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664)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외전 145화
창세(創世)의 탑 (3)
의식이 흐릿하게 점멸한 것과 동시에, 몸이 붕 뜨는 감각이 느껴졌다.
그것도 잠시.
흐릿했던 의식이 점차 선명해지는 것과 동시에 주변의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여, 여기가 창세의 탑인가?
-흐흐흐! 이제 나도 사도(使徒)가 될 수 있는 건가?
-흐윽… 이, 이런 곳 오고 싶지 않았어!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치 무도회장을 연상시키는 듯 넓은 홀에 테이블과 의자들이 놓여 있었고, 대략 2~3백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각양각색의 반응을 보이며 홀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초대장은 분명 한 장이었을 텐데?’
의아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던 강우는, 곧 그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지구’의 인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탑’이 존재하는 지구.
이름만 같을 뿐 그가 살고 있는 지구와는 완전히 다른 외계(外界)의 주민들이 넓은 홀 안에 모여 있었다.
‘저쪽 세계에서도 초대장을 통해 탑 안으로 들어가는 모양이구만.’
주변에 들려오는 잡담이나 혼잣말을 들으며 가늘게 눈을 떴다.
저쪽 ‘지구’에서는 초대장을 구하는 것이 그 정도까지 어려운 일은 아닌지 꽤나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때애애앵!!
홀 전체에 울려 퍼지는 종소리.
사람들의 시선이 홀 중앙에 설치된 무대에 집중됐다.
“반갑습니다, 후보 여러분! ‘창세의 탑’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무대 바닥이 열리며 나타난 것은 말끔한 턱시도 차림을 한 토끼였다.
‘…토끼?’
토끼라고는 해도 머리만 토끼지 나머지 부분은 인간의 몸과 흡사했다.
사실 토끼라기보단 토끼의 탈을 쓴 인간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맞으리라.
“제 이름은 리티!! 여러분들이 ‘탑’을 오를 자격이 있는지 시험하는 튜토리얼의 안내자입니다!!!”
생긴 것과 어울리는 깜찍한 이름이었다.
‘그나저나 튜토리얼이라.’
피식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무슨 다른 만화나 소설 속의 세계로라도 들어온 기분이었다.
‘제목은 【구천지옥의 마왕이었던 내가 눈 떠보니 튜토리얼 초보자?】 이걸로 가자.’
밀리언 페이지 쌉가능.
“우선, 여러분에게 창세의 탑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해드려야겠죠?”
리티는 쫑긋 세운 두 귀를 까딱이며 말을 이었다.
“창세의 탑은 태초에서 탄생한 거인이 만들어낸 신비로운 장소입니다.”
역시.
티탄이 만든 거였나.
“이곳에 오신 여러분들은 성좌(星座)의 선택을 받아, 그분들의 후원과 지원을 통해 탑을 오르시게 될 겁니다!”
무대에서 깡충깡충 뛰며 내려온 리티가 깜찍한 미소를 지었다.
“탑을 높이 오르실수록 여러분들은 그 업적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받게 되실 겁니다. 욕망하는 것을 손에 넣으실 수 있는 강력한 힘을, 모든 이들이 발아래 머리를 조아릴 아득한 권력을 손에 넣게 되실 겁니다.”
참으로 뻔하디뻔한 멘트였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 단순하기 짝이 없는 멘트는 가슴 속에 불을 지피기 충분했다.
“그럼~ 튜토리얼의 내용은….”
“그… 성좌라는 존재는 대체 누군가요? ‘밖’에서 몇 번 얘기를 듣긴 했는데 전혀 모르겠어서….”
“흐음.”
리티의 말을 끊으며, 한 여인이 손을 들어 올렸다.
“확실히, 비밀이 많으신 분들이죠.”
리티는 귀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들은 태초의 거인이 만들어낸 초월(超越)의 존재, 세계를 관리하기 위해 탄생한 별!!!”
마치 연극배우처럼 두 팔을 활짝 펼치며 과장되게 말했다.
“뭐, 간단하게 말하면 ‘신’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푸히히! 리티가 작게 웃었다.
“그분들은 이 탑을 창조하신 태초의 거인의 맹약에 따라 ‘가장 빛나는 별’이 되기 위해 여러분들을 사도로 선택하여 탑을 오르도록 도와주실 겁니다.”
찡긋.
붉게 반짝이는 눈을 깜빡이며 말을 이었다.
