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651)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외전 132화
천년 전쟁 (5)
“뭔가… 저 마을은 지옥이라는 느낌이 전혀 없네요.”
영상을 바라보던 한설아가 나지막이 말했다.
리리스가 방긋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지옥이라고 저런 곳이 없는 건 아니란다. 물론… 많이 드물긴 하지만.”
흔히 악마를 피와 살육, 탐욕에 미친 괴물이라 생각하지만, 악마 또한 인간이 느끼는 것과 같은 여러 감정들을 똑같이 지니고 있다.
특히 번식을 통해 탄생한 하프의 경우 그런 감정들이 훨씬 더 발달해 있었다.
“근데 강우 쟤는 성격이 지금보다 훨씬 더 더러웠네.”
차연주가 헛웃음을 흘리며 맥주를 기울였다.
설마 지금 강우의 성격이 선녀처럼 보이게 될 날이 올 줄이야.
그만큼 과거 기억 속 강우의 모습은 굉장히 사납고, 날카로웠다.
“음… 글쎄. 그건 아닌 것 같아.”
“저게 성격이 더러운 게 아니라고?”
무슨 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동그랗게 눈을 떴다.
영상 속 강우의 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한설아는 오두막 안에 홀로 앉아 있는 강우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끝이 홀로그램처럼 떠오른 영상을 뚫고 지나갔다.
“뭔가… 이 마을에 오시고 나서 바뀌셨어.”
“엥? 맨날 짜증내고 쌍욕하고 그러는데?”
“으음. 나도 잘은 모르겠는데.”
페르라는 어린 서큐버스가 타준 차를 마시며 인상을 찡그리는 강우의 모습이,
“왠지… 웃고 계신 것처럼 보여.”
“…….”
차연주는 굳게 입을 다문 채 가늘게 눈을 떴다.
영상 속 강우의 얼굴을 살펴봤지만, 웃음은커녕 실소조차 흘리지 않고 있었다.
“…난 잘 모르겠는데.”
머리를 긁적이며 새로운 캔 맥주를 땄다.
그때,
“어? 이, 이거 왜 그래?”
갑자기 빨리 감기를 한 듯 영상이 빠른 속도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조각난 퍼즐처럼 단편적인 기억들이 떠오르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언니가 이런 거 아니지?”
“…응. 나도 갑자기 왜 그런지 모르겠네.”
리리스는 눈살을 가볍게 찌푸리며 제멋대로 영상이 스킵되는 것을 막으려 했지만, 영상은 망가진 필름을 재생시키듯 뚝뚝 끊어지며 계속해서 빠르게 흘러갔다.
“아….”
중간중간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영상을 바라보며 한설아는 짧은 탄성을 흘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영상 속 강우의 표정이 점차 그녀에게 ‘익숙한’ 그의 표정으로 바뀌고 있었다.
“아, 이제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빠르게 흘러가던 영상이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세 여인들은 허리를 살짝 숙이며 다시금 영상에 집중했다.
* * *
“━멍청한 하프 놈들.”
넓은 동굴.
깔끔하고 세련된 외형의 오두막이 정갈하게 늘어서 있는 동굴의 중심에서,
강우는 지그시 눈을 감은 채 말을 이었다.
“할 줄 아는 거라고는 바퀴벌레처럼 숨는 것밖에 없는 모양이구나.”
낮게 깔린 목소리.
고요한 동굴 속에 음산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크흑, 크하하하하하핫!!!”
배를 움켜쥔 채, 조롱과 경멸을 가득 담아 광소(狂笑)를 터트렸다.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뜬다.
차갑게 빛나는 눈으로 주변을 살핀다.
“자, 꼭꼭 숨어라, 이 나약한 패배자들아!!!”
3분이 흘렀다.
이제는━ 【사냥】의 시간이다.
“머리카락 보일라아아아아!!!”
투두두두두!!!
강우는 동굴 벽면을 향해 미친 듯이 질주했다.
툭 튀어나온 돌 아래쪽.
그늘져 있어 보이지 않는 틈 안에 어린 악마 하나가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강우는 씨익 입가를 비틀어 올렸다.
“찾았다, 요놈!!”
“호에에엑!!”
썩은 나무처럼 전신에 마른 잔가지가 돋아 있는 악마는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울상을 지었다.
“왜 맨날 저만 이렇게 빨리 찾으시는 거예요!!”
“그야 네 가지가 튀어나와 있어서 잘 보이니깐.”
강우는 낄낄 웃으며 어린 악마의 머리를 툭툭 쳤다.
“후에엥. 강우 님이랑 숨바꼭질만 하면 맨날 이래.”
“걱정하지 마라.”
