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652)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외전 133화
천년 전쟁 (6)
거인 바위.
마치 거인이 양팔을 높게 들어 올리고 있는 모습 같다 하여 거인 바위라 이름 지어진 붉은 암석.
쿠웅!! 쿵! 쿠궁!!
높이만 400여 미터에 달할 정도로 거대한 암석 아래 펼쳐진 황무지에 폭음이 울려 퍼졌다.
“하아, 하아!”
한 발, 한 발.
전력으로 쥐어 짜낸 마기를 폭발시켰다.
음속에 가까워진 몸이 비명을 토했다.
대지를 짓밟을 때마다 폭탄이 터지듯 거대한 모래 기둥이 생겨났다.
모래 먼지가 입안으로 흘러들어왔다. 인지(認知)를 초월한 속도 탓에 속이 울렁거리고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무시한 채 발을 박찼다.
‘찾았다.’
거인 바위의 뒤편.
울퉁불퉁한 자갈들이 모래알처럼 깔린 대지를 여유롭게 걸어가고 있는 악마를 발견했다.
전신에 송곳과 같은 검은 가시들이 돋쳐 있는 악마였다.
키는 3미터 정도.
악마 중에서는 평균보다 살짝 큰 키였다.
“으음?”
고슴도치처럼 날카로운 검은 가시가 전신에 돋쳐 있는 악마가 강우를 돌아보고는 눈을 빛냈다.
“호오. 역시. 하프의 마을에 인간이 있다는 정보는 사실이었나.”
씨익.
악마가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강우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고 접근한 악마인 것 같았다.
“그래, 어디서 쳐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대로 찾아왔네.”
강우는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숨을 골랐다.
“크흐흐흐!! 좋군!!”
악마는 씨익 입가를 올리며 어깨를 들썩였다.
“그럼 서로 만나서 반가운 김에 하나만 물어보자.”
뚜둑.
가볍게 몸을 풀며 차갑게 눈을 빛냈다.
“네가 죽였냐?”
“응? 누굴 말인가?”
“뿔 네 개 달린 보라돌이.”
“보라돌이? 아아, 그 하프 말하는 건가?”
고개를 끄덕였다.
“키흐흐!! 그래, 내가 죽였다. 이 주변을 수색하는 도중에 더러운 것이 보여 깔끔하게 치웠지.”
“그러냐?”
그럼 됐다.
더 이상 물어볼 것도, 물어보고 싶은 것도 없다.
-쿠웅!!
거칠게 발을 박찼다.
신속의 권능을 사용해 낮게 몸을 숙인 채 바닥을 미끄러지듯 질주했다.
‘발목.’
달리며, 살폈다.
악마의 발목 부근에는 검은 가시가 돋쳐 있지 않았다.
촤르르륵!!
손으로 땅을 짚으며 속도를 늦춘 후, 비보잉을 하듯 허리를 틀어 발을 휘둘렀다.
“흐읍!”
악마는 거대한 덩치로 점프를 하더니 강우를 향해 주먹을 내려찍었다.
아니, 과연 저걸 주먹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송곳과 같은 검은 가시가 가득 돋쳐 있는 악마의 주먹은 주먹이라기보다 철퇴에 가까웠다.
-쿠우우웅!!
바닥을 굴러 주먹을 피한 후, 누운 자세 그대로 오른팔을 내밀었다.
‘파공의 권능.’
파아아앙!!!
검은 마기가 둥그런 형태로 쏘아졌다.
“크윽!!!”
다급히 팔을 교차해 마기의 파동을 막은 악마의 몸이 뒤로 튕겨 날아갔다.
주르륵 뒤로 밀려난 악마는 만족스럽다는 듯 입가를 비틀어 올렸다.
“과연!! 인간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힘이로군!”
“실제 인간을 본 적도 없는 새끼들이 뭔 생각할 수 있고 없고 지랄이야.”
튕기듯 바닥에서 일어나며 거리를 벌렸다.
“후우.”
두 개의 권능을 연달아 사용한 탓에 살짝 호흡이 거칠어졌다.
호흡을 고르며, 낄낄 웃고 있는 악마를 살폈다.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강해.’
이제까지 이 주변에서 사냥했던 악마들과는 격이 다른 힘을 지닌 악마였다.
‘최소 상위 악마. 어쩌면 그 이상인가.’
기껏해야 중위 악마 정도가 나타났던 지난 3년을 돌아보면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길 수 있을까.’
발록을 제외하고 이렇게 강한 악마를 마주한 건 처음이었다.
지난 3년 간 악마들을 사냥하며 마기를 키웠지만, 직접 상위 악마를 눈앞에 마주하니 무거운 중압감이 그를 짓눌렀다.
“하.”
잠시 고민을 이어가던 강우는 이내 짧은 헛웃음을 흘렸다.
어차피 여기까지 온 이상 싸움을 피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길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 없으리라.
“그나저나 나도 궁금하군.”
악마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정도의 힘을 지녔으면서 왜 하프 같은 하찮은 벌레들을 지키고 있는 거지?”