“하하. 즉, 여러분들은 모두 별의 대리인, 성인(星人)이라 부를 수 있겠네요!!!”
“…….”
리티의 말이 끝나자 회장 안에는 기묘한 침묵이 맴돌았다.
‘가장 빛나는 별이라.’
이제 이해가 됐다는 듯,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구로 치면 가이아 같은 수호신을 뽑는 건가.’
그렇다면 창세의 탑을 오른다는 것은 결국 성좌(星座)들이 서로의 사도들을 통해 펼치는 일종의 대리 게임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그렇게 간단한 말만으로는 정의할 수 없는 복잡하고 더러운 사정들이 그 속에 얽혀 있겠지만.
“답변이 됐을까요?”
“아, 예. 가, 감사합니다.”
여인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꽤나 긴장한 듯한 표정이었다.
“하하하! 그럼.”
리티의 붉은 눈이 반짝인다.
턱시도를 차려입은 토끼는 여인을 향해 가볍게 허리를 숙이더니,
-콰드득!!
“커헉!! 컥!!!”
폭발적인 속도로 그녀에게 달려들어 목을 틀어쥐었다.
“카흑… 무, 무슨…?”
“누가, 멋대로 내 말을 끊으라고 했지?”
“죄, 죄송….”
서늘하게 가라앉은 목소리.
이제까지의 귀엽고 발랄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살을 에는 흉포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안내인의 말을 끊으면 멋대로 처 끊으면 안 되지.”
“커헉… 꺾!”
우드득!
리티의 손아귀에 잡힌 여인의 목이 기괴한 각도로 꺾였다.
간단하게 여인을 죽인 리티는 더러운 쓰레기를 버리듯 그녀의 시체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푸히힛! 잘 들으셨죠, 여러분~? 여러분은 이렇게 멋대로 행동하시면 안 돼요오~!”
깜찍하게 윙크를 날리며 제자리에 폴짝폴짝 뛰어올랐다.
홀에 모인 사람들은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뒷걸음질 쳤다.
“수, 수진아!!!”
그때, 뒤에 서 있던 근육질 남성이 경악한 목소리로 외쳤다.
방금 죽은 여인과 알고 있는 사이였던 건가.
그는 다급히 여인에게 다가와 그 시체를 끌어안았다.
“이 빌어먹을 토끼 대가리 자식이!!!”
“흐응? 서로 아는 사이셨나요?”
“우리는 성좌의 사도(使徒)다!!! 네 말대로 별의 대리인이라고!!! 그런데 이렇게 멋대로 성좌들의 대리인을 죽이는 거냐!!!”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리티를 쏘아보았다.
푸흡.
리티의 어깨가 들썩였다.
“사도?”
터벅, 터벅.
여인의 시체를 끌어안은 사내를 향해 리티가 걸어왔다.
방금 전과 같은 흉포한 살기를 뿜으며 입술을 비틀어 올렸다.
“너희들은 아직 그 어떤 성좌의 선택도 받지 못한, 한낱 후보에 불과해. 사도? 별의 대리인? 나중이라면 몰라도 지금 너희들은 그냥 벌레들이다.”
“…나중에 이 일은 꼭 후회하도록 만들어주마.”
근육질의 사내는 여인의 시체를 끌어안으며 눈을 부릅떴다.
“푸히히히힛!!! 나중에 후회하도록 만들어준다고?”
리티는 어깨를 들썩이며 사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사내가 반응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스피드였다.
“그럴 필요 없어.”
“커흡, 커허억!”
번들거리는 붉은 눈에 선명한 살의(殺意)가 떠올랐다.
“너한테 나중은 없으니깐.”
콰드드득!
사내의 머리통이 박살 나 바닥에 흩어졌다.
우그러진 두개골의 조각과, 허연 뇌수가 바닥을 적시며 퍼졌다.
“푸히히힛!!”
정갈하게 차려입은 턱시도가 피에 젖었다.
광기에 찬 웃음을 터트리던 리티는 홀 안에 모인 ‘후보’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무래도, 건방진 벌레들을 다루기 위해서는 조금 수고가 필요할 것 같네요.”
폴짝.
가볍게 뛰어올라 다시 무대 위에 올라선 리티가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오른팔을 쭉 내밀었다.
“다섯 명.”
펼쳐진 다섯 개의 손가락.
“두 명이나 건방을 떤 대가로 여러분 중 다섯 명을 본보기로 죽이겠습니다.”
