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7)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8화
마왕의 분노(3)
“흐윽. 어어엉.”
서러움에 복받친 한태현의 울음소리가 집 안에 울려 퍼졌다.
‘왜 하필 이런 놈을 만나서.’
차라리 소설이나 만화에서 자주 나오는 정의의 히어로 같은 놈에게 당했다면 이 정도로 억울한 기분은 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를 일방적으로 구타한 존재는 히어로라기보다는 빌런에 가까운 존재였다.
‘김치찌개 빌런.’
한태현은 억울함에 찬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표정에 강우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왜? 김치찌개 하나에 이렇게 목매니까 미친놈처럼 보여?”
“아, 아닙니다!”
정곡을 찌르는 그의 말에 한태현은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강우는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너는 말이야…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것뿐이야.”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가 어떤 감정으로, 어떤 생각으로 만 년이라는 아득한 시간을 견뎌왔는지.
악마에게는 수명의 개념이 없었다.
그들은 먹지도, 마시지 않아도 영원을 살아갈 수 있었다.
마기를 받아들여 반쯤 ‘악마’와 가까워진 강우 또한 그들과 같이 수명의 개념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에게는 ‘인간’인 부분 또한 남아 있었다.
머리와 몸의 감각은 먹고 마시는 쾌락에 대해서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구천지옥 어디에도 그가 갈망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악마에게는 애초에 그가 갈망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욕망에 해탈하는 것 또한 불가능했다.
악마의 육체는 강제로 욕망을 보존시키며 정신이 붕괴되지 않도록 막아준다.
그가 만 년이라는 시간 동안 정신을 유지한 것도, 악마들이 영원을 살아가면서도 끊임없이 목숨을 건 전투를 이어갔던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인간인 채로 악마의 삶을 산다는 것은 영원히 이어지는 고문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욕망은 충족되지 않는다.
갈증은 해소되지 않는다.
그에게 지옥이 지옥처럼 느껴졌던 것은 그곳에 타오르는 겁화가 있어서도, 황량한 대지가 있어서도 아니었다.
그곳은 아무것도 없었기에, 그에게 있어 지옥으로서 존재했다.
“네가 얼마나 행복에 겨운 삶을 살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고.”
마시고 있는 공기의 소중함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당장 공기가 없다면 고작 몇 분도 버티지 못하고 죽는 인간이지만, 그 누구도 숨을 쉴 때마다 공기에게 감사하지 않는다.
당연한 것은 당연하지 않게 되었을 때 절망으로 다가오는 법이었다.
“으, 으으…. 죄,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한태현은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는 일단 죄송하다고 싹싹 비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 사과를 받아들여주지.”
강우는 그렇게 말하며 한태현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히익! 사, 살려줘!”
“걱정 마, 죽이지는 않을 테니까.”
딱히 한태현에 대해서 동정심이 들거나, 살인이라는 것 자체에 거부감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한태현을 살려두는 이유는 한 가지였다.
‘귀찮아지니까.’
서로 죽이는 것이 일상인 지옥이라면 모를까 지구에서 살인은 중죄였다.
물론 그냥 돌려보냈을 때 더욱 귀찮은 일이 생길 가능성도 있었지만 그 점에 대해서는 생각해 둔 바가 있었다.
“가, 감사합니다!”
죽이지 않겠다는 그의 말에 한태현은 희망이 담긴 눈빛으로 고개를 숙였다.
강우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차라리 죽는 게 더 나을걸.”
“……?”
“뭐, 겪어 보면 알게 될 거야.”
강우는 그렇게 말하며 마기를 일으켰다.
공포의 권능.
오로바스의 권능으로서, 대상의 공포심을 그 영혼에 각인시켜 감히 자신에게 반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꼭두각시로 만드는 권능이었다.
마기 자체가 크게 드는 권능은 아니었지만 성공 조건이 상당히 까다로운 권능.
‘극심한 공포 상태라는 게 쉽게 만들기 힘들지.’
영혼에 각인시킬 수 있을 만큼의 공포심을 상대에게 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상대와의 실력 차가 확실한 지금 같은 상황이 아니라면 사용할 수 없는 권능.
하지만 일단 사용만 한다면 효과 하나는 확실했다.
“아, 아아….”
공포의 권능으로 인해 한태현이 느끼고 있는 공포의 감정이 한층 더 짙어졌다.
그는 바지에서 오줌을 지리며 이지를 잃어버린 듯이 멍한 표정으로 강우를 바라보았다.
“너는 이제 그 감정을 평생 느끼면서 살아가야 할 거야.”
강우는 덜덜 떨리는 한태현의 몸을 바라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시, 싫어….”
마지막 이성을 쥐어짜낸, 한태현의 애달픈 목소리.
강우는 어깨를 으쓱이며 가벼운 어투로 대답했다.
