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696)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외전 177화
낙원(樂園) (7)
순백색 옷에 검은 잉크를 떨어트린 것처럼, ‘루케오 푸레’는 빠른 속도로 욕망에 집어 삼켜져 갔다.
욕망을 모르던 이들에게, 욕심을 모르던 이들에게.
악마의 달콤한 속삭임은 더 없이 효과적이었다.
“하하핫!! 오늘도 보람찬 하루였어!”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사람들은 언제나처럼 호탕하게 웃으며 외쳤다.
웃고 떠드는 사람 중에 실제 [빛의 신전]으로 출근한 사람은 드물었다.
대부분은 구석진 골목에 숨어, 편안하게 낮잠을 즐기며 뒹굴다가 집에 돌아왔을 뿐이다.
-진실만을 말하던 그들의 입은, 어느새 거짓말만을 말하기 시작했다.
선악과(善惡果)를 씹어 삼킨 아담과 하와처럼, 그들은 너무나도 쉽게 타락했다.
‘당연하지.’
루케오 푸레의 상공.
순수하게 빛나는 도시를, 아니, 순수하게 ‘빛났던’ 도시를 내려다보며 강우는 어깨를 들썩였다.
너무나도 당연하고, 너무나도 필연적인 결과였다.
‘거짓말은, 언제나 진실보다 쉬운 법이니까.’
거짓말을 모르는 세계에 혼자만이 거짓말을 할 수 있다고 상상해 보라.
그토록 쉽고 편한 세상이, 그토록 같잖고 우스운 세상이 어디 있겠는가.
거짓말의 존재조차 모르는 이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자신의 말을 믿을 것이고, 그에 따라 행동할 것이다.
-마치 신이라도 된 듯한 전능감.
아니, 거짓말을 모르는 세계에서 거짓말을 아는 존재들은 말 그대로 신이나 다름없다.
“솔직히 이 정도로 빨리 퍼지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황량함 마저 느껴지는 [빛의 신전]의 주변을 바라보며 강우는 피식 웃었다.
그와 그의 일행들은 매일 아침 [빛의 신전]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을 납치해 강제로 ‘규칙’을 어기게 만들었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
규칙을 어기게 된 그들은 패닉 상태에 빠졌고, 공포에 질린 그들을 달콤한 말로 구슬리면 끝났다.
한 번이라도, 단 한 번이라도 ‘거짓말’을 경험해본 이들은 그 절대적인 전능감에서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다.
‘원래 새하얀 옷일수록 쉽게 더러워지는 법이니까.’
아무도 밟은 적 없는 새하얀 눈길 위를, 기름이 질질 새어 나오는 차를 끌고 지나간 것과 마찬가지.
한 번 지나간 자리는 다시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제 아무도 막을 수 없을 거야.”
입가를 귀밑까지 찢어 올리며 강우는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이제 아무도 막을 수 없다.
투명한 물속에 떨어진 잉크처럼, ‘욕망’은 삽시간에 루케오 푸레를 집어삼킬 것이다.
“아카르트.”
새하얀 거인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강우는 쯧쯧 혀를 찼다.
“너는, 정말 인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그가 만들어낸 세계.
이상(理想)과 망상(妄想)이 뒤섞인 낙원.
어설프고, 어쭙잖게 만들어진 자위 기구는 그 근본부터 잘못 설계되어 있었다.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욕망은 규칙 따위로 막을 수 없어.’
데일은 분명 ‘고기가 더 먹고’ 싶다고 말했다.
즉, 루케오 푸레에 사는 사람들은 ‘욕망’을 지니고 있다는 증거.
그렇다면.
욕망을 품고 있다면.
‘규칙’ 따위로 그것을 억제하는 건 불가능하다.
-욕망은 그 무엇보다 단순(單純)하며, 그 무엇보다 명료(明了)하다.
그렇기 때문에, 욕망은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다.
‘간단한 이유지.’
일하는 것보다 일하지 않는 것이 편하다.
어려운 것보다 쉬운 것이 좋다.
힘든 것보다 즐거운 것이 좋다.
고기를 세 점 먹는 것보다 네 점 먹는 게 좋다.
