 씹어 삼키는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 * *
“이, 이쪽이에요.”
포식의 권능으로 악마의 시체를 남김없이 먹어치운 후, 페리안의 뒤를 따라 하프들이 모여 있다는 구역으로 향했다.
하프들이 모여 사는 마을은 복잡하게 솟아 있는 암석 지대 너머에 있는 거대한 동굴이었다.
동굴 안에는 조잡하게 만든 오두막이 쭉 늘어서 있었고, 그 밖에는 어린 악마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하.”
마을의 풍경을 쭉 훑어본 강우는 작은 헛웃음을 흘렸다.
‘이래서 다르다, 고 말했던 건가.’
마을의 풍경을 본 순간, 발록이 했던 말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꺄하하핫!! 야~! 거기서~!”
“히히히! 여기라니깐, 여기!”
동굴 안에서 장난스럽게 뛰어놀고 있는 어린 악마들의 표정은 밝았고, 조금 성장한 것처럼 보이는 악마들은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따스하게 어린 악마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가 악마들의 마을이라고?’
이제까지 악마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 가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강력한 악마는 권력을 추구했고, 자연스럽게 세력을 키우기 마련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제까지 가본 그 어떤 마을도 지금 이 마을처럼 ‘따스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냉혹했고, 처절했으며, 비참했다.
마을에 살고 있는 악마들이란 단순하게 말해 강력한 힘을 지닌 악마 하나에게 복종하며 따르는 노예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노예들이 짓는 표정은 둘 중 하나였다.
‘분노와 증오에 가득 차 있거나.’
아니면 모든 욕망을 거세당한 채 무기력하게 주저앉아 있거나.
이제까지 봐온 악마의 ‘마을’이란 것들은 모두 그런 모습이었다.
“페리안!! 정찰 갔다 왔구나!”
“무슨 일 없….”
“이, 인간?”
페리안이 마을에 도착하자 우르르 몰려든 악마들이 동그랗게 뜬 눈으로 강우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에는 호기심이나 경계심은 담겨 있었지만, 적의(敵意)는 느껴지지 않았다.
‘세상에.’
단언컨대 지옥에서 살면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대부분의 악마들은 인간만 보면 나약한 생물이네 어쩌네 지랄을 하며 달려들었으니까.
“와아. 실제 인간을 본 적은 처음이야!”
“그런데 정말 인간 맞아? 왠지 익숙한 기운이 느껴지는데.”
“그, 그러게? 진짜 마기가 느껴지네!”
어린 악마들은 강우를 둘러싼 채 왁자지껄 떠들었다.
“애들아, 그러면 실례잖아.”
“이쪽으로 오렴.”
다른 악마들에 비해 조금 나이 들어 보이는 악마들이 다가와 왁자지껄 떠드는 어린 악마들을 잡아끌었다.
힐끔힐끔 곁눈질로 강우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에는 외지인(外地人)에 대한 숨길 수 없는 공포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 어색한 공기가 동굴 안에 감돌던 것도 잠시,
-쿵, 쿵.
“히익!!!”
“대, 대악마야!!!!”
“바, 발록!!! 저 악마는 분명 발록이야!!!”
“꺄아아아악!! 초, 촌장님!!! 촌장님을 불러와!!!”
“베, 벨제부브의 군단장이 여긴 왜!!!”
떨어져 걷고 있던 발록이 동굴 안으로 들어오자 마을 전체에 패닉이 일어났다.
악마들은 머리를 쥐어뜯거나 발을 동동 구르며 정신 사납게 동굴 안을 돌아다녔다.
‘리액션 미쳤네.’
새삼 발록의 위명이 구천지옥에서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이 들었다.
“…시끄럽군.”
발록이 눈살을 찌푸리며 마기를 뿜었다.
“히, 히끅!”
“어, 어으, 어, 끄읍.”
“제, 제발 목숨만은….”
악마들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채 바닥에 머리를 처박았다.
그중에는 알 수 없는 신음을 흘리며 눈을 까뒤집은 자도 있었다.
“여, 여러분! 걱정하지 마세요! 이분들은 저희를 해치지 않습니다!!”
페리안이 앞으로 나서며 외쳤다.
“해, 해치지 않는다고?”
“그럴 리가….”
