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656)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외전 137화
천년 전쟁 (10)
필름이 끊어진 듯 머릿속이 하얗다.
잘게 쪼개진 페르의 몸이, 마치 팔다리가 잘린 벌레처럼 바닥을 나뒹굴었다.
손을 내밀어 흩어진 육편 하나를 손에 쥐었다.
조각난 육편에서 검은 피가 흘러내려 손을 적셨다.
“페르으으으으으!!!!”
구덩이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페리안의 절규가 울려 퍼졌다.
페리안은 눈물을 쏟으며, 울부짖으며 사탄을 향해 달려들었다.
참으로 멍청한 짓이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가 사탄을 이길 수 있을 리 만무했으니깐.
“페르를!! 페르를 돌려줘!!!”
어린아이의 투정.
논리도, 지성도 없는 애달픈 애원을 허망하게 토해낸다.
[시끄럽군.]사탄은 가볍게 눈살을 찌푸리며 달려드는 페리안을 가볍게 밀쳤다.
“커헉! 큭!”
가벼운 손짓이었지만, 그 결과는 가볍지 않았다.
형편없이 뒤로 튕겨 나간 페리안의 몸이 거칠게 바닥을 굴렀다.
페리안의 오른쪽 다리가 기이한 각도로 뒤틀렸다.
“흐윽… 흐어어어헝!”
망가진 다리를 질질 끌며 눈물을 쏟아냈다.
페리안 자신도 알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간절히 애원하더라도, 처절하게 발버둥 치더라도.
페르는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왜 우리가 죽어야 하는데!!!!”
증오로 가득 찬 외침.
이제까지 쌓여온 울분과 분노가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우리는 상관없잖아!!! 우리는 아무 잘못 없잖아!!!”
대공들의 목표는 하프가 아닌 강우였다.
하프들이 죽어야 할 이유도, 당위도 없다.
그들은 그저 ‘오강우의 옆’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벌레처럼 죽음을 맞이했다.
“데려갈 거면 저 자식만 데려가면 되잖아!!!”
갈 곳을 잃고, 방향을 잃은 증오가 난잡하게 쏟아졌다.
“왜, 왜!! 우리는… 이렇게 비참하게, 죽어야 하냐고….”
페리안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조각나 흩어진 동생의 육편을 손에 움켜쥐며, 몸을 웅크린 채 울부짖었다.
[간단한 이유지.]사탄은 몸을 웅크린 페리안의 머리를 지그시 밟았다.
페리안은 사탄의 발에 짓밟힌 채 까드득 이를 갈았다.
“우리가 하프기 때문에? 반쪽짜리기 때문에 이렇게 죽어야 한다는 거야?”
짓씹은 입술에서 핏물이 흘러나왔다.
하프, 하프, 하프.
태어난 그 순간부터 그들을 따라오던 경멸과 조롱의 꼬리표.
그 빌어먹을 꼬리표 하나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처참한 죽음을 맞이했던가.
[아니.]사탄은 나지막이 고개를 저었다.
[너희가 이곳에서 죽어야 하는 이유는 하프기 때문이 아니다.]콰득.
페리안의 머리를 짓밟은 발에 힘을 주며,
[악마가 죽는 이유는 언제나 하나뿐이지.]차갑게 단언했다.
[약하기 때문이다.]퍼석!
페리안의 머리가 짓밟혀 터졌다.
으깨진 두개골 사이로 허연 뇌수가 흘러 바닥을 적셨다.
“…….”
강우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멍한 눈빛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페르의 조각나 흩어진 육편에, 페리안의 으깨진 머리에서 흐른 핏물이 뒤엉켜 흘러내렸다.
[화가 나나?]사탄은 머리통이 터진 페리안의 시체를 짓밟으며 비릿하게 웃었다.
[강해져라, 인간. 분노를 양식 삼아, 증오를 거름 삼아 성장해라. 그리고….]장막 너머로 보이는 황안(黃眼)이 광기로 번들거렸다.
[나를 죽여라.]“…….”
강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고개를 떨군 채, 공허한 눈빛으로 뒤엉켜 흐르는 핏물에 손을 적셨다.