지극히 단순하고, 더없이 명료한 이유 아닌가?
“그걸 규칙을 지키는 건 절대적이라는 세뇌를 통해 억누르고 있었겠지만.”
‘거짓말’을 깨달은 이상 끝이다.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처럼 말하는 법을 깨닫는 순간, 규칙을 지킬 당위성은 사라져 버린다.
규칙을 지키지 않아도, 힘겹게 고생하지 않고도 ‘대가’를 치르지 않을 방법을 알아버렸으니까.
-상황은 좀 어떤 가요, 마왕님?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고혹적인 목소리.
고개를 내려 아래를 보니 주사위처럼 생긴 집 옥상에 걸터앉은 리리스가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드는 것이 보였다.
요염하게 다리를 꼰 그녀의 모습은 꽤나 거리가 떨어져 있음에도 절로 가슴이 떨리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덕분에 아주 순조롭게 진행 중이지.”
옥상으로 이동한 강우는 리리스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사실 이번 계획에서 가장 큰 역할을 했던 것은 리리스였다.
그녀는 현혹 마법을 사용해 납치한 루케오 푸레의 주민들에게 아주 간단하게 ‘거짓말’을 가르쳤다.
하나하나 말로 구슬릴 필요가 없으니 강우가 ‘분신(分身)의 권능’까지 사용해서 주민들을 타락시킨 것보다도 훨씬 빠르게 거짓말을 전파할 수 있었다.
“후훗. 이런 일은 제가 전문인걸요.”
“흐흐흐. 역시 이럴 때 리리스가 있으니 든든하구만.”
강우는 그녀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가볍게 끌어안았다.
“어머.”
리리스는 짐짓 놀란 척을 하며 자연스럽게 그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호호. 설아가 보면 또 혼나겠네요.”
“아, 그건 좀 무서운데.”
다급히 떨어지려고 하자 리리스가 검은 머리칼을 쭉 늘어트려 몸을 휘감았다.
“안 돼요. 열심히 했으니 저도 보상을 받을 거예요.”
그녀는 흐응, 야릇한 콧소리를 흘리며 강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웬일이야?”
“저도 가끔은 설아나 연주처럼 어리광부리고 싶은 나이에요.”
“…엥?”
분명 그녀의 나이는 자신보다 몇천, 혹은 몇만 살은 연상….
“강우 님. 지금 이상한 생각하시는 거 아니죠?”
호호호.
리리스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입은 웃고 있는데 눈빛은 차갑게 식어있어 무섭다.
“그렇지! 우리 리리스도 한창 어리광을 부릴 나이지!”
“이해해주셔서 고마워요, 강우… 오빠? 이렇게 부르는 거 맞나요?”
“아니.”
오빠는 좀 선 넘지.
나이 차이가 몇인데.
“…아니, 라고요?”
“아니 너무 기쁘다고.”
와 정말 가슴이 두근거리는 게 멈추지 않는걸?
“흐응….”
가늘게 뜬 눈으로 강우를 바라보던 리리스가 이내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그럼 우선 루케오 푸레에 대해 조사한 걸 말씀드릴게요.”
“그랭.”
“루케오 푸레에는 일정 구역마다 총 열두 개의 [빛의 신전]이 있어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그리고 마을의 동쪽 끝, [태양의 계단] 너머에는 [진리의 사원]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고 해요. 마을 사람들이 매일 두 번씩 기도하는 방향도 저쪽이죠.”
“거기가 아카르트가 있는 곳인가?”
“아마도요.”
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진리의 사원]이 위치해 있다는 동쪽을 바라보았다.
꽤나 높은 곳에 올라와 있었음에도, 여기서 [진리의 사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늘 높이 솟은 거대한 빛기둥.
일명 [태양의 계단]이라 불리는 거대한 벽이 시야를 완전히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진짜 드럽게 크긴 하네.”
저 거대한 빛의 기둥은 하늘 끝까지 날아올라도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아마 공간 자체가 단절된 것 같아요.”
“그렇겠지.”