“…….”
움찔.
강우의 어깨가 가볍게 떨렸다.
굳게 입을 다문 채 주먹을 쥐었다.
“응? 대답할 생각이 없는 건가?”
“넌 아가리로 싸우냐?”
“이런. 그렇게 나오면 성실히 답해준 난 뭐가 되나?”
“머리통에 똥찬 꼴통 되는 거지 뭐.”
“…….”
“어후, 아가리에서 똥 냄새 진동하는 거 봐라.”
코를 틀어막으며 표정을 찡그렸다.
악마의 눈썹이 휘어 올라갔다.
“…과연. 입담만큼은 구천지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수준이군.”
악마는 살짝 노기가 섞인 목소리로 몸을 숙였다.
아니, 정확하게는 둥그렇게 몸을 말았다.
촤자자자작!!
검은 가시가 돋친 몸을 둥그렇게 말자 밤송이 천 배쯤 커진 듯한 모습이 되었다.
“크하하핫!!! 어디 그럼 입담만큼 네놈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 증명해 보거라!!”
쩌렁쩌렁 울리는 광소와 함께 악마의 몸이 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
-쿠르르르릉!!!
검은 가시가 돋친 몸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대지를 구르며 앞에 놓인 암석들을 처참히 박살 냈다.
“제기랄.”
강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악마를 피해 이리저리 도망쳤다.
‘공격할 방법이 없어.’
생긴 건 좀 웃기지만, 둥글게 몸을 말아버린 채 굴러 댕기니 빈틈 자체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꾸욱.
주먹을 움켜쥐었다.
빈틈이 없다면, 억지로 때려 부수는 방법 외에는 없다.
‘한 방에 끝내야 해.’
호흡을 고르며 자세를 낮춘다.
지금 그가 사용하려는 기술은 애초에 두 번 이상 사용할 수 없는 기술이었다.
한 방에 끝내지 못하면, 죽는 건 자신이 된다.
-쿠르르르릉!!
“크하하핫!! 언제까지 피하기만 할 생각이냐!”
죽음의 전차가 자신을 향해 돌진한다.
오른발을 뒤로 빼고, 허리를 숙인다.
‘파공의 권능.’
마기로 이루어진 원형의 파동이 주먹에 맺혔다.
이대로 힘을 주면 강력한 파동이 정면으로 쏘아지겠지만―
‘천력의 권능.’
하나의 권능 위에, 다른 하나의 권능을 겹친다.
전신의 마기가 미쳐 날뛰는 것처럼 끓어올랐다.
입에서 피가 쏟아져 나와 가슴을 적셨다.
“하! 정면에서 받아낼 수 있다 생각하는가!”
서로 다른 두 개의 권능을 하나로 합치는 것.
그 누구도 시도하지 못했던 경이(驚異)를, 움켜쥔 주먹에 담는다.
“하늘.”
허리를 낮춘다.
오른팔을 한계까지 뒤로 당긴다.
왼발을 내디디며, 극한까지 당긴 활시위를 내려놓듯 주먹을 뻗는다.
“부수기.”
콰아아아아앙!!!!
응축된 마기의 파동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주먹의 크기가 순간 수십 배로 늘어난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유형화된 마기의 파동.
“크아아아아악!!”
터져 나간 마기의 파동이 검은 가시를 박살 내며, 둥글게 몸을 만 악마를 후려쳤다.
야구 배트에 맞은 야구공을 슬로우 모션으로 촬영한 것처럼 악마의 몸이 찌그러지며 튕겨 날아갔다.
“커헉, 컥… 크, 학.”
뒤로 튕겨 나간 악마는 몇 번 몸을 움찔거리며 신음을 흘리더니 이내 고개를 떨군 채 절명했다.
“하아, 하아.”
강우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악마에게 다가갔다.
“…….”
지그시 악마를 내려다보던 강우는 이내 손을 뻗어 포식의 권능을 사용했다.
우드득!
손바닥에서 흘러나온 검은 점액질이 악마의 몸을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권능을 가진 악마였네.”
포식의 권능을 마친 강우는 손에서 검은 가시를 만들어내며 중얼거렸다.
암극(暗戟)의 권능.
방금 잡아먹은 악마가 지닌 권능의 이름이었다.
“…….”
그렇게 몇 번을 암극의 권능을 사용해 보다가 몸을 돌려 터덜터덜 마을로 돌아갔다.
“가, 강우 님!!”
“카, 카닐을 죽인 악마는 찾으셨어요?”
마을로 돌아가자 눈물범벅이 된 하프들이 우르르 몰려와 물었다.
“어, 죽였어.”
“…아.”
짧게 답한 후 하프들을 지나쳐 지나갔다.
아직 동굴 안에는 처참하게 짓이겨진 카닐의 시체가 남아 있었다.
“…….”
잠시 발걸음을 멈춰 카닐의 시체를 바라보던 강우는 그의 옆에 주저앉은 채 하염없이 울고 있는 페르를 발견했다.
