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694)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외전 175화
낙원(樂園) (5)
“━너희. 들.”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차연주가 입을 열었다.
“지금, 뭐, 하는… 짓이야?”
굳게 움켜쥔 그녀의 주먹이 가늘게 떨렸다.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한 사나운 기세가 몰아쳤다.
까드득.
거칠게 이를 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금!!! 뭐 하는 개짓거리냐고!!!”
콰앙!!
테이블을 두 쪽으로 쪼개며, 타오르는 눈으로 그들을 응시한다.
“어머?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셨나 봐요.”
“어머나 그런! 죄송해요!!”
꾸벅 허리를 숙이는 여인들.
그들은 환하게 미소짓는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더없이 행복하고 즐거운 미소를.
“아….”
차연주는 아연한 표정으로 뒷걸음질 쳤다.
-질척이는 불쾌감.
등골을 타고 흐르는 끈적한 감각이, 거미줄처럼 몸에 퍼졌다.
“너, 너희. 대체, 뭐….”
머릿속이 새하얗게 타올랐다.
시야가 일그러진다. 치솟아 오르는 구역질에 속이 뒤틀린다.
아무렇지도 않게 아들의 목덜미에 포크를 쑤셔 박는 여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손뼉을 치며 환호성을 터트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우욱.”
치솟아 오르는 구역질을 필사적으로 참았다.
“자식, 이잖아.”
떨리는 목소리로, 쥐어짜듯 말한다.
“네 아들이잖아, 이 미친년아!!!!!!”
어떻게, 어떻게 아들을 자신의 손으로 죽여 놓고 저렇게 태연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렇지 않게 웃고 떠들 수 있단 말인가.
“네? 아, 예. 데일은 제 아들이 맞아요.”
“그렇다면!!!! 왜!!! 왜 죽인 거냐고!!!”
“그거야━”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아무런 감정이 담기지 않은 유리구슬과도 같은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규칙’을 깼기 때문이죠.”
“규칙…? 식사는 균등하게 나눠 먹으라는 그 규칙?”
“아카르트 님의 규칙은 절대적이에요.”
“개소리하지 마!!!”
어떤 세상에서 고기 한 점 더 먹었다고 자신의 아들을 죽인단 말인가.
“아, 아으. 가, 강우 씨. 강우 씨…!”
한설아가 덜덜 몸을 떨며 애타게 강우를 불렀다.
“커헉!! 크르륵!!”
바닥에는 목에서 피를 내뿜고 있는 데일이 발작을 일으키듯 몸을 들썩이고 있었다.
“빠, 빨리 치, 치료를.”
원래라면 ‘재생의 권능’ 이상의 회복마법을 지니고 있던 그녀였지만, 타천(陀天)을 하게 되면서 사용하는 마법의 성질이 모두 저주로 바뀌어 버렸다.
한설아는 데일의 목덜미에 [석화의 저주]를 사용해서 지혈했다.
패닉에 빠진 듯 목덜미에 닿은 손끝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잠깐 비켜봐, 임자.”
“저, 저 때문에…. 제가 고기를 줘서….”
“아니, 임자 때문이 아냐.”
그냥 이 자식들이 미친놈들인 거지.
씹어뱉듯 말하며 벌어진 데일의 입가에 핏방울을 흘려 넣었다.
“크륵… 하아, 하아!”
핏물이 솟구치던 데일의 몸이 빠른 속도로 재생됐다.
상처는 나았지만 아직 데미지가 남아 있는지 데일은 쓰러지듯 그 자리에 기절했다.
“어머나? 데일을 치료해 주시다니…!”
“데일 어멈!!! 우리 데일이가 죽지 않게 됐다네!!!”
“정말 다행이에요! 흐윽!!”
“아카르트 님의 기적이!! 아카르트 님의 기적이 일어난 거야!!!!”
데일의 상처가 치료되자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터트렸다.
마치 성공 확률이 희박한 수술에서 기적적으로 아들이 살아나기라도 한 듯한 반응.
