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690)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외전 171화
낙원(樂園) (1)
“듀, 듀얼 킹님이….”
“지셨어….”
지하도시.
수천만의 엔트리온이 모여 사는 거대한 도시에 ‘절망(絶望)’이 번지고 있었다.
-듀얼 킹의 패배.
그들의 왕이자,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가 영문 모를 미물(微物)의 손에 패배해 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처참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압도적으로.
“라, 라이프가 하나도 까지지 않았어…!”
“어떻게 이런 일이!!!”
“이건 꿈이야아아아아아!!!”
“끼에에에에에에에에엨!!!!”
역병처럼 퍼져 나간 절망의 감정은 순식간에 도시 전체를 휩쓸었다.
경기를 중계하고 있던 방송사에서는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다급히 이 영상이 조작된 영상이라 거짓 보도를 하려고 했지만, 이미 방송실을 점령해 버린 강우 일행에 의해 저지당했다.
듀얼 타워.
모든 듀얼리스트들의 꿈이라고 불리던 그 타워에서, 듀얼의 왕이 처참하게 패배하는 모습이 도시 전체에 생중계되어 버린 것이다.
[아아!! 온다, 온다, 온다아아아아아아!!!!]울려 퍼지는 광적인 웃음.
절망을 먹는 마검(魔劍), 미디르는 도시 전체에서 폭발할 듯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절망’의 감정에 광기에 찬 웃음을 터트렸다.
[꺄하하하하하하핫!!!!! 자, 어서 나를 대지에 꽂으라고!!! 이 세계의 절망을!!! 좌절과 비탄의 감정들을 모조리 먹어치워 줄 테니까!!!]미디르는 검푸른 불꽃을 터트리며 강우를 보챘다.
“알았으니까 보채지 마.”
강우는 미디르를 들어 탑의 바닥에 꽂았다.
-꾸륵! 꾸르르륵!!!
미디르를 꽂은 자리를 기점으로 검푸른 점액질이 거미줄처럼 퍼져 나갔다.
젖은 걸레를 빠는 듯한 질척이는 소리와 함께 거미줄처럼 바닥에 퍼져 나간 검푸른 점액질이 맥동했다,
쿠득! 쿠득!
맥동하는 검푸른 점액질이 제알(Zexal)에 가득 퍼진 ‘절망’의 감정들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나… 나의 ‘신’들이 이렇게 허무하게….”
미디르가 절망을 먹어치우고 있는 사이, 강우는 바다에 주저앉은 채 뚝뚝 눈물을 흘리고 있는 듀얼 킹을 향해 다가갔다.
“음, 뭐. 이런 짓을 해놓고 할 말은 아니다만, 미안하다.”
억지나 다름없는 방법을 사용해서 듀얼 킹을 패배시킨 후, 이 세계를 절망에 빠트린 이유는 순전히 미디르를 각성시키기 위함이었다.
물론, 더 근본적인 이유는 지구의 멸망을 막기 위해서였지만, 굳이 그걸 구차하게 설명할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지구가 멸망하건 말건 얘들이 상관할 일은 아니니까.’
무슨 이유에서건 자신의 이득을 위해 죄 없는 엔트리온들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턱.
-우르르르!
아공간에서 커다란 자루를 하나 꺼내 듀얼 킹의 앞에 내려놓았다.
“이건…?”
“우리가 엔트리온들에게서 강탈한 카드들이다. 나중에 뺏긴 애들한테 다시 돌려줘.”
“…….”
듀얼 킹의 여섯 개(듀얼이 끝나자 일곱 번째 눈이 닫혔다)의 눈이 가늘게 뜨였다.
“…카드를 돌려주는 이유가 뭐지?”
“너희들한텐 소중한 물건일 테니까.”
자신에게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물건이지만, 그들에게는 목숨 이상으로 소중한 것이 바로 이 카드였다.
‘세계를 절망에 빠트린다’는 목적도 달성한 이상 굳이 자신이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이런다고 본좌가 네놈을 용서할 거라 생각하나?”
“하겠냐?”
도둑이 물건을 뺐었다가 돌려줬다고 해서 그를 용서해 주는 미친 붓다맨이 어디 있단 말인가.
당연히 그들에게 용서를 구할 생각은 없었다.
‘구할 필요도 없고.’
듀얼 킹과 엔트리온들에게 딱히 악감정은 없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크읏.”
듀얼 킹은 증오스럽다는 듯 강렬한 눈빛으로 강우를 노려보았다.
저렇게 살기를 줄줄이 뿜어내면서도 직접적인 공격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일종의 존경심마저 생겨났다.
‘차라리 다 이 세계 같았으면 좋았을 수도 있겠네.’
모든 분쟁과 갈등을 카드 게임으로 해결하다니.