“흐윽… 흐아아아앙! 나, 나 때문에… 흐윽! 카, 카닐이….”
뭐가 나 때문이란 걸까.
강우는 울고 있는 페르에게 다가갔다.
주저앉은 그녀의 앞에 있는 것을 발견하자, 그녀가 왜 자기 자신을 책망하며 오열하고 있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페르에 앞에 있는 것은 카닐의 기이한 각도로 뒤틀린 오른팔.
사지가 부러지고, 강제로 뿔이 잡아 뽑히는 와중에도 카닐은 무언가를 오른손에 꽉 쥐고 있었다.
붉은빛이 감도는 잡초.
“…혈광초.”
그래, 분명 그런 이름의 풀이었다.
‘저걸 따러 밖에 나갔던 건가.’
페르의 부탁을 받고 간 건지, 아니면 그냥 혼자서 간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딱히 알고 싶지도 않았다.
어쨌든 저딴 쓰레기 같은 풀 쪼가리를 따기 위해 멋대로 마을 밖을 나돌아다니다가 뒤졌다는 건 변함이 없으니까.
‘멍청한 새끼.’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페르를 뒤로 하고 다시 동굴 밖으로 빠져나왔다.
하프들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걸어 나온 후, 돌벽에 몸을 기대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지옥의 하늘은 여느 때와 같이 섬뜩한 붉은 빛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푸흡! 푸헤헤헤헤헿!!!”
이제껏, 간신히 참았던 웃음을 터트렸다.
저 초상집 분위기에서 낄낄 웃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자신에게도 그 정도 염치는 있다.
“크으!! 대박!! 대바아아아악!!!”
운이 좋은 날이다.
굉장히 즐거운 날이다.
한동안 보이지 않았던 먹잇감 나타났고, 그 먹잇감은 무려 권능까지 지닌 상위 악마였다.
이걸 어찌 대박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와 씨, 역시 상위 악마라 그런지 마기가 빠방하구만!!”
중, 하위 악마들을 포식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양의 마기.
강우는 낄낄 웃으며 춤을 췄다.
“푸헤헤헿!!! 푸헤헤헤헿!!”
웃음을 터트리며, 손발을 허우적거린다.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다.
즐거운 날이다.
기쁜 날이다.
“푸헤헤헤헤헿.”
당연히 춤을 추며 즐겨야지.
신명 나게, 미친 것처럼 몸을 흔들며 이 행운을 축복해야지.
“푸, 헤헤헤, 헿.”
그래.
다신 없을 이 기적을.
머저리 같은 애새끼의 목숨 하나로 싸게 교환한 값진 보물을.
“헤….”
축복,
해야지.
“…….”
까드득.
머리가 뜨겁다.
몸서리가 치듯, 춥다.
춥다, 춥다, 춥다.
“…발.”
추워서, 너무나 차가워서.
얼어붙어 죽을 것만 같아서.
“X바아아아아아아아알!!!!!!”
콰아앙!
돌벽을 향해 거칠게 주먹을 휘둘렀다.
허억, 허억.
거친 숨을 몰아 내쉰다.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울부짖는다.
누구에게 향하는지도 모를 의문을 쏟아낸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잘못한 거 없잖아!!!”
그래.
하프들에게 잘못은 없었다.
잘못이 있다면 그들이 ‘악마답지’ 않았다는 것 정도였다.
“아무한테도 피해 준 것 없잖아!!!”
하프가 있기에 피해를 받은 악마는 없다.
하지만 그딴 건 애초에 중요하지 않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마음대로 짓밟고 부술 수 있는 피식자였으니까.
알고 있다.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X발 왜 그렇게 못 잡아 처먹어서 지랄인 거냐고!!!!”
쿠웅! 쿠웅!
돌벽을 후려친다.
부서진 돌가루가 쏟아져 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뭐가 이렇게 시끄러운가 해서 왔더니….”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붉은 근육질의 악마가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감성 팔지 말라고 했던 건 네가 했던 말 아니었던가?”
“…….”
강우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발록에게서 고개를 돌린 채 낮게 중얼거렸다.
“…꺼져.”
“넌 항상 남을 몰아내려고만 하는군.”
털썩.
발록이 강우 옆에 앉았다.
“다른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것을 무서워하는 것처럼 말이야.”
“…….”
강우는 날카로운 눈으로 발록을 쏘아보았다.
“악마한테 그딴 말을 들을지 몰랐는데 말이야.”
“악마에게도 감정이란 건 있다. 소중한 존재도, 증오하는 존재도 있지.”
“그래? 그딴 게 있는 새끼들처럼 보이진 않았는데 말이야.”
이제까지 만난 악마들은 모두 욕망에 눈이 먼 머저리들이었다.
“분한가?”
“뭐가?”
“지금 이 모든 것이.”
“…….”
강우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돌벽에 박아 넣은 주먹을 움켜쥐며,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래.”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참아선 안 될 정도로.
“다 쳐죽여 버리고 싶다.”
화가 났다.
“그렇다면.”
발록은 그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깊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네가 왕이 되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