만약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그들이 방금 전에 아들의 목덜미를 포크로 쑤셨다고는 생각하지 못할 만큼 감격에 찬 모습이었다.
“…미친 새끼들.”
차연주는 경멸에 찬 눈으로 그들을 노려봤다.
몸을 일으킨 그녀는 위협적으로 주먹을 들어 올렸다.
“차연주, 그만.”
당장에라도 데일의 부모들에게 달려들듯 한 차연주를 말렸다.
“…저 개짓거리를 보고 가만히 있으란 말은 아니겠지?”
“가만히 있어.”
“야, 오강우 너!!”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차연주.”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낮게 울려 퍼졌다.
흠칫.
차연주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입술을 잘근 깨물며 강우를 노려보았다.
네가 이럴 줄은 몰랐다는 듯한 표정.
“애초에 따질 필요가 없어.”
분노할 이유도, 의문을 가질 필요도 없다.
“여긴.”
그래.
이 더없이 순수하게 빛나는 세계는.
“처음부터 ‘이렇게 만들어’졌으니까.”
천칭과 진리, 빛의 거인.
태초에서 탄생하여, 그 손으로 직접 세계를 빗어낼 수 있는 창조주.
이곳은 그가 만든 세계다.
그가 만들어낸 ‘낙원’이다.
“그래, 이게 네가 말하는 ‘구원’ 받은 영혼이 향하는 곳이란 말이지?”
낄낄낄.
강우는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만들어진 기계장치처럼 살아가는 인간들.
규칙에 따라,
규율에 따라,
법칙에 따라.
욕망과 자유를 거세당한 세계.
행복과 즐거움만을 느끼게 되는 세계.
고통도, 슬픔도, 절망도, 열망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
이곳은.
“X까라, 이 새끼야.”
낙원 같은 곳이 아니다.
“어디서 오나홀을 낙원이라고 씨불여?”
이곳은 아카르트의 이상을 구현한, 오롯이 그의 만족감만을 위해 만들어낸 자위 도구 같은 세계였다.
이런 곳에 ‘낙원(樂園)’이라는 거창한 칭호는 어울리지 않는다.
-드륵.
강우는 의자를 뒤로 밀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식사 맛있게 했습니다, 여러분.”
방긋.
미소를 지으며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뒤집어쓴 엔트리온 슈트 때문에 제대로 미소가 전달됐을지는 알 수 없으나, 어찌 되든 상관없었다.
“호호호! 맛있게 드셨다니 다행이네요!”
“차라도 한잔 타드릴까요?”
“아뇨.”
환하게 미소 짓는 그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제가 차를 좋아하지 않아서요.”
“아… 그러신가요?”
“그보다 여러분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어머머! 얼마든지요! 뭘 알고 싶으세요?!”
아줌마들은 호들갑을 떨며 다가왔다.
강우는 느긋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전능하신 아카르트 님이 만드신 ‘규율’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어머나! 물론이죠!!”
“하하핫!! 아카르트 님의 규율에 대해 알고 싶다니!! 아주 바른 청년이로구만!!”
아이의 아버지들까지 끼어들어 열심히 규칙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여섯 사람이 동시에 이런저런 규율들을 쏟아내고 있다 보니 뭔 말을 하는지 제대로 알아들을 수조차 없었다.
“리리스.”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아카르트의 규율을 설명하느라 흥분한 사람들은 강우가 다른 누굴 부르든 말든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네, 마왕님.”
“쟤들이 말하는 규율들을 싹 정리해서 나한테 줘.”
“후훗. 네, 알겠습니다.”
리리스는 꾸벅 고개를 숙이며 열심히 규율에 대해 떠들고 있는 사람들 곁으로 슬며시 다가갔다.
찔꺼억.
슈트 틈 사이에서 뻗어 나온 검은 머리칼 끝이 촉수의 형태로 변하더니, 이내 허공에 무언가를 써내리 듯 꾸물거렸다.
