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686)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외전 167화
위성세계, 제알(Zexal) (5)
“……뭐?”
생각지도 못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 차연주가 동그랗게 눈을 떴다.
무슨 개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이 세계의 왕을 저 카드 게임으로 꺾겠다는 거야?”
“그게 가장 빠른 방법이니까.”
엔트리온은 ‘듀얼 킹’이라는 존재를 단순한 왕을 넘어서 ‘신’처럼 여겼다.
그 신이 처참하게 패배하여 무릎 꿇는 모습을 본다면 절망에 빠질 것이 틀림없다.
종교라는 것은 원래 마음의 지지대가 아니던가.
그 지지대가 무너지는 순간, 어떻게 될지는 굳이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음… 그건 좀 무모한 계획이신 것 같은데요.”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던 레이라가 앞으로 나섰다.
“아까 연주 씨도 말씀하셨지만, 지금 와서 저 카드 게임의 룰을 익히고, 실력을 기른 다음 왕에게 도전하는 건 너무 비효율적이에요.”
지나치게 시간이 오래 걸릴뿐더러 성공 가능성도 형편없다.
“그럴 필요 없어.”
“예?”
“이 게임의 룰을 익힐 필요도, 실력을 기를 필요도 없다고.”
“…그게 무슨.”
레이라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강우 씨가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건지 이해가 잘 안 가요.”
“호호호. 우리 마왕님은 원래부터 그런 분이랍니다. 아시고 계시잖아요?”
“아니, 그렇긴 하지만.”
레이라는 고개를 돌려 술집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듀얼을 바라보았다.
“몬스터 두 장을 제물로 바쳐 어둠 속성 몬스터 [용혈족 학살자]를 앞면 공격 표시로 소환!!”
“크윽!!! 이, 이 엄청난 위압감!!!!”
“크하하하핫!!! 네 녀석의 패배다!!!!”
“아니!!!!! 나는 아직 패배하지 않았어!!!!”
소스는 찍어 먹어야 제맛이라고 주장하던 엔트리온이 디스크에 손을 뻗었다.
“함정 카드 발도오오오오옹!!!”
“뭐, 뭐랏?!”
“[지옥의 구덩이]! 이번 턴에 소환된 공격력 2000 이상의 몬스터 카드를 파괴한다!!”
바닥에서 솟구쳐 나온 악마의 손아귀가 [용혈족 학살자]의 다를 잡아 깊은 구덩이 안으로 끌어당겼다.
“아, 안 돼!!! 저, 저항!! 저항해라!!!!”
용혈족 학살자가 거칠게 몸을 비틀며 악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키르르르르르르!
악마의 손아귀에 발버둥 치던 용혈족 학살자가 깊은 구덩이 속으로 완전히 빨려 들어가 버렸다.
“으아아아아아악!!!!”
소스는 부어 먹어야 한다고 주장하던 엔트리온이 머리를 부여잡으며 쓰러졌다.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어있었고, 영혼을 잃은 듯 초점을 잃은 눈빛에서는 깊은 절망이 느껴졌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레이라가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진짜 저 게임을 하신다고요?”
“나도 이건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차연주도 질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강우에게 다가왔다.
“아까도 말했지만 가장 중요한 카드는? 카드는 어쩔 건데?”
“그건 지금부터 구해봐야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차연주가 헛웃음을 흘렸다.
“지금부터 구한다고? 뭘 어디서 어떻게 구할 생각인데?”
“어디서 구하긴.”
씨익 웃으며 옹기종기 모여 듀얼을 구경하고 있는 엔트리온을 손으로 가리켰다.
지금 가장 빠르게 카드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은 고민할 필요도 없이 하나뿐이지 않은가?
“당연히 뺏어야지.”
“…….”
뭔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 차연주는 굳게 입을 다문 채 이마를 짚었다.
“…진짜 쓰레기 새끼.”
나지막한 욕설이 절로 흘러나왔다.
* * *
그 뒤, 강우 일행은 그의 지시를 따라 각자 흩어져 엔트리온들에게 카드를 강제로 뺏었다.
방법은 여러 가지였다.
김시훈의 경우 몰래 뒤로 다가가 칼등으로 기절시킨 후 카드를 뺏었고, 한설아의 경우는 극심한 피로를 느끼게 만드는 저주를 걸어 잠재운 후 카드를 뺏었다.