“세상이란 게 좋은 일만 하며 살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하지 않지.”
한태현이 한설아에게 내뱉었던 말.
그 말은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그에게 되돌아왔다.
“그럼, 이제 가봐. 여기 있었던 일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강우는 귀찮다는 듯이 손을 휘휘 저었다.
그는 이제 자신에게 완전히 굴복한 꼭두각시가 되었다.
설사 고문을 당하는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곳에서 있던 일들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을 것이다.
한태현은 멍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키더니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밖으로 나갔다.
그가 밖으로 걸어 나가는 것을 본 한설아가 강우를 향해 다가왔다.
그녀는 강우를 향해 깊게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강우 씨. 강우 씨가 아니었다면… 제 힘으로는 오빠를 막아설 수 없었을 거예요.”
고블린에게서 목숨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
그것도 모자라 수년 간 그녀를 괴롭혔던 한태현에게서 자신을 지켜준 그에게 어떻게 보답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단순히 감사하다는 인사만으로는 이미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입어버렸다.
“제가 어떻게든… 강우 씨에게 받은 이 은혜는 어떻게든 갚도록 노력할게요.”
그녀는 진심이 담긴 목소리로 말하며 다시 한번 깊게 허리를 숙였다.
강우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우선 정리부터 하죠.”
강우와 한태현의 전투로 인해 집은 완전히 난장판이 된 상태였다.
“아, 정리라면 제가….”
“같이 하는 편이 빠르니까요.”
강우는 그렇게 말하며 난장판이 된 집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한설아는 강우를 따라 거실을 정리했다.
그렇게 청소가 이어지고 있던 중, 그녀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강우 씨는 어디에 사시나요?”
“아.”
갑작스러운 그녀의 물음에 강우의 입에서 짧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러고 보니 원래 살던 방은 사라져 있겠네.’
5년 동안 월세를 내지 못했으니 이미 한참 전에 그가 살던 단칸방에는 다른 사람이 들어와 있을 것이다.
그제야 강우는 자신이 지금 잠잘 곳도 없는 노숙자 신세라는 것을 깨달았다.
‘일단 살 곳부터 구해야겠군.’
큰 걱정은 되지 않았다.
지금의 그에게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힘이 있었다.
그가 가진 힘이라면 살 곳을 마련하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았다.
“사정이 있어서 지금은 살 곳이 없습니다.”
“예? 그렇다는 말씀은….”
“뭐, 지금 당장은 노숙자 신세라는 거죠.”
강우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그의 표정에 한설아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에 잠겼다.
“그러시다면··.”
고민에 잠겨 있던 한설아는 살짝 뺨을 붉히며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지, 집을 구하실 때까지 저희 집에서 잠깐 머무르실래요?”
그녀는 두 주먹을 쥔 채 긴장에 찬 표정으로 물었다.
사실 지금 그녀의 행동이 상식적인 일은 아니었다.
강우에게 많은 것을 빚졌다고 하지만 만난 지 고작 몇 시간이 채 되지 않은 남자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제정신으로는 하기 힘든 일이었다.
‘알고 있지만.’
조금 더 오강우라는 남자에 대해서 알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가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궁금함을 참을 수 없었다.
조금 더 직설적으로 말해서, 그에게 어느 정도 호감이 갔다.
“호오.”
그녀의 말에 강우는 눈을 반짝였다.
고민할 필요도 없는 제안이었다.
지금 당장 갈 곳이 없는 그에게 이 집은 훌륭한 안식처이자 지구에서 적응하기 위한 발판이 될 수 있었다.
그녀의 가정 형편상 편하게 살기는 힘들 수도 있었지만 그에게는 크게 상관없는 일이었다.
‘돈이야 내가 벌면 되니까.’
지옥에서 힘이 가장 중요했다면 지구에서는 돈이 가장 중요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신과 같은 존재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잠시 신세를 지겠습니다.”
“아.”
긴장에 차 있던 한설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녀도 지금 자신의 행동이 굉장히 비정상적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었던 탓이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설아 씨.”
“저,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한설아는 강우와 악수하며 고개를 숙였다.
“방은 예전에 오빠가 사용하던 방이 하나 남아 있어요. 거길 쓰시면 될 거예요.”
“예.”
강우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가 안내해준 방으로 들어갔다.
‘일단 당장 해야 할 건 두 개인가.’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은 봉인된 만마전을 대신하여 사용할 마기를 늘리는 것과 생활에 필요한 돈을 버는 것이었다.
그가 가진 수백 개의 권능은 단순한 전투 이외에도 사용할 방법이 무궁무진했다.
앞으로 편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그러한 권능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마기를 늘려두는 것이 좋았다.
‘한태현 같은 놈들하고 얽힐 수도 있고.’