다른 악마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발록을 바라보았다.
하프는 다른 악마들에게 혐오와 경멸의 대상이다.
불쾌하다는 이유만으로 하프를 찾아다니며 죽이는 악마도 있는 마당에 마을 안까지 들어와서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이 꼬맹이의 말은 사실이다. 난 너희 같은 반쪽짜리들에게 아무 관심 없다.”
발록은 주변을 쓱 훑어보며 말을 이었다.
“물론.”
쿠구궁!
폭발하듯 뿜어져 나오는 마기와 함께 주변 대지가 뒤흔들렸다.
“시끄럽게 떠들지 않는다면, 말이지.”
“…읍!”
“히, 히끅!”
파랗게 질린 악마들이 입을 틀어막으며 덜덜덜 몸을 떨었다.
강우는 공포에 질린 악마들을 바라보며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지랄 났네, 아주.”
수백에 달하는 흉측한 외모의 악마들이 단체로 벌벌 떨고 있는 모습은 희극이나 다름없었다.
“야, 발록. 너 좀 저리 꺼져 있어. 애들 괜히 겁먹잖아.”
이러다가 악마들이 도망치기라도 한다면 곤란했다.
“…네 놈의 말을 따를 이유는 없다만.”
발록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강우를 노려보았다.
“뭐, 협력하신다면서요? 지금 이게 협력하는 거냐? 앙?”
“…….”
발록은 대꾸할 말이 없는지 한숨을 푹 내쉬며 동굴 밖으로 터벅터벅 걸어 나갔다.
“이, 이쪽으로 오세요, 강우 님. 촌장님을 소개해드릴게요.”
페리안 또한 거대한 마기의 기운에 겁을 먹었는지 잔뜩 위축된 목소리로 말했다.
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페리안의 뒤를 따랐다.
페리안의 뒤를 따라가며 주변을 살폈다.
‘이놈들을 싹 다 쓸어 담을 방법이 있나?’
하프들은 이게 과연 구천지옥의 악마가 맞나 싶을 정도로 약해 빠지긴 했지만, 숫자가 너무 많았다.
솔직히 삼백이나 되는 악마들이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한다면 따라잡을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대충 몇 마리만 잡아먹자니 마기 양이 시원찮고.’
계륵 같은 놈들이었다.
“페리안. 이분들은 누구시니?”
그때, 동굴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집에서 한 악마가 걸어 나왔다.
악마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온화한 목소리.
마을의 다른 악마들과 달리 완전히 성장한 성체 악마였으며, 비쩍 말라붙은 오른팔에 비해 왼쪽 팔의 근육은 기괴할 정도로 부풀어 올라 있었다.
‘그래도 나름 한 집단의 수장이라 이건가.’
촌장에게서 느껴지는 마기는 다른 하프들과 달리 상당히 강력했다.
‘뭐, 그래봤자 지만.’
지금 자신의 힘으로 상대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다.
“촌장님!! 이분들이 저랑 페르를 구해주셨어요!”
“…구해주셨다고?”
페리안이 앞서 있던 일들을 촌장에게 설명했다.
처음에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설명을 듣던 촌장은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들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이 마을을 책임지고 있는 제파르라 합니다.”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며 비쩍 마른 오른팔을 내밀었다.
강우는 제파르의 손을 마주 잡았다.
“오강우라 합니다.”
“소문은 들은 적 있습니다. 일천지옥에서부터 무수한 악마들을 쓰러트리며 지옥으로 오르고 있다는 인간이 있다고.”
아무래도 자신을 알고 있는 모양.
강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 그나저나 또 습격이라니… 이번 달만 해도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군요.”
제파르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어깨를 떨궜다.
‘응?’
강우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평소에 이런 일이 자주 있던 겁니까?”
“…예. 하프를 혐오하는 악마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으니까요. 아무래도 조만간 또 마을을 옮겨야겠습니다.”
“…….”
제파르를 말을 곰곰이 생각하던 강우의 머릿속에 번뜩이는 생각이 스쳤다.
‘잠깐만 이거….’
구천지옥 악마들의 혐오와 멸시를 한 몸에 받는 마을.
끝없는 습격에 시달리는 ‘반쪽짜리 악마’들.
‘이용할 수 있겠는데?’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발견한 농부처럼 씨익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