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67)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68화
소환 의식(3)
거대한 동굴. 천장에 돋아난 종유석을 통해 영롱한 빛이 동굴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동굴 속임에도 어둡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신비한 빛이 차오른 동굴 안은 오히려 몽환적이었다.
동굴 안에는 20명 정도 되는 사람이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들은 동굴 바닥에 그려 넣은 소환진 위에 마석을 올려두거나 무언가 검붉은 액체를 뿌리고 있었다.
한쪽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사내가 품속에서 수정 구슬을 하나 꺼내들었다.
[준비는 어느 정도 끝났지?]투명한 수정 구슬을 통해 메마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얼굴 전체에 기하학적인 문신을 새긴 사내가 깍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거의 끝났습니다. 다만… 역시 급하게 준비한 터라 반드시 성공할 것이란 보장은….”
[흐음.]수정 구슬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짜증이 서렸다.
[성공시켜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알겠습니다.”
문신의 사내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번 소환은 위대한 계획을 위한 첫 걸음이다. 실패는 용납하지 않겠다.]그 말을 마지막으로 수정 구슬이 빛을 잃었다.
문신의 사내는 구슬을 다시 품 안에 넣은 후 마법진이 준비되고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제물들의 피는 모두 뿌렸나?”
“예!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유태식 사제님!”
의식을 통해 마기를 머금은 제물들의 피. 악마 소환의 가장 중요한 촉매제였다.
문신의 사내, 유태식은 한쪽 무릎을 꿇고 제물들의 피가 뿌려진 소환진 위에 손을 올렸다.
‘역시 제물이 부족하군.’
미르 길드의 수장, 김재현이 잡혔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그들은 바로 소환의 준비를 위해 움직였다.
그자가 자신들의 정체에 대해서 불게 된다면 소환 계획 자체가 취소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급하게 서두르다 보니 소환에 필요한 제물을 완벽하게 준비할 수는 없었다.
미르 길드를 제외한 다른 하나 대형 길드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렇게 소환을 시도해 볼 수도 없었을 것이다.
‘쯧, 무능한 놈들.’
S급 특성을 가진 플레이어를 제물로 바치겠다고 호언장담하던 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성과에 욕심을 내던 그들은 정부에 의해 꼬리가 잡혀 순항 중이던 계획을 망쳐버리고 말았다.
‘어쩔 수 없지.’
유태식의 눈이 음산하게 빛났다.
지금 상태로도 소환을 시도하는 것은 가능했으나 성공 확률이 높지 않았다.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조금 더 많은 제물이 필요했다.
-푸욱!
“커헉!”
“사, 사제님?”
유태식은 날카로운 단도를 꺼내어 부하의 목을 찔렀다.
경동맥이 잘려나가며 검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제물을 제때 구하지 못한 스스로의 무능을 탓해라.”
유태식은 광기로 번들거리는 눈빛을 자신의 부하들에게 향했다.
그를 바라보는 부하들의 표정이 창백하게 질렸다.
“사, 사제님!”
“제발 자비를…!”
그들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공포에 떨었다.
유태식은 그들을 내려다보며 새하얀 이를 드러냈다.
“걱정 마라. 너희가 흘린 피는 모두 악마님의 혈육이 되어 영생을 누릴 것이다.”
말도 안 되는 궤변이었다.
그들이 바랐던 것은 현세에서 영원을 누리는 것이지 악마의 제물이 되어 영생을 누리는 것이 아니었다.
삶에 대한 집착과 욕망이 악마교도들에게서 끓어올랐다.
“히익!”
가장 먼저 도망친 것은 얼굴에 주근깨가 가득한 여인이었다.
그녀는 무언가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자마자 몸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유태식은 도망치는 그녀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충성심이 부족한 쓰레기들이었군. 추기경님의 말씀을 잊은 거냐?”
“꺄아아아아악!!”
그는 도망치는 여인을 등을 향해 단검을 겨눴다.
단검의 날에서 검은색 기운이 길게 뻗어나갔다.
등을 꿰뚫린 여인의 입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악마님을 위한 숭고한 희생은 본교의 주요 십계명 중 하나다. 쯧쯧. 그런 기본적인 각오도 되어 있지 않은 것들이 감히 영생을 탐하려고 하다니….”
학살이 시작됐다.
유태식은 도망치는 교도, 무기를 꺼내들고 그에게 대항하는 교도, 정말로 악마교의 교리에 미쳐 기꺼이 목숨을 내놓으려고 하는 교도를 가리지 않고 모조리 죽였다.
검붉은 피가 소환진 위에 흩뿌려졌다.
“흐흐흐. 이 정도면 충분하겠군.”
학살극을 만들어낸 유태식은 짙은 미소를 입가에 머금으며 소환진에 양손을 가져다 대었다.
구천지옥의 악마.
숭배해야 마땅할 영원을 영위하는 불멸자들을 현세에 불러올 때였다.
‘다른 지부에 비해서 좀 늦긴 했지만.’
세계 곳곳에 퍼져 있는 악마교.
그중에서 한국에 있는 악마교 세력은 다른 지역에 비해서 ‘계획’의 진행이 느린 편이었다.
‘일본 놈들만 해도 벌써 악마를 셋이나 소환했다고 하지.’
그쪽은 한국과 사정이 좀 다르기는 했지만 어쨌든 뒤처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적어도 그딴 놈들에게 뒤쳐질 수는 없지.’
그는 이전에 한 번 만났던 일본인 교도를 떠올리며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그런 역겨운 놈들에게 뒤처지는 것은 그가 충성을 맹세한 추기경에 대한 모욕이었다.
유태식은 몸 안의 마기를 끌어올리며 소환진을 발동시켰다.
“Ered’achor! Havik! Galar!”