씨익 몸을 돌리며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다른 놈들도 금방 잡아 줄 테니까.”
권능 따위 사용하지 않아도, 어디에 요 꼬맹이들이 숨어 있는지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강우는 재빠르게 움직여 오두막 바닥이나 동굴 종유석에 달라붙어 있는 악마들을 찾았다.
“으으! 역시 강우 님이셔!!”
“이번엔 10분은 버틸 줄 알았는데!”
순식간에 잡힌 악마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흐흐흐! 나한테 몸을 숨기기는 아직 멀었다, 요것들아!”
가소롭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아, 그런데 카닐 그 자식은 어딨냐?”
카닐은 이마에 네 개의 뿔이 돋은 보랏빛 피부의 악마였다.
3년 전. 막 이 마을에 살기 시작한 그에게 겁도 없이 숨바꼭질하자고 제안했던 꼬마 악마.
매번 숨바꼭질을 할 때면 빠지지 않는 놈이 어째서인지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카닐은 오늘 할 일이 있다고 못 온다고 했어요!”
“그래? 맨날 놀고 자는 놈이 뭘 할 일이 있다 그러냐.”
“우응. 비밀이라고 해서 그건 잘….”
어린 악마가 난처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강우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자신이 묵고 있는 오두막으로 몸을 돌렸다.
“앗! 한 번 더 해요, 강우 님~!”
“이번엔 절대 안 들킬 거예요!”
“아까 전에도 그 말 하지 않았냐?”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꼬맹이들 상대해 줄 시간 없으니 난 이만 가본다~”
“치사해!!”
“이기고 도망치다니!!”
“으응~? 5분 컷 당한 찐따들이 하는 말이라 잘 안 들리는데~?”
“이익!!”
분통을 터트리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강우는 오두막 안으로 돌아왔다.
-똑똑.
“저… 가, 강우 님. 들어가도 되나요?”
바닥에 앉아 마기 제어력을 올리는 수련을 하고 있자,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엉, 들어와.”
누가 문을 두드렸는지는 이제 굳이 생각할 것도 없었다.
방문이 열리며 컵을 든 페르가 쪼르르 안으로 들어왔다.
“헤헤, 오늘도 혈광초 차를 끓여 왔어요, 강우 님.”
“윽.”
컵 안에 담긴 붉은색 차를 보고 과장되게 눈살을 찌푸렸다.
“이, 입에 맞지 않으신가요?!”
페르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몸을 떨었다.
강우는 낄낄 웃으며 페르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연녹색 촉수가 손가락 사이에 얽혀들었다.
“농담이야.”
사실 입에 맞지 않은 건 팩트였지만, 풀이 죽은 페르의 얼굴을 보면 솔직하게 말할 수가 없었다.
“강우 님….”
페르는 얼굴에 살며시 홍조를 띠며 강우를 올려다보았다.
“저, 그… 가, 강우 님.”
“엉? 왜?”
“강우 님은… 그, 조, 좋아하는 악마라거나… 있, 있으신가요?”
“있겠냐.”
인간의 관점으로 보면 악마들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흉측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특히 서큐버스라면 더더욱.
“아! 그, 그러셨군요!! 헤헤헤.”
페르는 환하게 웃으며 폴짝 뛰어올랐다.
“그, 그럼 맛있게 드세요!!”
페르는 얼굴을 붉힌 채 몸을 돌려 호다닥 문을 닫고 나갔다.
강우는 쓴웃음을 흘리며 그녀가 닫고 나간 방문을 바라보았다.
“하프들에게 인기가 많군.”
“끼에에에에에에엑!!”
쿠당탕!
갑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에 발작을 일으키듯 괴성을 터트렸다.
“내가 거기서 튀어나오지 말라 했지!!!”
창문 밖으로 보이는 발록의 흉악한 얼굴을 가리키며 외쳤다.
“그렇다고 내가 그 좁은 오두막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지 않은가.”
“아니, 그렇긴 한데.”
하아.
한숨을 내쉬며 페르가 가져다준 컵을 들어 올렸다.
“…언제 마셔도 더럽게 맛없네.”
표정을 찡그리며 붉은 액체를 목으로 넘겼다.
“인간.”
“왜?”
“대체 언제까지 이곳에 있을 생각이지?”
“…….”
강우의 몸이 흠칫 떨렸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주먹을 쥐었다.
“파밍이 끝나면━”
“이제 이 주변에 악마들도 접근하지 않을 텐데?”
사실이다.
이쪽으로 접근하는 악마들을 보는 족족 죽이다 보니 어느새 하프들의 마을이 위치한 이곳은 악마들 사이에서 고대 마물의 서식지마냥 금지(禁地) 취급을 받게 됐다.