“그,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입니까!!”
“당신에게 그런 권한은 없…!”
촤악!! 촤아아악!!
따지듯 외친 두 명의 머리가 반으로 쪼개져 바닥에 떨어졌다.
둘의 머리를 반으로 쪼갠 트럼프 카드가 바닥에 박혔다.
“꺄아아아아아악!!”
“이, 이런 미친!!”
홀 안에 모인 이들 중 리티가 왼팔 소매에서 트럼프 카드를 꺼내 두 명의 머리를 반으로 쪼개버리는 광경을 제대로 본 사람은 없었다.
그래.
‘사람’ 중에는 없었다.
“이제 세 명 남았군요.”
리티는 다섯 개의 손가락 중 두 개를 접었다.
그는 쫑긋 세운 귀를 까딱이며 비명을 지르는 사람을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언제까지 꽥꽥 떠들어 대실 겁니까?”
“…….”
숨소리가 들릴 듯한 무거운 침묵이 홀 안에 내려앉았다.
‘짜식, 분위기 좀 잡을 줄 아네?’
팔짱을 낀 채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강우는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냈다.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한 번에 확 휘어잡은 것을 보니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그나저나.’
쯧쯧, 혀를 차며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들을 내려다보았다.
‘쟤들은 대체 왜 그러는 거지?’
왜 꼭 만화나 소설에서 보면 초반에 나대다가 죽는 그런 인간들 있지 않은가.
지금이 딱 그런 상황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반이라도 가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두 명.”
“사, 살려줘!!! 아악!!”
“한 명.”
“꺄아악!! 왜, 왜!!! 제가 뭘 했다고요!!!”
생각을 이어가는 중에도 리티의 학살은 이어졌다.
테이블 밑에 숨어 벌벌 떨고 있던 두 남녀의 목이 바닥을 굴렀다.
“마지막은━”
리티는 빙글 몸을 돌리며 지금 홀 안에서 펼쳐지는 끔찍한 참사에 전혀 관심 없다는 듯 시큰둥하게 팔짱을 끼고 있는 한 청년에게 향했다.
“당신으로 하죠.”
“…나?”
강우는 손가락을 자신을 가리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리티는 낄낄 어깨를 들썩였다.
“푸히힛! 눈앞의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산만하게 있는 것도 처벌 대상이죠!”
폴짝, 폴짝.
두 발로 점프하며 강우를 향해 다가왔다.
“혹시 하실 말씀은 없습니까? 마지막이니 특별히 들어주도록 하죠.”
붉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할 말이라….”
강우는 피식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할 말은, 당연히 있다.
“대체 왜 그러는 거지?”
방금 전 머릿속에 떠올린 생각을 입에 담으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기울인다.
그리고 한 걸음.
“가만히 있으면 반은 갔을 텐데 말이야.”
앞으로 내디딘다.
“━어?”
어느새 붉은 눈동자 바로 앞에 겨누어진 손가락.
사고를 이어갈 틈도, 여유도, 기회도 없는 찰나.
손가락 끝이 거칠게 붉은 눈알을 찌른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악!!!”
허리를 숙이며 고통에 찬 비명을 터트렸다.
짓뭉개 터진 눈알에서 눈동자와 같은 색의 핏물이 흘러내렸다.
-턱.
허리를 숙인 리티의 기다란 두 귀를 손에 움켜쥐었다.
“자, 잠…!”
“네가 뭐 여기 사람들 모가지를 부러트리든 머리통을 쪼개든 상관없는데.”
우드드득!!
거칠게 귀를 잡아 뽑았다.
“날 건드리진 말았어야지.”
“끄아아아아아악!!!”
리티가 핏물을 흘리며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따라가서 마무리를 짓지는 않았다.
‘튜토리얼’을 안내해 줄 안내인을 죽일 순 없는 노릇이었으니깐.
“빨랑빨랑 튜토리얼인지 뭔지 그거나 시작하자고. 여기서 죽치고 있기 시간 아까우니까.”
쓰러진 리티의 머리를 지그시 밟으며 강우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그때,
-띠링!
맑은 방울소리와 함께 눈앞에 반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궤열(潰裂)의 신’이 당신에게 관심을 보입니다!] [‘자애(慈愛)의 신’이 당신의 잔혹한 행동을 비판합니다!] [‘유희(遊戲)의 신’이 손뼉을 치며 좋아합니다!]뭐냐, 이 새끼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