한태현의 경우 전투 센스 자체가 워낙 밑바닥인 탓에 힘과 스피드, 모두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도 압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태현 이상 가는 레벨과 기술을 가진 존재와 싸우게 된다면 만마전의 힘이 봉인 당한 지금,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었다.
어떤 이유에서건 마기를 쌓는 것은 필수적이었다.
‘그리고 돈.’
플레이어들이 몬스터 사냥을 통해 돈을 버는 방법은 인터넷 기사를 봤을 때 조사해 두었다.
“설아 씨, 혹시 가지고 계신 마석 있으신가요?”
“아, 예. 많지는 않지만 E급 마석이라면 몇 개 가지고 있어요.”
“잠깐 볼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죠.”
한설아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가방에서 흰색으로 빛나는 수정을 꺼냈다.
강우는 그녀에게서 E급 마석을 받아들이며 인터넷 기사에서 보았던 내용을 떠올렸다.
‘색이 검은색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등급이 높은 마석이라고 했지.’
게이트와 마찬가지였다.
게이트는 최하급인 F급 게이트가 새하얀 빛을 띠고, 등급이 높을수록 색이 혼탁해지며 검은색을 띤다고 한다.
마석들은 높은 등급일수록 강력한 마력을 가지고 있었고, 고가에 거래되었다.
플레이어들의 주 수입원은 바로 이 몬스터 사냥을 통해 나온 마석이었다.
강우는 E급 마석을 손에 올려둔 채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는 정신을 집중하고 마석 안에 담긴 기운을 읽었다.
‘마기가 느껴지지 않아.’
강우는 고블린의 시체에 포식의 권능을 사용했을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분명 고블린들의 시체에는 아주 미약하지만 마기가 담겨 있었다.
강우는 그 마기가 몬스터의 핵이라고도 불리는 마석에 담겨 있을 거라 예상했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마석에 담겨 있는 것은 마기와는 다른, 마력이라고 불리는 에너지였다.
‘그렇다면 마기는 어디에 있던 거지?’
이전 포식의 권능을 사용했을 때는 애초에 몬스터들이 마기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 자체를 못했기 때문에 어디에 마기가 담겨져 있는지 확인하지 못했다.
‘나중에 그것도 확인해 봐야겠군.’
지금 중요한 것은 몬스터들이 어디에 마기를 가지고 있는지가 아니었다.
그들이 마기를 가지고 있고, 돈이 되는 마석을 품고 있다는 사실.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만으로 그의 목적 두 가지를 동시에 취할 수 있는 것이 중요했다.
“설아 씨, 여기 근처에 플레이어 관리소가 있나요?”
“아뇨. 여기는 서울 외곽 쪽이라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셔야 있어요.”
“그렇군요. 혹시 어디에 있는지 안내해 주실 수 있습니까?”
“네. 안 그래도 저도 플레이어 관리소에 갈 일이 생겼으니까요.”
한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설아 씨도요?”
“예. 이번 일로 제가 얼마나 성급했는지 깨달았어요.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초 교육은 받고 게이트에 입장하려고요.”
한국에서는 처음 각성한 플레이어들이 레벨 10, 2차 각성 특성이 개화할 때까지 안전하게 레벨을 올릴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제도가 있었다.
말이 지원이지 교육비로 상당한 돈이 들기 때문에 그녀처럼 재정이 넉넉하지 않은 플레이어는 기초 교육을 받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2차 특성도 개화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게이트에 들어가는 것은 자살행위라는 사실을 이번 일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
“흐음.”
그녀의 말에 강우는 가늘게 눈을 떴다.
‘도와줄까?’
그가 가진 힘이라면 한설아의 레벨 업을 도와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레벨은 오히려 그녀보다 낮다고 하나 그에게는 만 년간 쌓아온 전투 기술과 각종 권능이 있었다.
그녀 한 명 정도 더 데리고 다니며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은 부담스럽지 않았다.
‘아니.’
잠시 고민을 이어가던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사냥 효율이 떨어져.’
나중이라면 모를까, 지금 당장 그녀가 가진 능력만을 생각했을 때 함께 다니는 것은 득보다 실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굳이 방해가 되는 전력과 파티를 짤 필요는 없지.’
한설아에 대해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녀는 그가 지구로 귀환한 후 처음으로 만난 인간이자, 그토록 갈망하던 김치찌개를 만들어준 여인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손해를 감수하며 그녀를 데리고 다닐 이유는 되지 않았다.
‘구분할 건 구분해야지.’
그는 계산적인 인간이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지옥에서 보낸 지난 만 년의 시간이 그를 계산적일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강력한 악마들이 가득한 지옥에서 인간인 그는 밑바닥 약자였고, 약자인 그가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계산적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 포식의 권능으로 먹어치운 악마들의 숫자가 많아졌을 때는 강자의 입장에 섰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혼에 베인 습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우선 힘부터 되찾고 생각하자.’