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673)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외전 154화
탑의 주인 (1)
달 없는 밤처럼 어두운 공간.
위도 아래도 양옆도 구분할 수 없는 칠흑 속에서,
별처럼 반짝이는 한 여인.
“너구나.”
몸에서 희미한 빛이 흘러나오고 있는 여인을 바라보며, 강우는 씨익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긴 흑발을 가진 여인.
아니, ‘길다’라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했다.
어둠을 펼쳐 놓은 듯 한없이 뻗어있는 머리칼.
정돈하지 않은 머리칼은 푸석푸석하게 솟아 있었고, 난잡하게 얼굴을 뒤덮고 있었다.
눈두덩에 드리워진 짙은 다크써클과 메마른 입술.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눈매와 어울리지 않게 자신을 바라보는 눈동자는 경악과 혼란에 떨리고 있었다.
“어, 어떻게? 어떻게 이 공간으로 들어온 거야?”
궁흉의 신.
수많은 성좌(星座) 중 가장 높은 격(格)을 지니고 있다는 신은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탑의 등반자가 성좌들의 공간으로 들어온다니.
있어서도,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건 알 거 없고.”
가볍게 손가락을 꺾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영체(靈體) 상태였기 때문에 우드득 거리는 소리는 흘러나오지 않았지만, 위협을 주기에는 충분한 동작이었다.
“뭐? 이제 와서 성운을 못 토해내시겠다고?”
타오르듯 이글거리는 시선.
강렬한 살기가 궁흉의 신을 덮쳤다.
“으으.”
궁흉의 신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율법’의 제약을 받은 직후기 때문일까.
그녀의 주변에는 파지직거리는 번갯불이 튀어 오르고 있었고, 표정은 고통에 일그러져 있었다.
하지만.
“이, 건방진 인간이…!”
궁흉의 신은 사납게 이를 드러냈다.
이 공간에 어떻게 들어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국 인간에 불과한 이상 ‘성좌’를 상대할 수는 없다.
“감히!! 누구 앞이라고 그렇게 건방을 떠느냐!!”
쿠━웅!
거대한 힘의 격류가 어둠 속에서 휘몰아친다.
탑의 규율(規律)대로라면 성좌는 등반자에게 함부로 물리력을 행사해서는 안 되지만, 등반자가 성좌의 공간으로 침입한 초유의 상황에서는 그런 규율도 의미 없었다.
“누구 앞이긴, 내 성운 가지고 튄 사기꾼 새끼 앞이지.”
힘의 격류가 휘몰아치건 말건 강우는 신경 쓰지 않았다.
‘계시’를 쏟아내며 도배를 한 것은 참을 수 있다.
유치한 도발로 어그로를 끈 것도 참을 수 있다.
하지만.
“감히 내 앞에서 성운을 꺼━억하려고 해?”
다른 건 몰라도, 그가 마땅히 받아야 할 보상을 꿀꺽하고 튄 놈만큼은 용서할 수 없었다.
“흥! 어차피 너도 속임수를 쓴 주제에!”
“속임수?”
“지금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지 않으냐!!”
대체 무슨 수를 썼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무언가 속임수를 썼다는 사실은 명백했다.
죽은 인간이 살아 돌아올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깐.
“그래서, 성운을 못 내놓으시겠다?”
“그렇다!”
강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고개를 숙인 채 사납게 이를 드러냈다.
“그럼 처맞아야지.”
어차피 평화롭게 대화로 해결하기 위해 이곳에 온 건 아니었다.
-위잉! 위잉!
[‘율법’이 당신에게 다시 한번 경고를 보냅니다!]“꺼져.”
머릿속에 시끄러운 경보음이 울려 퍼졌지만, 무시했다.
‘이것 때문에 더 큰 피해를 본다고 해도.’
타협은 없다.
한 번 타협하는 순간 계속해서 타협을 반복해야 하니까.
그는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기에 살아남았다.
‘악의에는 더 큰 악의로.’
어떤 불이익이 기다리고 있다 하더라도 가만히 참고 넘길 수는 없었다.
침묵은 독이다.
당했다면, 그 이상으로 갚아줘야 한다.
“인생은━”
거칠게 주먹을 쥔다.
화르륵!
검은 태양과도 같은 불길이 주먹을 뒤덮었다.
“실전이다 이 X만한 새끼야아아아아아!!!”
거칠게 발을 박찼다.
위도, 아래의 개념도 없는 칠흑의 공간이었지만 앞으로 쏘아지는 감각과 함께 궁흉의 신에게 빠른 속도로 가까워졌다.
“이익!”
궁흉의 신이 표정을 찡그렸다.
기다란 흑발이 살아있는 생명처럼 넓게 펼쳐졌다.
