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698)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외전 179화
낙원(樂園) (9)
“사, 사도님들이….”
“이, 이건 악몽이야아아아아!!!”
“믿을 수 없어어어어어!!!!”
밤하늘에서 펼쳐지는 장대한 전투 속, 루케오 푸레의 주민들은 두 손으로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절규를 터트렸다.
그들이 믿고 따르는 신, 그들이 받들고 섬기는 ‘신’의 사도들이 무참히 쓰러지고 있었다.
이 얼마나 비탄한 광경이란 말인가.
이 얼마나 처참한 광경이란 말인가!
“전능하신아카르트여진리의빛으로날보호하소서전능하신아카르트여진리의빛으로날보호하소서전능하신아카르트여진리의빛으로날보호하소서.”
“빛을! 빛을! 빛을! 빛을! 빛을! 빛을! 빛을! 빛으으으으을!!!!”
“아카르트시여어어어어어!!!!!”
혼란을 넘어 광란에 빠진 마을 주민들.
그들은 입에 거품을 물며 빛의 사도들이 사악한 무리를 이기기를 기도했다.
하지만 그들의 간절한 기도 소리는 아카르트에게 닿지 않았던 걸까.
“커헉, 쿨럭!”
“사, 살려, 줘, 모, 몸이, 이….”
새하얀 검을 든 청년과 열두 장의 검은 날개를 지닌 천사.
마치 서로 경쟁을 하듯 사도들을 쓸어버리는 둘의 강력한 위용 앞에 사도들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아니, 저 둘뿐만이 아니다.
-촤르르르륵!!
“헹, 아카르트의 사도란 놈들도 생각보다 별거 아니네.”
피처럼 붉은 쇠사슬이 회오리쳤다.
회오리치는 쇠사슬의 중심에는 붉은 머리칼이 여인이 팔짱을 낀 채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이고 있었다.
“몇 번째 추종자, 라고 불리는 강력한 사도들은 이번에 안 온 모양이네요.”
-탁.
그녀의 옆에 연한 갈색 머리칼의 여인이 가볍게 착지했다.
온화하고, 얌전한 인상의 여인이었지만, 방금 전까지 새하얀 빛무리를 사용해 사정없이 사도들을 몰아치던 그녀의 모습을 지켜본 주민들은 그녀가 전혀 온화하지도, 얌전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흐응! 이번에는 나도 도움 많이 됐지?!”
“호호. 물론이란다.”
빛의 신전을 반쯤 박살 내며 날뛰던 사악한 흑룡(黑龍)이 귀여운 소녀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녀의 옆에선 단정한 흑발의 여인이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소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아, 아아.”
압도적인 패배.
빛의 사도들은 제대로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정체불명의 습격자들에게 패배해 버리고 말았다.
루케오 푸레의 주민들은 입을 쩍 벌린 채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덜덜 몸을 떨었다.
-낙원의 습격자.
루케오 푸레가 만들어진 이래, 한 번도 없었던 끔찍한 참사가 눈앞에 펼쳐졌다.
“아아, 여러분. 잘 들리시나요?”
공포에 빠진 그들을 내려다보며 리리스가 짙은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남자의 본능을 잡아 흔드는 마성(魔性)의 목소리가 마법을 타고 마을 전체에 울려 퍼졌다.
“후훗. 그렇게 공포에 질리실 필요 없답니다?”
악마라고는 감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더없이 상냥하고, 자상한 목소리로 그녀는 말을 이었다.
“저희는 여러분을 해칠 생각이 전혀 없어요.”
예상치 못한 그녀의 말에 루케오 푸레의 주민들이 동그랗게 눈을 떴다.
물론 일반적인 사람들이었다면 당연히 헛소리하지 말라고 소리쳤겠지만, 루케오 푸레의 주민들은 달랐다.
그들은 ‘거짓말’에 익숙하지 않다.
아니, 익숙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 존재조차 모른 채 살아가고 있었다.
-설사 그것이 악마의 달콤한 속삭임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은 의심하지 않는다. 아니, 의심한다는 개념 자체가 희박하다.
여기는 그런 세계였으니까.
더없이 순수(純粹)하며, 한없이 순결(純潔)하며, 끝없이 순진(純眞)한 ‘낙원’이었으니까.