“흐음, 이제 대충 정리가 끝난 모양이군.”
루시퍼가 천천히 걸어오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발록은 마무리 짓지 않은 건가?]“나중에 쓸모가 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거만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사탄은 가늘게 눈을 뜬 채 루시퍼와, 저 멀리서 이쪽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마몬과 벨페고르를 쭉 둘러보았다.
[자, 그럼.]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제 다들 볼일 다 봤으면 꺼져주실까?]쿠구구궁!!
검은 장막에 둘러싸인 사탄의 몸에서 숨 막힐 듯한 마기가 흘러나왔다.
“흐흐, 여기까지 와서 꺼지라고?”
“푸힛! 푸히히힛!! 그럴 수는 없지!”
벨페고르와 마몬이 눈을 빛내며 다가왔다.
[호오, 그럼 해보겠다는 건가?]사탄이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냈다.
검은 장막 속에서 2미터에 달하는 양손 검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버러지 둘이 힘을 합쳤다 하여 이 나를 상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가?]타오르는 듯한 노기(怒氣)가 섞인 목소리.
벨페고르와 마몬은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였다.
“푸히힛!! 이거 누가 오만의 대공인지 모르겠구만!”
“물론 우리 힘으로는 사탄 네놈을 죽일 순 없겠지.”
벨페고르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휠체어에 앉은 채 깡마른 손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손끝이 향하는 장소에는 오만(傲慢)의 대공이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내고 있었다.
“루시퍼라면 어떨까?”
[…….]사탄의 표정이 살며시 일그러졌다.
벨페고르를 상대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거기에 더해 마몬까지 함께 상대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루시퍼까지 상대하는 건 불가능했다.
“이거, 상황이 참 묘하게 됐군.”
루시퍼는 지금 이 상황이 재밌다는 듯 거만한 미소를 입가에 지었다.
“푸히히힛!! 대공들의 삼파전(三巴戰)이라!”
마몬은 익살스러운 웃음을 터트리며 살집이 가득한 팔을 요란하게 떨었다.
대공들의 삼파전.
기나긴 구천지옥의 역사상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대공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도 치명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이처럼 한자리에 모이는 일 자체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오늘.
한 인간을 노리고 구천의 지옥을 다스리는 일곱 대공 중 네 명의 대공이 모였고, 대치했다.
팽팽하게 내려앉은 긴장감.
버튼 하나만 누르면 폭발할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대공들은 날카로운 눈으로 서로를 살폈다.
그리고 그 치열한 신경전 속에,
강우는 홀로 주저앉아 있었다.
“…아.”
뚝뚝 끊어지듯 점멸하는 의식.
강우는 낮은 탄성과 함께 고개를 들었다.
자신을 둔 채 네 대공들이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왜.’
이유는 알 수 없다.
바알이 어쩌고 말을 하긴 했지만, 애초에 자신은 바알을 만난 적조차 없다.
‘왜, 이렇게 됐을까.’
의문은 이어진다.
진탕된 내장에서 격통이 느껴진다.
손끝 하나 가볍게 움직이는 것도,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머릿속이 어지럽다.
너무나 많은 감정들이 뒤섞여, 혼란스럽다.
-저… 가, 강우 님 드시라고 차를 타왔어요.
기억이 떠오른다.
구역질이 날 것처럼 속이 울렁거린다.
그딴 게 뭐라고.
더럽게 맛없고, 비리기만 했던 차가 뭐라고 지금 이런 상황에 떠오른단 말인가.
“하.”
자기도 모르게 실소가 흘러나왔다.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감쌌다.
3년간의 추억이, 기억의 편린들이, 날카롭게 그를 난자한다.
“하, 하하.”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들어 올린 고개를 내렸다.
조각난 페르의 몸과, 머리가 터진 채 쓰러진 페리안의 시체가 보였다.
“아, 으.”
몸을 웅크린 채, 양손으로 뺨을 긁어내리며 억눌린 울음을 흘린다.
손톱이 피부를 찢고 파고들었다.
뺨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이 핏물과 섞인다.
아프다.