완연히 드러난 그녀의 외모는 꽤나 아름다웠지만, 강우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주먹을 뻗었다.
“어딜!”
무시무시한 기세로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며 궁흉의 신은 팔을 휘둘렀다.
넓게 펼쳐진 머리카락.
어둠을 머금은 듯한 칠흑의 머리카락이 ‘손’의 형태로 뭉쳤다.
손이라고는 하나 그 형태는 각양각색.
마녀의 손아귀처럼 비쩍 마른 손도 있었고, 짐승의 앞발처럼 굵고 흉측한 것도 있었다.
“달 없는 밤에 태어난━ 흉악한 것들아.”
궁흉의 신이 양팔을 활짝 벌렸다.
궁흉(窮凶).
흉악(凶惡)하며, 사악(邪惡)하며, 극악(極惡)한 것들의 신.
“나의 적을 가장 깊은 어둠 속으로 데려가거라.”
그녀의 명령에 따라 무수한 ‘손’들이 움직였다.
-콰드드득!!
수백, 수천, 수만.
헤아릴 수 없는 숫자의 손들이 파도처럼 강우에게 뻗어 나갔다.
물에 빠진 사람이 내뻗는 손처럼 처절하고, 절박한 감정이 녹아내린 손아귀들.
탐식의 불에 녹아내리면서도 그를 향해 뻗어오는 손아귀들은 멈추지 않았다.
강우는 자신을 향해 뻗어 나오는 무수한 ‘손’을 바라보며━
“지랄 똥을 싸네.”
피식, 웃음을 흘렸다.
“가장 깊은 어둠이라고?”
자신의 앞에서 심연(深淵)을 논하다니.
“어딜 비비려고 해?”
꾸르륵.
검은 바다가 출렁인다.
마해(魔海)가 소용돌이친다.
마해의 가장 깊은 곳.
심연 속에서 불길이 치솟아 오른다.
-화르르르륵!!!
세상 전체를 집어삼킬 듯 거센 불길이.
“꺄아아아아아악!!!”
강우를 향해 뻗어 나오던 셀 수 없는 손아귀들이 탐식의 불에 집어 삼켜졌다.
우적! 우드득!
탐식의 불길이 탐욕스럽게 손아귀를 씹어 삼키고, 먹어치웠다.
궁흉의 신은 비명을 내지르며 다급하게 몸을 뒤로 뺐지만, 폭발하듯 치솟는 불길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이내 검은 공간을 가득 채울 기세로 타오르던 불길이 사그라들자,
“어이구, 머리가 좀 시원해지셨네?”
기다란 흑발이 모조리 불태워진 궁흉의 신만이 남아 있었다.
“아━”
궁흉의 신의 두 눈이 부릅뜨였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반쯤 뜯겨나간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돋아 있는 머리를 손으로 만졌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황량함.
“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처절한 절규가 검은 공간에 울려 퍼졌다.
“내, 내 머리카락!!! 내 머리카라아아아아아아악!!!!!”
여성으로서 머리칼을 잃은 것이 충격인 것은 아니었다.
성좌(星座)에게 있어 성별은 큰 의미를 갖지 않으니깐.
문제는 그녀의 성좌로서의 격(格)이 대부분 그 머리카락에 깃들어 있다는 사실.
힘의 근원(根源)을 잃은 그녀는 미칠 듯한 무력감과 함께 끝없는 절망을 느꼈다.
“푸흐흐흐! 왜 그래? 그 모습이 더 보기 좋구만?”
강우는 낄낄 웃으며 민머리가 된 궁흉의 신을 조롱했다.
“공짜를 좋아하면 대머리가 된다는 말 못 들어봤어?”
미션 보상을 날로 처먹으려고 했으니, 응당한 업보(業報)였다.
“으, 으아, 으.”
궁흉의 신은 휑해진 자신의 머리를 두 손으로 매만지며 몸을 비틀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믿고 싶지 않다는 듯 울부짖었다.
“너, 너, 너, 너어어어어어어어!!!!”
“왜, 왜, 왜, 왜애애애애애애앸!!!!!!!”
“도, 돌려줘!!! 내 머리카락을 돌려달란 말이야아아아아!!!”
“뭐어어어어어~? 머리카락 없는 찐따가 하는 말이라 잘 들리지가 않는데에~?”
천박한 웃음을 터트리며 어깨를 들썩였다.
궁흉의 신이 발작을 일으키듯 그에게 달려들었다.
-빠아아아악!!
“꺄아아악!!”
하지만, 힘을 잃기 전에도 상대가 되지 않았는데 성좌로서의 격(格)이 떨어진 지금 상대가 되겠는가?
강우의 발길질에 얻어맞은 궁흉의 신이 멀찍이 튕겨 나갔다.
“흐윽… 끄흐으으윽!”
“뭘 질질 짜고 있어?”