“아카르트 님께서는 10살 이하의 아이들은 해가 지기 전, 다섯 시까지 마을에 돌아와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아아! 아이들을 걱정해주시는 아카르트 님의 마음을 아시겠나요?!!”
“하하핫! 아카르트 님께서는 일을 할 때는 게으르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지!”
“그분 덕분에 우리는 언제나 보람찬 마음으로 일을 한다네!!”
“힘든 노동을 끝마쳤을 때 먹는 시원한 물 한잔만큼 달콤한 것은 없지!!”
여섯 명의 사람이 동시에 쏟아내듯 내뱉는 말을 모두 기록해서 정리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리리스에게 이 정도 일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우리 마을의 사람들은 모두 아카르트 님의 은혜로 매일 부족함 없는 먹거리와 생필품들을 지급받으며 행복하게 살아가….”
“그랬군요.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그들의 열렬한 연설이 시작되고 30분.
대충 들을만한 정보는 다 들었다고 판단한 강우는 아직도 쉼 없이 떠들고 있는 그들의 말을 자르며 몸을 일으켰다.
“으음? 벌써 가려고 하는 건가?”
“네. 언제까지고 여러분들을 붙잡아 둘 수는 없으니까요.”
“흐음. 그런 건 굳이 신경 쓸 필요 없….”
“아까 전에 말씀하신 규율 중에 오후 8시가 되면 몸을 깨끗이 씻고 아카르트 님을 위한 기도시간을 가져야 한다 말씀하시지 않았나요?”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언제 시간이 이렇게 됐데?!”
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꺼낸 그들은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마당을 정리했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강우는 다급히 움직이는 그들을 뒤로 한 채 마을 밖으로 나왔다.
마을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하늘은 어두워져 있었고, 새하얀 대지는 달빛에 비쳐 푸르스름하게 빛나고 있었다.
-꾸르륵.
엔트리온 슈트를 벗자 검은 점액질이 되어 바닥에 녹아내렸다.
“…끔찍한 세계로군요.”
슈트를 벗은 김시훈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 난 끔찍한지는 잘 모르겠는데.”
X같은 세계인 건 맞지만.
“이 세계가 끔찍하지 않다는 말씀입니까?”
“뭐, 여기 사는 놈들한테는 이게 ‘당연한’ 거니까.”
가슴팍에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환하게 웃는 것도,
아들이 고기를 한 점 더 집어 먹었다고 포크로 목을 쑤셔버리는 일도.
이 세계의 주민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일상일 것이다.
“…강우 씨. 처음부터 이런 세계라는 걸 알고 계셨던 건가요?”
레이라가 입술을 짓씹으며 물었다.
아까 전, 자신에게 ‘조금 더 지켜보라’ 했던 그의 말이 떠올랐다.
강우는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저었다.
“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이질감을 느끼긴 했지만, 여기까지 불쾌한 세계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강우. 나 여기 싫어.”
에키드나는 꽤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어두운 표정으로 강우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피식.
강우는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걱정하지 마.”
흑갈색 머리칼을 흐트러트리며 나지막이 말했다.
“이 세계의 빛은.”
더없이 순수(純粹)하며,
한없이 순결(純潔)하며,
끝없이 순진(純眞)한 이 세계의 빛은.
“내가 꺼트릴 테니까.”
강우는 몸을 돌려 ‘루케오 푸레’의 전경을 눈에 담았다.
‘자, 그럼.’
혀를 길게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아카르트에 대한 열렬한 연설을 듣는 동안 이 세계의 빛을 꺼트릴 방법은 이미 생각해 두었다.
‘어려운 일은 아니지.’
오히려 제알에서 벌였던 듀얼 킹과의 듀얼보다도 더 간단했다.
‘아카르트.’
네놈이 만들어낸 작고 아름다운 낙원은.
“내가 더럽혀 주마.”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악마는 환하게 웃었다.
악마의 입가에 걸린 미소는,
낙원의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더없이 ‘순수하게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