자신이 직접 ‘낙원’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건지, 아니면 단순히 귀찮아서 손을 놓은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카르트와 그의 추종자들은 저 [태양의 계단] 너머에 위치한 [진리의 사원]에 처박혀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뭐, 저쪽이 나올 생각이 없다고 해도.’
이쪽이 그럴 생각을 만들어주면 그만이지만.
“그럼 슬슬 준비해야 할 거야.”
가늘게 눈을 뜨며 루케오 푸레 전체를 쭉 둘러보았다.
루케오 푸레의 주민들에게 ‘거짓말’을 퍼트린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결정적인 한 방.
그들의 응축되고, 억눌린 욕망을 한 번에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한 발 더 깊게 나아가야만 했다.
“호호호. 제가 누구라고 생각하시나요? 이미 [빛의 신전] 쪽에 인원을 배치해뒀어요.”
리리스가 입가를 가리며 작게 웃었다.
“오, 뭐야?”
다들 어디 갔나 보이지가 않더니, 아무래도 리리스가 미리 [빛의 신전]마다 동료들을 보내둔 것 같았다.
“푸흐흐! 역시 우리 리리스만 한 아내가 없다니깐.”
“흐응, 어차피 설아 앞에 서면 똑같은 말을 하실 거면서.”
“내 아내들은 다 최고지.”
우열을 가릴 것도 없다.
“후훗. 아, 근데 몇 군데는 인원이 좀 비게 됐어요.”
루케오 푸레에 위치한 [빛의 신전]이 총 열두 개니, 자연스럽게 어느 한쪽은 비게 될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 시훈이랑 임자가 두, 세 개 이상은 커버해줄 테니까.”
“어머? 마왕님은 이번에 나서지 않으실 생각이신가요?”
“엉.”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내가 나서면 ‘그 자식’이 경계할 수도 있으니까.”
“아… 그렇군요.”
리리스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가 말하는 ‘그 자식’이 누구인지 굳이 깊게 생각할 필요조차 없었다.
지금 이 세계에서 강우가 이 정도로 경계할 존재는 하나뿐이니까.
“끙차.”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가볍게 몸을 풀었다.
“자, 그럼.”
강우는 지그시 눈을 감으며 귀를 기울였다.
곧 여섯 시가 되는 시간.
루케오 푸레 전체에 ‘식전 기도’ 소리가 울려 퍼질 시간이었다.
‘삼, 이, 일.’
머릿속으로 시간 초를 세었다.
그리고,
-전능하신 아카르트여 진리의 빛으로 날 보호하소서. 거룩하신 지혜로 날 이끄시고 내 가는 길 어둠에 싸여 있어도 신성한 빛으로 내 영혼을 이끄소서.
마을 전체에 울려 퍼지는 기도 소리.
그 소리는,
며칠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연히 ‘작아져’ 있었다.
“푸헤헤헤헤헿!!”
천박한 웃음을 터트리며, 배를 움켜쥐었다.
‘그래, 이 정도였어.’
아카르트가 만들어낸 순백의 낙원은, 고작 이 정도만으로 쉽사리 더럽힐 수 있는 어설픈 낙원이었다.
“후우.”
하늘을 올려다보니 슬슬 날이 저물고 있었다.
‘곧.’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이 순백의 낙원을 지키는, 규칙과 규율을 수호하는 존재들이.
-우우우우우웅!!!!
“어이쿠, 이 사람들 이거 양반은 못 되겠네.”
어둠에 물들어가는 마을 속. 총 열두 개의 빛기둥이 높게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아카르트의 사도(使徒).
빛을 추종하며, 빛을 따르는 존재들.
이 순백의 낙원의 ‘관리자(管理者)’가, 더럽혀져 가는 낙원을 막기 위해 지상에 강림했다.
“어, 시훈아. 들리냐?”
[예,]통신용 수정 구슬을 들어 올린 강우는 김시훈에게 연락을 보냈다.
[어떻게 할까요, 형님?]수정 구슬을 통해 자랑스러운 동생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낄낄낄.
강우는 혀를 길게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귀밑까지 찢어진 입가 사이로 날카로운 이빨이 드러났다.
“싹 다 죽여 버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