리리스는 아예 환각 마법으로 엔트리온들을 조종해 서로 카드를 뺏도록 유도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반나절 정도가 흐른 후.
“일단 될 수 있는 대로 카드를 모아왔어요.”
우르르르르.
한설아는 자루 속에 가득 차 있는 카드들을 밖으로 꺼냈다.
“수고 많았어, 임자.”
“헤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걸요. 조금… 그… 어린 애들 장난감을 억지로 뺏는 기분이라 그렇긴 했지만요.”
그녀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뺨을 긁적였다.
이 세계에서 카드는 단순한 ‘장남감’이라고 부를 수 없는 가치를 가진다는 것은 그녀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저도 꽤 모아왔습니다, 형님.”
“나도. 근데 이 중에 쓸 만한 카드가 있는지는 모르겠네.”
차연주가 자루에서 쏟아낸 카드를 들어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카드 게임 자체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다보니 뭐가 좋은 카드고 구린 카드인지 전혀 구분할 수가 없었다.
“아, 그건 걱정할 필요 없어. ‘좋은’ 카드는 내가 찾아낼 수 있으니까.”
“무슨 수로? 우리 카드 모으러 갔다 오는 동안 뭐 연구라도 하고 있었어?”
“아니? 여기 앉아서 김치찌개 먹으면서 놀고 있었는데.”
“이 새끼가?”
차연주가 날카롭게 눈을 떴다.
“흐흐흐. 넝담, 넝담.”
강우는 낄낄 웃으며 가볍게 손을 저었다.
“으, 으으. 이, 이 미친 야만인들!!! 이, 이런 끔찍한 짓으으으으으을…!”
지금 강우 일행이 모인 곳은 도시 외곽에 위치한 타이토의 집 안.
자신의 집에 꽁꽁 묶인 채로 결박되어 있던 타이토가 산더미처럼 쌓인 카드들을 노려보며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비유가 아니라, 진짜 얼마나 분노한 건지 그의 여섯 개의 눈에서 핏물이 섞인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피 색깔은 그래도 인간이랑 같은 색이네.’
강우는 의자에 묶인 채로 격렬하게 몸을 비트는 타이토를 바라보며 작게 웃었다.
“그래서… 룰은 좀 익혔어?”
“대강은.”
매 턴 카드를 한 장 드로우할 수 있다.
메인 페이지에는 소환을, 배틀 페이지에는 공격을 할 수 있다.
몬스터는 한 턴에 한 장만 일반 소환할 수 있다.
등급이 높은 몬스터를 소환하기 위해서는 제물이 필요하다, 등등.
듀얼의 룰 자체는 크게 복잡하지 않았다.
물론, 깊게 들어가면 엄청 복잡한 요소가 많은 모양이지만.
“어차피 룰은 대충만 알고 있어도 상관없어.”
듀얼에서 중요한 것은 ‘규칙’이 아니었다.
“하아… 그래. 어디 네 맘대로 한번 해봐라.”
차연주는 더 이상 캐묻는 것을 포기했다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전 강우 씨를 믿어요.”
한설아가 강우에게 다가와 상냥하게 손을 잡았다.
“아무리 어렵고…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이라도 이제까지 멋지게 이겨내셨으니까요.”
“흐흐흐. 역시 임자밖에 없어.”
임자가 이렇게 말해주는데 무조건 이겨야지.
아니, 어차피 ‘이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 생각대로라면.’
다른 동료들이 카드를 구하러 간 동안, 강우는 자신이 발견한 듀얼이란 게임의 ‘맹점’을 확인하기 위해 도시를 돌아다녔다.
그 결과, 처음 파악했던 대로 이 게임에는 근본적인 ‘오류’가 존재했다.
-게임의 승패를 뒤집는 것조차 가능한 치명적인 오류가.
물론 그 오류를 활용하는 건 이 세계 주민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자신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자, 그럼 어디 덱을 한 번 짜볼까?”
덱의 장수는 총 40장으로 구성하고, 같은 카드는 3장까지 넣을 수 있다고 한다.
“오, 이 카드 괜찮네.”
산더미처럼 쌓인 카드를 쭉 훑어보던 강우는 적당한 카드를 골라 덱을 만들기 시작했다.