찢어진 뺨보다, 짓이겨진 내장보다.
가슴이 타들어 갈 듯 아프다.
“아으, 으, 아.”
바닥에 쓰러진 채 비참하게 몸을 꿈틀거렸다.
왜, 왜, 왜, 왜, 왜.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왜 자신에게 이런 일만 일어나는 걸까.
-네가 왕이 되든가.
낮고 무거운 목소리.
사형을 선고하는 것처럼 단호한 그 말이, 머릿속의 의문을 잘라냈다.
그래.
이 모든 일의 원인은 단순했다.
그가 약하기 때문에, 그가 ‘왕’이 아니었기 때문에.
손에 쥔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
천천히 손을 들어 왼쪽 가슴 위에 올렸다.
맥동하는 심장 속에 잠들어 있는 마기의 바다를 느낀다.
그 마기의 바다를 가두고 있는, 단단하고 거대한 세 개의 문을 느낀다.
‘이걸… 열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자신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어쩌면 해방된 마기의 격류가 몸을 휘저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허망하게 터져 죽을지도 모르지.
어쨌든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이 문을 연 순간,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다.
‘그렇다고 해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비틀, 비틀.
몸이 흔들린다.
[여기서 쓸데없는 피를 보고 싶지는 않군.]“그렇다면 네가 포기하는 게 어때?”
[헛소리.]“푸히히힛! 아니면 저 인간을 나눠 가지자고!”
대공들이 떠든다.
자신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처럼.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처럼.
그의 고통과 절망과 절규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또 멍청한 소리를 하는군.]“푸히힛! 왜? 좋은 생각 아냐? 팔다리를 싹둑싹둑 잘라서 나눠 가지면 되잖아!”
시끄럽게 떠들며 욕망을 태운다.
당연했다.
그들에게 있어,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짓밟힌 채 죽어가는 벌레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하아.”
낮은 숨을 토해냈다.
왼쪽 가슴 위에 손을 올린 채, 천천히 손을 비틀었다.
쿠구구궁!!!
아직 문을 제대로 열지도 않았는데, 무시무시한 마기의 격류가 쏟아져 나왔다.
“커, 헉.”
의식이 점멸한다.
희미해지고, 흐릿해진다.
하지만.
‘앞으, 로.’
더 높은 곳으로.
더 아득한 곳으로.
꾸르륵.
검은 점액질이 흘러나온다.
끈적한 마기가 전신에 얽혀든다.
“…무슨?”
“푸히히힛! 지금 뭘 하는 거냐, 인간?”
대공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됐다.
이제까지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던, 비참하게 몸부림치던 벌레에게.
“…….”
굳게 입을 다문 채,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더 이상 그의 발걸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발록.’
만신창이가 된 채, 가쁜 숨을 몰아 내쉬고 있는 붉은 거인을 내려다보았다.
‘네가 옳았다.’
약하면 기어라.
패배했다면 죽어라.
약자의 권리는, 고통받는 것뿐이다.
지옥을 지배하는 규칙은 단순했다.
간단하고, 명료했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손에 쥔 것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왕’이 될 수밖에 없다.
-쿠웅!!! 쿠구구구구궁!!!
거칠게 발을 굴렀다.
주변 대지가 뒤흔들리며, 몸에서 흘러나온 검은 점액질이 퍼져 나갔다.
아득한 마기의 격류가 강우를 중심으로 소용돌이쳤다.
“푸, 푸힛? 뭐, 뭐야 이거?”
“무슨 마기가….”
대공들이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뒷걸음질 쳤다.
요란을 떨며, 시끄럽게 경악성을 토해낸다.
“들어라, 대공들이여.”
강우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마기의 바다를 가두고 있는 세 개의 문.
단 한 번도 열지 않았던, 열어서는 안 되는 필멸(必滅)의 봉인을.
망설임 없이 비틀어 연다.
“이곳에서 선언하마.”
포식자의 포식자가 될 것을,
악마의 악마가 될 것을,
지옥의,
지옥이 될 것을.
“나는.”
대공(大公).
그 아득하고, 경이로운 존재들을 향해 선포한다.
“왕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