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679)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외전 160화
태초의 지식 (2)
“가챠라면… 전에 하신 특성 뽑기 말씀하시는 건가요?”
“맞아.”
이미 한계에 도달한 그의 성장치를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는 가능성은 특성 뽑기 외에는 없었다.
아니, 아마 어떤 특성을 뽑는다고 해도 성장을 바라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해야지.’
사실 지금 특성 뽑기 외에 마땅한 방법이 없다.
“음… 그보다 흑천(黑天)이라고 하는 걸 찾아보는 게 좋지 않겠어요?”
“못 찾아.”
단호하게 답하며 고개를 저었다.
“머나먼 외계(外界)에 떨어져 있다는 말 때문이신가요?”
“애초에 내가 거기에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그 존재에 대해 알려주지도 않았을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
“만약 흑천을 찾을 수 있다고 해도, 그걸 가질 생각은 없어.”
“…예?”
의외의 대답이었는지, 리리스가 동그랗게 눈을 떴다.
흑천을 가질 생각이 없다니?
“흑천을 얻게 되시면 마해와 같은 힘이 두 개… 아.”
말을 이어가던 리리스는 이내 강우가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는 듯, 낮은 탄성을 흘렸다.
강우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두 개는 무리야.”
흑천(黑天)이라는 힘이 마해와 같은 태초에서 파생된 어둠이라고 하면, 마해와 동급이거나 적어도 그에 근접하는 힘일 것이다.
━그걸 포식의 권능으로 먹는다?
결과는 뻔하다.
‘감당하지 못하고 뒤지겠지.’
자신은 용기와 만용을 구분하지 못하는 머저리가 아니다.
마해의 심연을 모조리 먹어치우고 마해(魔海) 자체가 되긴 했지만, 여기서 마해와 동급의 힘을 한 개 더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건 한계까지 가득 찬 그릇에 그 안에 담긴 물만큼을 쏟아붓는 짓이나 다름없다.
“그래도 의외네요. 마왕님이라면 모조리 먹어치워 버리겠다고 나오실 줄 알았어요.”
“구분할 건 구분해야지.”
할 수 있는 게 있고 없는 게 있다.
지금 상태에서 마해와 같은 힘을 한 개 더 몸 안에 쑤셔 넣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시도해 볼 가치조차 없다.
“그러면 노스트리안의 시체를 내버려 두시고 오신 것도 그것 때문이에요?”
“아, 그건 포식을 권능을 쓸 여건이 안 됐어.”
아카르트가 눈앞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 포식의 권능으로 노스트리안의 시체를 먹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솔직히… 잘 모르겠네. 티탄을 통째로 포식하면 어떻게 될지.”
아마 그것도 감당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이미 바울리를 먹어치운 전적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티탄까지 먹어치울 수 있단 의미는 아니니까.
‘아카르트의 힘을 생각해 봤을 때… 너무 도박이지.’
여기서 괜히 욕심을 내다가 진짜 모조리 잃어버리는 위험성도 있었다.
한계까지 부푼 풍선에 계속해서 바람을 집어넣는 격이었으니까.
“어쨌든, 지금 당장은 특성을 뽑는 게 맞아.”
“그렇겠네요.”
창세의 탑에서 벌어들인 성운(星雲)은 대략 170만 정도.
특성 뽑기를 17번 할 수 있는 양이었다.
‘궁흉의 신 그 자식한테 1000만 성운만 뜯어냈어도.’
아카르트의 훼방으로 뜯어내지 못한 1000만 성운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끄응.”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이제 와서 아쉬워해봤자 달라질 것은 없었다.
아무리 아쉬워한들 뜯어내지 못한 1000만 성운이 뿅하고 생기는 게 아니었으니까.
‘이 17번에 모든 걸 거는 수밖에.’
제발 뭐라도 좀 떠줘라.
“바로 시작하실 건가요?”
“아니.”
“그럼요?”
“조금이라도 더 확률을 높여야지.”
“어머? 특성 뽑기의 확률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 있었나요?”
처음 듣는 소식이었는지 리리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마 처음 듣는 소식이 맞을 것이다.