요 몇 달간 마을 근처 구역에 악마가 들어온 것은 손으로 꼽을 정도로 적었다.
그것도 모두 이곳이 하프의 마을이라는 것을 알고 들어온 것이 아닌, 실수로 이쪽으로 들어온 거였다.
발록의 말대로,
자신이 이 마을에 남아 있을 이유는 더 이상 없었다.
“…….”
하지만.
강우는 입 밖으로 나오려는 그 말을 삼키며 입술을 짓씹었다.
“…정비할 시간이 필요해.”
“뭐?”
“마기가 예상보다 너무 늘어났어. 마기 제어력을 올리면서 힘을 정비할 시간이 더 필요해.”
“…….”
발록은 굳게 입을 다문 채 침묵했다.
“알았다.”
나지막이 말하며 몸을 돌렸다.
“그럼 인간. 나는 일주일 후에 이곳을 나가겠다.”
“뭐? 갑자기 왜?”
“이곳에 남아 있어도 더 이상 얻을 게 없으니깐.”
“…….”
강우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그의 눈빛에 잠시 갈등이 떠올랐지만, 이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래. 알았다.”
“…….”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쿵, 쿵.
발록이 오두막에서 멀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랄.”
홀로 남은 강우의 입에서 나지막한 욕설이 흘러나왔다.
“지랄, 지랄, 지랄!!!”
머리를 쥐어뜯으며 사납게 이를 갈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이 치솟아 올랐다.
“…….”
아니.
사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이 아니다.
그는 누구보다, 이 감정이 무엇인지 잘 이해하고 있었다.
“나는….”
지옥에 떨어진 후.
그는 고독했다.
외로웠고, 괴로웠다.
지옥은 너무도 차가워서, 얼어붙을 것 같아서, 미쳐버릴 듯이 고통스러워서.
그래서.
이곳을 나가기로 결심했다.
“나, 는….”
특별한 계기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인생을 뒤바꾸고, 인식을 뒤집을 만한 충격적인 사건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자연스럽게.
물통에 떨어트린 한 방울의 물감이 번지듯.
‘행복’이라는 감정에 중독되어 갔다.
“…….”
이곳은 차갑지 않았다.
외롭고, 고통스럽지 않았다.
그래,
그렇기에,
그렇기 때문에.
떠올려 버리고 만다.
어쩔 수 없이, 막을 수 없이.
생각해 버리고 만다.
“계속….”
계속, 이곳에 있고 싶다고.
콰앙!!
오두막의 문이 거칠게 얼렸다.
“가, 강우 님!!!”
창백하게 질린 페리안의 표정.
“뭐야?”
강우는 다급히 몸을 일으켰다.
“저, 그, 그러니깐. 그….”
페리안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진정하고 무슨 일인지 말해.”
페리안의 어깨를 잡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혼란에 빠져 있던 페리안의 표정이 점차 진정됐다.
“오늘 순찰을 나간 애들이… 그… 훌쩍! 카, 카닐이….”
뚝뚝.
페리안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악마의 눈물은 인간과 똑같이 투명했다.
“카닐이 죽어 있는 걸… 바, 발견했대요.”
“…….”
강우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페리안의 어깨에 올린 손을 내리며 몸을 일으켰다.
“시체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페리안이 문밖을 가리켰다.
저벅, 저벅.
오두막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밖에는 하프들이 둥그렇게 모여 있었다.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오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비켜.”
하프들을 거칠게 밀치며 앞으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
짓밟힌, 사지가 뒤틀리고, 목이 기괴한 각도로 꺾인.
이마에 돋은 네 개의 뿔이 잡아 뽑히고, 눈을 까뒤집은 채 혀를 내민.
어린 악마의 시체 하나가 나뒹굴고 있었다.
“흐윽….”
“흐아아앙!”
처참한 시체를 내려다보며 어린 악마들은 울음을 터트렸다.
그들에겐 익숙한 일일 것이다.
누군가가 죽고,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은.
하지만 익숙하다고 해서 그것이 아프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상실(喪失)은 언제나 아픈 법이다.
인간에게도, 악마에게도.
“질질 짜지 말고 닥쳐, 이 새끼들아.”
거칠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하프들을 노려보았다.
히끅!
놀란 하프들이 주춤주춤 뒷걸음질 쳤다.
“…….”
천천히 손을 뻗어 죽은 카닐의 시체를 만졌다.
죽은 카닐의 몸은 차가웠다.
그에게 익숙한 냉기(冷氣)였다.
“어디야.”
오늘 순찰을 나간 하프들을 돌아봤다.
“이거, 어디서 발견했어.”
낮게 깔린 그의 목소리는, 죽은 카닐의 몸처럼 차갑게 식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