-쩌적!
피를 머금은 소환진이 음산하게 빛났다.
* * *
“허억! 허억! 허억!”
“주, 죽는 줄 알았네.”
에키드나를 타고 포항에 도착한 차연주는 내리자마자 거친 숨을 몰아 내쉬었다.
중간에 사슬을 소환해서 에키드나와 몸을 묶지 않았으면 상공 수 킬로미터에서 떨어질 뻔했다.
“강우, 나 잘했어?”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한 에키드나가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강우를 올려다보았다.
머리를 쓰다듬어달라는 눈빛.
강우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헤헤헤.”
“다음에는….”
“응?”
“조금 더 천천히 날아도 괜찮아.”
에키드나의 뺨이 붉게 물들었다.
“나랑 조금 더 오래 날고 싶어서 그런 거구나.”
‘살고 싶어서 그런 거야.’
“알았어. 다음에는 조금 더 천천히 날게. 나도 강우랑 오랫동안 붙어 있는 게 좋아.”
“…그래.”
강우는 복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한 착각에 빠져 있는 것 같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천천히 날아주기만 하면 상관없었다.
‘개떡같이 알아들어도 찰떡같이만 움직여준다면야.’
원래 속담과 미묘하게 다른 말을 떠올리며 그는 S급 게이트로 고개를 돌렸다.
백화연이 S급 게이트를 지키고 있는 화랑부대원을 향해 다가갔다.
“충성!”
“수사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아직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쯧…. 알겠다. 구현모 단장님은?”
“소식을 듣고 같이 대원들과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단장님과 통신을 하고 싶다.”
“예!”
백화연은 게이트 내부와 통신이 가능한 마도구를 받아들었다.
“예, 예…. 알겠습니다. 바로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짧은 통신을 마친 백화연이 차연주와 강우를 향해 다가왔다.
“수사는 어떻게 되고 있대?”
“이제까지 전혀 진척이 없다가 방금 큰 폭발음이 동굴 안쪽에서 들렸다고 한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꺼림칙한 기운도 같이 느꼈다더군.”
“꺼림칙한 기운?”
“아마… 마기의 기운을 느끼신 것 같다.”
차연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강우는 가늘게 눈을 뜨며 입을 열었다.
“이미 소환이 시작된 것 같군요.”
“동굴의 위치는 전해 들었다. 2군에게는 섣부르게 접근하지 말고 합류해서 함께 진입하자고 얘기해 뒀으니 우리도 빨리 이동해야 할 것 같다.”
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백화연을 따라 S급 게이트 안쪽으로 이동했다.
포항 S급 게이트 안에는 거대한 언덕에 마치 개미집을 연상케 하듯 여러 구멍이 뚫려 있었다.
‘저게 다 동굴 입구인가.’
강우는 화랑 2군이 백화연에게 그들을 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다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저 수 많은 동굴 중에서 그들이 숨어든 동굴을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저쪽이다.”
강우는 백화연의 뒤를 따라 한 동굴 입구로 향했다.
동굴 입구에는 화랑 2군의 부대원들이 무기를 꺼내 든 채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흐으! 오셨군요! 아, 수사가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화연 씨. 이거 너무 구멍이 많아서….”
짧은 금발에 선글라스를 낀 사내가 다가왔다.
구현모. 화랑 2군을 책임지는 단장이었다.
“괜찮습니다. 그보다 이쪽이 맞습니까?”
“예! 분명 여기서 쾅! 하고 큰 소리가 들렸다니까요! 너희도 다 들었지?”
“그렇습니다!”
호들갑을 떠는 그의 말에 화랑 2군의 부대원들이 답했다.
강우는 그들이 가리킨 동굴 입구를 바라보았다.
‘마기.’
동굴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은 마기가 분명했다.
“진입하죠.”
“알겠다. 구현모 단장님,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하하! 화연 씨의 말이라면 당연히 해드려야죠! 얘들아! 포메이션 A!”
“포메이션 A!”
화랑 2군은 요란하게 소리치며 진형을 갖췄다.
마치 한 몸이 된 듯 빠른 움직임이었다.
“…….”
무슨 특촬물 주인공들처럼 오그라드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화랑부대원들을 바라보며 강우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과연 이놈들이 도움이 될까.’
겉모습만 보면 정부 요원이라기보다는 어딘가 나사 하나 빠진 사람들의 집단 같았다.
“가자!!”
구현모는 백화연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우렁차게 외쳤다.
자기 딴에는 지금 이 포메이션 A라는 게 굉장히 멋있어 보인다고 생각하는 듯한 모습.
그의 외침에 따라 화랑부대원들이 동굴 안쪽으로 진입했다.
강우는 그들의 뒤를 따라 몸을 움직였다.
동굴 안은 그의 생각과 달리 어둡지 않았다.
천장에 빽빽이 돋아난 종유석이 은은한 녹색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빛에 휩싸인 동굴 안은 아름답게 느껴질 정도였다.
“강우, 피 냄새가 나.”
에키드나의 말에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권능을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몽환적인 동굴의 모습과 달리 그 안에는 피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강우는 그 냄새를 따라 동굴 깊은 곳으로 진입했다.
그곳에는 백여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공동이 만들어져 있었다.
공동의 바닥에는 피 냄새를 풍기는 진이 복잡하게 그려져 있었다.
‘저게 악마를 소환하는 진인가.’
강우는 소환진을 향해 양손을 뻗고 있는 한 사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얼굴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기하학적인 문신을 한 사내였다.
그는 공동에 들이닥친 사람들을 바라보며 새하얀 이를 드러냈다.
“크크큭…. 이미 늦었다.”
-쩌적.
유리창이 깨지듯 허공에 검은색 균열이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