방금 자신이 생각해낸 방법이니까.
“일단 먼저 집으로 돌아가자. 임자랑 연주한테도 돌아왔다고 얘기해줘야지.”
지난 일주일 동안 임자를 보지 못한 탓에 슬슬 금단 현상이 일어날 것 같았다.
“후훗, 예.”
리리스는 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강우의 품에 안겼다.
“그럼 집까지 잘 부탁드려요?”
“흐흐흐. 꽉 붙잡고 있어.”
공주님을 안는 듯한 자세로 그녀를 끌어안은 뒤 천공의 권능을 사용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 * *
“임자아아아아아아!!!”
“가, 강우 씨?”
현관을 박차고 들어가자마자 목청껏 한설아를 불렀다.
주방에서 무언갈 만들고 있던 한설아가 동그랗게 눈을 뜨며 도도도 현관으로 달려왔다.
“벌써 오신 거예요?”
“엉.”
“한 달은 걸리실 거라 생각했는데….”
“일이 좀 있었어.”
“헤헤. 어쨌든 강우 씨가 일찍 돌아오셔서 다행이에요. 정말… 강우 씨가 없는 동안 하루하루가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는데요.”
한설아는 배시시 미소를 지으며 강우를 끌어안았다.
더없이 부드러운 감촉이 가슴을 짓눌렀다.
예전이라면 이 행복하기 짝이 없는 감촉이 뺨에 느껴졌겠지만, 지난 전투들로 인해 육체의 재구성이 거의 끝났기 때문에 그냥 끌어안는 거로는 자세가 나오지 않았다.
‘이걸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뭐, 어느 쪽에 느껴지던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감촉이었다.
“보고 싶었어, 임자.”
“저도요.”
고개를 살짝 들어 올린 한설아와 가볍게 입술을 겹쳤다.
‘이제 좀 집 돌아온 느낌이 나는구만.’
차오르는 행복감에 아카르트에 대한 공포가 사르르 녹아내렸다.
“오자마자 또 지랄이네.”
“흐흐. 우리 연주도 이리와.”
“꺼져.”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던 차연주가 퉁명스럽게 답했다.
아마 처음에 자신이 아닌 한설아를 부른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
‘그건 어쩔 수 없지.’
집 돌아와서 임자를 먼저 찾게 되는 건 본능이다.
“삐지지 말라니깐.”
“안 삐졌거든!”
“흐흐흐. 우리 연주도 오랜만에 보니 너무 좋네, 이거.”
소파에 다가가 삐져있는 차연주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고개를 홱 돌리고 있던 차연주가 우물쭈물 입술을 달싹였다.
그녀가 왼손 약지에 낀 반지를 만지작거리는 것이 보였다.
“뭐… 안 본 지 얼마 됐다고 그러냐.”
“일주일 못 봤으면 오래된 거지.”
아내들과 하루만 떨어져도 죽을 맛이다.
“지, 지랄은.”
크흠! 차연주가 헛기침을 하며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흐응! 강우! 탑은 어땠어?”
에키드나가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다가왔다.
그녀의 흑갈색 머리칼을 가볍게 쓰다듬어주며 리리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전에 시훈이랑 발록 좀 불러줄래? 아, 레이라도.”
아무래도 다 모인 다음 한 번에 설명하는 게 편했다.
“아, 시훈 씨랑 발록은 지금 에르노어 대륙에 갔어요.”
“엥?”
갑자기 거긴 왜?
“그쪽에도 외계(外界)의 존재들이 나타났데요.”
“아.”
하긴.
에르노어 대륙도 삼원(三元)의 세계에 속하는 이상 외계의 침식을 받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쪽에는 게이트가 없어서 거의 침식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아카르트가 경고한 대로, 상황이 점차 안 좋아지는 건 사실인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이제 곧 정리가 끝난다고 들었는데, 부를까요?”
“응, 바로 불러줘.”
다른 것보다 아카르트에 대한 얘기를 먼저 전해주는 게 더 먼저였다.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레이라 씨도 같이 불러올게요.”
리리스가 가볍게 허리를 숙이며 밖으로 나갔다.