처음 들었을 때는 뭔 그런 어처구니없는 세계가 있냐고 생각했지만 생각할수록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
적어도 이 세계에서는,
소중히 여기는 존재들이 눈앞에서 잔혹하게 죽는 모습은 보지 않아도 되니까.
“어쨌든 좀만 있으면 알아서 꺼질 테니까 너무 그렇게 노려보지 말라고.”
“…….”
듀얼 킹은 꾹 주먹을 움켜쥐며 자신의 팔에 찬 디스크를 만졌다.
“언젠가.”
“엉?”
“…언젠가, 네놈을 꺾고 말겠다.”
“푸흐흐흐!!”
이런 상황에서도,
억지나 다름없는 허무맹랑한 논리로 패배했음에도 ‘듀얼’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는 그의 모습에 절로 실소가 흘러나왔다.
“좋아. 아카르트 새끼 대가리 따고 일 다 끝나면 한 번 다시 붙어보자고. 그때는 제대로.”
솔직히 말해서 이 ‘듀얼’이라는 카드 게임은 꽤나 마음에 들었다.
“…아카르트?”
“음?”
“지금 아카르트라고 했나?”
“…….”
강우는 가늘게 눈을 떴다.
“뭐, 그 자식에 대해 알고 있는 거냐?”
“아니 딱히 아는 건 아니지만… 가끔 그의 추종자라고 칭하는 존재들이 ‘포교’하기 위해 도시를 찾아올 때가 있었다. 귀찮고, 짜증 나는 녀석들이지.”
“호오.”
그 자식들 포교까지 하면서 돌아다니고 있었어?
“걔들이 어디서 오는지는 알아?”
“놈들은. 동쪽 끝… 태양이 떠오르는 대지에서 온다.”
“좋아.”
덕분에 아카르트의 세계로 향하는 게이트를 찾는 수고를 덜었다.
“죗값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이제 그놈들이 포교한다고 이 세계에서 찝쩍거리지 않도록 해줄 게.”
낮은 웃음을 흘리며 혀로 입술을 핥았다.
“네놈들은 대체….”
“자, 한숨 푹 자고 일어나면 다 끝나 있을 테니까 좀 쉬고 있으라고.”
어깨를 으쓱이며 입구 쪽으로 몸을 돌렸다.
마침 입구에서는 방송실을 점령하기 위해 떠났던 동료들이 일을 마치고 돌아오고 있었다.
가볍게 손을 흔들어준 후 한설아에게 다가갔다.
“임자, 저 자식 좀 재워줘.”
“예, 강우 씨.”
고개를 끄덕이며 주저앉은 듀얼 킹에게 다가갔다.
“자, 잠깐!! 내 카드는 아직 뜨겁…!”
“금방 끝나니까 가만히 계세요.”
“크윽! 무, 무슨 짓을!”
“…가만히 있으란 말 못 들으셨어요?”
한설아의 눈빛이 서늘하게 빛났다.
히끅! 등골을 타고 퍼지는 섬뜩한 감각에 듀얼 킹은 흠칫 몸을 떨었다.
“강우 씨가 부탁하신 일이에요. 당신이 무슨 사정이 있건, 얼마나 억울하건.”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 그런….”
“아셨으면 얌전히 주무세요.”
밤이 펼쳐지는 것처럼 열두 장의 검은 날개가 펼쳐졌다.
가볍게 듀얼 킹의 이마 위에 손을 올리자, 그녀의 손에서 검은빛이 흘러나와 듀얼 킹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아, 으.”
극도의 피로와 함께 강제로 수면 상태로 만드는 강력한 저주가 듀얼 킹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강렬한 살기에 번들거리고 있던 여섯 개의 눈동자가 흐리멍덩하게 변하더니 이내 풀썩 쓰러졌다.
“수고 많으셨어요, 강우 씨.”
“흐흐. 땡큐 임자.”
강우는 씩 웃으며 한설아의 허리를 가볍게 끌어안았다.
“에휴, 평소에는 그렇게 순둥이더니 강우만 엮이면 사람이 확 돌변한단 말이야.”
차연주가 강우의 품에 안긴 채 배시시 웃고 있는 한설아를 바라보며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다들 수고 많았어.”
“…방송으로 보니까 아주 쌩지랄을 하더만.”
“왜 강우 씨가 그렇게 자신만만하셨는지 알 것 같네요.”
차연주와 레이라가 허탈한 표정으로 혀를 내둘렀다.
“흐흐흐. 이겼으면 됐지.”
“열사병? 숲? 먹구름? 아주 그냥 카드 게임이 아니라 다큐멘터리를 찍지 그랬냐?”
“아뇨, 심지어 그 과학 상식이라는 것들도 아주 엉터리였잖아요.”
“진짜 보는 내내 태클을 걸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다.”
두 여인은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하긴.’