“네, 네놈들이 감히 사도님들을!!!”
해칠 생각이 없다는 말을 믿은 주민 중 하나가 용기를 내어 외쳤다.
리리스는 방긋 미소지었다.
“호호호. 이분들과 싸운 건 저희와 개인적인 원한이 있어서예요. 여러분들 안심하고, ‘평소와 같은 생활’을 이어가시면 된답니다?”
원성 섞인 그들의 외침을 가볍게 흘려넘긴 리리스는 검은 머리칼을 넓게 펼쳤다.
“어, 어어?”
“도, 도망친다!!!”
“잡아!!!”
잡으라고 소리치는 주민들은 몇 있었지만, 높게 솟은 빛의 신전 꼭대기에 올라서 있는 그들을 잡으러 갈 수 있는 사람들은 없었다.
아니, 애초에 잡으러 간다고 해도 잡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루케오 푸레의 주민들은 어디까지나 평범한 인간들이었으니까.
“그럼~ 잘 지내세요, 여러부운~!”
리리스가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검은 머리칼이 그들의 몸을 감싸더니, 이내 어둠에 녹아들 듯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
“…굳이 저런 정신 나간 놈들한테 이렇게까지 해야 해?”
주민들에게서 완전히 몸을 감춘 이후, 차연주는 불쾌하다는 듯 주민들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마왕님께서 시키신 일이잖니.”
“하아. 하여간 그 자식은 뭔 생각을 하는지 통 알 수가 없단 말이야. 이게 뭔 욕망의 해방이니 뭐니….”
뭐, 다른 건 그렇다 쳐도 이렇게 사도들을 싸그리 죽여 놓고 억눌려 있던 그들의 욕망이 해방될 거라는 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이 믿고 따르던 사도들이 정체불명의 습격자들에게 잔혹하게 살해당했으니 공포에 질려 꼭꼭 숨어버리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
실제로 지금 주민들의 대부분은 새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벌벌 떨고 있었다.
“흐응, 정말 모르겠니?”
“엥? 언니는 오강우 그 자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거야?”
“호호, 물론이지. 난 마왕님의 사랑스러운 아내니깐.”
“아니. 나도 저 자식 그, 뭐, 뭐냐! 아, 아내거든!”
차연주가 발끈한 표정으로 외쳤다.
그 모습이 퍽 귀여운지 리리스는 쿡쿡 웃음을 흘렸다.
“강우 씨가 뭘 노리시는 건지는 저도 알 것 같아요.”
레이라가 연갈색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눈을 빛냈다.
“…알고 있다고?”
“아 참, 당연히 제가 강우 씨의 아내이기 때문에 알고 있는 건 아니에요.”
“아니. 그런 생각 안 했거든?”
“전 NTR충이 가장 싫으니까요.”
“뭔 소리 하는 거야, 이 여자.”
레이라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아직 혼란에 빠진 주민들의 모습을 쓱 훑었다.
“연주 씨. 이 마을의 시스템을 보면 뭐 떠오르는 거 없으세요?”
“시스템이라면… 뭐, 당연히 극한의 공산주의 국가지.”
원숭이 엉덩이는 빨갱이 새끼덜.
차연주는 쯧, 혀를 차며 뒷말을 삼켰다.
공평하게 일을 하고, 공평하게 그 보수를 나눈다.
중, 고등학생만 되더라도 ‘루케오 푸레’의 시스템이 극한에 도달한 공산주의임을 깨닫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 공산주의 체제에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아세요?”
“그거야 당연히 놈팡이 치는 놈이 없도록 관리하는… 아.”
차연주의 입에서 짧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와 씨, 오강우 이 자식 그래서 주민들이 보는 앞에서 사도들을 죽이라고 한 거였구만?”
공산주의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절대적인 권력’이다.
인간의 욕망은 쉽사리 제어될 수 없기에, 절대적인 권력을 통해 손발을 잘라내야만 나라가 돌아간다.
아니, 사실 그렇게 해도 제대로 나라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은 지구의 역사가 이미 증명해 냈다.
빛의 사도.
즉, 실질적으로 루케오 푸레를 관리하는 ‘관리자’들이 사라진 순간 억눌려왔던 욕망은 일제히 해방될 것이다.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격렬하게.