“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데 그래?”
차연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아카르트를 만났어.”
“뭐, 뭐?!”
“아, 아카르트를 만나셨다고요?!”
한설아와 차연주가 경악에 찬 표정으로 외쳤다.
“응.”
강우는 탑 안에서 있었던 얘기를 그녀들에게 전했다.
“흐, 흐응! 어, 어디 다친 데는 없어, 강우?”
얘기를 모두 들은 에키드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 얼마나 튼튼한지 알잖아.”
“그래두… 그 나쁜 놈의 공격은 강우에게 치명적이잖아.”
나쁜 놈이라.
사실 아카르트의 얘기를 들은 지금, 과연 누가 옳은지 그른지는 판단하기 어려웠다.
‘그런 문제가 아니니까.’
이건 옳고 그르고를 떠나 생존의 문제였다.
자신에게 있어 아카르트는 용납할 수 없는 존재였고, 그건 아카르트에게도 마찬가지다.
거기에 선악(善惡)의 잣대를 들이미는 건 의미 없다.
“지금 지구의 상태가 다른 외계에도 영향을 끼친다니….”
한설아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근본적으로 상냥한 그녀에게 있어, 살아남기 위해 다른 외계의 존재들을 죽여야 한다는 건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일 것이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찾아보면 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침식하는 외계를 모조리 도려내 버리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어.”
“…….”
“싫어?”
“…아뇨.”
한설아는 나지막이 고개를 저었다.
“사실, 뭐가 옳은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 방법만이 강우 씨와 계속 함께 있을 수 있는 방법이라면.”
꾸욱. 주먹을 쥐며 서늘한 살기를 피어 올렸다.
“다 죽여 없애서라도. 전 강우 씨와 같이 있을 거예요.”
“임자는 죽일 필요 없어.”
그녀의 손을 잡는다.
가늘고, 보드랍다.
피에 젖기는 너무 아름다운 손이다.
“내가.”
피를 묻히는 건,
“다 죽여 버릴 테니까.”
자신 하나로 충분하니까.
“지랄을 해라, 지랄을.”
소파 등받이에 걸터앉은 차연주가 핀잔을 줬다.
“무슨 다크 나이트세요?”
“아니.”
간만에 멋진 말 좀 했더니 왜 또.
“어차피 우리 살라면 죽일 수밖에 없다며? 그럼 그걸로 끝이지. 다른 세계에 뭐 빚진 게 있다고 우리 목숨 내놓고 걔들을 살려줘?”
가끔 보면 차연주도 꽤나 악마와 비슷한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다.
‘내 권속이라 그런가?’
어쩌면 인간 자체가 악마와 별 차이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뭐… 그렇게 말해주면 고맙고.”
어쨌든 자신의 계획에 동참해 준다면 그걸로 좋았다.
“그러면 시훈 씨랑 발록 씨가 오실 때까지 기다리실 건가요?”
“아니, 시간도 없으니까 바로 시작해야지.”
빨리 특성을 뽑아야 그에 맞는 대책을 세우든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 임자.”
“네, 강우 씨.”
“부탁할 게 있어.”
움켜쥔 한설아의 손에 힘을 더하며 말을 이었다.
“고사(告祀) 준비 좀 도와줘.”
“…예?”
* * *
뽑기의 확률을 높일 수 있는 방법.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실제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이런 건 기분이 중요한 거야.’
왜 다들 뭔가를 뽑기 전에 괜히 평소 믿지도 않는 신에게 기도하고는 하지 않는가.
그것과 비슷하다.
-아파트 옥상.
전에 제사를 지냈던 것과 마찬가지로 커다란 상 위에 여러 음식들을 차려놓았다.
“후우.”
고사상 중앙에 갓 잘라낸 사탄의 머리를 올린 강우는 긴장에 찬 숨을 내쉬었다.
‘좋아.’
이제 특성을 뽑을 시간이다.
-띠링!
[바로 시작할까요, 수호자님?]“응.”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촤르르르륵!!!
그의 운명을 가를 룰렛이 맹렬한 속도로 돌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