눈살을 찌푸리며 주저앉아 울고 있는 궁흉의 신에게 다가갔다.
무슨 비련의 여주인공마냥 눈물을 흘리고 있었지만,
“아직 우리 계산 안 끝났잖아?”
아직 그는 받을 것이 남아 있었다.
“무, 무슨….”
“알면서 왜 그래?”
혀를 길게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1000만 성운(星雲).
그걸 받기 전까지는 이 타오르는 듯한 분노는 사그라지지 않으리라.
“저, 저리 가.”
궁흉의 신은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뒷걸음질 쳤다.
“그러게 처음부터 그냥 줬으면 이런 일 없었잖아? 그치?”
환하게 웃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띠링!
[‘탑의 주인’이 당신을 주시합니다!]“…음?”
아까 전에 경고를 무시하면 탑의 주인에게 보고가 들어가니 어쩌니 하더니 이제 보고가 들어간 모양.
‘그나저나 탑의 주인이라면… 티탄인가?’
가늘게 눈을 뜨며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창을 바라보았다.
[‘탑의 주인’이 당신이 탑의 균형과 질서를 망가트리고 있다 지적합니다!]하긴.
탑에 들어온 이후 그의 행보를 생각하면 저런 말이 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그를 단순한 등반자(登攀者)라 부르기엔 너무 말도 안 되는 경이(驚異)를 실현했으니깐.
“그래서, 뭐 어쩌시게?”
강우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들어 올렸다.
‘탑의 주인’이라 불리는 존재가 어느 정도 권한을 가졌는지 알 수 없으니, 어떻게 나올지 좀 궁금하기도 했다.
[‘탑의 주인’이 당신을 정상(頂上)으로 소환합니다!]“━뭐?”
순간, 강우의 두 눈이 부릅뜨였다.
이건 솔직히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야, 이 씨! 야!! 갑자기 뭔데!!!”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어차피 언젠가 정상에 올라갈 생각이었지만, 이런 식으로는 아니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정상에 오르게 되면━
“아직 못 뜯어먹은 성운(星雲)이 얼마나 많이 남았는데!!!”
남은 3주간 성좌들에게 성운을 바닥까지 뜯어먹는다는 계획이 틀어져 버리게 된다.
[10분 뒤, 41층에 남은 육체(肉體)와 함께 정상으로 소환되며, 등반자 ‘오강우’가 41층을 공략했다는 기록이 삭제됩니다.]“이런 X발!!! 누구 멋대로!!”
너무나 갑작스러운 상황에 거친 욕설을 토해냈지만, 애초에 이 탑은 지배하고 있는 주인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힘이 몸을 감싸는 것이 느껴졌다.
‘제기랄!’
까드득, 이를 갈며 머리칼을 쥐어뜯었다.
‘너무 설친 건가?’
뒤늦게 경고를 무시하고 궁흉의 신의 공간으로 쳐들어간 것이 후회됐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니, 내 돈 떼먹으려는 걸 어떻게 참으라고.’
애초에 참을 수 없는, 참아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만약 시간을 되돌려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은 선택을 했으리라.
“이, 이런 제길!”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는 하나, 달달하게 성운을 뜯어먹을 수 있는 기회가 송두리째 날아간 건 뼈아픈 실책이었다.
‘하다못해 1000만 성운이라도!’
다급히 발을 박차며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고 있는 궁흉의 신에게 달려갔다.
“성우우우우우우운!!!!!”
“꺄아아아악!!”
“성운 내놔아아아아아아아앜!!!!”
궁흉의 신의 가느다란 모가지를 움켜쥔 채 거칠게 앞뒤로 흔들었다.
“그, 그만!!! 그마아아안!!”
“그만이고 자시고!!!”
내 성운 내놓으라고 이년아아아아아!!!!
[소환이 시작됩니다!]“아, 안 돼!!”
강우의 표정이 창백하게 질렸다.
아직 궁흉의 신이 미션의 보상으로 내건 1000만 성운은 그에게 들어오지 않았다.
“빨리이이이이이이!!!! 내 성운 토해내라고오오오오오!!!!”
머리를 쥐어뜯으며 폭력적인 윈드밀을 시전했다.
회오리처럼 회전하는 다리가 궁흉의 신의 머리통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꺄악!!”
“빨리이이이이이이이잌!!!!!”
“자, 잠깐만….”
“끼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엨!!!!”
“꺄아아아악!! 주. 줄게!! 줄 테니깐 제발…!”
“정신나갈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
궁흉이 신이 홀로그램처럼 띄워진 창에 손을 뻗었다.
‘수락’이라고 쓰인 버튼을 클리어하기 직전,
-우우우우우웅!!!
“아.”
몸이 붕 뜨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인생 X발.”
의식이 검게 점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