“잠깐. 근데 정작 중요한 아카르트가 남아 있잖아?”
아카르트가 존재하는 한, ‘절대적인 권력’이라는 것은 무너지지 않는다.
“아카르트의 경우는 오히려 너무 절대적이니까요. 독실한 교인들이라고 해서 자신들이 실수를 저질렀을 때 눈앞에 신이 강림해서 머리통을 두 쪽으로 쪼개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잖아요?”
역설적인 말이었지만, 아카르트의 경우 그들에게 있어 너무나도 절대적이고, 범접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신들처럼 ‘하찮은’ 존재의 죄 따위, 아카르트처럼 절대적인 존재가 일일이 신경 쓸 리가 없다 생각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실질적인 억압이 되는 것은 오히려 정기적으로 [진리의 사원]에서 나와 루케오 푸레를 관리하는 사도들이다.
“와… 이 악마 같은 새끼.”
차연주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강우가 남들이 할 수 없는 비상한 생각을 했다는 점에서 흘러나오는 감탄사가 아닌,
이 무모하고 과격하기 짝이 없는 계획을 단기간에 여기까지 실현시켰다는 사실에서 흘러나온 감탄사였다.
“근데… 한 가지 이해가 안 가는 게 있어요.”
“이해가 안 가는 거?”
“강우 씨의 목적은 이 세계를 절망에 빠트리는 거잖아요? 이렇게 해서 욕망을 해방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해도… 대체 그 뒤는 어떻게 하실 생각인지….”
“호호. 그거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던 리리스가 앞으로 나섰다.
“그 부분이 마왕님께서 가장 공들여서 준비하신 부분이니까요.”
“……?”
“후훗. 잡담은 여기까지 하고, 슬슬 갈까요?”
리리스는 고개를 들어 올려 루케오 푸레의 상공에 번쩍이는 응원봉을 연신 흔들고 있는 강우를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무한한 신뢰와 흔들림 없는 충성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제 곧 ‘마지막’이 머지않았으니까요.”
악마가 건네준 달콤한 과실을 집어삼킨 낙원은,
곧 절망의 구렁텅이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 * *
“하하! 오늘도 보람찬 하루였군!”
“엄마! 오늘은 빵 두 개가 덜 들어왔어요!”
“어머머! 급한 약속이 생겨서 오늘은 저녁 식사를 만들 시간이 없을 것 같아요!”
예상했던 대로.
억눌리고, 짓눌리고, 짓밟혀 있던 주민들의 욕망은, 일제히 ‘해방’됐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거짓말을 하며 주어진 ‘규칙’들을 하나둘씩 무시하기 시작했다.
그 속도는 가히 압도적.
마치 전염병이 퍼지듯 마을 전체의 주민들이 ‘거짓말’에 잠식되어갔다.
-악마가 건네준 과실은 지나칠 정도로 달콤했다.
너무나 달콤했기에, 너무나 편했기에, 너무나 쉬웠기에.
그들의 타락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가속화됐다.
“이야, 이런 건 또 신박하네.”
활기찬 미소를 한가득 머금은 주민들을 바라보며 강우는 헛웃음을 흘렸다.
아직 ‘거짓말’에 익숙하지 않은 그들은 거짓말을 하는 법만 알고 있지, ‘의심’을 하는 법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
즉.
서로가 서로에게 거짓말을 하긴 하는데, 그걸 서로 다 믿어버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진 것.
“만족스러운 개판이 되어가고 있구만.”
지금 루케오 푸레의 모습은 혼돈 그 자체였다.
그간 충분히 쌓아둔 식량과 보급품들이 없었다면 시스템 전체가 붕괴했을 정도로.
-우우우우우웅!!!
혼돈에 빠진 낙원에 거대한 빛줄기가 내려왔다.
[빛의 신전]에서 솟구쳐 올랐던 빛기둥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장엄한 빛줄기가.“어이구, 이제야 오셨네.”
눈부신 빛줄기 사이로, 한 청년이 걸어 나왔다.
태초에서 탄생한 거인.
빛과, 진리와, 균형의 티탄.
“아카르트.”
그가, 낙원에 강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