“크하하핫! 그딴 하찮은 카드들로는 듀얼 킹을 절대 이길 수 없다!!!”
덱을 만들고 있는 것을 지켜보던 타이토가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강우를 바라보았다.
“듀얼 킹님의 덱은 하늘과 땅, 바다를 한 번에 아우르는 카드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딴 허접쓰레기 카드 따위로는 감히 그분의 덱을 감당할 수 없어!!”
듀얼 킹의 카드들은 그 하나하나가 모두 사기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강력한 성능을 지니고 있었다.
이런 길거리에서 대충 구한 카드들로는, 그의 카드를 넘어설 수 없다.
“흐흐흐. 글쎄 뭐가 진짜 사기 카드인지는 듀얼을 해보면 알 수 있겠지.”
“…방금 전까지 듀얼의 룰조차 제대로 모르던 놈이 어째서 그런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거냐.”
타이토는 눈살을 찌푸리며 강우를 노려보았다.
강우는 대답하지 않은 채 피식 웃으며 카드 고르기를 이어갔다.
“좋아, 딱 40장 됐네.”
마지막 카드를 덱에 집어넣은 강우는 흡족한 표정으로 카드 뭉치를 내려놓았다.
“이제 그러면 디스크만 구하면 되는 거지?”
급류 속에서 발견한 디스크는 망가져서 작동을 하지 않고 있었고, 타이토가 가지고 있던 디스크는 강우가 부숴 버렸다.
“흐응! 그거라면 내가 하나 더 구해왔어!”
에키드나가 콧김을 내뿜으며 멀쩡한 디스크를 하나 내밀었다.
“어머? 저도 하나 구해오긴 했는데… 후훗, 우리 에키드나도 같은 생각을 했네?”
“흐응! 나도 이 정도 센스는 있다구!”
에키드나는 두 주먹을 움켜쥔 채 기운찬 콧바람을 내뿜었다.
리리스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에키드나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둘 다 디스크를 구해와 준 건 고마운데, 아쉽게도 이번에는 다른 걸 쓸 거야.”
“다른 걸 쓰신다고요?”
“뭐 준비해둔 거라도 있어?”
일행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강우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굳이 준비할 필요도 없지. 이미 가지고 있는 거니까.”
“……?”
“난 이번 듀얼에 이 디스크를 사용할 거야.”
테이블 밑에 있는 디스크를 들어 올렸다.
처음 리리스가 급류 속에서 발견한 디스크였다.
“엥? 그거 고장 났잖아?”
“맞아.”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이걸 쓰는 거야.”
“…….”
“…아.”
다른 동료들도 슬슬 그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짐작했다는 듯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 어디 그럼.”
강우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슬슬 듀얼 킹이란 놈을 만나러 가볼까?”
디스크도, 덱도 모두 준비가 끝났다.
“네놈이 어떤 덱을 짰는지는 모르나 결코 그분을….”
“보여줄까?”
의자에 묶인 채 바득바득 이를 가는 타이토에게 자신이 짠 덱을 내밀었다.
팔을 풀어주자 그는 주섬주섬 자신의 덱을 살폈다.
“…뭐냐, 이건?”
타이토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강우를 올려다보았다.
“이건 덱이 아니라 카드 뭉치다!!! 서로 연계되는 것도 없고, 강력한 성능의 카드도 없지 않은가!!”
강우가 자신 있게 내민 덱은 말 그대로 ‘똥 카드’라 불리는 카드들만 모여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쿠웅! 거칠게 테이블을 내려찍었다.
“대체 왜 덱에 카드를 한 장씩만 넣은 거냐!!!”
덱에는 같은 카드를 3장씩 넣을 수 있다.
그편이 원하는 카드를 서치하기 편하고, 서로 긴밀하게 연계시키기도 훨씬 좋기 때문이다.
“뭐, 문제 될 거 있어?”
강우는 낄낄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원하는 카드가 있으면 그때 뽑아서 쓰면 되지.”
“…….”
타이토는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는지 멍한 표정으로 강우를 바라보았다.
이놈은 듀얼의 기본조차 모르는 놈이다. 그런 확신이 머릿속에 새겨졌다.
“자, 그럼. 여기 얌전히 앉아서 지켜보고 있으라고.”
너희들의 ‘신’이.
“처참하게 무너지는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