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684)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외전 165화
위성세계, 제알(Zexal) (3)
“…뭐냐, 저거?”
사슬을 꺼내며 전투를 대비하고 있던 차연주가 허탈한 표정으로 물었다.
“나도 몰라.”
내가 저걸 어떻게 알아.
‘뭐 하는 놈들이야 이거?’
물씬 흘러나오는 살기에 피 튀기는 전투가 벌어질 거라 예상했지만, 이런 전개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누가 예상할 수 있겠는가.
3미터에 달하는 살인적인 키메라가 날카로운 손톱이나 이빨을 꺼내는 대신 웬 종이 쪼가리 뭉치를 꺼내 들 거라고.
“…뭐지? 왜 디스크를 차지 않는 거냐?”
“아니.”
그러니까 그 디스크가 대체 뭐냐고.
“애초에 그 디스크인지 뭔지 난 없어.”
“하! 공포에 질려 듀얼을 피하려는 수작이로군! 디스크는 거기 뻔히 있지 않은가!”
“아.”
그러고 보니 아까 계곡에서 주운 게 있었지.
강우는 리리스가 주운 기이한 형태의 방패를 들어 올렸다.
‘이걸 디스크라고 부르는 건가?’
아니, 근데 이걸 차고 뭘 할 생각인데?
설마 진짜 여기서 카드 배틀을 하자는 거 아니겠지?
“자! 어서 네놈도 디스크에 덱을 끼워 넣고 카드를 뽑아라!!!!”
시바 진짜 카드 배틀을 하자고 하는 거네.
“…….”
“뭐지? 지금 신성한 듀얼에서 도망치려고 하는 건가?”
“도망치고 자시고 애초에 난 할 생각 없어.”
“뭐, 뭐라? 듀얼을 할 생각이 없다고?”
키메라는 믿을 수 없는 소리를 들었다는 것 마냥 여섯 개의 눈을 동그랗게 떴다.
“흐음. 네놈이 듀얼을 할 생각이 없다면.”
“그래. 여기서는 시원하게 육탄전으로….”
키메라는 눈살을 찌푸리며 손에 쥔 다섯 장의 카드 중 하나를 뽑아 들었다.
“━내가 선공을 가져가도록 하지.”
“아니 이 새끼야.”
안 한다는 선택지는 없는 거냐.
“나의 턴!”
“…….”
그래, 뭐 어디 한번 해봐라.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저 외계 키메라가 뭔 짓거리를 하는지 지켜봤다.
“나는 ‘락카리의 전사’를 앞면 공격 표시로 소환하겠다!”
우우우웅!
키메라가 자신의 팔에 찬 디스크의 홈에 카드를 끼워 넣자, 흉악한 검을 손에 쥔 괴물이 평지에 나타났다.
“그리고 카드를 두 장 세트하고 턴을 종료한다!”
얼떨결에 자신의 턴이 됐지만 딱히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애초에 난 카드가 없잖아.’
그렇게 멀뚱히 서있자니 키메라가 비릿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흥. 카드를 뽑지 않으면 자동으로 내 턴이 시작될 뿐이다.”
“아니 카드가 없다고.”
그리고 있어도 안 해.
“그렇다면 다시 내 턴!”
2분 정도를 기다리던 키메라가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손을 앞으로 척, 뻗었다.
“적의 심장을 꿰뚫어 버리거라, 지옥의 전사여!!”
“크르르르르!!!”
디스크에서 소환된 전사가 흉악한 대검을 손에 쥐고 강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형님, 이거….”
“응. 아무래도 저 디스크란 걸 통해서 소환한 몬스터로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모양이네.”
달려드는 전사를 바라보며 피식 입가를 올렸다.
‘그러니까, 이런 거구만.’
이 ‘제알’이라는 세계에서는 마법처럼 저 카드에 담긴 괴물들을 직접적으로 소환하는 방법이 존재하고, 소환한 몬스터를 통해서 전투를 벌이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으로 여겨지는 것 같았다.
‘즉.’
저 몬스터를 직접 뭉개버리면, 굳이 카드나 디스크의 힘을 빌릴 필요조차 없다는 의미.
‘그러면 쉽지.’
그냥 네크로맨서나 소환술사랑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다.
디스크를 통해 소환한 몬스터를 날려버리고, 저 키메라까지 두들겨 패면 굳이 카드놀이 따위를 할 필요 없이 승리할 수 있다.
“제가 가겠습니다, 형님.”
“아니. 내가 갈게.”
스릉. 허리춤에서 검을 꺼내 들려는 김시훈을 막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어디, 그 잘난 소환수는 얼마나 센지 한 번 볼까.’