내가 하긴 했지만 좀 말이 안 되긴 했지.
“다, 다들 진정하십쇼. 그래도 어쨌든 형님이 이기시지 않았습니까.”
김시훈이 나서며 두 여인을 달랬다.
“하아… 그래, 이겼으면 됐지.”
차연주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마따나, 과정이야 어땠건 이겼으면 장땡이다.
“시훈이 이 새끼….”
강우는 와락 김시훈을 끌어안았다.
“역시 형의 마음을 알아주는 건 시훈이 너밖에 없구나!!!”
“혀, 형님!!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습니다.”
“보라고 해!!!”
아무도 우리 사이를 막을 수 없어!!!
“…뭐죠, 이건?”
레이라가 복잡한 표정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까득까득, 신경질적으로 손톱을 깨물며 다리를 달달 떨었다.
옆에 있던 차연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뭐가?”
“…아뇨. 이걸 NTR로 봐야 할지 아닐지 고민 중이라서요.”
“뭔 소릴 하는 거야 이 여자는.”
차연주가 기겁하며 뒷걸음질 쳤다.
“서, 설마 시훈 씨가… 그, 그런!”
“아니.”
“이, 이렇게 된 이상 시훈 씨를 ‘자를’ 수밖에….”
“자르긴 뭘 또 잘라.”
레이라와 한설아 사이에 끼인 차연주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호호. 마검의 각성 조건은 달성하신 것 같네요.”
리리스가 중앙에 박혀 있는 미디르를 돌아보며 다가왔다.
“엉. 효과가 직빵이더라고.”
“고작 게임에 졌다고 세계 전체가 절망에 빠지다니… 이해하기 어렵네요.”
“애초에 그런 세계니까.”
그래도 이젠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그런지 처음 제알에 왔을 때처럼 머리가 아찔해지는 괴리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나저나 이제 여기서 아카르트로 향하는 균열을 찾아야 하는 거죠?”
“아, 그거 말인데.”
강우는 방금 전 듀얼 킹에게 들었던 정보를 리리스에게 전했다.
“흐응. 그럼 이 대륙의 동쪽을 조사해 보면 된다는 거네요?”
“대륙이라고 할 만큼 넓지도 않을 거야.”
위성세계는 지구나 에르노어 대륙과 비교해 그 규모가 굉장히 작았다.
아마 본격적으로 조사를 시작한다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으리라.
“그럼 제가 먼저 가서 찾아보고 있을게요.”
“아, 리리스한텐 따로 부탁할 게 있어.”
“부탁하실 거라뇨?”
리리스가 검지를 입술 위에 올리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흔적’을 좀 만들어줘.”
“흔적… 이요?”
“그래. 근육 덩어리 자식이 길 헤매지 않도록.”
“…아.”
그녀는 짧은 탄성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훗, 그거라면 제게 맡겨주세요. 확실하게 남겨둘게요.”
“그랭.”
스르륵, 어둠 속에 녹아들 듯 사라지는 리리스를 뒤로 한 채 몸을 돌렸다.
광기인지 환희인지 모를 비명을 내지르고 있는 미디르에게 다가갔다.
천천히 다가가 미디르의 검자루를 움켜쥐었다.
-우우우웅!!!
강렬한 기운이 검자루를 타고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띠링!
[‘절망을 먹는 검, 미디르’의 1차 각성(覺星) 조건이 충족됩니다!] [‘절망을 먹는 검, 미디르’가 ‘별’을 깨닫고 더 높은 경지에 들어섭니다!] [‘절망을 먹는 검, 미디르’의 등급이 【10성(星)】에서 【11성(星)】으로 격상(格上)합니다!]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창.
미디르가 11성으로 올라섰다는 내용과 함께 손바닥이 저릿할 정도로 아찔한 기운이 팔을 타고 전해졌다.
강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직은 좀 부족하지만.’
다음 ‘각성’을 마친 이후라면 충분히 제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자, 그럼.”
꾸르륵.
미디르를 ‘마해(魔海)’ 속에 수납하며 몸을 돌렸다.
-다음에 만났을 때,
불현듯 떠오르는 목소리.
온화하고, 따스하며, 산들바람처럼 포근한 목소리.
병적일 정도로 새하얀 그 거인은,
목소리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차가운 표정으로 고했다.
-당신의 세계는 종말(終末)을 맞이하게 될 겁니다.
마치 사형을 고하는 것처럼.
더없이 차갑고, 더없이 단호하게 읊조렸다.
‘아니지.’
고개를 젓는다.
‘너는 틀렸다, 아카르트.’
종말을 맞이하는 것은 자신의 세계가 아니다.
‘이번에는 네가, 나를 감당해야 할 거다.’
악마들의 왕이 간다.
포식자들의 왕이 간다.
내가,
간다.
“가볼까?”
낙원(樂園)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