보랏빛 오러를 터뜨리는 키메라의 모습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그 소환수로 나온 몬스터도 꽤나 기대가 되었다.
“뭐, 그렇다고 해도.”
거기서 거기겠지만.
-타닥!
가볍게 발을 박찬다.
칼날의 권능으로 만들어낸 검은 칼날을 높게 들어 올린 후,
-촤악!!!
망설임 없이 내리긋는다.
‘그래도 한 방은 버텨….’
“크르르르르!!”
“……!”
강우는 두 눈을 크게 뜨며 대검을 든 몬스터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공격에 죽기는커녕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어떻게…?’
의문이 끝까지 이어지기도 전, 락카리 전사의 대검이 그의 허리를 반으로 가르며 지나갔다.
“…….”
그래.
진짜 그냥 ‘지나가기’만 했다.
“…뭐냐?”
손을 뻗어 눈앞의 몬스터를 만졌다.
무슨 홀로그램이라도 만진 것처럼 손이 몬스터를 뚫고 들어갔다.
‘아니.’
홀로그램을 만진 것처럼이 아니라, 이거 진짜 그냥 홀로그램이다.
“…소환술사가 아니었어?”
이 새끼 이거 진짜 카드 게임을 하자고 이 지랄을 하는 거였어?
“네 이노오오오오오옴!!!!”
벼락같은 호통이 떨어졌다.
“라이프에 직접 데미지를 입었다면 그에 맞는 리액션을 하는 게 예의 아니냐!!!”
“…….”
뭐지 이 X신은?
“아니, 아… 됐다.”
뭔가 반론을 하려던 강우는 이내 다 귀찮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미디르의 각성 조건을 해금하기 위해서 한시라도 빨리 이 세계를 ‘절망’에 빠트릴 필요가 있었다.
‘뭐, 그거야 지성체만 있으면 쉽지.’
그냥 대충 다 두들겨 패고 다니면 알아서 절망에 빠지지 않겠는가.
원래 고통에 절망하지 않는 생물은 없는 법이다.
-후웅! 후웅!
자신을 향해 열심히 대검을 휘두르고 있는 홀로그램을 무시하고 키메라를 향해 걸어갔다.
“이딴 카드놀이 하고 있을 시간 없으니까, 빠르게 끝내자고.”
“으윽! 무, 무슨 짓이냐!”
키메라에게 다가간 강우는 가볍게 손을 휘둘러 그의 팔에 끼워진 디스크를 박살 냈다.
“아아악!! 내, 내 카드가!!!”
“…….”
바닥에 흩어진 카드를 주섬주섬 다시 줍고 있는 키메라의 모습을 보니 뭔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죄책감이 솟아났다.
‘대체 저 카드가 뭐기에 이 지랄을 떠는 거야.’
뭐 진짜 소환 마법처럼 카드를 사용해 몬스터를 소환할 수 있는 거였다면 백번 양보해 이해하겠지만, 딱히 그런 것도 아니다.
저 카드는 정말 순수하게 ‘듀얼’만을 위해 만들어진 카드들이었다.
“크허허어어어엉!!! 내, 내 카드으으….”
키메라는 펑펑 눈물을 쏟아내며 충격에 찢어진 카드들을 품에 끌어안았다.
‘아.’
미칠듯한 죄책감.
‘차라리 두들겨 맞고 우는 거면 이런 느낌은 아닌데.’
카드 찢어졌다고 펑펑 눈물을 흘리는 걸 보니 굉장히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음… 야, 오강우. 이거 꼭 이렇게 해야 하냐?”
“크, 크흠. 뭐, 뭔가 마음이 무겁군요.”
차연주와 김시훈도 같은 생각을 한 건지 떨떠름한 표정으로 키메라를 내려다봤다.
“…쯧. 그래도 이건 어쩔 수 없어.”
잠시 고민에 잠겼던 강우는 이내 혀를 차며 미디르를 뽑아 들었다.
아무리 죄책감이 든다고 하지만, 미디르의 각성 조건을 위해서라도 여기선 ‘절망’을 만들어내야 했다.
‘뭐, 이미 충분히 만든 것 같지만.’
눈물을 흘리고 있는 키메라에게 미디르를 가까이 가져다 대며 명령했다.
“이놈의 ‘절망’을 먹어 치워.”
[으응?]머릿속에 미디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먹을 절망이 없는데 뭘 먹으라는 거야?]“절망이 없기는 뭐가 없어?”
지금만 하더라도 찢어진 카드를 부여잡고 눈물을 펑펑 흘리고 있지 않은가.
[흥. 저건 ‘슬픔’이야. 절망이랑은 다르다고.]“뭐?”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네놈…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나중에 반드시… 반드시 이 원한을 갚을 것이다!”
성큼 몸을 일으킨 키메라가 살기에 가득 찬 눈으로 강우를 노려보았다.
“하아.”
절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뭐, 어쩔 수 없지.’
그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 절망이 아닌 슬픔이라면,
‘절망을 느끼도록 만들어 줄 수밖에.’
찢어진 카드를 품에 안으며 질질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묘한 죄책감이 느껴지긴 했지만, 목적을 위해서라면 이딴 죄책감쯤은 얼마든지 무시할 수 있었다.
“굳이 나중으로 미뤄둘 필요 있어?”
“무, 무슨?”
“카드의 원한을 갚고 싶으면 지금 갚으라고. 네 몸을 써서.”
키메라의 팔꿈치 부근에 솟구쳐 있는 살인적인 가시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솔직히 방금 전에 홀로그램으로 만들어낸 몬스터보다 저 키메라가 몇 배는 더 위협적이고 강해 보였다.
‘저쪽에서 먼저 달려들어 준다면 두들겨 패는데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지.’
강우는 조롱 섞인 눈빛으로 키메라를 바라봤다.
부르르.
키메라의 몸이 무슨 바이브레이터가 된 것마냥 덜덜 떨렸다.
“지, 지금 설마… 유, 육탄전을 하자고 말하는 거냐?”
“그것 말고 또 있냐?”
“이, 이 야만스러운 자식!!!!”
그 얼굴로 할 소리냐?
“네놈도 명예로운 듀얼리스트라면 정정당당하게 듀얼로 승부해라!!!”
“아니.”
진짜 뭔데 이 새끼.
‘설마 저딴 몸으로 싸움을 피하는 거야?’
3미터에 달하는 거체.
전신을 뒤덮고 있는 단단한 갑각(甲殼)과 날카로운 손톱.
한눈에 봐도 위협적인 팔꿈치의 가시까지.
어딜 어떻게 보더라도 살육만을 위해 태어난 생물처럼 보이는 외계의 주민은 겁먹은 쥐새끼처럼 벌벌 몸을 떨고 있었다.
‘이 세계에 있는 놈들은 다 저런 거야?’
헛웃음을 흘리며 주먹을 들어 올렸다.
저쪽에서 싸움을 회피한다면,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일단 처맞으면 생각이 좀 달라지겠지.”
“커헉!! 컥!! 끄아아아아악!!”
무자비한 구타가 시작됐다.
실수라도 죽이지 않기 위해 최대한 힘을 빼면서 때렸는데도 불구하고, 키메라는 중간에 어떤 반항조차 하지 않았다.
‘언제까지 그럴 수 있나 보자고.’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물어뜯는 법이다.
아무리 싸움을 피하려고 해도 이렇게 일방적인 구타를 당하다 보면 다른 반응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렇게 10분여가 흐르고.
“끄윽… 커헉… 크르륵.”
“…이런 빌어먹을.”
이 자식 진짜 그냥 처맞기만 하잖아?
“으, 으음.”
“이, 이건 좀….”
다른 동료들도 차마 보기 힘든 광경인지 시선을 피한 채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었다.
아무리 지구를 구하기 위해서라고 해도 전투 의지조차 없는 적을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당연했다.
“하아.”
심지어 강우조차 뭔지 모를 찝찝함을 느끼고 있을 정도였으니까.
‘뭐, 그래도 이 정도면 되겠지.’
극한의 고통은 극한의 절망을 불러일으키는 법이다.
“미디르, 저놈의 ‘절망’을 먹어치워.”
[…없는데?]“뭐?”
[먹어치울 게 없다고. 저놈은 조금도 ‘절망’하고 있지 않아.]“…….”
강우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크윽… 야, 야만적으로… 나, 나와도 소, 용 없다….”
피떡이 된 키메라가 번뜩이는 여섯 개의 눈으로 강우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 제알(Zexal)의 전사들은… 듀, 듀얼에 패, 패배할 때가 아니면… 겨, 결코 좌절하지 않는, 다…!!!”
“…….”
저 말이 허풍이 아니라는 것은 키메라 자신이 증명해 냈다.
“이, 이거 어째야 합니까, 형님?”
김시훈이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째긴 뭘 어째….”
지친 목소리로, 강우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쓰러져 있는 키메라의 옆에 다가가 쪼그려 앉았다.
“카드는 어디서 구하냐?”
돌겠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